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벗이요 아이디어 창고이자 동료였던 Monty Oum씨가, 둘러앉은 친지들 곁에 누워 어제 오후 4시 34분경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열흘 전 Monty는 간단한 치료를 받다가 중증 알레르기 반응으로 혼수 상태에 빠졌었습니다. 병마와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그의 몸이 회복을 하지 못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는 충분한 간호를 받았으며, 고통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Monty는 생전에 그의 반려자 Sheena 여사와 그의 부친 Mony님, 형제인 Woody님, Sey님, Chivy님과 Neat님 그리고 자매인 Thea님과 Theary님과 함께했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그의 팬과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의 삶에 우리가 포함돼 있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그를 기억할 것입니다.
금요일의 공식 발표 이후 시간 동안 여러분께서 베풀어 주신 부조는 유가족의 장례 절차에 쓰일 것입니다. 이 어려운 시기에 큰 변화를 만들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Monty씨를 기리는 데 있어, 저희는 저희의 방식을 해 보고자 합니다. 조화(弔花)나 선물 대신, 뭔가 창조적인 것을 해 주십사 하는 요청을 드리는 바입니다. 상상력을 발휘하셔서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좀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 Monty님을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이해하시겠지만, Monty는 할 수만 있었다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겁니다.
9월 6일 광화문 광장에서 행사를 계획하셨다죠? 광화문 농성장에서 라면이나 치킨 등을 먹는 행사더군요.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이야기 하는 대로 광화문 광장은 시민들의 것입니다. 지금도 광화문 천막 뒤편에는 바닥분수가 시원하게 올라오고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들이 그 앞에서 특별법 제정을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광장은 여러분들의 것이기도 합니다. 오셔서 마음껏 드십시오. 여러분들을 위해서 식탁도 마련하겠습니다.
그 식탁에서 음식을 드시면서 여러분들의 행사가 과연 어떤 의미인지 진지하게 성찰해보시기를 요청합니다. 아마도 그곳에서 음식을 드시겠다는 것은 유가족과 마음을 나누는 이들의 ‘단식’을 비웃는 것이겠지요.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고통 받는 이들을 조롱하고 괴롭히는 행사를 단지 재미로 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유가족들의 싸움이 ‘돈’ 때문이며,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오로지 돈이 인생의 최고 가치이며 모든 행동의 바탕에는 자기 이익이 깔려있다’고 믿는 이들은, 유가족과 연대하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 마음에 깊은 슬픔을 담고서도 다른 이들에게 이런 슬픔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하는 그 작은 몸짓과, 그 마음에 공명하여 아무 이익도 바라지 않고 함께하는 이들이 있음을 믿기 어려울 것입니다. 유가족을 조롱하는 행위가 결국 진실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이용당하는 정치적 행위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무엇이 여러분들을 그렇게 불신과 자기 이익에 대한 집착과 포용력 없는 마음의 상태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으나, 여러분들이 그 광장에서 함께하시는 분들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읽게 된다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돈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고, 우리 사회가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그 마음들을 말입니다. 세월호 특별법 요구는 바로 그런 마음입니다.그러니 조용히 식사를 하시면서 귀를 기울이시고 보십시오. 단, 물리적인 폭력을 행사하거나 농성하시는 분들을 단체로 위협하는 행위는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시민 여러분!
광화문 농성장에서 유가족들을 비웃고 함께하는 이들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분노의 마음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들의 행위는 상처 입은 이들에 대한 폭력이며, 공동체의 선한 의지를 할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돈이 최고라고 가르치는 사회에서 인간다움을 잃어버리고 거짓 언론만 보고 들은 채 성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 이들입니다. 그러니 분노하더라도, 욕을 하거나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그저 조용히 지켜봐주시기를 요청 드립니다. 이들 중 일부가 분란을 일으키고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더라도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주십시오. 평화롭게 우리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이들에게 보내는 우리의 경고가 될 것입니다.
2014년 9월 5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저열함과 무식함이 극단으로 치달을 때 그 앞에서 이렇게 정중하고 떳떳할 수 있다니.
다른 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방문한 탓에 죄스러워서 밥값을 하려고 강남 피켓 시위로 동조단식을 대신했던 나는 왜 이 지옥도가 이다지도 부끄럽고 민망한지.
말 하나 얹기 어려운 이 복잡하고 머리아픈 정국에서 '거리로 나온 일베'의 등장은 모든 프레임을 단번에 정리해버린다. 다 모르겠고 저 버릇없는 개새끼들의 대가리를 쳐 부수면 되는 것이다. 늘 그렇듯 분노의 힘은 사랑과 연민의 힘보다 강하고 파괴적이다.
이 글은 알바하는 학원에서 문제지 작업을 하다가 어쩐지 한 번쯤 공유하고 싶어지는 대목이 있을 때 캡쳐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 4개의 직각 > 3개의 직각
최근 초등수학 난이도 관련 논란이 불거졌었는데요, 알바를 하면서 실제 '문제지'를 만들고 편집하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사실 요즘 초등수학은 문제의 난이도보다는 그 무의미성 내지는 무성의함, 즉 '피상성'이 훨씬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받았던 문제 원본에서 ⑤는 '직사각형은 직각이 3개 있습니다'였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직사각형은 4개의 직각을 가지는데, 그렇다면 직각이 3개 있다는 말도 틀리지는 않잖아요? 그런데 원본이 원한 답은 ④였습니다. 그래서 ⑤의 "3개"를 "3개만"으로 고쳐서 올렸습니다.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초등수학 문제들은 이런 식입니다. 조건 제시는 허술하고 문장의 해석에는 이론의 여지가 있으며 출제자들은 그럴 리 없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수능 때 단어 하나 조사 하나가 숱한 사람들의 명운을 결정한다면, 왜 초등수학에서부터 그것을 염두에 두지 않느냐 말이죠.
