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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1.07 놀이의 규칙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평소처럼 월요일 저녁 키친핸드 근무 치면서 손으로는 분무질하고 머리로는 딴생각 이것저것 하다가 대강 정리한 것. 내일 멜번컵 공휴일 저녁근무도 있는데 이 시간 되도록 안자고 일안하고 뭐하는거람


우리는 사상 처음으로, 자기들이 노는 놀이의 규칙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세대를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놀이란 그 행동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행동을 일컫는다. 그러므로 그 규칙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놀이의 핵심이고 가치이다. 소꿉놀이는 누가 아버지, 누가 어머니, 누가 자식이 되고 각자 무엇을 하는지를 정하고서야 비로소 시작되고, 땅따먹기는 땅에 네모 금을 긋고 돌을 줍는 데서 시작하고, 하다못해 "데덴찌"를 해도 무슨 구호를 외칠 것인지를 주체적으로 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 어린 시절에 스스로 놀이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대로 놀이를 하다가 집에 가는 경험이야말로 유사 이래 인류가 대대로 전수하며 역사를 앞으로 추동한 힘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뭔가가 고안되고 발견되고 발명될 때마다, 인류는 그에 대한 규칙을 수립하고 그 규칙대로 과감하게 시도해 볼 필요가 있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해 왔기 때문이다. <호모 루덴스>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개념이다.


그런데 실천적이고 현실적인 차원에서, 지금 이 나라의 아동과 청소년들은 무슨 놀이를 하고 있는가? 어쩌면 지금 그들은 성인 사회가 가공 및 규격화해 유통하는 몇 가지 특정한 형태의 오락과 제한된 종류의 쾌락만을 수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테면, 어렸을 적 전쟁놀이를 하며 느끼던 재미들 중 '롤플레잉'이나 '타격감' 등의 특정 측면만을 어른이 되어 선택적으로 부각해 일정한 목적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온라인 게임으로 체계화해 제공하면, 그들의 아랫세대는 "내가 딜러를 하니 네가 탱커를 하니 이번에 누가 승격을 하니" 하면서 PC방에 옹기종기 모여 주어진 목적에 따라 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비디오 게임이 아동 청소년에게 유익하지 않을 수도 있는 이유를 딱 하나 꼽으라면 바로 이 부분, 놀이의 본질로서 규칙을 수립하고 준수하는 주체의 의식과 경험을 대체 혹 희석한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놀이"를 즐기며 재미를 느끼고 있는 듯하지만, 과연 그것은 ― 인류가 지금까지는 그렇게 했던 바 ― 세계를 놀이하며 새 세계를 소화해내는 세대로의 성장의 바탕일까, 아니면 그저 '놀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나는 여기서 오직 비디오 게임에게 아동 청소년을 책임지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게 따지면 유튜브도, 페이스북도, TV도, 누구도 아주 무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즐길거리, 볼거리, 요깃거리가 다소나마 '놀이하는 주체'를 특정 재미에 길들이고 있는 한 말이다. 요컨대, 사회 전체가 운동장(playground)의 문을 닫고 각종 돈 내고 들어가는 "놀이문화공간"만을 장르별로 즐비하게 열어놓은 형국인데, 나는 이 시국을 비판하고 싶은 것이다.


돈 내고 즐기는 놀이들의 공통점은, 목적을 특정하게 제시하고, 그 대신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의 특정한 쾌감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가장 극적인 사례가 '방탈출' 게임방이다. 내 돈 내고 방에 갇히는 놀이라니 뭐 이딴 게 다 있는가? 그러나 방탈출 게임방 자체는 아주 흥미진진한 경험인데, "암호/열쇠를 알아내기 어려운 공간에서 단서와 지혜를 모아 탈출하자!"라는 목적 아래 해당 공간이 치밀하게 구성돼 있기 때문에 그러하다. 심지어, 각 방별로 테마를 갖춰서.

방탈출 게임방과 가장 대조해서 살펴볼 수 있는 놀이로서, 우리 어렸을 때 다같이 집에 가다가 한 번씩은 해 봤을 놀이를 떠올려 보고자 한다. "땅 밟으면 죽음"을 선언하는 순간부터, "땅"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안 밟으려고 보도 블록에 오르거나, 땅에 발을 최대한 짧게 디디려고 깡총거리거나 해 본 적이 있지 않은가? 이때 놀이는 결국 어디까지가 땅이냐, 왜 땅을 밟으면 죽느냐, 어떻게 하면 땅 밟아도 안 죽느냐, 죽으면 부활 못 하느냐 등을 정하다가 다들 집에 도착하는 것으로 끝난다.

외국에도 "땅바닥이 용암이야!"라는 비슷한 게임이 있을 정도로 이 경험은 아주 범세계적이다. 왜 그럴까? 실로 원초적인 놀이이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뭔가를 정해서 잘 해내거나 잘 우기면 이길 수 있고, 그래서 아주 유쾌하고 무해하며, 훗날의 기약이 있는 것이다. 암호도 열쇠도 못 찾으면 담당자가 올 때까지 제한시간 내내 꼼짝없이 기다려야 하는 방탈출이란 "놀이"와는, 근본이 다르다고 할 것이다.

