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
<rss version="2.0">
  <channel>
    <title>아무튼지간에</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link>
    <description>김씨네 아들 어진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description>
    <language>ko</language>
    <pubDate>Sun, 21 Jun 2026 21:35:20 +0900</pubDate>
    <generator>TISTORY</generator>
    <ttl>100</ttl>
    <managingEditor>엽토군</managingEditor>
    <item>
      <title>&amp;quot;크리스천 비전 커피챗&amp;quot;</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9</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요즘 사교활동을 너무 안 한다 싶어서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골라 &quot;크리스천 비전 커피챗&quot;이라는 모임에 어제 저녁 참석해 보았다. 알고 보니 무슨 멘토링 업체 주관의 세미나와 네트워킹이 느슨하게 결합된 형태의 정기 모임이었다. 커피챗이라더니 커피는 지급되기는커녕 마시는 사람도 별로 없었으며, 크리스천이라는 자부심과 자기애가 넘쳐나던 그 자리에 막상 그리스도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대로 요약하자면, 그 기독교인 비전 커피챗이라는 행사는, 실은 그저 '교인 비전 챗'인 셈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행사는 4시부터 5시 반쯤까지 이런저런 자기계발 강좌가 이어졌고 남은 시간은 조별 모임 2회와 저녁 식사로 구성돼 있었는데, 모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교양과 재능이 차고 넘치며 착하고 바르기가 짝이 없고 심지어 자기 꿈과 남을 도우려는 의지까지 충만한 사람들이었다. 어떻게 보아도, 비전이니 자기계발이니 하는 도움이 더 필요하지 않은 사람들뿐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런 '완성도'가 더 높아 보이는 사람들일수록 그 모임의 고참들이었다. '나는 무슨무슨 가치를 기반으로 교육가적 뭐시기가 되겠다' 운운하는 선언을 명함에 새겨놓은 사람들도 여럿 있었다. 그런 걸 읽고 그런 걸 주는 사람들을 관찰하면서는 한 가지 의문뿐이었다. 그럼 가서 그거 하면 되지, 부러 여기 또 출석을 해야 된담? 글쎄 아무래도 그 출석은 필요했던 모양이다. 나 빼고 모두가, 지난번에 본 사람을 반가워하면서 서로가 서로의 근황을 묻고 서로만 아는 농담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렇다. 그 광경은 일요일 낮에, 수요일이나 화요일 혹은 목요일 저녁에, 다르지만 같은 여러 장소에서 그토록 자주 보았던 광경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급받은 &quot;워크지&quot;의 질문들은 이런 식이었다. 10대부터 50대까지 당신 인생에 점수를 매기고 BEST/WORST 키워드를 선정해 보세요. 일을 고르는 나만의 기준이 뭔지, '의미가 없지만 돈 많이 버는 일'을 하고 싶은지 등의 질문을 서로 주고받아 보세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 3가지, 받고 싶은 3가지를 적고 나누어 보세요. 심지어 이날의 활동을 위해 주최측이 구성한 조 편성은 노골적으로 직군 중심이었으며, 우연히도 같은 조에 '대학생 선교 동아리' 출신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떤 왈츠를 추어야 하는 무도회인지가 민망하리만치 분명했다. 말은 아니라고들 했지만, 다들 모종의 모범답안을 훈련한 대로 주고받는 것처럼 들렸다. 예컨대 나는 그날 거기 처음 간 사람이었고 내 인생에 내가 매긴 점수는 같은 조 안에서 최저점이었다. 반면 최고참 중 한 명은, 이제 막 서른이 되었다면서도, &quot;40대는 10점 이상일 거고 50대는 그보다 더 높을 거라고 적어 봤습니다&quot;라고 답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왈츠를 엉금엉금 따라 추면서 차츰, &lt;b&gt;그 자리에서는 복음, 구원, 천국이 암시조차도 되고 있지 않음을 알아차렸다.&lt;/b&gt; 4시부터 5시까지의 이런저런 '강의'들은 내가 놓쳤으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그 이후 3시간 동안 내가 읽고 들은 글과 말 가운데서 크리스천 된다는 것, 기독교인 된다는 것,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에 관한 고찰은 절묘하리만치 회피되고 있었다. 오죽하면 한번은 왠지 울컥해서 도발적 농담을 해 보았다. 나도 40대쯤이 되면 좋든 싫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게 될 거라고. 그렇지 않냐고. 무릇 크리스천이라면 이 땅에서 열심히 재물 쌓고 벽돌집을 짓고 곡식 쌓을 창고를 지어서 재물을 쌓아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다들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웃는' 웃음만 웃을 뿐, 그게 '농담으로라도 하지 말아야 할 말'임을 알아차리지는 못한 낌새였다. 그 도발이 불발되는 꼴을 보아하니, 여기서는 이 이상 속 있는 진담을 할 필요는 없음을 알았다. 그 다음은 쉬웠다. 일회용 발언과 맞장구를 늘어놓고, 한솥도시락을 받아먹고, 납부했던 보증금 2만 원을 현찰로 돌려받아 1등으로 퇴장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래 아무려면 예수님이 너네 비전 따위나 되어 주실라고 골고다까지 가서 그 개죽음을 하셨겠니 이 개것들아?&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초인적인 의지와 바리새-헬레니즘적 지성을 동력으로 활동했던 바울 사도를 제외하면, 절대 다수의 초기 교회 제자들은 비전이니 소명이니 따위를 따라 움직이지 않았고, 하나같이, 삶의 한가운데에 불쑥불쑥 되살아오시는 예수님과 성령님을 따라 움직여 살았다. &quot;물고기 잡으러 가&quot; 있다가, 어디 숨어 있다가, 삶을 살고 있다가 문득 상대했던 웬 낯선 사람이, 나중 돼서야 뒤늦게 고찰해 보니 아차 그게 예수님이셨더랬구나, 하는 줄거리는 성경 안팎으로 적지 않게 반복된다. 요컨대, 만유의 주이신 주님께서는, 심지어 그 제자들의 사명에 대해서도 주권을 갖고 행사하시는 주님이셨던 셈이며, 그 &quot;사명&quot;이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신적 권위로, 심지어는 그들이 원치 않았던 것일지라도, 강제로 (혹은 &quot;예정대로&quot;) 부여되는 성질의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그렇게 따지면 그들의 사명은 종잇장 몇 쪽에 빈칸 몇 개 채워서 &quot;사명 선언문&quot; 따위로 엮어 완성 가능한, 작위적이고 자의적이며 private한 무언가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건 실은 그저 나사렛 예수의 지인 된 도리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 해내야만 하는 증명/증언, 생존자로서의 부채의식이라는 차원이었을 터이기 때문이다.&lt;/b&gt; 그렇기에 목숨마저도 초개처럼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amp;mdash; 오늘날 현대인들의 낯간지러운 '비전' 따위로는 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차원으로. 그렇다면 오늘날 이들이 말하는, 목숨을 바칠 가치까지는 없는 바 그 비전이니 소명이니 따위의 실질은 무엇인가? 별거 없고 그저 거룩한 포장을 한겹 둘러서 도덕적 불쾌감을 덜어 놓았을 뿐인 &quot;춤추고 노래하는 예쁜 내 얼굴&quot;에 불과하다. &quot;텔레비전에&quot; 그게 &quot;나왔으면 정말 좋겠&quot;는, 가히 태아적(embryonic)이라 할 만한 자아상.&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나 바울 사도의 공로 덕에 완전히 바티칸 체제 내 헬라 철학의 한 분파로 편입하는 데 성공한 기독교는 그 이후로 그런 자아상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여 이를 권장하게 되었는데, &quot;소명&quot;이니 &quot;사명&quot;이니 따위의 앞뒤를 뒤집고 목적을 완전히 비틀어 놓은 덕분이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전체 서사의 핵심 용건에서 이야기 첫머리의 재미있는 도입부로 고꾸라져 있으며, 그 거룩한 이름은 이런저런 빈칸과 제단 위를 채우는 비콘으로만 기능하고, 실제로는 그 빈칸과 제단이 숭상을 받게 된 것이다. 어제 참석한 모임의 주최측이 홍보하는 강의 중에는 &quot;자본으로 선교하기&quot;라는 것도 있었다. 