# 표가 알바를 구원하리라
한글에서 삼각형을 어떻게 그려야 할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최근에 시도하고 있는 것은 표 도구입니다. 셀 테두리 / 배경 > 여러 셀에 걸쳐 적용 > 대각선으로 들어가 이런 식으로 지정해 줍니다.
장점은 이등변삼각형, 직각삼각형 등의 작도가 쉽다는 점이고 단점은... 일일이 말하기가 어렵네요;;; TeX 배워서 함수 적고 plot하는 짓을 하는 순간부터 알바가 아니라 전문 지면 편집자의 일을 해주는 꼴이 날 것 같아 거기까지는 가지 않으면서 노력대비 최상의 결과를 내려고 머리를 굴리는 중입니다. -_-;;;
#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의 것을
이거는 수학은 아니고 학원 전용 영단어집 본문 엑셀 일부입니다. 예문만 쫙 모아놓는 페이지를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집필(!)할 기회가 있어서 그냥 확 다 해 버렸더랬죠. 그동안 초중고 영어교육을 받으면서 항상 불만족스럽게 보아 왔던 무미건조하고 "죽은" 예문들에 대한 반감을 가득 담아 약 35% 정도의 모험을 감행하여 탈고했습니다. 개중에는 서양 명사들의 실제 명언도 많이 넣었고, 노래 가사(Chumbawamba의 Tubthumping처럼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것으로)나 TV 프로그램 제목("코갓탤"은 사실 하나의 문장이죠)도 활용했고, 심지어 'come true'라는 숙어에 대해 예문을 만들어야 해서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구글링을 해서 넣었습니다. ㅋㅋㅋㅋㅋ... 이 예문을 읽는 학생들이 '어딘가에서 분명히 사용되는 (혹은 사용할 수 있는)' 문장, "살아 있는" 예문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해 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유튜브 동영상 중에는 한국어 자막을 지원하는 비디오들이 있습니다. TED가 대표적이고, 유명 기업체가 전세계적인 프로모션을 위해 만드는 영상의 경우 Closed Caption이 지원되기도 합니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그 특유의 글씨체는 무슨 폰트일까?
Google Drive의 문서 기능 중에는 PDF 만들기가 있습니다. 파일 > 다른 이름으로 다운로드 > PDF를 선택하면 되지요. 그런데 이렇게 할 경우, 편집기에서는 시스템 폰트(굴림 등)로 나오던 한글이 PDF에서는 갑자기 웬 괴상한 고딕체로 나오게 됩니다.
이 글씨는 대체 무슨 폰트일까?
잊을 만하면 보게 되는 저 끝없이 못생긴 괴짜 고딕!
대체 뭘까? SM고딕인가? 근데 SM고딕도 못생기긴 했지만 자꾸 보다 보니 뭔가 그래도 이 정도로 조악하고 난잡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문체부 돋움이나 아니면 다른 옛날 고딕폰트, 북한 폰트인가? 역시 아닙니다.
Adobe std gothic을 가장 유력하게 의심했지만, 이 폰트는 bold(굵게)말고는 없다고 하네요.
그럼 대체 뭘까? 답은 의외로 쉽게 찾았습니다. 구글 문서도구가 변환해 준 PDF의 속성에서 사용된 글꼴 목록을 보니 한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때의 허탈함이란.)
그건 바로 Arial Unicode MS였습니다.
폰트명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적으로나마 모든 언어를 지원하기 때문에 Google docs의 PDF 변환이나 YouTube의 자막 등에서 빈번히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분의 컴퓨터에 설치돼 있을 확률이 높고, 경우에 따라서는 한글 입력시 선택할 수 없는 서체일 수도 있습니다(한글 스크립트 설정 삽입이 안 돼 있는 것 같습니다).
다운로드 링크는 따로 제공해 드리지 않습니다. arial unicode ms download라고 아무 데서나 검색하시면 되기 때문이죠.
근데 자꾸 보다 보니 이 특유의 조악한 무작위성이 또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특히 '있' 같은 글자는 참 우습습니다. 거짓된 / 번역된 / 출처가 불분명한 / 시스템이 자동으로 만들어낸... 등등의 느낌을 줘야 할 때 쓰면 좋은 타입페이스인 것 같습니다. 이 서체는 희한하게 어느 언어 사용자가 사용하더라도 못생겼다고 느끼는 모양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 캠워나 together집회 등에서 자꾸 홍보하길래 뭘까 하다가 결국 충동적으로 압구정CGV에 가서 봤습니다. 15시 20분에 맞춰서 못 가면 강남 구경이나 하다가 19시 표 보고 집에 가야지... 했는데 어쩜 그렇게 칼같이 15시 17분에 티켓박스로 갈 수 있었는지!
- 이 영화는 아무래도 리뷰가 부족할 터이니 잡설 빼고 바로 본론부터 들어가겠습니다.