규칙을 정할 수 있고, 대충 그냥 해 보면 되고, 잘 안 되면 우겨 볼 수 있고, '죽어도' 조만간 다시 할 수 있다는 점. 우연히도, 이런 측면들은 사람이 살아봄직한 문명 사회의 안전그물에 그대로 적용된다. 아니, 사실 이는 우연하지 않다. 선진 사회일수록, 어차피 인간사라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큰 한바탕 역할놀이일 뿐 그밖의 별볼일은 크게 없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그 진실을 충실히 구체화하는 제도와 예의와 사고방식을 지속시킴으로써, 새로운 놀잇감이 등장할 때 새로운 놀이를 시작하려는 움직임을 막지 않고 적극 장려해 사회 전체를 하나의 운동장으로 열어줄 따름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 보아도, 일단 지금 우리 세대의 놀이란 갈수록 누군가가 주는 규칙과 목적을 가장 '끝판왕'으로 달성하는 것이 그 본질이 되어 가고 있다. '똥망겜'조차도 '혜자이벤트'가 뜨면 적금을 깨든 밤을 새우든 해서 보스를 깨야 직성이 풀리고, 드립 대회가 열린 것 같은 댓글창에서는 너도나도 최고 공감의 리액션을 한줄 넣어 '페북스타'가 되어 보려고 애를 쓴다. "마비노기"처럼 게임 속 세상 중에도 목적이 오픈된 곳이 있던 한때의 놀이 행태와는 정서부터가 다르다.

그래도 이 세대는 1990년대 어느 한때인가에는 각 동네의 정글짐을 손에서 쇠 냄새 날 때까지 헤집고 다녔던 적은 있다. 그 이후 세대는? 2000년대의 한때를 PC방 컵라면과 "서든어택"으로 보낸 세대는, 없던 룰을 만들거나, 룰의 구멍을 찾고 그걸 헤집거나 메우거나 하며, 작으나마 자기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본 경험이 있기는 한가? 우리는 그 여지를, 그런 놀잇감을, "운동장"을 제대로 주었는가?

그나마 가장 희망적으로 관측되는 것은 '마인크래프트'다. 현존하는 메이저 게임 중 거의 유일한 완전 오픈 월드 게임인 이 세계에서, 지금 아동청소년 세대는 '마인크래프트 캐릭터 역할놀이 유튜브 콘텐츠'라는 놀이를 찾아냈다. 이걸 자생적으로, 나름의 규칙과 방법과 문법을 찾아서 나온 놀이라고 덮어놓고 긍정하기에는, 어딘가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당장 이 놀이의 본령, 그 진짜 재미 포인트가 무엇일까만 해도 그렇다. 게임 세상을 빌렸을 뿐인 '역할놀이'일까, 아니면 별수없이 주어진 제반 여건 하에 어른들의 세계에서 자기 존재감을 겨루는 '유튜브 크리에이터 놀이'인 것일까.

뭔 짓을 하든 "좋아요, 구독, 공유, 댓글"을 많이 벌수록 더 크게 이긴다, 바로 이것이 유튜브 크리에이터 놀이의 핵심인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 위해 참여하는 경험들로부터 각자를 소외 내지 완전히 분리하게 된다. 주유소 직원 노인더러 "100원어치만 넣어 달라"라고 요구하고 이를 영상으로 올리는 인면몰수의 "꿀잼컨텐츠"는 그렇게 가능했던 것이다. 요컨대, 놀이의 목적과 체계가 놀이 주체에게서 유래하거나 주체에 귀속되지 않을 때 그 게임은 성립은커녕 걷잡을 수 없이 파행할 여지가 크며, 지금 청소년들의 "놀이"가 바로 그런 파국의 위험을 안고 있지 않느냐 추측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파국이란 놀이 자체에 한하는 얘기가 아니다. 언젠가 "지면에 붕 떠서 살아본 적밖에 없는 세대"의 장래에 대해 조잡하게 쓸 때도 생각한 것인데 ― 이 세대는 자기가 놀이의 규칙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언젠가 때가 되면 싫어도 어떤 규칙을 다함께 제정하고 따라야 한다는 진실을 마주했을 때 집단 패닉에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일본에서 (초고령화가 저지하고 있는) 헤이세이 세대의 사회 등장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이들이 정치를 해본 경험이 있는가? '블랙기업'을 고발하고 죄 주고 쓴맛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고작해야 <아이돌 사변>을 있는 힘껏 비웃는 데서 그쳤지 않은가? 기성 정치인들이 우경화에 가깝게 뭔가를 밀어붙이는 것에도, 어쩌면 어느 정도는 그런 차원의 문제 의식이 있지는 않을까? (물론 그렇다고 우경화를 옹호하지는 못하겠다.)