차포 다 떼면 결국 좋은 곳에 돈 쓰라 뭐 그런 말일 텐데, 그걸 선교라고? &quot;자본으로 복지사회 이룩하기&quot;로 강의 제목만 바꾼다고 했을 때, 과연 이 강의는 스데반처럼 돌을 맞을 선포가 될 것인가 아니면 KBS 아침마당에 의젓이 진출 가능할 것인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비전을 탐하는 오늘날 자칭 크리스천들의 실제 은밀한 속내는 그저 여의도일 뿐이기 때문이다. 내 실력을 인정받아 돈을 벌고 싶다, 기왕이면 유명해지고 싶다, 기왕이면 남을 돕는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기왕이면 나의 종교적 정치적 의지와 견해를 관철하여 강요하고 싶다, 이것저것을 &quot;하나님께 봉헌&quot;하고 싶다, 그 성공을 축하하거나 기원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열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다가 주님 부르실 때 천국까지 안전하게 직행하고 싶다! 바울과 비잔틴 그리고 어떤 &quot;크리스천&quot;들의 그리스도교는 그런 야심의 종교다. 예수님이 믿고 전하고 제자들이 듣고 전하고 실천하고 그러다가 잘 안 되다가 부활하신 주님의 은혜로 다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던 라이프스타일이 그딴 야심과 하늘땅 차이가 있건 말건 아무 상관 없이 그러하며, 만유의 주님이신 주님께서 또한 인간의 꿈과 목표와 의지에 대해서도 전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진리에 대해서마저 아랑곳없이 그러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 모임을 하루 경험해 보고 나와서 느낀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어떤 모임이 그렇게까지 겉껍데기뿐이 되면 오히려 생각만큼 '기가 빨리지'는 않더라는 발견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 지인들하고나 더 사교하려고 노력해야겠다는 결심이었다.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저들끼리 모여서 &quot;크리스천 비전이란 뭘까요? 우리 크리스천 비전 이루는 크리스천이 되어 볼까요?&quot; 하는 꾀꼬리 소리나 늘어놓는 자리에는 그런 꾀꼬리들이나 출석하면 좋을 테고, 나는 그냥 이미 있는 내 이웃들에게나 관심 가지러 가야 되겠다고 새삼 다시 깨닫는 시간이었었다.&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9</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9#entry899comment</comments>
      <pubDate>Sun, 26 Apr 2026 18:56: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AI 관련 관찰 메모</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8</link>
      <description>&lt;p&gt;중언부언 방지를 위해 최대한 짤막 짤막하게.&lt;/p&gt;
&lt;p&gt;-&lt;/p&gt;
&lt;p&gt;생성형 AI가 폭로해 준 불편한 진실 하나. (특히 한국의 (사업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mediocrity에 굉장히 관대하다. 듣고 싶어하는 바로 그것을 들려주고,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어 주고, 잘 모르는 사람의 식견으로 척 보기에 그럴듯한 뭔가를 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 해 주면, 내용과 수준은 요만큼도 중요하지 않다. 컨시어지들과 비서들은 이 비결을 알고 있었겠지.&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AI는 대규모 회귀예측 수단이고 이것의 응용은 많다.&lt;/strong&gt; 그러나 이를 둘러싼 유일하게 가장 뜨거운 화두는 인간 노동 대체 가능성 문제다. 가장 언급되지 않는 것은 지구적 난제 해결 문제다. 초창기 &amp;#39;머신러닝&amp;#39;은 암도 없애고 기후위기도 고치고 할 것처럼 마케팅되었는데,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amp;quot;진&amp;quot; 이후로 이 &amp;quot;희망&amp;quot;은 거짓말처럼 증발하여, 이제 인류는 일제히 신변 비관에 몰두하는 중이다.&lt;/p&gt;
&lt;p&gt;-&lt;/p&gt;
&lt;p&gt;실무자들의 도태 공포는 크게 두 가지에서 오는 듯하다. 하나는 모델들의 압도적인 스케일(&amp;quot;모르는 것이 없음&amp;quot;), 다른 하나는 자기가 비교적 열등하다는 사실(&amp;quot;이제 개발 배울 이유 없음&amp;quot;).&lt;/p&gt;
&lt;p&gt;-&lt;/p&gt;
&lt;p&gt;이에 대한 타협/대응책은 크게 2가지로 보인다. 전자/컴퓨터/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의 본령에 더 천착하기, &amp;quot;코딩&amp;quot;이 그 자체로 사업이 아니었음을 인정하며 기꺼이 사업가적 마인드셋의 노동력으로 변신하기.&lt;/p&gt;
&lt;p&gt;-&lt;/p&gt;
&lt;p&gt;이것이 명백히 &amp;#39;타협&amp;#39; 전략이고 좀 비웃기는 이유는, &lt;em&gt;이건 원래부터 이랬기 때문이다.&lt;/em&gt; 예로부터, 코딩을 위해 코딩하는 코더들은 언제나 도태 대상이었으며, 자본은 노동자가 자본가적 마음가짐으로 스스로를 착취케 할 방안을 찾아 왔다.&lt;/p&gt;
&lt;p&gt;-&lt;/p&gt;
&lt;p&gt;&lt;strong&gt;현시점에서 급변한 변수는 하나다. 자본이 기술에 접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lt;/strong&gt; 자본이 스스로를 조금 착취해 보니 대충 되겠더라, 그러니 너희도 해라, 너희는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유의해라, 하는 으름장이 이런저런 신화에 동봉되어 항간에 범람하고 있다. &amp;quot;쇼피파이 사장님이 쇼피파이 개발자들의 비효율적 쿼리를 개선하라고 AI에게 지시해 놓고 자러 갔다더라&amp;quot; 따위의 것들.&lt;/p&gt;
&lt;p&gt;-&lt;/p&gt;
&lt;p&gt;&amp;quot;AI 하이프&amp;quot;가 유난히 시끄러운 이유는 이 접근성에 있는 듯하다. &lt;em&gt;메타버스, 빅데이터, 블록체인, 노코드/로우코드 따위 과거 하이프 사례들은 &amp;quot;아는 척&amp;quot;을 하고 싶어 죽으려던 (예비)자본가들이 정작 실제로 그걸 알고 쓰고 행하지는 못해서, 그래서 &amp;quot;알기만 잘 알아서&amp;quot; 속 터져 죽으려고 했던 것들이다.&lt;/em&gt; &amp;quot;챗GPT&amp;quot;는 다르다. 말귀를 알아듣고, 그럴듯한 실물이 나온다. 드디어 마침내 그 허영심을 채워줄 &amp;#39;이야기 노예&amp;#39;가 등장한 것이다. 자본 입장에서는, 그간 그토록 하고 싶어 죽을 거 같던 무언가를 하나 할 수 있게 된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인력시장 불황, 기존 노동력의 업무 가중 등은 바로 이 &amp;quot;그토록 하고 싶어 죽을 거 같던&amp;quot; 착취행위의 일환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은 원래부터도 최소한의 노동력으로 최대한의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싶어했다. 적당한 구실과 실질이 없었던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amp;quot;단기 대량해고&amp;quot;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이제 드디어 또 하나의 방법이, 심지어 더 좋고 우월하다는 방법이 등장해 주었다. &amp;quot;이 돈을 토큰에 태울 바엔 사람을 뽑지&amp;quot; 싶은 상황에서도 차라리 &amp;#39;토큰을 태우기&amp;#39;를 마지않는 것은, 오직 이런 가치 가중치 연산의 결과다.&lt;/p&gt;
&lt;p&gt;-&lt;/p&gt;
&lt;p&gt;나의 불만은 크게 세 가지. (1) 왜 이것이 착취의 문제임을 말하지 않는가? (2) 왜 노동자들은 이 상황을 임노동자로써 응전하지 않는가? (3) 다들 더 가치 있고 큰 문제를 정녕 나몰라라 할 셈인가?&lt;/p&gt;
&lt;p&gt;-&lt;/p&gt;
&lt;p&gt;착취의 문제. &lt;strong&gt;현재의 AI 하이프는 극소수 독점 자본이 정보를 중앙 집중하고 독점적으로 가공하여 인간 노동력의 &amp;quot;대체제&amp;quot;로 광고되는 무언가를 막대한 규모로 초과 공급하겠다는 수작이다.&lt;/strong&gt; 이는 사회경제학의 측면에서 자본가들이 임금을 덤핑하려는 시도이며, 환경의 측면에서 물과 전기의 남용이며, 공동체 안보의 측면에서 공적/사적 데이터의 남획 오용이다. 아예 금하지는 못할망정 &amp;quot;작작 좀 해라&amp;quot; 할 여지는 차고 넘치는 바 혐오스러우리만치 노골적인 탐욕인 것이다. 버니 샌더스가 데이터 센터 모라토리움을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 맥락이다.&lt;/p&gt;
&lt;p&gt;-&lt;/p&gt;
