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한국적 조건 때문에 CMS로 부득불 XpressEngine을 선택해서 작업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한 XE인데, 무슨 함수 하나 찾으려고 파일 뒤지다가 방금 이런 코드를 봤다.

게시물의 등록시간을 출력하는 함수인 모양인데…







함수 찾아라등록시간() {

  $등록시간 = $현재객체에서->찾아라('등록시간');

  $년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0번째글자부터, 4글자만);

  $월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4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일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6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시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8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분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10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초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12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갖다주기 시간꼴로만들어서($시,$분,$초,$월,$일,$시);

}




ㅎㅏ… 네이버와 XE 개발팀은 뭘 먹으면 이런 근자감 쩌는 무대책 코드를 배포하는 거지… 그냥 일단 timestamp를 찍어놓고 변환을 하게 만드는게 옳은 도리가 아닌가… 도대체 DB와의 통신과정에서 저 '등록시간' 필드에 언제나 14자리 숫자가 착실하게 저장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고… 행여나 DB 꼬여서 테이블 데이터 인코딩 바뀌면 어떡하려고…







모르겠다 입다물고 하던 일이나 해야지

그리고 장차 내가 만들게 될 서비스엔 이딴 로직은 집어넣지 않을 테다. 아니 어떻게 이게 말이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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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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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

2015. 6. 16. 23:20

다음클라우드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는 이 시점에, 바이두와 360클라우드에 올려 놓은 만화 파일들을 익숙하게 다운받아 보다가, "야 어진아 혹시 몽촌토성 영상 원본 없지?"라는 물음이 와서 "내가 지웠을 건데 함 찾아볼께요" 하고 집에 와서 옛날 하드디스크들 열어보다가 문득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정말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싶은 것이다.


당장 2012년 5월께만 하더라도 나는 몽촌토성에서 나 한 명이 구르는 비디오가 그렇게 일회적이고 두 번 다시 재현 불가능한 것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냥 공식 유튜브 계정과 내 아이팟에 최종본을 넣어 놓았으니 이걸로 그만이겠지 하고 정말 어리숙하게 원본 파일들을 지워 버렸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미친 거 아냐? 최종본은 없어도 원본은 남아 있어야 될 거 아냐? 지금도 그걸 veg파일, sfk파일과 함께 통째로 싸그리 없애 버린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그 시절의 나는 백업 개념이 완전히 틀려먹어 있어서, 백업할 파일을 골라서 업로드했었다. 뭐 지금도 남아 있는 버릇이긴 한데, 같은 파일이 두세 번 올라간다든가 정말 하등 쓸모없는 파일이 업로드되느라 시간이 지나간다든가 하는 걸 잘 못 봐주는 편이다. 이제는 그런 게 아님을 알고 최대한 날것 그대로를 있는 대로 몽땅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참 많이 변했다.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두고두고 옛날을 되씹고 싶지는 않다. 잊고 있던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걸 매일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은 다 어디에 저장해 놔야 유지가 된단 말인가. 2테라바이트를 주는 바이두 정도가 일단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으니 함부로 종료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이거 정도가 그나마 안정적일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나면 저장장치 용량들도 좀더 늘어날 테니, 아무 생각 없이 파일들을 짱박는 것이 좀더 쉽고 값싸지겠지.


이 모든 데이터들이 어느 날인가는 그냥 스러지고 없을 거라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디지털 자료는 영원할 거라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그 무엇보다 핵심적인 근거는, 그 디지털 자료를 찾을 만한 사람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점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그 자료들은 아무 의미도 소유주도 얻지 못한 채 유실되어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자료가 다시 위로 올라오고, 다시 한번 read가 되고, 캐싱이 되고 하는 거지 싶다.


이를테면 우연히 영화 소개 TV프로그램에서 봤다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내 컴퓨터》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현재 씨네21의 글을 클리핑한 진보넷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영화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우연히 쇼윈도에 진열된 컴퓨터를 보고 그게 자기가 옛날에 빼앗긴 컴퓨터임을 알아차리는 장면 그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씬 하나가 그 어린 마음에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내 컴퓨터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수 년 전에 잃어버린, 자기가 가꾸어 놓은 바탕화면의 '내 컴퓨터'가 그 모양 그대로 쇼윈도에 놓여 있는 걸 보면, 무슨 감회가 들까.


여균동 감독은 《내 컴퓨터》라는 영화의 원본 필름을 갖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안 그럴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지금 TAILER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인 추진력과 기동력을 선전하는 바로 그 행사의 바로 그 원본 영상을 안 갖고 있듯이 말이다. 이제 그것은 어처구니없고 죄스러운 일이 되었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완벽한 기억의 보존이 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 내가 남겨야 할 것은 어느 정도까지일까. 더 많은 백업은 그것을 더 많이 보장해 줄까. 어차피 언젠가 스러질 자료들이고 기억들이라면, 어떻게 스러지게 하면 좋을지를 좀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생각이 엉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내일부터 대학 생활 마지막 시험이다. 이제 정말로 학창시절이 완전히 끝나고 세상으로 던져진다. 낙서공책을 모으고 모든 것을 백업해 두고 마냥 내 아이팟을 들여다보며 애지중지 이 모든 게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는 유아적인 생각은 그만둔 지 좀 되었지만, 실존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스러지고 싶지 않은 것인지 좀 잘 스러지고 싶은 것인지, 스러지게 내버려두기 싫은 것인지 어떤 것들은 스러지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것인지―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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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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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칫둠칫

2015. 5. 14. 09:34
어제 그럴 일이 있어서 저녁 6시 반경에 신촌 유플렉스 앞에 있었다. 흰 티에 민트색 하의로 깔맞춰 입고 나온 20대가 한 스무 명 정도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스피커가 설치되고, 그들 중 여자 다섯 명이 가운데로 나와 레드벨벳 최신곡에 맞춰 커버댄스를 정말 능숙하게 선보이지 않겠는가? 민트색 치마는 치어리더 스타일이어서 있는 대로 나풀거리고, 표정은 어쩜 저렇게 프로페셔널하게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돼 있는 광경을 봤다. 적잖은 남성 행인들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 그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왠지 우리가, 그들이, 모두가 조금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 5명의 훈련된 웃음과 배운 대로 추는 춤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큰 의미 없이 웃는 시선 처리와 사람 홀리는 치마의 비주얼 단지 그 둘 때문에 이런 무대에, 여성 아이돌에 홀리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다. 사람들의 주목과 카메라의 포착 없이는 성립이 되지 않는 그 ‘섹시도발’을, 한순간 진실한 것으로 믿어버리고 욕망하게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동아리방을 드나들 때마다 춤동아리의 연습을 봐 온 나는 안다. 군무라는 건 심각하고 따분하고 진지한 과업이다. 저 민트색 치마는, 지금이야 길거리 깜짝 공연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주인공일지 모르지만, 그 직전까지는 그냥 딱 한두 번 입어보고 어디 박스에 다시 개켜두었을 물건이고, 아마도 저 다섯이 저 “섹시 댄스”를 연습하던 대부분의 시간에 그들은, 내가 봐 온 게 일반적이라면, 아마 헐렁한 츄리닝 바지 차림으로, 전혀 섹시하지도 도발적이지도 않게 마냥 고생하고 있었을 거다.

다만 그들이 배운 대로 따라했을 그 춤, 그들이 수도 없이 들었을 “Give me that give me that icecream cake!” 따위 가사가 포함된 음악을 제공한 자들의 저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크게 의심하게 된다. 뭐 하자는 것일까. 더 많은 5인조 여성팀이 더 확실하게 이 춤과 음악을 따라하게 만들면, 더 나은 세상이 온다고 믿는 것일까?
하! 그럴 리가 어딨어? 이번 “시즌”에 “애들”을 “굴릴” 때 쓸 “최신곡”이 뭐든 하나 필요하니까 팔아치우려고 즉석 떡볶이로 볶아내 놨겠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복합을 본 사람들이 괜히 성욕이나 일으키는 거대한 오해와 허위와 가공의 세상이 되든 말든, 음원 수입에 행사 출연료만 두둑히 받아 챙기면 그만일 테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챙긴다더니!