일단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는 거의 포기하고, 대신 남북 분단과 통일을 어떤 관점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한 introduction을 숨가쁘게 진행합니다. 토마스 선교사 덕분에 한국과 인연이 있게 된 영국 웨일즈에 잠깐 다녀오고, 판문점과 칠골교회를 잠깐 방문하고, 가명(이게 기억이 안 나는데;;;)을 주고 얼굴까지 숨겨 가면서 탈북자 기자를 찾아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대한 인터뷰를 받아냅니다. 물론 타임라인 상에서만 그렇다는 이야기지 각각이 사실은 상당히 긴 여정이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그 여정 하나하나를 일일이 다 소개하기를 포기하고 자료화면과 인터뷰 형태의 강의에 더 집중합니다.
- "교회사를 배워 보니 '십자가의 역사'와 '십자군의 역사'가 있더라." 감독은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영화는 두 역사가 한반도라고 하는 오만가지 정치사회갈등의 첨단에서 극적으로 마주친다고 말하고 있지요. 분단 이전에는 오히려 복음에 있어 먼저 되었고, 분단 이후 주체사상 아래 고난을 겪으며 초대 교회처럼 '주여 속히 오시옵소서'의 기도만 반복한다는 남아 있는 신앙인들의 북녘. 그리고 북녘 신앙 선배들의 덕과 국제 정세의 가호 아래 풍요는 얻었지만 그 결과 "어쩜 그렇게 탁월하게 두 주인을 섬기게 됐는지" 알 수 없는 남녘. 이제 북한의 문호는 열리고, 남한의 신앙도 탈북민들을 사랑으로 품는 동안 개혁될 텐데, 그렇게 되면 인류 복음화 역사도 걷잡을 수 없게 될 텐데, "너희는 준비가 되었니?"
- 압구정CGV같은 세속적인(?) 스크린으로 예배당에서나 뵙던 분들을 만나보는 것은 매우 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죠. 네, 이색적이고 유쾌한 경험이었습니다. 대천덕 신부님과 고형원 목사님을 고화질 대화면으로 접한 것은 좋았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 영화의 한계부터 말해 볼까요. '통일한국을 준비하라'라는 메시지는 명확하지만, 사실 그것을 위해 실무적으로 필요한 것들(기구나 체제, 국가 상징 등의 결정, 통일 과정과 방법 등)은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남한 위주의 흡수통일론을 암암리에 깔고 가는 느낌을 줍니다. "(탈북자) 2만 명도 품지 못하는데 어떻게 2천만을 품겠어요?" 그리고 이것은 국제 정세를 조금이라도 객관적으로 보는 사람들에게라면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낡았거나 안일해서 곤란한 패러다임인 것이 분명합니다. 막판에 결국 "백 투 예루살렘"[각주:1]까지 언급되면서 번복할 수 없게 된 바, 영화는 단지 남북통일을 구원사적 관점으로만 보아줄 것을 요청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보편적 이해와 공감을 끌어내기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기존 리뷰들이 '비기독교인은 끝까지 보기 힘들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 "남한 선교단체들 자꾸 사워요(싸워요)"라는 증언이 등장하는 이유 둘 다 여기에 있고요.
-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기독교인 노릇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부 다 극장으로 달려가서 봐야 합니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 첫째, 이 정도 역사인식과 사회의식은 가져 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초반의 신사참배 부분은 저도 처음 듣고 놀란 대목이었습니다.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요 종교의식이 아닌 것으로 한다". 그것에 대해 인터뷰이들은 칼같이 단정합니다. "곧 올 하나님의 나라를 못 보고 잠깐의 고난에 그렇게 굴해 버린 거예요." 이것은 한국교회의 쓰라린 회개거리가 아닌가? 그렇지만 솔직히 이때까지 저는 이런 내용을 어디서도 들어 본 적이 없고, 이런 역사가 한국 교회사와 선교 역사의 중요한 과실(過失)로 남아 있다면, 정확하게 알고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말이죠.
- 한기총과 대형교회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과 10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북한 지하교회 예배 현장을 몰래몰래 촬영한 footage를 보여주다가 남한 일간지들의 교회 파행 보도 지면들을 보면 낯부끄럽기 짝이 없게 됩니다. 대단히 정당한 비판 논지가 아닐 수 없지요. 왜 너희들의 신앙에는 고난은 없고 세습이니 확장이니 하는 것만 있느냐? 북한의 신앙 동지들 보기 부끄럽지도 않으냐? 영화의 인터뷰이들이 내고 있는 이 정도의 혼쭐은 다들 한 번쯤 맞아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지나치게 편리해진 신앙 생활에 진짜 힘이 생기고, 우리의 행실이 하나님 나라 역사에 가담하게 될 겁니다.
- 둘째,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남한에서 '풍요에의 경쟁'을 신앙의 고난인 줄 알고 열심히 싸워 온 '사모님들'과 '사장님들'에게, 혹은 "북괴=사탄"의 공식밖에 모르는 분들께 보여드려야 할 좋은 영화로 남게 된 것입니다. 일요일에 교회 지하주차장에서 차 꺼내 큰길로 나오자마자 택시기사에게 욕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는 굳이 일요일에 인터넷으로 대형마트 홈배달 서비스를 부려먹는 무슨 캐슬 무슨 뷰 무슨 하이츠 주민 어른들은 이 영화를 보며 불편함을 감추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북괴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으로 불타는 무슨 전우회 무슨 향우회 분들의 잘못된 복음주의(자유자본주의=자유민주주의=하나님의 뜻=복음=교회=천국) 역시 이 영화는 조금도 옹호하지 않고 선교와 사랑과 연합에 대한 관심을 촉구합니다.