&lt;p&gt;&amp;#39;현대차 아틀라스&amp;#39;를 둘러싼 그 숱한 논점들 중, 그 로봇의 도입이 일종의 선언이었음을 지적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은 심히 유감이다. 그 로봇은 사람과 흡사하되 귀도 없고 입도 없고 사람보다 크고 정력적이며 지치지 않고 불평하지 않는다. &lt;em&gt;그것은 실로 재벌 기업이 오랜 세월 몽정 속에서나 보아 왔던 가장 섹시한 노예의 얼굴이다.&lt;/em&gt; 현대자동차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amp;quot;솔직히 말해서 난 얘 같은 노예가 좋지 너네는 싫어! 너네는 더 열등한 노예잖아!&amp;quot; 인간으로서의, 지금까지 현대자동차의 &amp;quot;파트너&amp;quot;로서의 반사적인 당혹감은 여기에서 온다.&lt;/p&gt;
&lt;p&gt;-&lt;/p&gt;
&lt;p&gt;존엄으로서의 노동자성의 문제. 터놓고 말해서, &lt;strong&gt;노동자들은 시키는 일을 하라고 고용되었지, 고용주처럼 생각하라고 고용되지 않았다.&lt;/strong&gt; 그런데 지금의 AI 하이프는 이게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인 양 선전되고 있다 보니, &amp;quot;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amp;quot; AI를 활용해야 한다는 식의 으름장이 나오고 있다. 이 부분이 계약 위반 수준의 착취다. 여기저기서 &amp;quot;개발자의 미래상&amp;quot;이랍시고 제시되는 &amp;quot;에이전트 오케스트레이션&amp;quot; 따위는 자본주의 도식에서 어디까지나 생산 수단의 일종이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라도 하지 않는 한 생산 수단의 소유와 책임은 부르주아에게 있다. AI를 갖고 뭘 어떡하라는 건지 뭘 오케스트레이션해서 어쩌자는 건지 따위는 유산자가 알아내야 할 일이지 무산자의 알 바가 아니다. 군복을 사 입고 입대하는 군인은 없으며, 혁명되지 않은 세계의 무산자의 책임이란 품을 파는 것뿐이어야 한다.&lt;/p&gt;
&lt;p&gt;-&lt;/p&gt;
&lt;p&gt;전통적으로 &amp;#39;회사&amp;#39;의 사장은 모든 직원이 하는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신규 인력은 경력 불문 항상 재교육되었다. 왜 AI라고 예외여야 하는가? AI를 도깨비방망이로 선망하는 현재/미래 고용주들이야말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더 자세히 답할 책임을 갖는다: 무슨 AI를 (안) 쓸 건가? 어떤 프롬프트가 허용/금지되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사용간 재해/상해/피해 발생 시 책임 소재와 범위는 어떤가? 인력, 자원, 임금의 부족에 대해 협상할 방안은 무엇인가? 교육과 평가는 어떻게 정당히 이루어질 건가? 그렇다 사실은 대단히 전통적인 생산 전환 계획이다. &lt;em&gt;19세기 영국의 방직 기계들은 이런 계획 없이 무작정 24시간 돌아가면서 인간이 여기에 24시간 맞추기를 요구했다. 그 따위 개악된 계약의 암시적 추가 착취를 러다이트들이 거부한 것은 차라리 자연의 섭리였다.&lt;/em&gt;&lt;/p&gt;
&lt;p&gt;-&lt;/p&gt;
&lt;p&gt;관심사의 문제. &amp;quot;AI로 대체되지 않을 분야&amp;quot; 따위의 소문들을 보고 있자면, 오히려 바로 그 분야들이야말로 지금 당장 AI든 뭐든 써서 조금이라도 더 진일보시켜야 할 분야들이다. 돌봄 노동, 청소, 운송, 보건 등등 인류 관심사의 어떤 영역은 몇천 년에 걸쳐 유구하게 구태하다. &amp;#39;이 일들에 대한 멸시는 혹시 모종의 위계를 창출 유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방기되고 있나?&amp;#39; 하는 혐의가 있을 지경인데, AI 시대에 들어 그 혐의는 한층 짙어진다. &lt;strong&gt;자본과 관심의 초점이 조금만 돌아와도 해결하고 남음이 있을 어렵고 오래된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데, 여기에는 AI가 전혀 할당되지 않는 현실이 있다.&lt;/strong&gt; 가히 환멸할 일이다.&lt;/p&gt;
&lt;p&gt;-&lt;/p&gt;
&lt;p&gt;한때는 빌 게이츠가 깨끗한 화장실 만드는 벤처에 투자하던 시절도 있었고 머스크며 베조스 패거리의 우주여행 놀이에조차도 &amp;#39;미래 식민지 개척&amp;#39; 따위 이런저런 미사여구가 붙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amp;#39;아무도 만들어달라 한 적 없는 무언가를 너도나도 똑같이 만들어서 각자 잘난 척만 하고 실제로는 아무 사회적 기여도 하지 않기&amp;#39; 잔치는 원래도 너무 많이 열렸던 것이 지금은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lt;em&gt;다들 설거지 방청소 병수발은 하기 싫고 책상 앞에 앉아 &amp;quot;딸깍딸깍&amp;quot;만 하고 싶은 것이다.&lt;/em&gt; 돈 안 되고 재미도 없지만 누군가 해야만 하는 그 일들은 AI 시대에조차도 기어코 회피만 될 모양이다. 이런 류의 절망을 거두는 법을 나는 아직 모른다.&lt;/p&gt;</description>
      <category>4 생각을 놓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8</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8#entry898comment</comments>
      <pubDate>Tue, 17 Mar 2026 18:20:17 +0900</pubDate>
    </item>
    <item>
      <title>God Rest Ye Merry Gentlemen 사역</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7</link>
      <description>&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정식 번역이 없진 않다. &lt;a href=&quot;http://www.holybible.or.kr/NHYMN/cgi/hymnftxt.php?VR=NHYMN&amp;amp;DN=117&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새찬송가117장 &quot;만백성 기뻐하여라&quot;&lt;/a&gt;&lt;br /&gt;근데 그 정식 번역이 우리말 노래로서는 너무 엉망이라 못 참겠던 마당에, 걍 왠지 오늘 삘이 와서 사역(私譯)을 해 봄.&lt;br /&gt;예상보다 어렵지 않았고 이 정도면 특별히 오역 아니겠다 싶어서 공개.&lt;br /&gt;혹시 사용하시려거든, 돈은 안 받을 테니, 저한테 알려나 주시고, &quot;번역 김어진&quot;을 명시해 주세요.&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온누리여&amp;nbsp;주님의&amp;nbsp;안식&amp;nbsp;안에&amp;nbsp;거하라&lt;/b&gt;&lt;br /&gt;&lt;b&gt;이&amp;nbsp;성탄일에&amp;nbsp;그리스도&amp;nbsp;예수&amp;nbsp;나셨다&lt;/b&gt;&lt;br /&gt;&lt;b&gt;사단의&amp;nbsp;권세에&amp;nbsp;헤매던&amp;nbsp;우릴&amp;nbsp;구하신&lt;/b&gt;&lt;br /&gt;&lt;b&gt;오 반갑다 평안의 소식 흘러가네&amp;nbsp;오&amp;nbsp;반갑다&amp;nbsp;평안의&amp;nbsp;소식&lt;/b&gt; &lt;br /&gt;God rest you merry, gentlemen, let&amp;nbsp;nothing&amp;nbsp;you&amp;nbsp;dismay, &lt;br /&gt;remember Christ our Savior was&amp;nbsp;born&amp;nbsp;on&amp;nbsp;Christmas&amp;nbsp;Day &lt;br /&gt;to save us all from Satan's pow'r when&amp;nbsp;we&amp;nbsp;were&amp;nbsp;gone&amp;nbsp;astray. &lt;br /&gt;O tidings of comfort and joy, comfort and joy; O tidings of comfort and joy.&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하늘의 아버지께서 저 목동들에게 &lt;/b&gt;&lt;br /&gt;&lt;b&gt;천사를 보내어 소식을 알리셨다네 &lt;/b&gt;&lt;br /&gt;&lt;b&gt;베들레헴에 아들 주신 기쁜 소식을 &lt;/b&gt;&lt;br /&gt;&lt;b&gt;오 반갑다 평안의 소식 흘러가네 &lt;/b&gt;&lt;b&gt;오&amp;nbsp;반갑다&amp;nbsp;평안의&amp;nbsp;소식&lt;/b&gt;&lt;br /&gt;From God our heav'nly Father a&amp;nbsp;blessed&amp;nbsp;angel&amp;nbsp;came&lt;br /&gt;and unto certain shepherds brought&amp;nbsp;tidings&amp;nbsp;of&amp;nbsp;the&amp;nbsp;same;&lt;br /&gt;how that in Bethlehem was born the&amp;nbsp;Son&amp;nbsp;of&amp;nbsp;God&amp;nbsp;by&amp;nbsp;name.