선비질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춤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게 허구화되고 우상화되어 소외될 때다. 약 4분간 숨가쁘게 공연된 그 춤에서, 정말 이 동작이 필요한가? 싶은 순간이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 하나 목적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관객에게, ‘지금 내가 당신에게 진심으로 애교를 부리고 있다고 믿어 주세요’의 신호를 보낸다는 그 한 가지 목적. 하마터면 나조차도 그 목적을 달성시켜 줄 뻔했으니,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뭐 오죽하겠는가. 이런 식의 것들이 밤낮 없이 유통되는 세상에서 성추행, 성폭력, “맞다 개같은년” 운운하는 방송이 없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5인조 무대가 끝나자 주변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의 동료들이 합류해 다음 공연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 이동을 해야 해서 자리를 뜨다가, 문득 그들의 가방으로 추정되는 가방의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그 저녁 시간 게릴라 공연의 자리에서, 그들의 춤이 뭘 의미하는지를 맨 처음부터 지켜봐서 아는 것은 오직 저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 가방들뿐이었다. 그리고, 천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가방 더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들이 딱 한 번 보여줄 잠깐의 쇼로만 사태 전체를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과, 그렇게 하라고 설계된 “둠칫둠칫”만이 가득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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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초조함

2014. 12. 20. 01:17

“뭘 왜 그렇게 서둘렀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데?”

그러게나 말이다. 지난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마음이 바쁘고 뭔가가 계속 조바심이 났다. ​뺨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지금 초조하다.

두번이고 세번이고 기말 리포트 제출이 어디로 언제까지 어떻게인지를 묻고 있질 않나, 코드이그나이터 자습서를 빌렸으면 빌린 것이지 당장에 시작이라도 할 것처럼 그 두꺼운 넷북이며 책까지 꾸역꾸역 들고 다니다 괜히 종이가방이나 찢어먹지를 않나, 도서관 자리 없어질까 모바일 학생증을 두번 세번 찍고 있질 않나, 심지어 아직 오려면 멀었을 학교 토익 개강날과 대출도서 반납일과 아무도 재촉하지 않은 당첨자 발표에 바짝 쫄아서 신경을 쓰고 있질 않나… ​이젠 이번 뻘짓이 이 정도이길 다행이란 생각도 살짝 든다.

문득 노후화를 생각한다. 지금 이 초조함은 내가 늙어버렸다는 신호일까?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잘못 늙으면 조급함과 괴팍함만 남는다고.

왜 그럴까, 조급함이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이 초조함은 ‘늦으면 안 된다’라는 강박에서부터 비롯하지 않는가 싶다. ​실제로 나날이 뭔가가 단단히 늦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연애경험이, 사회진출이, 철드는 속도가, 내가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나 혼자 믿은 이벤트의 당첨자 발표가, 졸업이, 숙제 제출이, 전공 이해 속도가, 그밖에 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들이 기한이 임박했거나 이미 지나간 것 같은 것이다.
분명히 지금은, 물론 과제를 두 개 제출해야 하는 미묘한 기간이긴 하지만, 엄연히 방학 기간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방학 중의 내가 으레 그렇듯 뭔가를 다운받고 뭔가를 읽거나 보고 뭔가를 막 혼자 만들면서 잘 놀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유례 없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편한 맘으로 놀았다. 그 이유가 비단 엄마가 친정 가고 없어서 집에 강아지 콩돌이랑 나뿐이라는 데만 있는 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이 헌재에 의해 선고되었다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허탄한 일이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다만, 그냥 있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본 하루였다. 꾸역꾸역 먹고 놀고 누웠는데, 그래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 혼자서 그걸 제풀에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단독 판단을 내리고 뭔가 덜 초조해질 것 같은 일을 만들어서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선 내일 잘 대답하고 잘 혼나고 잘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하여튼 해야 하는 일들에 즉시 착수를 해야겠다. 죽이든 밥이든 되겠지. 그것들이 일단락 되면 하루를 딱 정해서 정말 맘 편하게 놀겠다. 근데 지금 내 상태에서 그게 바로 될지는 모르겠다. ​난 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컨트롤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초조함의 숯불만을 머리 위에 쌓고 있었다. 지금도 일단은 그렇지만 화요일부터는 확실히 ‘먹고 대학생’이다—근데 어쩌다 나는 그토록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며 잘 하기도 했던 그 신분 역할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노심초사 얼간이가 되고 말았나? 다만 그것을 도저히 모르겠다. 졸업반이 되면 다들 이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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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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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블로그에 글쓴다고 좋은 글 나오는거 아닌데, 이런걸 여기 안 쓰면 언제 이 블로그를 써먹나 싶어서 올립니다.


현대인은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서로가 서로 그렇게나 똑같아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21세기 인간들은 결국 '좋아요'와 리트윗 버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은유가 한없이 넓은 그 실없는 단추가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켰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카카오스토리에는 하트 버튼이 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인데요? 긍정해 주겠다는 뜻인 거지요. 우리는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옳다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위치와 색채와 수준을 측정하고 인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불안에 기인한 욕구가 있다는 말이지요.


어느샌가부터 좋은 것을 만들었다 또는 생각해 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좋아요나 리트윗을 다만 한 명에게서라도 더 얻어내고 싶어서 SNS를 악착같이 사용하고 구차하게 댓글 드립에 열중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총파업 포스터 4탄을 만들던 도중 그 발견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참 못났더군요. 뭐 이딴 볼품없고 비루한 인간이 있나, 싶어서 요즘은 길쭉한 글을 쭉 썼다가 쭉 지우고 그만두기를 여러 번 합니다. 삭제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함부로 올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2000년대 초반의 저는 어디로 가고 없는 걸까요.


인터넷이라는 광장이 워낙 넓은 탓에 오히려 사람들이 조곤조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울림 없는 텅 빈 곳에서 군중들이 만드는 뜻 모를 소음에 휩쓸리다 못해 왈칵 성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이 없으신가요?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그게 하도 확인하기 쉽다 보니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조곤조곤 말할 수 있고, 말이라는 게 처음부터 큰 소리로 호령하라고 만든 것뿐만은 아니니까요. 존재증명은 귀류법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유난 떨 것 없이 남들이 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명제의 예시로서 자기 존재가 증명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전공을 살린 드립을 시전해 봅니다.


방금 전에도 뭔가를 잔뜩 썼다가 잔뜩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통찰이 있었다,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했다 운운하는 젠체하는 글이었는데 뭔가를 또 확인받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심에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교열을 하다가 집어치웠어요. 문득 그런 생각에 미쳤던 거지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너는 그 통찰대로 살고 있냐? 왜 너의 삶이 아닌 썰을 무슨 근자감으로 나불나불 풀어놓으려고 하지? 니가 좋아하지도 않고 먹을 생각도 없는 요리를 열심히 만드는 이유는 대체 뭐야? 그저 맛있다는 말, 열심히 했다는 격려, 좋아요 17개, 진심으로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것일 뿐 아니야? 그게 그렇게 마냥 좋냐? 좋다 치고, 그래 그래서 니가 원했던 바로 그 반응들을 받으면, 그 다음엔? 왜 자꾸 그렇게 조급하게 널 판촉하려고 해? 사람들이 사 주지 않을까봐 겁나서 그래?


앞으로 다시 SNS에서 블로그로 무게중심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것, 잘했다는 말, 좋은 것을 했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코멘트 안 달리는 글은 어디 내놓아도 코멘트 달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쳐, '마이크로 블로그'들의 모르핀 투여량을 줄이려고 합니다. 새해 결심이라면 결심이 되겠죠.