- 그리고 사실 그것은 여의도의 큰 교회나 강남의 큰 교회가 지금껏 열심히 디자인해 온 바 '교회 다니는 집안 사람'의 '성공상' 혹은 '바람직한 이념'으로 악랄하게 제시되어 왔습니다. 그렇기에 초대 교회는 고사하고 우리 동포들조차 생각지 않는, 주님께서 자기 사업과 자기 자녀와 자기 주식과 부동산에 복 주시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신 분인 양 믿는, 미국이 최고고 북한은 돌로 쳐야 할 주적이니 북한과 사회주의에 조금이라도 수긍하는 사람들은 전부 이단 사이비인 줄로 믿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정치가 어떻고 통일이 어떻고 따위 생각도 하기 싫은,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 같은 말씀은 죽었다 깨나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서 대신 자기방어 주문처럼 "여호와는 나의 목자"와 "근신하라 깨어라 마귀가 삼킬 자를 찾나니"만 염불처럼 외고 다니는 분들이 사실은 정말 많단 말입니다. 이 영화는 그런 분들에게 가장 뜨거운 머리 위 숯불이 될 것입니다. 그런 분들을 억지로라도 권해서 상영관에 앉히는 것이 이 영화의 가치를 최대로 끌어올리는 사역이 된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물론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들의 사고가 90분도 채 안 되는 영화 한 편 때문에 하루아침에 바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 열심히 쓰고 보니 정작 줄거리를 자세하게 쓰려고 했던 시도는 실패했군요. 하지만 제가 본 것은 거의 대부분 적었습니다(항상 그랬듯). 직찍을 좀더 많이 하고 싶었는데, 의외로 관객이 많아서 실패했습니다! (자랑이냐...)
-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두 개 반. 시간이 정말 많고 다양한 관점을 수용할 자세가 충분히 돼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자기 자신을 테스트해 보기에 알맞은 영화가 됩니다. 보고 나면 아마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일침을 놔줄 수 있는 레벨이 될 겁니다. 그리고 NL이신 분들은 보지 마세요. 굉장히 굴욕적인 기분이 들 겁니다.
- 기독교인에게는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다섯 개. 당장 가서 보세요. 생각나는 모든 성도님들을 다 초청해서 극장에 가세요. 불법 파일 다운받아 볼 생각 하지 마시고 네이버 영화나 다음 영화에서 검색해서 상영관을 찾으시고,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들을 가슴 속에 꽉꽉 담아 오세요. 우리의 믿음은 고작 칠십 평생 적당한 집 적당한 차 적당한 직장 적당히 누리다가 천국 가려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의 역사는 고작 그런 적당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흑백으로 쫙 찢어서 바라봐야 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은 다급하게나마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말이지요.
- 이번 리뷰는 도움이 되었으려나 모르겠네요.
세계 선교에 대해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죠. 놀라지 마세요. 정말 많은 선교단체들이 '북한, 중국, 서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무슬림들의 중동을 거쳐 예루살렘'의 순서로 십자가 복음을 전해야 예수님 재림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이 기획을 백 투 예루살렘이라 부릅니다. [본문으로]
홍보 업무에 오래 몸담은 ‘홍보맨’ 출신 인사들이 잇따라 ‘대기업의 별’인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되고 있다. (...) 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홍보맨들은 총수의 지근거리에서 일하면서 부단한 노력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 활발한 커뮤니케이션 활동도 플러스로 작용한다. (...)
(...) 1주일에 4시간은 TV 시청이 허용된다. 22개 TV채널과 영화를 볼 수 있고 유에스에이투데이 등 미국 신문과 아랍어 잡지도 열람할 수 있다. 도서관에서 1주일에 책 2권을 빌릴 수 있다. 도시바 TV가 놓인 TV시청실엔 푹신한 1인용 소파가 놓여있고 바로 앞엔 족쇄가 바닥에 박혀 있다. TV를 시청하는 동안 손은 자유롭지만 족쇄는 반드시 차야 한다. 간수가 음식을 건넬 때도 독방에서 별도 자물쇠가 채워진 미닫이 함을 통한다. 수감자들이 먹는 물은 기자가 캠프저스티스의 텐트 막사에서 배급받은 것과 같은 브랜드의 미국산 고급 생수. 식사는 기지 내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메뉴와 똑같다. 생선과 닭고기 야채 등 6가지 메뉴에서 골라 먹을 수 있다. 캠프Ⅴ엔 모두 100개의 독방이 있지만 지금 사용되는 독방은 30여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비어 있다. 수형 실적이 우수하면 행동이 훨씬 자유로운 캠프Ⅵ로 이감된다. (...)
(...) 꽃사슴의 영화(榮華)는 여기까지였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 취임식이 끝난 뒤 한 달도 안 돼 꽃사슴을 모두 서울대공원으로 돌려보냈다. 주인 잃은 꽃사슴은 (…) 푸대접을 받았다. 서울대공원은 26마리나 되는 꽃사슴을 수용할 데가 마땅찮아 경기도 한 농가에 모두 팔아치웠다.