&lt;br /&gt;O tidings of comfort and joy, comfort and joy; O&amp;nbsp;tidings&amp;nbsp;of&amp;nbsp;comfort&amp;nbsp;and&amp;nbsp;joy.&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무서워&amp;nbsp;말라&amp;nbsp;다독이며&amp;nbsp;천사&amp;nbsp;가로되&lt;/b&gt;&lt;br /&gt;&lt;b&gt;정한&amp;nbsp;처녀가&amp;nbsp;구세주를&amp;nbsp;지금&amp;nbsp;낳았네&lt;/b&gt;&lt;br /&gt;&lt;b&gt;믿는&amp;nbsp;자마다&amp;nbsp;이제&amp;nbsp;사단&amp;nbsp;권세&amp;nbsp;이기네&lt;/b&gt;&lt;br /&gt;&lt;b&gt;오 반갑다 평안의 소식 흘러가네 &lt;/b&gt;&lt;b&gt;오&amp;nbsp;반갑다&amp;nbsp;평안의&amp;nbsp;소식&lt;/b&gt; &lt;br /&gt;&quot;Fear not,&quot; then said the angel, &quot;Let&amp;nbsp;nothing&amp;nbsp;you&amp;nbsp;affright; &lt;br /&gt;this day is born a Savior of&amp;nbsp;a&amp;nbsp;pure&amp;nbsp;virgin&amp;nbsp;bright, &lt;br /&gt;to free all those who trust in Him from&amp;nbsp;Satan's&amp;nbsp;pow'r&amp;nbsp;and&amp;nbsp;might.&quot; &lt;br /&gt;O tidings of comfort and joy, comfort and joy; O tidings of comfort and joy.&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한국찬송가는 여기 3절까지만 번역하여 부르고 있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소식을&amp;nbsp;들은&amp;nbsp;목동들&amp;nbsp;기쁨에&amp;nbsp;사무쳐&lt;/b&gt;&lt;br /&gt;&lt;b&gt;두려움 잊고 세찬 바람 마다 않고서&lt;/b&gt;&lt;br /&gt;&lt;b&gt;베들레헴의&amp;nbsp;새&amp;nbsp;아기를&amp;nbsp;찾아&amp;nbsp;왔다네&lt;/b&gt;&lt;br /&gt;&lt;b&gt;오 반갑다 평안의 소식 흘러가네 오&amp;nbsp;반갑다&amp;nbsp;평안의&amp;nbsp;소식&lt;/b&gt; &lt;br /&gt;The shepherds at those tidings rejoiced&amp;nbsp;much&amp;nbsp;in&amp;nbsp;mind, &lt;br /&gt;and left their flocks afeeding, in&amp;nbsp;tempest,&amp;nbsp;storm,&amp;nbsp;and&amp;nbsp;wind, &lt;br /&gt;and went to Bethlehem straightway, this&amp;nbsp;blessed&amp;nbsp;Babe&amp;nbsp;to&amp;nbsp;find. &lt;br /&gt;O tidings of comfort and joy, comfort and joy; O tidings of comfort and joy.&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온누리여&amp;nbsp;이제&amp;nbsp;주께&amp;nbsp;찬송을&amp;nbsp;올리며&lt;/b&gt;&lt;br /&gt;&lt;b&gt;자매&amp;nbsp;형제를&amp;nbsp;참&amp;nbsp;사랑에&amp;nbsp;얼싸안으며&lt;/b&gt;&lt;br /&gt;&lt;b&gt;성탄의&amp;nbsp;복된&amp;nbsp;소식으로&amp;nbsp;온전하여라&lt;/b&gt;&lt;br /&gt;&lt;b&gt;오 반갑다 평안의 소식 흘러가네 &lt;/b&gt;&lt;b&gt;오&amp;nbsp;반갑다&amp;nbsp;평안의&amp;nbsp;소식&lt;/b&gt; &lt;br /&gt;Now to the Lord sing praises all&amp;nbsp;you&amp;nbsp;within&amp;nbsp;this&amp;nbsp;place, &lt;br /&gt;and with true love and brotherhood each&amp;nbsp;other&amp;nbsp;now&amp;nbsp;embrace; &lt;br /&gt;this holy tide of Christmas all&amp;nbsp;other&amp;nbsp;doth&amp;nbsp;deface. &lt;br /&gt;O tidings of comfort and joy, comfort and joy; O tidings of comfort and joy.&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PS. 이 찬송가를 편곡한 것 중에 이런 곡이 있다. &lt;a href=&quot;https://martinkerr.bandcamp.com/track/god-rest-ye-merry-billionaires&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God Rest Ye Merry Billionaires&lt;/a&gt; by Martin Kerr&lt;/p&gt;
&lt;div id=&quot;code_1770807931045&quot; data-ke-type=&quot;html&quot; data-source=&quo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O3FMV3iugeI?si=nx0OeZT71glyEXk2&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nocookie.com/embed/O3FMV3iugeI?si=nx0OeZT71glyEXk2&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15&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fullscreen=&quot;&quot;&gt;&lt;/iframe&gt;&lt;/div&gt;
&lt;div data-ke-type=&quot;moreLess&quot; data-text-more=&quot;더보기&quot; data-text-less=&quot;닫기&quot;&gt;&lt;a class=&quot;btn-toggle-moreless&quot;&gt;더보기&lt;/a&gt;
&lt;div class=&quot;moreless-content&quot;&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부자여&amp;nbsp;기뻐하여라&amp;nbsp;하늘의&amp;nbsp;평화가&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안&amp;nbsp;내도&amp;nbsp;되던&amp;nbsp;소득세에서&amp;nbsp;널&amp;nbsp;구했네&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노동자와&amp;nbsp;주린&amp;nbsp;가족을&amp;nbsp;잊고&amp;nbsp;기리세&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오 기쁘다 부패한 소식 주 오셨네 &lt;/span&gt;&lt;/b&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땅&amp;nbsp;위에&amp;nbsp;탐욕&amp;nbsp;내려&amp;nbsp;주시네&lt;/span&gt;&lt;/b&gt; &lt;br /&gt;God&amp;nbsp;rest&amp;nbsp;ye&amp;nbsp;merry&amp;nbsp;billionaires,&amp;nbsp;let&amp;nbsp;nothing&amp;nbsp;you&amp;nbsp;dismay &lt;br /&gt;Forget&amp;nbsp;your&amp;nbsp;workers&amp;nbsp;families&amp;nbsp;going&amp;nbsp;hungry&amp;nbsp;on&amp;nbsp;this&amp;nbsp;day &lt;br /&gt;And&amp;nbsp;save&amp;nbsp;yourselves&amp;nbsp;from&amp;nbsp;income&amp;nbsp;tax&amp;nbsp;you'll&amp;nbsp;never&amp;nbsp;need&amp;nbsp;to&amp;nbsp;pay &lt;br /&gt;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 corruption and greed; 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놀잇감 던져주며 우릴 무릎 꿇리고&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정치인에게 뒷돈 대던 목자들에게&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허울뿐인&amp;nbsp;민주주의&amp;nbsp;소식을&amp;nbsp;전했네&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오 기쁘다 부패한 소식 주 오셨네 &lt;/span&gt;&lt;/b&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땅&amp;nbsp;위에&amp;nbsp;탐욕&amp;nbsp;내려&amp;nbsp;주시네&lt;/span&gt;&lt;/b&gt; &lt;br /&gt;In Washington and London-town you pay the lobby fees &lt;br /&gt;To&amp;nbsp;hold&amp;nbsp;the&amp;nbsp;reins&amp;nbsp;both&amp;nbsp;left&amp;nbsp;and&amp;nbsp;right&amp;nbsp;of&amp;nbsp;sham&amp;nbsp;democracies &lt;br /&gt;And&amp;nbsp;keep&amp;nbsp;us&amp;nbsp;entertained&amp;nbsp;so&amp;nbsp;we&amp;nbsp;don&amp;rsquo;t&amp;nbsp;know&amp;nbsp;we&amp;rsquo;re&amp;nbsp;on&amp;nbsp;our&amp;nbsp;knees &lt;br /&gt;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 corruption and greed; 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신문&amp;nbsp;방송이&amp;nbsp;전한&amp;nbsp;말&amp;nbsp;무서워&amp;nbsp;말아라&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너희를&amp;nbsp;빌어&amp;nbsp;일자리가&amp;nbsp;창출되었네&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하늘에&amp;nbsp;지붕&amp;nbsp;있음에나&amp;nbsp;감사하여라&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오 기쁘다 부패한 소식 주 오셨네 &lt;/span&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땅 위에 탐욕 내려 주시네&lt;/span&gt;&lt;/b&gt;&lt;br /&gt;Fear not ye say the media, they only sing your praise &lt;br /&gt;The&amp;nbsp;job-creator&amp;nbsp;gave&amp;nbsp;us&amp;nbsp;all&amp;nbsp;that's&amp;nbsp;good&amp;nbsp;and&amp;nbsp;all&amp;nbsp;that&amp;nbsp;pays &lt;br /&gt;Be&amp;nbsp;thankful&amp;nbsp;for&amp;nbsp;your&amp;nbsp;stable-beds&amp;nbsp;and&amp;nbsp;don&amp;rsquo;t&amp;nbsp;ask&amp;nbsp;for&amp;nbsp;a&amp;nbsp;raise &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 corruption and greed; 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 &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평화의&amp;nbsp;아들&amp;nbsp;이름을&amp;nbsp;전쟁에&amp;nbsp;들먹여&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세상&amp;nbsp;것&amp;nbsp;쌓는&amp;nbsp;꿍꿍이에&amp;nbsp;동원한다네&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이&amp;nbsp;불한당의&amp;nbsp;백성들은&amp;nbsp;무슨&amp;nbsp;죌런가&lt;/span&gt;&lt;/b&gt;&lt;br /&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오 기쁘다 부패한 소식 주 오셨네 &lt;/span&gt;&lt;/b&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afafa; 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lt;b&gt;땅 위에 탐욕 내려 주시네&lt;/b&gt;&lt;br /&gt;&lt;/span&gt;The Prince of Peace you call Him while you make war in His name &lt;br /&gt;A&amp;nbsp;man&amp;nbsp;with&amp;nbsp;no&amp;nbsp;possessions&amp;nbsp;made&amp;nbsp;a&amp;nbsp;shill&amp;nbsp;for&amp;nbsp;earthly&amp;nbsp;gain &lt;br /&gt;Imagine&amp;nbsp;all&amp;nbsp;the&amp;nbsp;people&amp;nbsp;led&amp;nbsp;by&amp;nbsp;men&amp;nbsp;who&amp;nbsp;have&amp;nbsp;no&amp;nbsp;shame &lt;br /&gt;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 corruption and greed; O tidings of corruption and greed&lt;/p&gt;
&lt;/div&gt;
&lt;/div&gt;</description>
      <category>1 내/ㄱ 번역</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7</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7#entry897comment</comments>
      <pubDate>Wed, 11 Feb 2026 20:07:12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때에 예수께서 로투스 방나점을 지나가시다가</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삶이 개같고 짜치면 짜칠수록 예수님의 사연은 더 뜻밖의 방식으로 덜컥 이해되어 버리곤 한다. &quot;이게? 이거라고?&quot; 싶은 충격으로.&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5 09-41-37 0482.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mCuAj/dJMcacWdX9R/Hg3X62UsIKFBrXglOAzK1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mCuAj/dJMcacWdX9R/Hg3X62UsIKFBrXglOAzK1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mCuAj/dJMcacWdX9R/Hg3X62UsIKFBrXglOAzK1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mCuAj%2FdJMcacWdX9R%2FHg3X62UsIKFBrXglOAzK1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32&quot; height=&quot;3024&quot; data-filename=&quot;25-11-25 09-41-37 0482.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지난 11월 25일부터 29일까지 태국에 있었다. 구체적으로는, 방콕 공항 근처에 '방나'라 부르는 '트랏'이 있고 그 지역에 지점을 운영하고 있던 어떤 대형마트가 있어서, 거기에 'ESL 사이니지'를 100대쯤 설치하러 갔다 왔다.&lt;br /&gt;ESL이라고 하면 엄밀히는 '전자식 진열대 가격표'를 뜻하지만, 내 회사의 &quot;파트너&quot;(ㅋㅋ^^ㅋㅋ)인 S모 회사가 말하는 &quot;ESL&quot;이란 오로지 '자기네 시스템에 등록된 상품들의 최신 정보를 동적으로 표출 가능한 단말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 회사의 '사이니지'는 그런 기능 빼고 모든 것을 구현 중이었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사이니지란 '디지털 광고판'이고, 사용자가 업로드한 영상이나 사진만 커다란 화면에 보여주면 끝인 상품인데, 그 커다란 화면들을 상품 진열대에 갖다 붙일 이유는 무엇이며, SaaS 전략으로 가도 돈이 될까 말까인 마당에 특정 회사에 구태여 &quot;락인&quot;될 이유는 또 뭐냔 말이지.&lt;br /&gt;그러나 9월의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회사는 그걸 할 수 있다고 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려 있었다. 그 '슈퍼갑' 대형마트는 S사의 비딩을 낙찰하자마자 말을 바꿔 &quot;너네 LCD가 ESL도 되는 거지? 안되면 (이미 ESL 기능이 다 돼 있는, 다만 훨씬 더 비싼) 타사제품 쓸거야&quot;하고는 사진 몇 장 던져놓고 나갔고, S사는 그 사진을 우리에게 던지며 &quot;되는 거지?&quot; 하고 화상회의를 나가 버린 것이었다. 그 사진들 속의 구현사례는 내가 최근에 작업했던 사이니지 부가기능 '템플릿'과 매우 흡사했으며 그래서 당연하게도 내가 기술적 책임자가 됐다. 해야 할 일이 너무너무 많았다. S사 상품을 받아와야 했으며 받아온 상품 정보를 이미지로 '구울' 수 있어야 했으며 그 이미지들의 '레이아웃'을 사용자가 임의 편집할 수 있어야 했고 그 이미지나 상품이 바뀔 때마다 &quot;연결&quot;된 사이니지 단말기들이 알아서 '새로고침'돼야 했으니, 어느 단말기가 어느 상품과 연결되는지를 어떻게 정의할지부터 정의해야 했다. 그리고 이 모든 구현체를 VPN과 방화벽과 로드밸런서 뒤에 있는 폐쇄망 서버에 Docker로 설치해야 했다. 이 단락에 언급된 사양의 거의 대부분을 내가 전부 다 했다.&lt;br /&gt;그때부터 석달간 '외노자' 신분인 날 포함한 개발 실무진 3명이 얼마나 강도 높게 일을 하고 야근을 하고 주말 특근을 했을지는 여러분이 능히 짐작하실 수 있는 바다. 