코멘트 많이 달아달라는 호소문이 아닙니다. 조용히라도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조용히 있다가 조금 말하고 다시 조용히 있는 습관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좋아요 사냥꾼이나 리트윗 걸인 같은 건 되지 맙시다. 애당초 누가 누굴 확인한단 말인가요.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 만나요. 당신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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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요즘

2013. 12. 14. 02:38
  • 잠드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데 깨는 것이 어렵다.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이 매우 '우연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침잠이 늘어난 정도의 문제가 아니다. 내겐 어렸을 때부터 가진 한 가지 이유 없는 공포가 있다. 죽어서 영원한 어둠에 처해지는 것에 대한 무서움. 정말로 영원히 영원히 어둡고 아무 감각이 없는 것. 내겐 그것이 공포였고 지금도 아주 해결된 것은 아니다. 이 공포가 어디서 유래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까지는 어두컴컴한 밤이 무서웠다. 그런데 요즘 내가 아침에 우연하게 눈을 떠 휴대폰을 들어 각종 알림을 제거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는 것은, 내가 어젯밤에 잠들 때는 "내일 아침에 이러저러한 알림들이 올 테지, 그걸 꺼야지" 하고 잠들었는데, 지금 일어난 나는 전혀 그걸 기억하지도 대비하지도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냥 습관으로 행동한다.) 이러다가 어느 날부터인가는 "내가 왜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때가 오겠구나,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부터는 그냥 안 일어나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그때부터는 화창한 아침이 무서울지도 모르지.
  • 내가 현대인이 되었다고 느낀다. 미칠 듯이 바쁘다. 무엇보다 마음이 바쁘다. 마음심 변에 없을 망 자를 써서 바쁠 망이라고 읽는데, 마음이 없어진다는 기분이다. 닳는다. 소모가 된다. 오늘 희정과 이정 씨가 수뇌부를 은퇴했고, 그래서 잊고 있었던 캠퍼스워십을 가는 날이라는 것을 기억했을 때는 정말 예배를 기다렸는데, 정작 예배때 나는 반 이상 잘 잤다. 사람들에게 다가가자는, 우리의 사마리아에 머무르지 말고 성령의 충만과 인도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광야 길로 나가자는 도전을 받아, 그리고 희정에게 정말 무슨 말이든 따로 긴히 한 마디 해 주고 싶어서 예배 끝나고 뒷정리도 나몰라라하고 성령의 취기를 빌어 간신히 한 통 보냈다. 읽었는데 답장이 없다. 고맙다. 여튼, 현대인이 돼 가고 있다. 여러 사람에게 고백했는데, 내가 이렇게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좋은 점도 있다. 그전까지 이해하지 못했던 종류의 삶―어떤 모임에 대해서도 선뜻 가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항상 미안하다는 표정부터 짓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렵고 괴롭다. 요즘 현대인들은 낮을 빼앗겼기 때문에 밤을 지새우는 듯하고, 나도 점점 그리 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잘 자고 싶다. 그런데 이제 그것은 돈이 많은 사람 혹은 돈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복락이 되었다.
  • 바로그찌라시가 나의 삶의 상당 부분이 되었다. 연필로서의 나의 고정적 쓰임새 중 하나를 찾은 기분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not a fan.을 대출받아 읽으며 되새긴다. 하나님은 나의 컨설턴트가 아니시다. 그분의 일에 내가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지를 따져야 한다―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사실 백점짜리 제자도는 아니다. 일의 주체는 언제나 내가 아니다. 바로그찌라시는 내 삶의 최우선순위는 아니다. 그러나 스케줄의 상당 부분인 것은 사실이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명확해지면서도 심란하다.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 않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충실하지 않겠다는 것은 천에도 만에도 아니다. 다만 이런 삶―대다수 직장인들이 겪는 삶이겠지―을 잘 모르겠다는 것뿐이다.
  • 필기구를 쥐고 종이에 글을 쓰는 것을 동경만 하고 있고 실제로는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내 안의 무언가가 "제발 이렇게 중량감 없는 글과 그림은 그만 만들어"라고 외치는 것 같다. 사실 나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현대의 창작물들이 뭔가 전혀 무게가 없다는 기분이다. 속이 비어 있는 것 같다. 분명히 거대한 물체를 표현한 것인데 3D CG로 잘 만들어진 그 모든 거대한 것들이 그렇게나 빠르고 가볍게 여기저기로 날아다닌다. 분명히 미소녀 일러스트인데 상반신과 하반신은 이질감이 극심하고(마치 바스트 샷까지만 연습하고 그 이하는 상상으로 그려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저런 몸과 복장으로 저런 자세를 한 걸 그리면 정말 저렇게 나올까' 싶은 그림들 투성이다. 모두가 상상으로, 컴퓨터로, 깔부림을 한다. 아무 기본기도 찾아볼 수 없다. 소녀를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미소녀 그림을 그리고, 공룡이나 거대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치는 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충 컴퓨터가 렌더링해 주는 시뮬레이션 결과대로 최종판을 작업하고, 자기가 뭘 패러디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오만 잡다하게 아무 데나 고객감사를 갖다 붙여 맹랑함을 넘어선 허무맹랑함을 작성한다. 그런 글은 공책에 연필로 썼더라면 결코 쓸 수 없는 종류의 글이다. 마구 잡다하게 튀어나오는 생각들이 분무기로 물 뿌리듯이 뿌려져서 화면 위에 널브러진 모양이 글이나 그림 따위에서 너무 자주 목격된다. 그리고 그것들을 참아주기가 어렵다. 이건 아닌데, 이게 정공법이 아닌데 싶다.
  • 사람들이 재미있는 일에 목이 말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생각해 보면 자연스럽게 자명하다. 인구통계학을 배워 보라. 세상이 얼마나 재미없는지 아는가? 당신이 지극히 평균임을 알고 나면 세상이 그렇게 허무하게 재미없다. 이걸 어렴풋하게나마 눈치챈 사람들이 바로그찌라시 모집공고에 그토록 반응하고 달려들었다. 재미. 대체 재미란 무엇일까. 모름지기 사람은 사는 재미가 없으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자살이든 자연사든, 라고 나는 생각한다. 재미란 좀더 큰 차원이다. motivation이다. 재미가 있어야 뭔가를 한다는 말은 일반적인 통찰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고 말하는 이야기고, 그 다음이 문제다. 그렇다면 재미를 일상화할 방법은 없을까? 롤러스케이트가 유행하던 시절 그때의 10대들은 롤러장에서 댄스음악에 맞추어 연애와 낭만을 즐겼고 그분들은 지금 30~40대가 되어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몰아넣고 있다. 롤러스케이트와 같은 것, 새로운 스포츠, 한 장짜리 잡지를 만드는 매커니즘 등,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해볼만한 일, 그런 것을 만들고 싶다.
    요즘 API라는 개념에 꽂혀 있다. 스크립트는 중앙 서버에 있고 여기에 입력값을 제출하여 출력값을 되돌려받아 나름대로 이용할 수 있게 해 주는 (맞겠지?) 규격, 개발자가 제공하겠다고 맘먹고 개발해서 공개하면 되는 것. 기존의 재미 개발자들은 API를 공개하지 않았다. 그냥 통짜 콘텐츠를 갖다주었다. 이제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앤디 워홀은 스크린톤이라는 API를 개발했다. 이렇게 이렇게 색을 고쳐 넣으면 그럴싸하다는, 뭐 그런. 용어는 자의적이라 문제가 있겠지만 여튼 그런 걸 요즘 깊이 생각하고 있다.
  • 여전히 싫은 것이 세상에 너무 많아 견딜 수 없다. 학교 후문 쪽 사거리 모퉁이에서 운영하던 돈까스 집이 홀랑 망하고 파리바게트가 들어왔다. 오늘 오후에 보아하니 신장개업을 했다고 이벤트 도우미 불러다가 시끄럽게 떠들면서 홍보를 하는 꼴을 보이고 있었다. 가뜩이나 기분 안 좋고 섭섭한 일 있던 차에 굉장히 기분이 나빠서 화를 낼 뻔했다. 하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화를 내면 내 입만 더러워질 것 같다.
    일베충들에 대해서 내가 느끼는 것도 그렇다. 그냥 싫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우리 학교부터 적지 않은 듯하다. 자기를 심리학과라고 소개하는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거리로 나온 넷우익'이란 책을 쓴 저자에게 질문을 하다가 "그러면 당신은 다양성이 존중돼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고 되물어보는 질문에 "그거는, 배제가, 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걸 보며 혀를 끌끌 차는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많구나, 세상에는 자기가 본 것만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사람들이 많구나, 그들에게 세상은 그저 자기 눈앞에 우연하게 전시되어 있던 일부의 존재들뿐이었음에도, 그게 그 사람들의 사고를 구성해 버렸고, 그 이상의 다른 생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 그렇게 이 세상에는 싫은 것들이 차고 넘친다. 다들 너무 나르시스트들이다. 자기밖에 모른다. 자기가 모든 걸 다 보여주고 설명하고 해결하고 있으면서 "내 프라이버시는" 운운하고 "왜 저 인간은 저러고 사는지" 운운한다. 싫은 것들을 배양하는 무관심과 자아 과잉에 금방이라도 까무러칠 것 같은 혐오를 느낀다.
  • 돈이 없지는 않은데 쓰질 못하고 있다. 항상 현금이 조금씩 나갈 일이 생긴다. 주로 카드값을 막기 위한 것이다. 소니 넥스5 중고가 35만원으로 나온 게 있는데 충동구매 한번 못해보고 죽을 성싶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돈 많이 벌어 성공하면'이란 말에는, 사실은 돈에 대해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그런 날이 안 올 성싶다. 아이고 주여
  • 보시다시피 학업이 가장 내 관심사 밖이다. (...) 그래도 금융경제학이나 국제정치경제학 같은 것은 꽤 유용하다. 논리학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배우고 싶지 않다...
  • 떠오르는 생각들은 그때그때 많지만 일일이 적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생각들은 내면에서만 process되어야 한다.