꽃사슴의 자리를 차지한 게 새롬이와 희망이다. 대통령의 한 측근은 “요샌 마치 사냥개처럼 사나워졌다”고 했다. 청와대에 들어갈 때 털이 뽀송뽀송한 애완견이 더이상 아니라는 말이다. 낯익지 않은 참모들이 관저를 드나들 땐 귀를 곧추세우고 컹컹 짖어대 겁먹는 직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MB꽃사슴처럼 잘나가던 MB맨들도 줄줄이 옷을 벗었다. 금융계를 쥐락펴락한 ‘4대 천왕(天王)’이 새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짓눌려 찍소리 한번 못하고 물러났다. 여름휴가가 끝나는 8월말까지 방을 빼라는 통보를 받은 공기업 사장도 한둘이 아니다. 낙제점인 경영성적표를 들이댔지만 ‘MB맨 솎아내기’라는 말이 많다. (...) [2013년 7월, 출처]
4. 홍보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음을 입증함
[오늘과 내일/최영해]채동욱 아버지 前 上書
아버지, 미국에 온 지도 벌써 보름이나 됐네요. 태어나서 이렇게 비행기를 오래 타 보기는 처음이에요. 저는 뉴욕의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갔답니다. 이모와 함께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 만나고, 영어 수학 시험을 본 뒤에야 며칠 전 반 배정을 받았어요. 백인과 흑인, 중국인, 히스패닉 등 우리 반 아이들은 피부 색깔이 참 다양해요. 여기선 전부 영어로 말해야 돼 아직은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어머니는 8월 마지막 날 저를 비행기에 태우면서 “아버지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미국에서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한참 우셨어요. 진짜로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처럼 존경받는 사람이 될 거예요.
아버지, 그런데 며칠 전에 어머니가 신문사에 보낸 편지를 인터넷에서 우연히 읽었어요. 어머니는 ‘제 아이는 현재 검찰총장인 채동욱 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이’라고 했는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뇨? 저는 아버지가 검찰총장이 됐을 때 뛸 듯이 기뻤어요. 아버지가 나쁜 사람 혼내 주는 검사 중에서도 최고 짱이 됐잖아요. 우리 반 애들은 무척 부러워하는 눈치였어요.
아버지가 검찰총장이 된 후 우리 가족은 사실 조금 피곤했어요. 여의도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할 때 서울 삼성동에서 도곡동으로 이사를 갔고, 거기서 다섯 달만 살다가 다시 미국까지 왔잖아요. 어머니와 떨어져 이모와 함께 뉴욕에서 사는 게 불안했지만 아버지처럼 높은 사람이 되려면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을 꾹 참았답니다.
아버지가 저 때문에 회사에 사표를 썼다고 한 친구가 페이스북에서 알려줬어요. 그 친구는 한국에 아버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러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간첩 잡는 아저씨들이 지난해 선거에서 못된 짓을 하다가 아버지에게 걸려 혼났다고 어머니가 그러던데, 그 일 때문에 그러는 건가요? 힘없는 전두환 할아버지 재산을 너무 많이 빼앗아서 아버지를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매일 밤늦게까지 고생하는 아버지에게 큰 상은 못 줄 망정 왜 저를 갖고 이렇게 난리인가요?
어머니는 저에게 “당장은 떨어져 살지만 언젠가 아버지와 함께 살 날이 올 것”이라고 늘 얘기하곤 했죠. 우리 가족은 평화롭게 잘 살고 있는데, 왜 사람들이 자꾸 수군거리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예전에 부산에서 어머니를 만난 것까지도 트집을 잡는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네요. 아버지, 어떤 사람들은 제가 진짜 아버지 자식이 맞는지 머리카락 뽑고 피도 뽑아 검사해보자고 한다는데 정말 미친 사람들 아닌가요? 이모가 그러는데 어머니는 그것 때문에 울고불고 야단이었대요.
아버지, 근데 전 진짜 피 뽑는 것은 싫거든요. 사람들은 제 피와 아버지 피가 같다는 것을 왜 조사하려고 하나요? 검사 뒤엔 유전자가 조작됐다느니 하면서 또 시비를 붙을 수 있잖아요. 아버지, 그래서 그러는데 저한테 피 검사 하자는 얘기는 하지 말아주세요. 만에 하나 피 검사가 잘못돼 가지고 저하고 아버지하고 다르게 나오면 그 땐 어떡해요? 하루아침에 아버지 없는 아이가 돼 버리잖아요. 여태껏 아버지라고 부르지도 못했는데, 앞으로도 다른 사람들 있을 땐 아버지라 부르지 않겠다고 약속할 테니까 제발 제 부탁 좀 들어주세요.
2013년 9월 16일
뉴욕에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들 올림
※이 칼럼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엄마의 말을 듣고 자라온 아이의 입장에서 쓴 창작물입니다. [2013년 9월, 출처]
퍼가실 분은 퍼가세요. 혹시나 하고 디벼봤는데 정말 알기 쉬운 사람이었음. 무릇 기자라면 누구나 자기의 글이 몇십만년 뒤에 다시 거론된다 해도 부끄러움 없어야 할 줄로 압니다. 내 사람뒤캐는거 ㅈ나 싫어하는데 하나만 털어볼까 호로ㅅㄲ야
신문은 언론이다. 수필집이 아니고! 논설위원은 언론인이다. 소설가가 아니고! 이 글을 그 아이가 볼 수도 있다. 어른스럽지 못해도 좋지만 최소한의 예의는 있어야 한다. http://t.co/1aVrzsqCZY
설국열차는 제가 원래의 글 말미에 예견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흥행했습니다. 대다수 관객에게는 양갱이 또렷하게 기억되었습니다. 잘된 일입니다. 저도 양갱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한동안 양갱을 먹을 때마다 꼬리칸을 떠올릴 겁니다.
그리하여 이 글은 정말 볼품없는 것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차라리 아예 일언반구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텐데.