그런데, 이 나라라고 사정이 썩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이 나라 어린이 젊은이들도, 작은 정치, 작은 제도, 작은 판결, 작은 사회 역할 수행을 익숙하게 여러 번에 걸쳐서 해 본 경험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까지 '놀이터에서의 놀이'를 통해 쌓을 수 있었던 이 경험들이, 동네 놀이터가 완전히 개점휴업 중인 지금, 쌓이기는커녕 맛봐진 적도 없지 싶다. 자연히 이 세대에서 완전히 소멸한 공유 의식들이 있다. '못해도 된다', '져도 된다', '죽어도 된다', '까짓거 다시 하면 된다', '싫으면 그냥 안 해도 된다'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 세대는 반드시 잘 해야만 하는 게임을 하고, 지거나 죽으면 안 되는 파티에만 속해 보았으며, 한 번 잘못하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고입이니 대입이니 하는 갬블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세대다. 심지어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것조차도 어디서 느끼고 배운 적이 없으니, 못 견딜 만큼 뭔가가 싫어지면 무슨 수를 내거나 그냥 관두지 못한다. 대신, 열심히 궁리한 끝에, 그토록 요구받던 목표치 점수를 받아낸 다음 그 시험지에 "이제 됐어?" 한 줄 갈기고 여보란 듯이 몸을 던지고 만다.

관점이 너무 극단적이라고? 정말 극단적인 전망을 제시해 드릴까? 이들은 사회에 나와서, 그동안 그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패악과 구습을, 고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수용한 상태로 고착할 것이다. 그들의 삶은 하나하나가 거대한 의무가 될 것이며, 왜 사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삶 투성이일 것이다. 절대 다수가 가라는 회사 가서 하라는 일 하고 받으라는 대출 받아 갚으라는 빚을 갚는 인생으로 점철할 것이며, 이게 뭔가 싶어지는 이들은 점점 더 많은 수가 '인간증발'을 할 것이다. 핵심은… 누구도 중간에 그렇게 선언할 수 있다고 배운 적이 없으므로, 더는 "씨발! 존나 재미없어! 이딴 거 그만하고 이제 딴 거 하고 놀면 안 돼?!"라고 중간에 외치지 않을 것이다. 대신 계속하여, 잔잔히, 숨막히게, 그들이 보고 자란 교실 같은 세상을 이어갈 것이다.


사실은 문득, 요즘 게임이라는 건 다 최종 목표가 있고 다르게 놀 수가 없구나, 싶었던 데서 시작한 생각이다. 그럼 요즘 게임 말고는 별다른 놀이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나중에 어떻게 되는 걸까, 를 계속 생각하니, 종국에는 좀 깜깜한 세상을 그려보게 된다. 그럴 수밖에. 행동 목적이 어딘가에서 내려와 주어지는 한 그런 세상에 무슨 가망이 있을 리가 없다.

무슨 결론을 지어서 어디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나머지 세대가 다 들고일어나서 떼로 위선이나 좀 떨어 주면 어떨는지. "못 해도 돼! 져도 돼! 이긴다고 뭐 별거 없어! 쟤가 반칙 쓴다 싶으면 반칙 쓴다고 말을 해! 규칙이 없으면 니가 제안해도 돼! 하다가 잘 안 되면 좀 쉬고 깍두기로 들어와서 시작할 수 있어! 힘들거나 싫으면 그만해도 돼! 너 재밌겠다 싶은 걸 너 하고 싶은 방식으로 실컷 하다가 질리면 집에 돌아가도 좋아!" 음. 써놓고 보니 2017년 한국의 맥락에서 이보다 더 위선적인 꼰대소리가 있을까 싶긴 하다.



추기1: 다 써놓고나서 사전을 찾아보니 영단어에서는 play와 game의 의미가 다르다. play가 일반적 의미의 놀이를 뜻한다면, game은 놀이 중에서도 특히 특정한 목적을 두고 겨루는 놀이만을 한정해 뜻한다. 그렇다면 위의 기나긴 잡설은 결국 이렇게 요약된다. "game이 아닌 play를 해본 적이 없는 세대가 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추기2: 어딘가에 공유가 된 걸 보고 피드백들을 (셀프로) 받고 보니... 아닌게아니라 이 요지에서 세대론을 들먹일 이유가 전혀 없었지 싶다. 한동안 20대란 뭔가 청년이란 뭔가 하는 걸 생각하고 살다 보니 그 버릇이 남아서 공연히 불필요한 논지가 들어갔다. 일단은 수긍해 둔다. 내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넓은 의미로서의 놀이 ― 자주적으로 각자의 역할과 행동 요령과 규범을 수립하고 다양한 안전 장치와 제도와 문화 아래 이를 수행하는 체계 ― 를 점점 못하고 있는 것은 우리 사는 세상 전체이지 특정 세대가 (특히 더) 그렇다는 말에는 별 근거가 없달까 핵심 주제가 못된다. 이제 글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데 그건좀 미루고 싶구먼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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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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