  • 가장 최근에 듣는 노래는 6월 전국 모의고사 세트, 철이와 미애의 "너는 왜", 문명4 주제곡이라는 바바예투, '박명수의 어떤가요' 노래들, 삼성전자가 갤럭시 시리즈에 넣어놓는 Over the Horizon 시리즈 등이다. 난 이 음악들이 재미있다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노래들은 네타성으로 소비되는 그 이상의 내재적 의미와 더 큰 시공간적 맥락이 확실히 있다고 느끼고, 실제로도 더 진지하게 듣게 된다.
    사실 엽기송이라고 통칭되는, 소리바다가 유효하던 시절 사람들이 주고받던 뻘한 리믹스 음악들 같은 것들이 다 그렇다. 음악 파일 제작 작업은 어쨌든 시간이 걸리고 어려운 일이다. 그걸 굳이 해낸 결과는, 아무리 우스꽝스럽고 네타성이 짙다 하더라도, 언제나 그 이상의 존재이다. 내가 열심히 그런 음악 파일들을 끌어모아 왔던 것은, 지금 가능한 설명 방식으로 설명하자면 언제나 그런 이유였다.
  • 굉장히 늦거나 아예 따라가질 못한다. 진격거를 3분도 안 봤다. Only My Railgun과 Sisters' Noise를 이제 받아 듣는다. 이제 좀 좋다고 느낀달까. 최근에 경동케이블이 방학 시즌을 맞아 얼마 전의 신작애니들을 무료로 풀었는데, 덕분에 바시소 2기를 다시 보며 누가 뭐래도 히메지가 모에한 캐릭터라는 것과 츠치야 코타가 의외로 매력있는 인물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리아홀릭2기 와 이국미로의크로와제 는 교양필수고. 아무튼지간에 '최근', '최신' 이런건 예전에도 못따라잡았지만 지금은 더더욱 어렵다. 무엇보다, 그렇게 하려면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 컴퓨터 전문가 분야에는 트러블슈팅이라는 것이 있다. 문제의 해결이 핵심으로, 주요 관심사로는 크게 원인 찾기와 문제 없애기(또는 Plan B 만들기)의 두 가지가 있다. 무슨 프로그램을 쓰면 된다든가 레지스트리를 건드려야 한다든가 explorer 프로세스를 종료한 뒤에 새로 실행시켜준다든가 하는 것을 주로 연구하고, 근본적인 원리나 고차원적 스킬―바이오스 조작 등―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없다.

    생각해 보면 나의 창작 활동은 트러블슈팅인 경우가 많았다. 해결해야 할 문제와 해명해야 할 의문 그리고 표현해야 할 재밌는 생각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든 해내는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해 왔다. 백수의 하루는 플래시 애니메이션을 잘 하지 못해서 사인펜으로 공책에 그렸고, 인쇄용 폰트를 만들지 못해 직사각형의 조합으로 웹폰트를 대충 만들었었고 얼마 전에도 이런 문장들을 표현할 픽토그램이 필요하다는 것 같아서 그걸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 하는 트러블을 슈팅해 보려고 했었다.

    1. Fundraising should not be based on exploiting stereotypes.

    Most of us just get tired if all we see is sad pictures of what is happening in the world, instead of real changes.


    2. We want better information about what is going on in the world, in schools, in TV and media.

    We want to see more nuances. We want to know about positive developments in Africa and developing countries, not only about crises, poverty and AIDS. We need more attention on how western countries have a negative impact on developing countries.


    3. Media: Show respect.

    Media should become more ethical in their reporting. Would you print a photo of a starving white baby without permission? The same rules must apply when journalists are covering the rest of the world as it does when they are in their home country.


    4. Aid must be based on real needs, not “good” intentions.

    Aid is just one part of a bigger picture; we must have cooperation and investments, and change other structures that hold back development in poorer countries. Aid is not the only answer.

    [출처: 노르웨이에 난방기구를 원조하는 아프리카 단체 radi-aid]

    문장들을 보는 순간 '이걸 픽토그램으로 표현해야 하는 TTL 디자인팀도 고생이겠구나' 싶었다. 얼마나 민감하고 디테일한 의미 전달인가! 지금껏 보았던 명랑만화와 '이원복'류 교양만화들을 생각했다. 그들이라면 이걸 어떻게 그려낼까? 먼나라 이웃나라, 어릴 적 보았던 각종 학습만화 등에서의 만화적 표현들이 생각났고 그걸 좀 유용(流用)했다. 물론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대한 그림 표현은 좀 어렵긴 했다. 첫번째를 표현한 것 역시 사실 100점짜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디자이너 분들이 보시고 "내가 이거보단 더 잘하겠다"라는 자극을 받으면 그걸로 족하다 싶었다.

    그래 난 그걸 스캔해서 팀 드롭박스에 올려놓고 세상모르고 자는 동안 디자이너들은 그걸 보고 극찬을 했다고 하더라. 문제가 일거에 해결이 됐다고, 천재인 것 같다면서.

    난 절대 천재가 아니다. 그냥 트러블슈터일 뿐이지. 그리고 이번 일은 내가 유용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재료와 스킬이 딱 적시에 크리를 터뜨려 준 희귀한 케이스일 뿐이다. 나는 내 스킬이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기본적으로 넓지 못하다. 최소한만 하면 된다는 안이하고 무례한 자기과신 아래 오랫동안 남들이 갖은 고생 들여 쌓는 스킬을 가지고 제대로 된 설계와 구축을 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할 줄 아는 것 몇 가지를 가지고 냉큼 해결해 버리는 것으로써 나의 역할을 몰래 어필하려는 속셈이 없잖아 있다. 예컨대 포토샵을 할 줄 모르는 채 paint.net이란 프로그램의 간단한 플러그인 가지고 눈속임을 하려는 것이다. 나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트러블슈팅이라기보다 차라리 자기 자리/밥그릇 지키기의 일환이라 해야 하며, 천재성 발휘 따위는 더더욱 아니다. (히트맨이라는 칭호는 혹시 여기에 어울릴까?) 다들 "어진이 니가 가진 것을 충분히 발휘하게 해주고 싶다"라고들 하는데, 가진 게 없어서 발휘할 것이 없다, 라고 말하면 무안을 주는 것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저 무안하게 웃을 뿐이다.

    세상의 천재들에게 미안해지는 날이었다. 트러블슈팅. 그거 잘 하기 위해서라도 더 쌓아야 할 최소 스킬의 범위가 확장을 자극받고 있다는 느낌은 있다. 예를 들어, DSLR 카메라는 못 사더라도 국비지원 앱 개발 교육 같은 건 받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나에게 부족한 건 물자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 최근에는 서태지를 리뷰해보고 있다. 문화대통령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울트라맨이야>는 그 예전에 뭣모르고 들었을 때보다 더 강한 곡이었다. 울트라맨은 일본의 슈퍼맨이다. 외국에도 서태지의 위치에 있는 존재가 나라마다 있을까? 저작권 개념 확립과 힙합, 뉴메탈의 국내 도입에 공헌했다는 그다. 그의 스타덤이 쇠해 가는 지금 우리는 누구에게 기대를 거는가? 그는 "솔직한 해답을 갖자 영웅이란 존잰 없어 이미 죽은 지 오래 영웅은 바로 너야"라며 바톤을 넘겨버렸다.