- 하아... 예고편보다는 이런 걸 봅시다.
- 이 영화를 처음 접한 건 지하철 광고였어요. 지하철에서 광고하는 영화치고 적당히 덜 대중적이면서 적당히 구매의 가치가 있는 영화가 그리 많지 않은데, 이건 그 광고를 보고 나서 지하철에 탑승한 뒤에도 계속 유튜브로 정보를 찾아보게 하는 힘이 있었습니다. 원작이 있으니까. <살인의 추억>과 <괴물>의 봉준호니까. 솔직히 CJ가 대대적으로, 정말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배급하고 홍보 총력전을 펼치는 걸 보고서도 그럴 수 있겠거니 했어요. 그래 참자, 관객들의 등골을 아예 빼먹으려는 영화는 아닐 거야, 하고. 최소한의 예술적 예의 내지 사회적 영양가가 있지 않을까, 하고 일말의 기대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 무좀약을 받으러 나간다 나간다 하면서 안 나가고 집에서 뒹굴다가 드디어 오늘 이 일 저 일 해치우려고 나가서 봤습니다. 버스가 마치 제 시간 계획을 알고 있다는 듯이 재깍재깍 도착해 주어서 놀람.
- 강변CGV에는 정말 오랜만에 가 봤습니다. 저의 12년 하남시 인생의 애증의 장소인 테크노마트도 참 많이 바뀌었더군요. 웨딩홀이 들어선 건 알지도 못했고, 1층의 엔터식스는 적응할 수가 없고, 며칠 전에는 드디어 건담마트 직영점이 (8층에) 생기고. 도대체 언제까지 저 테팔이들은 일말의 희망을 붙잡고 저기서 자기 머리 위에 먼지를 쌓고 있을 것인가...
- 생각보다 극장에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만원사례일 줄 알았는데. 시간이 밥 먹는 때여서 그랬을까요? 뒤에 쓰겠지만, 아니었던 거 같아요.
- 비행기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항공을 가르며 CW-7을 살포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의외의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 줄거리는 수많은 영화 잡지들이 다룰 터이니 굳이 복기하지 않겠습니다. 반전도 적지 않겠습니다. 이렇게는 말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최고 악역은 길리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 사회에서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 과학 자문이 있더라는 것에 깜짝 놀랐습니다. 하긴 필요하지, 요즘 깨시민 님들이 얼마나 똑똑하신데. 허구와 실상도 구분 못 하는 예술맹들. 열차 밖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주요 명승지는 하나도 안 나옵니다. 그거 하나는 꽤 리얼했음.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북극곰은 MBC가 찍은 자료화면을 합성한 것이라는 추리를 해 봤습니다. 추가바람
- 영화 다 보고 나서까지도 생각을 못 하다가 트위터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양갱! 양갱 먹고 싶다!
- 15세치고는 신체절단 폭력이 많이 보입니다. 그런 걸 '정말' 싫어하신다면, 중간중간 좀 참으셔야 할 때가 있습니다. 비싸다는 뜻의 영어 표현에 '팔다리 값을 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유난히 사람의 수족에 굉장히 관심을 보입니다. "어떻게 두 팔을 다 가지고 리더를 하겠어요?"
- 고아영이 의외로 안 귀엽습니다. 송강호 한국어 발음이 의외로 안 좋습니다. 일본어가 심심치 않게 들립니다. 보이스웨어 번역이 간간이 사람 웃겼습니다. 하지만 가장 웃긴 장면은 역시 메이슨이 신발을 머리에 쓴 그림이 아니었을까?
- 스토리 얘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시간이 아까워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왜 나는 크레딧롤이 다 올라간 다음에 상영관 출구를 나와 "ㅅㅂ 배반당했다"라고 느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 10분 생각해 보니 대략 정리가 됩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지요. 첫째, 이 영화의 비유가 지나치게 전면적이다. 둘째, 그 비유로 해설되는 서사가 안 그럴 것처럼 가다가 결국 지나치게 냉정하다.
- 첫째, 비유. 반전이 소개된 다음 엔진실에서 윌포드는 커티스에게 아예 대놓고 설명합니다. "이 열차는 하나의 세계와도 같고, 이 안의 사람들은 인류지." 그 순간 감독에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야! 그걸 설명해 버리면 어떻게 해! 수많은 인터뷰와 영상에서 "마치 지금의 우리와도 같이" 볼 수 있을 거라며! 그렇게 대놓고 묵시록적 비유풀이를 해 버리면 어떡하냐고요.
묵시록적 비유풀이란 이런 것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비유적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그것들이 성경의 맨 끝인 계시록에 가면 하나씩 대놓고 정의(definite)가 됩니다. 이 정의와 관점에만 입각하여 나머지 비유에 이 정의를 대입하는 것을 묵시록적 비유풀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일곱 금촛대'라는 단어는 무엇을 뜻할까요? 계시록을 읽어 보면 "일곱 금촛대는 (계시록 작성 당시에 있었던 중요한) 일곱 교회니"라는 말이 떡하니 나옵니다. 따라서 성경 어디를 읽더라도 '일곱 금촛대'는 '그 일곱 교회'로만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 수작을 부립니다. 심지어 윌포드, 이 세계의 창조자가 그렇게 정의내려 버린 시점에서 모든 것은 여기에도 끼울 수 있고 저기에도 끼울 수 있는 문학적 가능세계가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단순 직유법이 되어 버립니다. 사실 저는 유치원 칸을 보며 특히 더욱 '북한'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의 은유'(이게 모범답안이죠?)일 수도 있겠지만 북한과 각종 독재 사회가 어떻게 작동 가능한가를 이렇게 판타지적인 허구서사로 잘 표현해낸 것이기도 하구나... 라고 감상하려던 차에,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더니, 다시 감상을 오로지 자본주의에 관해서만 가지도록 방향을 고정시켜 버립니다.