한 명은 S사와의 연동만 맡아서 했고 한 명은 앱에 관한 모든 걸 책임졌고 나는 &quot;프로덕트 템플릿&quot;부터 &quot;레이아웃 디자이너&quot;며 docker 이미지 빌드 등등 나머지를 다 했다. 나날이 우리 3명의 점심 식사 대화는 험악해져 갔다. S사와의 연동을 맡고 있던 S라는 친구는 미얀마 출신 외노자였고, 애초에 사이니지 프로젝트를 그간 쭉 담당해 왔어서, 이 일을 꾹 참고 해내야 할 이유가 얼마든지 있었고, 그래서인지 주가 바뀌고 달이 바뀌면서 더 험악한 비속어를 쓰기 시작했다. 그걸 받아주며 중간에 &quot;통역&quot;을 맡았던 P는 처음 입사할 때는 분명 리액트네이티브 개발자로 왔던 것이 이제는 &quot;앱장님&quot;, &quot;디바이스 가이&quot;가 돼 있었다. 그것만도 짜증스러운데 자기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던 S 때문에 얼마나 더 힘들었을지.&lt;br /&gt;나는 나대로 이 회사에 처음 올 때 분명 다른 기존 상품 담당자로 들어왔었고, 그래서 사이니지 프로젝트는 곁에서 도와 주는 정도였는데, 그 도움 중 하나였던 템플릿이 갑자기 너무너무 중요한 기능이 되어 버려, 정작 그 기존 상품에 정성을 못 쓰는 것이 점점 더 불만족스러워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표라는 새끼는 되도 않는 SQL 전수조사며 &quot;상대경로 변환&quot; 따위로 놀고 자빠졌었고 테크리드라는 새끼는 jira 일감에 ======= &amp;larr;이런 줄을 긋는 일이며 테이블 varchar 길이 통일하기 따위에 넋을 빼고 있었지. 그 얘기는 그냥 하지 말자.)&lt;br /&gt;아무튼 그래서 10월 29일쯤에 S사 대상 중간점검 데모를 &quot;무사히&quot;(ㅋㅋ^^ㅋㅋ) 마치고 11월 24일 월요일에 출국을 8시간 남겨놓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quot;이거 안 되네요&quot; &quot;저거 빠졌네요&quot; &quot;미안한데 간단한 거 하나만 합시다;;&quot; 따위 꾸역꾸역 울부짖는 에미 없는 소리에 장단 맞춰 드리며 준비 아닌 준비를 갖춰 정녕코 태국으로 갔다. 첫날은 막혀 있는 네트워크를 놓고 하루종일 &quot;왜 뭐가 안 되지? 네트워크가 막혀 있나?&quot; 하다가 네트워크 막혔음을 확인하고 퇴근한 덕에 차라리 제일 한가했다. 네트워크가 뚫린 둘째날부터는, 대표라는 새끼와 테크리드라는 새끼가 갖고 놀 &quot;DB툴&quot; 백도어부터 깔아서 (이게 내 출장 기간 동안 가장 칭찬받은 일이었다. 다른 일들은 '당연히 돼야 할 것이 된 것뿐'이었고 아직까지 정식 평가받은 바 없다ㅋㅋ^^ㅋㅋ) 던져준 다음에, '현장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정말 이건 꼭 만들어야 하는 것들'을 본격적으로 앉은자리에서 뚜닥뚜닥 만들었다. (지금 그때 그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있어서 그런지 스페이스바가 자꾸 두 번씩 눌린다.)&lt;br /&gt;일은 정말 무자비하게 많았다. 알고 보니 가격의 '소수점' 부분만 작게 표현할 수 있었어야 했고, 할인 가격의 경우 취소선을 그을 수 있게 해줘야 했으며, 템플릿의 아이템 사이에 1px 굵기의 구분선을 그어주지 않으면 절대 절대 안 된다는 것이었다. ㅋㅋ^^ㅋㅋ 식사 시간 간식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대표라는 새끼와 테크리드라는 새끼는 짐짓 초조해하며 나와 P (S는 10월경에 &quot;즉시 효력이 발생&quot;하는 사표 이메일을 던지고 나갔다) 2명의 밥을 먹일 문제를 걱정해 주는 체했지만, 막상 그 밥과 음료는 점점 그 질과 횟수가 줄어 갔다. 당연히 그랬겠지 갈수록 지들이 초조해 뒈질 거 같았을 테니까. 애초에 지들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거든. docker build를 돌리길 해 앱 소스를 까보길 해. 유일한 실무자가 새벽 2시고 3시고 불 다 꺼진 마트 2층 한구석 푸드코트에서 &quot;클래식 PHP&quot;와 jQuery로 차력쇼 벌일 동안 휴대폰이나 꼬나보다가 바깥 구경 돌아다니는 따위가 최선이었으니 (씹쌔끼들 그렇게 방관만 할 거면 숙소 가서 잠이나 처 잘 것이지) 밥이 넘어갈 리가 없고 음료 사 마실 정신이 아니었을 테며 갑자기 (몇만 바트를 들고 왔을 거면서) 모든 게 존나 비싸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ㅋㅋ^^ㅋㅋ&lt;br /&gt;아무튼 그래서 넷째 날 금요일 아침이 밝았고 의외로 내가 일찍 온 편이었으며 잠시 나 혼자 그 마트 한구석의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그 주변을 가만히 둘러볼 짬이 났다. 여러분은 금요일 아침의 마트를 보신 적이 있는가? 세상 그렇게 안락하고 별일 없는 세계가 얼마나 더 있을는지. 식당과 카운터는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으며 손님을 (안) 기다리고 있었고, 쇼핑 나온 고객들은 하나같이 그 지역 최고 한가한 사람들뿐이었으며, 5만 종이 넘는(다는) 풍성한 상품들, 푸짐한 음식들, 푸근한 조명, 은은한 캐롤 배경음악, 시원한 에어컨 바람, 무진장한 공짜 전기 등등에, 맡은 일 자체도 (내일 출국인 마당에 지금까지도 바쁘면 그건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이라서) 그렇게까지 초급할 것 없이 전반적 안정화를 추구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문득 예수전도단에서 훈련받은 감각이 상기되었다. 아, 지금이다, 지금 이곳을 위해 중보를 해야 한다. 그러고서 눈뜬 기도로 적당히 그 지역과 사람들을 축복하는 기도나 하려고 했는데, 나온 기도 첫마디는,&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주여 감사드립니다.&lt;br /&gt;저는 지금 이토록 안락한 세계에서 이토록 복에 겹게 일하고 있고,&lt;br /&gt;주님께서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던 그때의 그곳과는 같지 아니하나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였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8 15-12-30 0529.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dmjUsT/dJMcachC6gg/XDPYiPqborxHqxq2jjr0n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dmjUsT/dJMcachC6gg/XDPYiPqborxHqxq2jjr0n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dmjUsT/dJMcachC6gg/XDPYiPqborxHqxq2jjr0n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dmjUsT%2FdJMcachC6gg%2FXDPYiPqborxHqxq2jjr0n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32&quot; height=&quot;3024&quot; data-filename=&quot;25-11-28 15-12-30 0529.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너무너무 놀라서 그 기도를 그 이상 이어가지 못했다. 그 금요일 기어코 어떻게든 뭔가를 일단락지어놓은 뒤부터 토요일 하루를 자유 여행 보내고 (주토피아2를 영어 음성 태국어 자막으로 팝콘 없이 봤다. 대충 이해했고 적당히 좋았다) 돌아온 지금까지도, 사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다.&lt;br /&gt;왜. 왜 주님께서는 그때 나를 그 무화과나무 앞에 초대하셨던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은 이 사건을 어리둥절해한다. 마태는 예의 &quot;성경을 이루려 하심이라!!&quot; 단언을 하지 못하고, 마가는 들은 바를 시간 순으로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양 맥락 모르겠는 전언을 기계적으로 타전한다. 그래서 이 말씀을 주제성구로 하는 대다수 설교도 마찬가지로 이 사건을 갸우뚱해한다. '무화과의 철이 아님이라' 하는 언급에서 간신히 &quot;크로노스와 카이로스&quot; 운운을 뽑아내는 것이 주류 신학의 최선인 듯싶다. 나도, 이 사건이 여기 삽입됐어야 하는 가장 객관적인 해석으로는 같은 관점을 꼽을 것이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시점에서 이미 상황은 시분초 단위로 다급히 돌아가고 있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을 따라올 수 없을 거면, 철 안 든 무화과라도 백번 할 말 없지 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근데, 뭐랄까.&lt;br /&gt;일이 힘들고, 갈 길이 멀고, 할 일과 전할 말이 너무 많고, 하루하루가 숨이 차게 바빠 죽겠는데,&lt;br /&gt;뭔가 먹을 것이 있어 보이는 풍성하고 그럴싸해 보이는 무언가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lt;br /&gt;실제로 도움이나 위로가 되는 무언가를 하나도 찾지 못했다면,&lt;br /&gt;&quot;에라이 나가 죽어라!