    ------------- 이상 13.06.07까지 -------------

  • 웹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이젠 한층 더 진지한 이야기). tailer 홈페이지 때문에 php를 알아보다가 알게 됐는데 DB와 페이지가 어떻게 연동하는지만 알면 나머지는 다 함수와 알고리즘의 문제인 듯. 여기까진 허세고, 실제로는 폼메일 php 하나를 성공시키지 못해 끙끙 앓고 있는 코드맹 신세. ㅋㅋㅋㅋ
  • <사이비>를 봤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언짢음을 무릅쓰고 자신 역시 "교회를 다닌다"는 것을 밝혀 주었다. 그걸 알고 나서 본 터인지 더욱더 작품에 몰입할 수 있었고 이런 걸 만들어 개봉해 준 다다쇼에게 고마웠다. 저토록 리얼하게 혐오스럽고 패악한 아버지, 항상 기겁하는 어머니, 도망갈 길을 찾는 나약한 여자아이. 장로와 목사 캐릭터는 약간 덜 익었지만, 김민철 가족만큼은 제작진들이 알고 있는 이 땅의 가족들 그대로였다. 그리고 다다쇼 특유의 일그러진 표정은 전체를 추에서 미로 넘길 만큼 충분한 끔찍함을 보여줬다.
  • 원고 작성 관련 교육을 받는 중이다. 문장이나 착상 그 자체, 문장들의 구조적 긴밀도, 단락들이 있어야 할 이유, 글이 전체 매체에서 갖는 맥락과 '톤', 점점 시야를 확대하는 중이다. 잘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두세 번 생각하고 쓸 수 있는 글도 이 모양인데 즉흥적으로 인터뷰어가 묻는 질문에까지 말로 차분히 답해야 하는 인터뷰 같은 건 오죽할까? 시니어 피처의 역할을 못 하고 있다. 이러다 한 방에 훅 가지. 결국 이번주는 휴가를 받아 버렸다.
    사실 "just"에 대한 압박이 있다. 진짜배기 정기간행물을 만들게 되면 그땐 장타 안타 도루 가릴 것 없이 지면을 채우며 분초를 다투는 생활이 되겠지. 그걸 하기 전에 각자의 스윙으로 홈런을 한 번씩 쳐 보고 선수입장하자는 계산인데, 아직은 조금만 변화구가 들어와도 볼을 내 주는 상황이다. 이러다 포볼되면 아웃인데.
  • 안목의 문제. 취향이랄 만한 것을 가진 지 오래 되지 않았다. 그 좋다는 일본 애니메이션조차 고등학교 들어와서 PMP를 가진 뒤 차근차근, 그것도 처음엔 숫제 을뀨라는 네임드의 공신력에만 기대어 쌓아 왔던 것이니까. (따지고 보니 군대 빼면 기껏해야 7년!) 어찌 보면 나의 애니메이션 라이프 큐레이팅은 을뀨 님의 것이었다. 그 이후로 각종 괴작으로 빠지면서 이 지경이 됐지만. 애니가 이 정도니 연예계, 음주가무, 스포틱 아웃도어 따위에 조예가 있을 리가 없다. 큐레이터도 없었고 그런 것들을 알 이유나 의지도 없었다. 그쪽으로 엮어 써먹을 일이 있든 없든 일단 아는 것은 중요한데, 얕고 좁게 파 온 나날이다. 말씀, 상식, 메타논리 등을 가지고 호오양악을 이론적으로 분간하는 수밖에 없는 지금이다. 이제 와서 막 여기저기 들쑤신다고 알아질 것도 아닌 줄 알지만, 곱게 늙지 못한 이의 성마른 초조함 같은 것이 대책 없이 몰아칠 때가 있다.

  • ------ 이상 13.11.23까지, 이하 13.12.13부터 ------

    12월 첫 주부터 동네 학원 알바를 시작했다. 월~금 5시부터 10시까지, 주로 문제집 작업을 한다. 하루하루 언제 잘릴지 몰라 괜히 혼자 속으로 벌벌 떠는 나날이다(계약서까지 썼는데). 오전에는 좀있다 일하러 간다는 스트레스에 뭘 해도 손에 안 잡히고 오후에는 일하고 오고가고 쉬느라 다른 걸 손에 잡지 못하고 있다. 정말 되도 않는 변명이지만, 사실은 그래서 글이 안 풀린다. 1주 넘겨서 theveryepics를 썼는데 두 번 생각하던 것을 한 번 생각하고 허겁지겁 작업해 올렸더니 웬걸 당장에 형편없는 바이럴이 되돌아온다. 뭐 한번쯤 그럴 수도 있는거지 싶으면서도 속이 쓰리다. 이번에 확실히 배웠다. 어떤 일은 마감 늦는 것보다 질 낮은 것이 더 나쁠 수도 있다. 홈런이 불확실한데 승부수를 내야 한다면 차라리 데드볼을 맞아라. 적어도 에픽스 시리즈는 터진다는 확신이 있기 전까진 시작도 하지 말아야겠다. 뭐야 이 쓸데없는 장인정신
  • 진은진현(眞隱眞顯)이라는 말을 배웠다. 군자란 모름지기 치세에는 나서서 뜻을 펼치고 난세에는 숨어서 때를 기다린다더라. 그런데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지금은 난세다. 관상이 유행하고 고리대금업이 판을 치고 젊은이들이 맥이 없고 정치 경제 사회에 일말의 기강이 없달까 하여튼 국운이 기울 대로 기울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군자는 숨어야 된다는 얘기가 되는데, 대체 뭘 어째야 하는 걸까. 하필 이런 시기에 마치 트위터 따위의 SNS가 우리를 구원할 것처럼 짹짹거리는데 말이다.
    태환어 크루[각주:1]가 간만에 모여 차이나팩토리에서 런치코스를 처묵처묵할 일이 있어 거기서 좀 거들먹거려 볼 셈으로 이 얘기를 꺼냈다가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소위 21세기의 진은이라 할 것이 있다면, 그저 남들 하는 일 똑같이 하며 숨죽여 지내는 것 아니겠느냐며.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말을 하려다가 생각이 꼬여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생각이 헷갈린다. 형가는 푸줏간에서 개를 잡았고 고점리는 축을 숨긴 채 일당 알바로 먹고살았다 한다.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주려 죽었고 장량은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이 뭔가? 이게 진은인가? 그들의 시대로부터 좀 지난 때의 죽림칠현도 결과적으론 진은이 못 되었는데, 하물며 "요즘 시대에 그럼 진짜 산에 가서 숨어 사는 게 되겠냐"라던 친구 말이 생각난다. 글쎄? 그럼 요즘 시대에는 어디에 가야 숨어 사는 것인가?
    하여튼 지금이 몸을 사려야 할 난세라는 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러나 한 가지 더 확실한 것은 형가의 칼, 고점리의 축, 백이와 숙제의 군신지의는 그 숨어사는 삶 동안 낡아빠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시퍼렇게 팽팽해졌다는 것이다. 대체 뭣 때문에 사마천을 위시한 중국의 대학자들은 이딴 이야기를 굳이 기록해 놓았나? 대체 이게 지금 우리에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게 뭔가? 고우영 십팔사략을 처음 읽었을 땐 그저 그림에 취해 훌훌 넘겼는데, 이번에 읽었을 땐 반고부터 시황제까지의 이야기가 얼마나 차원 높은 레토릭한가 하는 그것 때문에 나머지 대여섯 권의 그 잡졸한 역사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애당초 난세 치세의 개념이 안 먹히는, 세(世)가 성립하지 않는 시절 아닌가! 일개 학원 알바생으로 웅크리고 있으면서 촛불집회 하나 못 나가보고 있는 나로서 생각이 몹시도 헷갈린다.
  • 액션펌프라는 것이 엎어질 위기에 있다. 생각을 좀 가다듬을 시간을 달라고 해야겠다.
  • 최근 또 한 가지 문득문득 떠오르는 화두가 바로 후삼국 시대다. 생각거리가 없어지거나 사람들의 정치 성향을 가만 지켜보다 보면 정말이지 없던 바퀴벌레 튀어나오듯 튀어나오는 생각이다. 꽤 예전에 자칭 레이니걸 이모 씨는 천상 백제 사람, 친한 형 김모 씨는 천상 신라 사람이라는 직관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이후로 이 직관이 수시로 떫게 떠오른다.
    현대한국사에서 그다지 오랜 전통도 못 가진 그놈의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왜 하필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뉘었을까? 난 그것이 행정구역의 문제라고 보지 않는다. 그것은 훈요십조에서부터 내려오는 바 이것은 백제와 신라의 싸움이다. 나는 후삼국시대 자체를 믿지 않는데, 이렇다 할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으며, 다만 지금의 한나라당-민주당 구도를 보며 저것이 다만 10세기 한반도에서 꼭같이 일어났던 것뿐은 아닐까, 그리고 당시 민초들의 눈에는 그게 나라 싸움으로 보였던 것뿐 아닐까, 뭐 그런 되도 않는 억측을 할 뿐이다.
    백제는 문화 감각이 있고 온순한 듯하면서도 할 땐 하는 기질이고 자기를 드러내기보다 자기의 성과로 인심을 사고 싶어한다. 신라는 무엇보다 자기 사람들과 좋게 좋게 가는 것에 최대 관심이 있으며 문화는 다소 떨어져도 풍요와 권력을 잘 다룬다. 고구려는 천하를 상대하겠다는 기백과 과감함이 큰 대신 가장 문화적으로 척박하며 경제적 여유나 싹싹함도 부족하다. 나는 내가 천상 탐라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삼별초와 4.3의 섬 제주는 오래 전부터 나라 아닌 나라로 육지와 서먹한 관계를 애써 지속해온 귀양살이 섬이었다. 탐라는 육지 어디와도 근본적으로 시야가 다르고 언어가 남다르며 나름 자족할 줄 아는 대신 어리숙해 보이거나 고지식해 보인다. 그밖에도 삼국에 속하지 못한 사람들이 나는 있다고 보는데, 가야, 옥저, 동예 등이 그렇다. 이런 지역들은 오늘날 선거를 해 보면 항상 예측 불가 지역으로 뜨고, 역사를 살펴보자면 항상 이 나라였다 저 나라였다 하면서 심경 복잡하게 소속이 바뀌어 왔다.
    이 셋이 땅따먹기를 했을 때, 첫 판을 이긴 건 신라였고 다음 판을 이긴 건 고구려 내지 동예였다. 이게 7차 교육과정의 중고교 국사 과정이 내게 가르쳐 준 삼국이다. 한국 정치인의, 한국인의 정치적 입장의 대강은 백제 사람인가 신라 사람인가, 혹은 고구려 사람인가로 나뉘는 것 같다는, 내가 생각해도 비상식적인 통찰이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어떤가, 각각을 민주당계열, 자유당계열, 북한정권으로 보면 그건 이제 슬슬 유사 역사학의 수준인가?
  • (글이 너무 길어져서 문단을 자름.) 여튼 그래서, 후삼국은 거대양당 및 양대체제의 권력투쟁이라는 외형을 빌어 한반도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고, 그것은 애당초 후삼국이라는 시기 자체가 허구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 그냥 내가 막연히 하고 있는 생각이다. 역사를 고증과 사고와 견학 없이 암기식으로 배우면 이렇게 된다. 모르겠다. 그저 이게 나만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누군가가 저도 왠지 그런 생각이 얼핏 들었는데 부끄러워서 말 못하고 있었어요, 라고 알려주기만 한다면 기쁘겠다.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이 될 만큼 황당무계한 생각을 요즘은 안 하고 사는데, 그나마 이런 것 정도? 이것마저도 정치놀음에 동원되는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그저 백제 신라 고구려 캐릭터를 잘 연성하여 한바탕 백합 놀음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게 이 망상의 가장 좋은 용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역사가 갑자기 이렇게 들이닥치는 건 나로서는 곤란하기도 하니까.