물론 그 대사 하나 때문에만은 아닙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생존을 명목으로 질서와 계급을 만들어낸 통제 사회(자연세계가 야만으로서 그곳 바깥에 존재하니까 그곳은 사회라고 부르는 게 맞겠죠)'에 대한 사회학적 시뮬레이션과 메타화를 태만히 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맬서스적 인구론과 포드주의적 기능론 딱 거기서 그쳐 있는 윌포드의 논리가 반란 이외의 어떤 정치적 수단으로도 반박된 적이 없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이 서사를 세계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현실의 설명 수단으로 사용하기가 영 어렵다는 것도 안타깝습니다. 그저 그 절대다수가 무임승차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무력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 이렇게나 꼼꼼하고 은유적인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무식하게 일목요연한 것으로 전락해 버린 건 누구 때문이지요?
- 둘째, 냉정함. 영화가 중간중간에 보여주는 잔혹한 비유('충돌' 장면이라든가, 긴 터널로 들어가는 구간에서의 진압 작전 장면이라든가. 열차의 불을 끄고 적외선 안경을 쓰고, "재밌는 구경이 되겠어"라니.)들의 훌륭함을 무색케 하는 허무함이, 이게 정말 <괴물>의 봉준호가 맞나 싶게 할 정도로, 처절했습니다. 사실 '체제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 또한 사실은 그 체제를 피드백하기 위해 일정 정도 필요한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공급될 여지도 있다'라는 의식은 제게 그다지 놀랍거나 당혹스럽지 않았어요. 예전부터 해 왔던 생각이거든요. 문제는 결말을 본 이후 되짚어 본 전체 흐름이었습니다.
결말이 어떻게 날까? 허무한 패배? 타협? '제 3의 길'(남궁민수가 말하는 승차 출입문을 열자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할리우드식 목표달성? 결말은 허무한 승리였어요. 그리고 그것이, 이 이야기가(세계 자본주의의 메타포 이상이 되지 않기를 자처한 시점에서) CJ가 악랄하다는 반증이자, 감독이 얼마나 세계 시장 앞에서 타협을 하기로 했는지를 보여주는 근거이면서, "우리 모두가 반드시 봐야 할 영화"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시그널이라는 사실에 못을 박았습니다. 각본가가 하다못해 제 3의 길에 대한 일말의 희망이라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아니라 그 열차 안에서의 어떤 제정신 차린 방안이 나왔어야 했고, 정말 세계 자본주의를 '까고' 싶었다면 열차를 유의미한 장소에서 스톱 시켰어야 합니다(하다못해 희대의 망작 <2012>에서도 희망봉이라는 상징적 장소를 이용하는데!). 하지만 그렇게 했다간 CJ는커녕 아무도 투자해 주지 않았을 것이고 세계 각국에 배급할 수도 없었을 테지요. 결국 우리는 "또 한 번의 주기적으로 필요해지는 반란"을 일으킨 다음 그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CJ엔터테인먼트가 배달해 준 '새해맞이 계란'을 먹으며 "오큐파이 윌포드"를 외치고 있는 셈입니다.
- 저는 차라리 윌포드라는 인간이 등장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독수리 5형제>가 선택한 방법이었지요. 하나의 유령이길 기대했습니다. 웬걸, 아주 구체적인 (음, 말하자면 때릴 수 있는) 인간이더라고요. 체제를 파고든 끝에는 어떤 한 명의 장본인이 존재한다, 이 얼마나 사실에 가깝고 그래서 믿고 싶지 않으며 영화라는 지극한 허구 속에서의 가능성이라도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농락하는 이야기입니까? 모든 것이 시카고 학파 때문에 이토록 망가진 걸 누구나 아는데, 그렇다고 누가 시카고 학파의 학장을 때리고 싶어하는가요? 그렇게 이 영화는 공격 대상 혹은 진짜 원인을 유야무야 증발시켜 버립니다. 아주 극적으로 말하자면, 순식간에 윌포드도 나쁜 놈이 아니게 되면서 아무도 탓할 수 없게 되어 버려요. 커티스가 말문이 막혀 버린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 그렇게 진정한 타격 대상을 (그 대상이 얼마나 타격하기 어렵게 정체 불명한가에 상관없이) 똑똑히 제시하지 못하면서 재미와 상영관을 확보하고 급진과 원칙과 인류적 꿈을 기각한 영화가 "이 땅의 99%가 보아야 할 영화!"로 칭송받아야 할 이유는 하등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나오는 영화들이 갈수록 그런 식입니다. 다들 간이 콩알만해져 있달까? 아니 어쩌면 상업오락영화라는 틀 자체가 그런 근본적 한계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개봉하고 싶으면 개봉될 만한 이야기를 찍어 와라. 그렇지 않으면 전부 잘라서 네놈 집안에서나 보는 홈비디오로 만들어줄 테니까. 꼬우면 유튜브에 올리시든가! 어디 몇십만 몇백만이 클릭 조회한 다음에 니가 기획했던 대로 세상이 바뀌나 보라구! 어차피 사람들이 원하는 건 자기 발로 뛰게 만드는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두 시간 동안 자기들의 얄팍한 정의감을 청량한 극장 안에서 안락하게 위로해 줄 엔터테인먼트니까!