&quot; 소리 정도는,&lt;br /&gt;하실 만도 했지 않았을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첫날 저녁에 숙소 들어가 씻고 자려니 P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quot;제가 치맥 시키면 같이 드실래요?&quot; 사실 각자 밥 먹고 자자는 분위기였어서 혼자 편의점 내려가 이것저것 주워먹은 터였지만, 치킨 정도는 들어갈 자리가 있었고, 애초에 그런 초대는 나 같은 극I에게는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라 &quot;와 너무좋네요&quot; 즉답하고 1층 호텔 라운지로 쫄래쫄래 따라갔다. 맥주 한 캔을 비운 P는 문득 내게 말했다. 저 퇴사하는 거, 이번 출장 봐봐야 될 거 같아요. 말인즉슨, (사이니지라는 신사업이 개척되던 그의 입사 직후 시기 이래) 특히 지난 석 달 동안 그가 내내 했던 생각이, &quot;이거 해서 뭐가 되나?&quot;였다는 것이다. 맨날 이거 돼야 한다 저거 돼야 한다 말이 많고 그래서 늘 억지를 써서 겉으로 그럴싸한 것이 되게 해 온 것이 자기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의 역사인데, 그래서 '이게 다 뭐지? 진짜 100대를 설치하긴 하나? 서버가 터지지나 않으면 다행일걸? 확 터져버려라 그래도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하고 벼르면서 지난 몇 달을 참았다는 것이다. 근데 막상 와서 보니.. 뭐가 되는 거 같고 자기가 한 일에 결실이랄지 의미가 있는 거 같아서, 그래서 퇴사할 결심이 흔들린다는 것이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7 21-40-37 0522.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RAF00/dJMcafFqOIA/xAqcBzGsWdTfoMwBlkTYR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RAF00/dJMcafFqOIA/xAqcBzGsWdTfoMwBlkTYR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RAF00/dJMcafFqOIA/xAqcBzGsWdTfoMwBlkTYR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RAF00%2FdJMcafFqOIA%2FxAqcBzGsWdTfoMwBlkTYR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32&quot; height=&quot;3024&quot; data-filename=&quot;25-11-27 21-40-37 0522.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뭐 겉으로 보면 짜장 그렇다. 대체로 &quot;성공적&quot;이었기 때문이다. 냉동식품 진열한 냉동고 위에 장치 3대 이어 붙여서 &quot;비디오월(서로 다른 영상 n개를 m개의 장비에서 타이밍 맞게 루프하는 구현을 말한다ㅋㅋ^^ㅋㅋ)&quot;로 냉동식품 광고 영상 보여주고 있고, 그 옆에는 무슨 상품이 원래 가격 얼마였는데 취소선 긋고 지금은 얼마다 라고 표시를 실제로 해주고 있고, 그런 식의 &quot;아일랜드&quot;(어떤 매대는 벽도 통로도 없기 때문에 '섬'이라 부르는 모양이다) 9개를 (적어도 겉으로는) 매우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그걸 했으니까 금요일 저녁에 퇴근해서 삼겹살 먹으러 갔던 것이다. 대표라는 새끼는 봉투도 없이 2천 바트를 건네며 다음날 개인자유여행에 맘껏 쓰라고 하셨다. ^^ㅋㅋ) 솔직한 말로 나도 금요일쯤에는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지금까지만 힘들었을 뿐이고 앞으로는 나아질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그 견물생심은 다시 쏙 들어가고 입장은 다시 확고해졌다. 이건 잠깐의 착시고, 그 나무는 여전히 무화과를 맺지 못할 것임이 보였기 때문이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소프트웨어 회사는 상품을 단 한 번만 개발한다. &quot;유지보수&quot;는 돈 받은 곳에 한해서 마지못해 진행하고, 그나마도 (실무자를 딱 한 명만 뽑아서 noonchee가 있는지 석달간 검증하고는 전부 떠넘기고 외면하는 패턴으로) 무책임하게 하며, &quot;연구&quot; 따위는 언감 생심인 곳이다. (아니 씨발 기존 제품들로 웹소켓을 n년간 겪어 봤으면 웹소켓에 상태가 존재한다는 거 정도는 알아야 되는데 socketio 서버를 스테이트리스 서버리스인 AWS apprunner에다가 배포해 놓고 당연히 안 되니까 당연하게 폴링을 적용해놓고 그걸 씨발 해결이랍시고 오리발 내밀어 놨다 이게 말이야 방구야? 이래놓고 지가 socketio 할줄 안다고 거드름이 쩔겠지? 그 잘난 30년이 다 이런 식이었겠지?) 하지만 그 단 한 번에서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고 풍성하고 그럴싸하게 구현되는 탓에 그는 그가 모든 것을 해낸 줄 알고, 그걸 감히 팔아도 되는 줄 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내 회사 제품을 쓰는 모든 분들께 어찌 죄송한지 표현할 길이 없다. 내가 맡은 상품도 S가 맡았던 상품도 영업 멘트 약속만 무성할 뿐 실제로는 그 약속을 (&quot;poorly&quot;라는 표현이 딱맞게) 간신히 한심히 겨우겨우 지키고 있을 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사이니지는 그 3번째 상품이다. 앞전 두 상품에서 일어났던 모든 폐해가 명백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이번 '태국건'의 '테크리드'를 맡은 그는 이전 상품에 대해서도 '기획/QA'를 했었다. 남이 뭐라건 팩트가 뭐라건 다 모르겠고 결국 자기의 언질이 무조건 항상 옳고 바르고 좋아야만 하는, 자기가 오해했거나 틀렸거나 하는 역사는 있어본 적이 없는 그런 부류의 인간인데, 그 예리하고 고매하고 아는것 많은 능력 가지고 프로젝트에서 잡아내는 디테일의 6할이 실무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생트집이다. 그치만 내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런 노하우로 25년간 그렇게 성공적으로 무수한 프로젝트를 훌륭히 끝내 오신 노오련한 프리랜서님이신걸. ㅋㅋ^^ㅋㅋ 그런 사람 밑에서는 자연히, 뻔한 기능은 더 뻔하게 구현되고, 낯설고 도전적이고 누군가의 독박을 필연으로 하는 기능은 더더욱 관조, 방치, 이미모두가다알고있는것또괜히말해보는아무짝에도쓸모없고성가시기만한참견 으로 점철되게 마련이다. &quot;와 이거구나! 그동안 기존 제품들이 이건 왜 이따위고 저건 왜 저딴 식일까 늘 궁금했는데 이렇게 돼온 거였구나! 정말 대단한 25년 경력자야!&quot;를 석달간 골수에 사무치게 납득하며 아드득 바드득 이를 갈았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7 02-08-42 0496.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k1Eeq/dJMcabwfyEA/BqUKIpnQdd07JANghPHOM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k1Eeq/dJMcabwfyEA/BqUKIpnQdd07JANghPHOM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k1Eeq/dJMcabwfyEA/BqUKIpnQdd07JANghPHOM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k1Eeq%2FdJMcabwfyEA%2FBqUKIpnQdd07JANghPHOM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32&quot; height=&quot;3024&quot; data-filename=&quot;25-11-27 02-08-42 0496.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3024&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러기를 출국 10시간 전까지 그랬고, 재입국 48시간 전까지 그랬다. 대표라는 새끼는 그 D-DAY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공연히 더 큰 공수표를 발행했다. 이 대형마트가 태국에 몇백 개 지점이 있고! 지금은 100대지만 1000대, 10000대 할 수 있고! 지금 PO가 하나 더 들어오려고 하고 있고! S사에서 우리를 되게 좋게 보고 있고! (당연하다. S사가 '일단 만들긴 만들었는데 뭔가 애매하게 쓸모가 없네' 하고 있던 제품군의 쓸모를 겨우 만들어 준 것이 이번 프로젝트였다.) 무슨 이사도 연락을 주고 어디 지부에서도 얘기가 오고 있고 두바이에서 고객이 호주에서 연락이 어쩌고 저쩌고. 당연히 그 약속들은 하나도 약속이 아니었다. 사업의 근본에 아무 조짐이 없었고, 리더십 역시 아무 변화 없이 제 본색대로 신났을 뿐인데, 숫자가 좀 큰 게 뭐 어떻고 나라 이름이 하나 더 추가되면 어떻단 말인가? 나중에 유지보수 할 실무자들이 사과할 고객 사과할 나라만 더 많아질 뿐이겠지. 그 유지보수 실무자가 나일지 누구일지 모르겠지만. 뭐 나? 아니 나는 못 해요. 와우 씨발. 안 해. 돈을 3배를 줘도 난 싫고 사업규모가 9배가 된대도 거절이요. 