  • ------ 이하 14.02.25부터 ------

    수많은 오지랖퍼들의 추태를 보면서 간단히 오지랖이 넓다고 말하고 끝날 만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관심의 방향의 왜곡이고, 이는 훨씬 심각한 문제일 수 있다. 우리는 아주 집요하게, 구조적으로, 다층적으로, 자의와 타의의 혼합 속에서 관심을 뒤트는 법을 터득하고 있다. "관심을 가지지 않아야 할 대상"과 "관심을 가져도 되는 대상"을 구별하거나 임의로 지정하고, 거기에 충실하게 행동하는 능력을 기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바닥에 저렇게 더럽게 널브러져 쏟아진 팝콘과 콜라를 보고도 어쩌면 이렇게도 다들 태평하게 지나치는가? 거기가 영화관 복도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떻게 생판 남인 사람을 향해 "연아야 고마워", "저 러시아감독 샹놈의 가이스키" 운운할 수 있는가? 하루 온종일 TV와 네이버 뉴스에서 그들에 대해 집중해서 들려주기 때문이다. 특정 집단이나 권력을 들먹이고 싶지 않다. 이것은 그냥 우리가 동경하는 모델하우스식(式) 현 사회의 실체인 것이다. 순진한 사람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장면들을 지나쳐야, 사양지심이 있다면 마땅히 적정한 타이밍에 입다물고 지나쳐야 할 일에 쓸데없이 한껏 나서야 ‘촌티’를 벗고 쿨하고 냉철한 현대인의 삶이 되는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가 가만히 있기를 참지 말자고 말하고 싶지만, 그건 쉽지 않다. 아직은 결론이 나지 않는다. 이걸 쓰고 있는 곳이 학원이라서 그런가 보다. (...)
  • 보그 1월호를 다시 읽어 봤다. 크리틱 기사가 있다는 걸 몰랐는데 다시 보니 역시 하향 조정된 수준의 비평들이었다. 성형 광고가 성행하는 이유는 비단 광고 심의 기준의 변경 때문만은 아니다. 성형 광고를 포함하여 온갖 보기 싫은 광고가 얼마나 성행하느냐는, 기실 그 광고를 소비하는 사회 구성원의 내면적 허영심이 얼마나 크냐에 따른다. 자본주의란 요컨대 이론화의 탈을 쓴 허영심이고, 그렇기에 필연적으로 항상 침체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빌어먹을 간극은 결국 숱한 머리와 손이 체제에 복속하며 생산하는 좀더 자극적이고 정교한 생산된 아름다움들인데, 마케팅이라든가 브랜딩이라든가 제품디자인 같은 이름으로 불리고 있는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1. 앞으로는 고태사 이환희 김어진 이 셋을 내 맘대로 약칭해서 태환어 크루라고 부르겠다. 여러분이 앞으로 이 이름을 기억해 두셔야 할 것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엽토군
:

그냥 가만히 보고만 있기엔 이 꼴불견은 너무 심하다.

http://www.seednovel.com/pb/module/board/list.php?code=writerfree



지금부터 쓴소리 들어간다. 정론만 말해줄 테니까 똑바로 앉아서 들어.


1. 니들의 "설정"에 독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은 사실이다. (좀 어려운 말이지만 지나가는 말로 해 주자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들이 설정 생각 안 하고 재밌는 이야기 재밌게 읽다가 언제부턴가 그 설정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 니들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만렙 굇수들은 어떤 꼬락서니의 설정을 가지고도 이 목표를 달성할 줄 아는데, 이런 분들은 보통 애니메이션이나 예능프로의 제작감독이라는 일을 해서 먹고산다.) 독자가 관심있어하는 건 어떤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그게 얼마나 그럴 법한지그 둘뿐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는 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 하나를 인정하지 못하겠다는 놈들이 무슨 글을 써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이 두 평가기준은, 못 믿겠지만, 자가진단이 가능한 기준들이다. 안 물어봐도 된단 말이다! 못 믿겠다고? 평가받고 싶은 글을 열심히 써 놓은 다음 서랍에 넣어 놓고 딱 27일 뒤에 꺼내서 다시 봐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게 될 거다.


2. 니들의 "설정"이라는 게 정말 창의적인 건 한 개도 없고 사실은 니들이 며칠 전, 몇 달 전에 보았던 기존 작품에서 다 어렴풋하게 짜깁기해 온 것이라는 걸 제발 좀 인정했으면 좋겠다. 증거가 뭐냐고? 너네들이 설정을 설명하는 걸 들어 보면 알 수 있다. 어쩜 그렇게 다들 하나같이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을 자기 방식으로 다시 말하는 것처럼 말하는지!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 보고 설명하는 것처럼 더듬더듬 지엽적이나마 구체적이고 물적 사실감이 느껴지는 설정 설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 그저 "You know what I'm saying"이 행간마다 꾸역꾸역 삽입되어 읽힐 뿐이다.

아무것도 참고하지 말라는 말이 절대로 아니다. 너의 상상력이 그 정도라는 걸 인정하라는 소리다. 철저하게 독자적인 세계 설정은 불가능하다는 거 모르는 사람 없고, 그거 가지고 작가를 뭇매놓을 독자도 없다.