그래서, 어쩌면 한때 제 마음 속의 관람 1순위였던 "지금 우리 사회를 고발", "전국민이 봐야 하는" 운운하는 영화는 이제 슬슬 무의미하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그 영화가 documentation의 기능을 하지 않는 이상 말이지요. 관객이 만석이 아니었던 건 그래서인지도 몰라요. 예매율은 뭐 얼마나 화제가 되느냐를 반영하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정말로 모두가 봐야 하고 공분을 일으키도록 돕는 영화는 절대 아닙니다. 사실 이제는, 마이클 무어가 그의 마지막 작품 <자본주의 연애담(Capitalism: A Love Story)>의 엔딩크레딧에서 '뭐라도 좀 하세요!("Do Something!")'라고 외친 이후로는, 어느 영화도 그걸 할 수 없으려는 것 같습니다.
- 나쁜 건 목적지도 없이 영원히 운행하는 대중교통입니다. 나쁜 건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으면서도 원론 시간에 배운 대로 "제약조건 내에서 최대 이윤 달성"만을 앵무새처럼 부르짖어 온 멍청한 기하산술적 신고전경제입니다. 나쁜 건 한숨 돌리고 쉬어가며 조금만 천천히 하자는 기초적인 인간성을 시간 계획과 끝없는 철로와 "엔진은 영원하다" 운운 노래를 부르며 묵살하는 물질주의입니다. 나쁜 건 정보 통제입니다. 나쁜 건 그 빌어먹을 속도입니다. 나쁜 건 CW-7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끝까지 이것들 중 어느 하나도 비판하지 않으면서 뻔뻔스럽게도 자기가 지구촌의 미래에 정말 관심이 있다는 양 황인종과 흑인종과 북극곰을 마지막 장면에 갖다놓고 끝을 내 버립니다. 이건 열린 결말이 아니라 냉정하다 못해 무례한 결말인 거지요.
- 글쎄, GV를 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감독에게는 이 결말이 최선이었을까, 차악이었을까? 이런 이야기를 이 사회에서 이런 형태로 보여주기 위해서는 꼬리칸 사람들이 앞칸 사람들과 함께 오손도손 어울려 사는 것은 고사하고 하여간 엔진이 멈춰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줘야만 했던 것일까?"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아주 낭비가 되는 질문이죠. 당연히 최선이었을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기를 바라는 겁니다. 투자자들이 검토하고 고친 것이기를, 그래서 그의 원래의 희망사항이고 대다수의 기대였을 내용의 "74%"가 "살상"된 결과이기를 저는 바라는 거예요. 그런데 천하의 봉준호가, 이야기를 못 살리는 사람이 아닌 줄 번히 아는 우리의 봉준호가, 그러니까 CGV를 나와서 테크노마트 중앙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며 아 ㅆㅍ 배반당했다... 라고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죠. 그가 순수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이 영화의 메시지와 일치한다면, 저는 저 혼자서 그에게 배반을 당한 겁니다. <괴물>에서 한국 현대사 썰을 완벽하게 풀었던 바로 그에게.
- 감상 다음날 아침쯤에 한 생각인데, 어쩌면 이 이야기는 '현재까지와 앞으로의' 이야기가 아니라 '아주 예전부터 지금 바로 이 순간까지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오늘 이 순간의 지구촌은, 정말 앞길이 막막하거든요.
- 유아용 해설 잠깐만 할게요. 이 영화를 보고 "위기 상황에 잠깐의 불편을 참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폭발하면 더 큰 상황을 못 보고 망한다" 따위의 교훈을 얻었냐, 애송아? 노무노무 위태로운 상황이어서 17년간 똑같은 코스를 똑같은 속도로 질질 달리면서 이따금 '적절한 인구 감소 이벤트'를 조장하는구나? 위기 상황이니까 수족관과 클럽과 미용실을 빵빵하게 운영해야겠지? 거대 기획 혹 목표(영화의 내러티브에 빗대자면 '종착역'쯤이 될)의 실종이 유발하는 실존자의 상존적 불안과 그를 빌미로 가공되고 조장되는 구조적 억압 논리로서의 허구적 위협을 '위기'로 퉁치는 멍청함을 자랑할 시간이 있으면, 기초 논술교재 책이나 좀 봐라. 그렇게 감상하는 거야 뭐 니 자유지만, 니 인생에서 그렇게 낭비된 2시간이 가엾어서 그런다.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네 개. 강력 추천해 드릴 수 없습니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는 친구에게 기초 교육 자료로 보여줄 수는 있어요. 깊이 있는 설정을 짠 근미래 판타지 픽션에 요즘 목마르시다면 두 시간 정도 볼거리와 떡밥이 충분합니다. 출연 배우 중 한 명의 팬이시라면 가서 보시면 좋겠네요. 하지만 이 영화를 봐야 할 그 이상의 이유는 없습니다. 이 영화는 흥행에 실패할 겁니다. 잘은 모르지만 초반에 좀 달리는 듯하다가 갑자기 푹 꺾이면서 잊혀질 겁니다.
- <매트릭스> 이후의 문제작은 이제 더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일까요? 그저 아쉽습니다.
- 혹시 이 리뷰글이 이해가 되지 않으시면 추가 질문을 해 주세요. 그렇게 해 주시면 저도 답을 드리면서 좀더 제 견해를 명료하게 할 수 있을 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