3. 니들은 "설정"결정론자들인 것처럼 보인다. ㅆㅂ 내 글이 안 팔리는 건 설정이 ㅄ같아서야! 라고 생각하고 그놈의 설정이란 걸 고치고 바꾸고 뒤집고 짜깁고 베끼고 자위하며 언젠가 완벽하고 흠결 없이 재미를 보장해주는 평행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딴 거 없어 미친놈들아. 오백 번에 한 번 정도 있는 특수 케이스가 아니라면, 설정은 재미의 본질을 조금도 배가해 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히트 게임들이 중력 알고리즘이나 몹 캐릭터 따위에 설정을 거의 부여하지 않다. 이유가 뭔지 모르지? 게이머들이 찾는 재미는 중력이나 몹 따위에 있지 않아서거든!


4. 다시 말하지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은 캐릭터의 고유한 판단과 움직임(이걸 '인물'이라 부른다), 그리고 캐릭터의 판단과 움직임이 납득 가능하다는 일말의 개연성(이걸 '줄거리'라 부른다), 크게 그 두 가지다. 따라서 설정이 아무리 황당하더라도 그 두 가지를 깨끗하게 풀고 가기만 하면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수작으로 칭송받는 것이고, 설정이 아무리 구체적이고 세세하더라도 그 두 가지를 잡는 데 실패한다면 '설정만 많고 이야기와 캐릭터가 빈곤한' 나쁜 사례로 전락한다 이 말이다.


5. "완벽했기 때문에 걸작이 되는 것이 아니다. 결함과 문제점과 비합리가 있음에도, 그 모든 부족함을 압도하는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에 걸작이 되는 것이다."

어디서 주워들은 말인데, 누가 한 말인지는 찾을 수 없었지만 여튼 이 말은 백번 옳다. 니들의 설정이 완벽하길 바랄 시간이 있으면 설정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캐릭터에게 리얼함을 더 부여해라.


6. 이런 식이다. 너라면 니가 만든 설정 세계에서 살고 싶냐? 솔직히 너는 살기 싫다고? 그럼 너의 설정은 이미 ㅈ나 틀려먹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해라. 너라면 니가 만든 설정 세계에서 살 때 어떻게 살아갈/행동할 것 같냐? 너는 그렇게 살 거면서 왜 니가 만들어낸 애들은 그렇게 안 살고 꼭 그렇게 힘들게 사냐/행동하냐? 지금 후달리면 넌 망한 거다. 변명 지어내지 말고 0부터 다시 해라. 가차없이 다 둘러엎어 치우고 처음부터 말이다. 너의 공상이란 결국 그렇게 니 생각보다 백배 천배 허황되고 유치하고 빈곤하기 때문이다.


7. 그런 식으로 하면 자유로운 설정 창작이 가로막힌다고? ㅅㅂ 내가 지금 니네들보고 설정 창작 하지 말라고 했냐? 쌩기초에 해당하는 자문자답부터 해 보라고 했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면서 돈 주고, 혹은 연재란을 클릭해서 없는 시간 쪼개어 글을 읽으며 일말의 재미나 모에캐를 찾으려고 애쓰는 독자를 현혹할 수 있겠냐 이 말이지. 난 허황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게 아니다. 허황될 거면 설득력 있게, 밀도 있게, 자신 있게 허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절대 다수의 니네들은 그 정도 경지까지는 못 간다. 그러니까 허황된 설정 몇 개 깔아 독자를 후리겠다는 얄팍한 개수작일랑 집어치우고 기본기부터 갖춰 오라 이 말이다. 독자를 물로 보냐?


8. 제발 부탁이니 어디 가서 배경 설정 성의없이 주워다 누벼 넣지 마라. 학원도시. 마법세계. 특수목적고등학교. 알고리즘 구축도 안 끝난 프로그램에 이런 화려한 쉘부터 갖다 씌우는 이유는 대체 뭐냐? 장담하는데 그런 배경 다 지워 놔도 너의 그 단순한 용가리통뼈 서사 골격은 충분히 성립 가능하다. 이야기의 본질과 궁극적인 접점이 없는 타 작품 배경 설정을 좀 있어보인다고, 유행이라고, 남이 쓴 거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심산으로 막 갖다 씌우지 마라. 독서실에 벅스뮤직 힙합차트 틀어놓는 짓과 하등 다를 바 없어서, 아무도 그딴 건 반기지 않는다.


9. 캐릭터 만들면서 설정놀음 하는 거 아니다. 인간이라면 인간에 대한 예의를 좀 갖추고 이성을 되찾아라. 내가 이 글을 쓰게 만든 결정적인 뻘글을 하나 발췌해서 보여준다. 출처는 일부러 뺀다.

한 놈은 잘못된 기억으로 어릴때 주인공에게 독을 먹이거나 (그러나 살았다.) 칼빵을 놓거나.(살거나.) 하다가 원래 기억 찾고 얀데레가 되버린 히로인,(그러나 행동이 죽지 않음.)

마력으로 몸이 언제 폭발 할지 모르는 히로인 근데 졸 활발하고,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히로인에(지 잘못을 남에게 덮어 쒸우는 히로인)

츤데레인데 안에 수술로 인해 쌍둥이 언니가 몸에 있어서 이중인격으로 흑화하는 히로인, 그것도 얼마 없으면 튀어 나오는 히로인, 쌍으로 츤데레이다가 폭력성이 도을 지나침

ㄴㅁ ㅅㅂ 야 말을 해 봐라 이게 사람이냐? 이게 제정신을 가진, 그래서 독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히로인"으로서의 한 인간 구실이 되겠냐? 츤데레니 가식적이니 하는 걸 보고 모에를 느끼기 전에 ㅆㅂ 방금 먹은 거 다 토할 거 같다. 자기도 "개인적으로 짜고나서 이상한 히로인"이란다. 왜 "개인적" 같은 비겁한 접두사를 갖다붙이냐? 이상해! 그냥 ㅈ나 이상하다고!

캐릭터 설정 짤 때 제발 벌벌 떨면서 짰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제2의 존나세를 만들고 있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존심도 없냐? 너는 니 자식이 어디 가서 근본도 없고 생각 없는 초딩 작가가 하룻밤 몽상으로 싸지른 장애인 같은 캐릭터라고 욕 먹으면 좋냐?


10. 왜 인물 설정 가지고 이렇게 ㅈㄹ하냐고? 한 인간의 인격이란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다층적이고 심도 깊게 조올라 오랜 시간 동안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라서 그렇다. 니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길고 깊고 엄청나다. 사소한 일 하나가 인격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면서도, 십년 이십년 계속된 인간관계나 버릇, 생활 패턴 등이 인격의 세계관을 구성하기도 하는 식이다. 귀신도 모르는 그 인성 매커니즘이라는 걸 너네는 아냐?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최근 일본 만화에 나오는 무슨 데레 무슨 모에 속성 가졌다는 여자애들 보면, 이게 무슨 여주인공 역이냐 마분지 인형 아니면 정신병자지 싶다. 미친년들을 풀어놓을 거라면 미친년들이 날뛰어도 되는 철조망 같은 작중세계를 똑바로 세워 놓든지 아니면 좀 납득 가능한 선에서 꼭지를 돌리든지 해야지 이건 그냥 단지 지면상 가상 인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인간을 창조해 놓고 731마루타로 사용하고 버리는 것 같아서 어떨 땐 비명을 지르고 싶어질 정도다. 그런 혐오스러운 것의 정상에 "얀데레"가 있다. 니미 씨부랄 내가 그냥 말해줄게. 얀데레는 정신병이야. 그것도 존나 희귀한 정신병이라서 한 작품에 한 명 등장시키는 빈도도 지랄발광이라고. 그러니까 제발 그런 것 좀 진흥(進興)하지 마. 있을 리가 없는 인물군이 당연하다는 듯이 판을 치니까 어디 가서 나 이런 거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는 거지 않냐? 비현실이라는 바로 그 점이 좋다고? 현실 비현실 운운하기 이전에 정상적인 인간 이성을 가지고는 이 서사의 앞뒤가 납득이 안 된다고, 납득이!

인격이라는 거 함부로 막 만들지 마라. 인물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고 자랑하는 꼴밖에 안 된다. 요즘 만화에 나오는 정신 나간 비정상 계집애들 쳐다보지 말고 인간 연구 좀 해라. 이렇게 애걸복걸 부탁한다.


11. 설정 검토 받지 마라.

괴테가 설정 검토 받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쓴 줄 아냐? 헤르만 헤세가 설정이 좋다고 칭찬받고 나서 《데미안》 쓴 줄 아냐? 니들은 그냥 ㅈ나 자위가 하고 싶은 것일 뿐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설정에 대한 미련을 버린 다음 그 설정으로나마 그래도 읽는 보람이 있을 만한 줄거리와 인물과 사건 타임라인을 구성한다는, 바로 그 각고의 노력만 쏙 생략하고 싶은 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이 그 어설프고 줏대 없으며 어디서 많이 본 "설정" 덩어리를 보며 알아서 상상해 주기를, 그래서 과대평가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어떠신가요", "검토해 주세요", "설정을 하나 짜 봤습니다" 따위 제목의 글을 써올리고 자빠진 거 아니냔 말이다, 이 게으름뱅이들아.

설정 평가 받을 시간이 있으면 인물 연구 좀더 하고 사건 짜고 줄거리 짜고 상식적인 전개와 대사를 짜라. 진짜 고수들은 설정을 검토받지 않는다. 그걸 납득시킬 방법을 찾을 뿐이다. 알아듣냐 쪼렙 허접들아?


12. 지가 뭔데 설정 가지고 아는 체를 하나 싶지? 어디 그럼, 니들은 군대 막사 정수기가 몸 파는 여자라는 '설정'을 짜 본 적이 있냐? 그런 설정을 2만 자로 밀어붙여서 《정숙이와 온숙이의 파업》이란 제목까지 달아 병영문학상에 내 본 적이 있냐? 그딴 창피하고 허접한 3류 모에화 소설로 입선 트로피를 받아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없는가? 없으면 아가리 닥치고 1부터 다시 읽어라.




13. 니네들이 설정 검토를 받아선 안 되는 이유를 하나 더 말해주마. 사실은 니네 설정 봐 주는 애들도 다 쪼렙이다. 돈 안 받고 남의 글을 봐 주는 지나가던 네티즌들이 제대로 된 직언과 도움이 되는 충고를 해 줄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시나? 평범한 독자의 입장을 듣고 싶은 거라고? 너의 글을 훑어보고 댓글까지 달아주는 한두 명의 네티즌들이 평범한 독자일까, '우호적이고 열성적인 열독자'일까? 어쩜 그렇게들 순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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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길게 쓰다가 다 지우고 짧게 씁니다.



시장의 기본 전제 중 하나가 진입과 퇴출의 자유 및 신속함이다.

누구나 잘 할 자신이 있으면 시장에 등장하고, 누구나 잘못해서 손해를 냈으면 시장에서 쫓겨난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이 나라의 정치계와 재계와 연예계와 사회 각종 영역에 시장적 원리가 정상 작동하기를 기대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영역에서도, 퇴출될 만한 짓을 하는 누구도 퇴출되지 않고 있다.

시장에 퇴출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장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나라의 정치계, 재계, 연예계 등 사회 각종 영역은, 시장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세계이다.

대신 전혀 다른 종류의, 매우 변태적이고 강압적이고 전체주의적이며 탐욕적인 원리가 일반 대중을 작동한다.

그 작동원리의 핵심은 다른 선택과 대안을 만들지 않도록 조장하는 것과, 그것이 실상은 시장 원리가 아님에도 시장 원리인 양 납득되고 강제되도록 하는 두 가지에 있다.

그렇게 오늘도 우리는 시장이 아닌 곳에서 퇴출 대상자들이 요구하는 시장적 원리에 복속하라는 요구에 복속하고 있다.


다 퇴출시켜버리고 싶다.


망할 놈들은 망해야 한다.

망해야 할 놈들이 망하지 않고 떵떵거리는 꼴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별써 60년, 600년, 천몇 백 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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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크리에이티브 단상

2013. 6. 25. 01:36
보호되어 있는 글입니다. 내용을 보시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하세요.


노랑이들!

2013. 1. 28. 22:59

노랑이.

한 예닐곱 달을 이거만 생각했는데 어느 날 답이 나왔다. 답은 "노랑이"다.


대한민국의 진보진영, 사민주의자들 및 상식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싶어하는 무릇 모든 이 나라 사람들에게 차꼬가 되고 걸림돌이 되고 주홍글씨가 되는 칭호가 있었다. '빨갱이'가 그것이다. 단순히 지난날의 공산 정권이 적색을 많이 사용했다는 이유로 그리고 북한이 적색을 주로 사용하며 그래서 국군이 '적'이란 글자를 표기할 때 반드시 그 글자만 빨간색으로 표기한다는 원인으로 인해, 빨갱이란 이름은 과연 그 누구의 자유와 인권과 발언권도 깡그리 소멸시켜 버리는 무시무시한 낙인이곤 했다. 발음도 무섭고 연상되는 이미지도 너무나 괴기한 그 이름, 빨갱이.


언제까지 빨갱이라고 불리기만 할 것인가. 정말 우리들의 머릿속은 빨간가?

색깔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적색은 위험하다는 인상을 아주 손쉽게 심어준다. 그러나 소위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것이 그렇게나 원색적이고 노골적인 것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에 좀 주목해줘야 할 텐데, 그러기 싫다는 의도를 가득 담아, 무슨 조금만 '덜 자유시장자본주의적인', '더 사회민주주의적인', 더 '급진적인' 생각만 갖고 있다 하면 바로 빨간 놈들, "빨갱이"라고 이름붙여 버림으로써 더 이상의 인격적 대화를 차단해 버린다. 사실은 그 생각들이 그다지 빨갛지만도 않은 생각들인데도 그렇다.


그렇다면 이쪽에서 반격을 하면 어떨까. 그러는 당신네들은 노랑이라고 말이다.

국어사전에서 노랑이를 찾아보면, 노란빛을 띠는 물건이라고도 하지만, 속이 좁고 인색한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노랗다는 것은 무엇인가? 몇 날 며칠을 햇빛 받는 자리에 내내 고정시켜 두어 빛이 바래서 나오는 색깔이 아닌가? 마음씨 넓게 쓸 줄 모르고 그저 아무것도 새롭게 하려고 하지 않을 때의 색깔, 그러므로 돈의 노예가 물들어 버리는 색깔은, 과연 노란색이 맞을 것이다.


노랑이도 좋고 노랭이도 좋다(물론 표준어로는 틀렸다). 문제는 프레이밍이다.

그저 모든 판단 기준이 자기에게 이득이 되느냐, 지금의 기득권과 사회구조가 지켜지느냐, 내 돈 내 집 내 새끼가 피해를 안 볼 수 있겠느냐에만 관심이 있는 구두쇠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국가유공자가 어떻게 굶고 지내든 영세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하든 자기 집 대문 밖에서 헐벗고 갈데없어 쓰러져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든 관심이 없는 저 초고층 아파트와 빌라마을 속의 노인들, 아줌마들! 그들을 '기득권'이니 '일부 5060'이니 '1%' 등으로 부르는 것은 그들의 진짜 속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너무나도 객관적이고 그래서 불공평한 호칭이다. 그들은 우리를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왜 우리는 저들을 노랭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야 이 돈독 올라서 얼굴 노랗게 뜬 노랑이아! 왜 그렇게 부를 생각을 못 하고 살았을까?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하는데 왜 누군 누구를 색칠놀이할 수 없단 말인가? 최상위 1%라는 이름은 절대 노랑이라는 이름이 갖는 엄청난 편견 선물세트를 제공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이 이상 그들에게 더 노골적이고 인신 비하가 되는 표현은 없지 않을까?


노랑이들! 그들의 색은 노란색이다. 수전노의 색깔이다, 스크루지 영감의 금전출납부의 색깔이다, 금괴의 색깔이다, 친일파들이 그토록 받고 싶어했던 무슨무슨 작위며 농토의 소유 증명서의 색깔이다, 주식과 어음과 은행 수표의 색깔이다 그리고 의 색깔이다! 빨갱이들 중에 정말 빨간 생각만 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노란색밖에 모르는 놈들은 노랑이라고 불러 줘도 되지 않겠는가? 노란 놈을 노랗다고 부르는 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노랭이, 노랭이" 놀려 주자! 돈밖에 모르는 놈들! 누리끼리한 놈들!

프레이밍을 시작하자. 지목하자! 이건희 회장은 노랑이다! 이완용은 노랑이다! 김재철은 노랑이다! 이동흡은 노랑이다! 이근안은 노랑이다! 전두환은 노랑이다! 이명박은 노랑이다! 너희 노랑이들아 빨갱이들의 색칠놀이를 받아라! 이 나라의 모든 돈밖에 모르는 거지같은 놈들에게 외치자, "노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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