많이들 하세요 난 갈라니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기둥과 뿌리가 막상 아무 열매도 맺지 않는데, 그런 나무가 가지를 하나 더 치면 무엇하고 잎을 하나 더 열면 뭐냐 말이다.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데 걍 지금 콱 망해 버리라지.&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무화과나무 고사 사건은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내는 효과만이 있었던 몇 안 되는 표징이다. 오병이어도 숱한 치유 사역도 전부 인간 사회에 도움이 되는 효용과 이득이 있었으되, 한편으로는 예수님의 기적 중 '딱히 누군가에게 득이 된 건 없고 그냥 불가해하기만 한' 일들도 분명히 있었다. 물 위를 걸으셨다든가, 변화산에서 변화되셨다든가. 그리고 이 무화과나무 고사 사건도 그런 축에 든다. 워낙 이상하고 뜬금없는지라 모든 복음서가 일반적으로 공통 기술하지 못할 정도다. 누가의 예수님은 너무나도 인간이고 요한의 예수님은 너무나도 &quot;말씀&quot;이시기 때문에 둘은 이 사건을 언급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신이면서 인간인' 예수님을 진술한 복음서들만이 이 사건을 취급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편 이 사건은 극히 드물게 예수님이 뭔가를 '죽이신', '파괴하신' 사건에 속한다. 달리 또 예수님이 망가뜨리신 게 뭐가 있었지? 돼지 떼 몇백 마리, 성전 뜰의 돈 바꾸는 장터 (요즘으로 치면 큰 교회 문간에 있다는 은행별 ATM 기기들?) 정도였지 않나? 예수님은 항상 누군가를 살리고, 건지고, 고치고, 먹이고, 마시우고, 이끌고, 모범을 보이시고, 하여간 내내 건설적인 일을 해나가신 분이었고 &quot;상한 갈대&quot;조차 &quot;꺾지 않으시&quot;는 분 아니었던가? 그런 분이 어떤 생명을 의지적으로 파괴하신 사건이 있었다고? 그게 이 무화과나무 사건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사건은 그렇게까지 일화적이거나 우연적이지 않고, 조건적으로나마 납득 가능한 해석을 필요로 하는, 그 정도의 중요도는 있는 사건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수님이 손봐주셨던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돼지떼는 거라사 광인의 '군대' 즉 많은 귀신들이었다. 성전에서 야단을 놓으셨던 대상은 &quot;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quot;, &quot;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quot;, &quot;비둘기를 파는 사람들&quot;이었다. 그 무화과나무는 잎이 무성하되 열매가 없는 나무였다. 공통점은 그것들이 악하다는 것이었다. 귀신은 당연히 악하다. 성전에서의 상인들은 악한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실제로 원하셨던 바 추구해 마땅할 도덕/이상/이념(&quot;만민이 기도하는 집&quot;)을 파편화, 제도화, 영리화(&quot;강도들의 굴혈&quot;)하여 실질 없는 체제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데 복무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 무화과나무도 악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일과 역사에 아랑곳 없이, 자기의 때와 자기의 시간에만 혼자 저 잘나서 부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1&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어떤 부자가 밭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amp;lsquo;내 소출을 쌓아둘 곳이 없으니, 어떻게 할까?&amp;rsquo; 하고 궁리하였다. 그는 혼자 말하였다. &amp;lsquo;이렇게 해야겠다. 내 곳간을 헐고서 더 크게 짓고, 내 곡식과 물건들을 다 거기에다가 쌓아 두겠다. 그리고 내 영혼에게 말하겠다. 영혼아, 여러 해 동안 쓸 많은 물건을 쌓아 두었으니, 너는 마음놓고, 먹고 마시고 즐겨라.&amp;rsquo;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amp;lsquo;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네 영혼을 네게서 도로 찾을 것이다. 그러면 네가 장만한 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amp;rsquo; 자기를 위해서는 재물을 쌓아 두면서도, 하나님께 대하여는 부요하지 못한 사람은 이와 같다. (눅12:16-21, RNKSV)&lt;/span&gt;&lt;/blockquote&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1&quot;&gt;&lt;span style=&quot;font-family: Noto Serif KR;&quot;&gt;그러나 너희, 부요한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너희의 위안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굶주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 지금 웃는 사람들은 화가 있다. 너희가 슬퍼하며 울 것이기 때문이다. (눅6:24-25, RNKSV)&lt;/span&gt;&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수님께서 일관되게 욕하고 경계시키시는 것이 바로 이런 부류다. 때도 분간치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도 관심 가지지 않고, 오직 자기의 소출, 자기의 재산, 자기의 가지와 잎사귀 무성해지는 일에만 오만 열심인 모든 자 모든 것들. 이런 부류에 대해서는 평소에도 '오늘밤에 죽여버리겠다' 같은 비유나 드시고 &quot;화있을찐저! 화있을찐저!&quot; 저주도 서슴지 않으셨던 예수님이다. 그런 예수님이 몇 년에 걸쳐서 준비했던 프로젝트 &amp;mdash; 죽음과 부활 &amp;mdash; 가 드디어 당일이 닥쳐서 현장 실무를 진행 중인데, 그래서 인간적으로 힘들어 죽을 것 같은데, 눈앞에 뭔가 그럴듯해 보이는 과실나무가 있을 것 같으면, 그 과실나무가 그 프로젝트 &amp;mdash; 100% 하나님 나라 사역인 &amp;mdash; 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시지 않았겠는가? 적어도, 예수님이야 이렇게 힘들든 말든, 자기 혼자 자기 계절이나 만끽하면서 혼자 싱싱하고 혼자 신나 있기를 기대하지는 않으셨을 거 아닌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연관성이 부족하긴 하지만, 비슷한 처지 비슷한 광경을 겪어 본 나로서는 그렇게 독해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방콕 한구석의 일주일간 내 눈앞의 세계는 나만 빼고 다들 너무나 안온하고 별일 없이 태평했다. 나는 지금 당장 이런 일 저런 일들을 해내야만 하는데, 안 그러면 (적어도 나의) 세상이 전부 와장창 무너질 거라고들 야단인데, 막상 그렇게 내게 야단을 놓는 이들은 하나도 야단이 아니었다. 내 앞의 대표며 테크리더는 &quot;여기 1층에 마사지샵 있더라 내일은 교대로 마사지 받으러 갑시다?&quot; 따위 개소리나 씨부리고 있었고, 심지어는 이 빌어먹을 슈퍼갑 대형마트조차도 나의 이 임무, 이 고생, 이 절박함을 알 바가 아니었다. (사실 마트 측 사람과 제대로 만나 본 적이 없다. 너무 이상하다.) 그리고 실제로도 내 임무가 망했더라도 그건 그거대로 그냥 별일 아니었을 것이었다. 알고 보니 애초에 이 마트의 '리뉴얼' 자체가 핵심 큰일이었고 내 회사의 &quot;LCD&quot;는 그 리뉴얼의 정말 작은 일부분이었다. 오히려 그렇게 호들갑 떨며 공연히 의미 부여한 것이 과례였겠다 싶을 정도로.&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8 16-16-58 0532.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0Axy/dJMcabiJQ26/9vIN03sDzJXHA5gy1BcT7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0Axy/dJMcabiJQ26/9vIN03sDzJXHA5gy1BcT7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0Axy/dJMcabiJQ26/9vIN03sDzJXHA5gy1BcT7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0Axy%2FdJMcabiJQ26%2F9vIN03sDzJXHA5gy1BcT7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3024&quot; height=&quot;4032&quot; data-filename=&quot;25-11-28 16-16-58 0532.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수님도 비슷하지 않으셨을까? 심지어, 이게 나만 잘 하면 그만이냐 하면 그게 또 아니라는 점조차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계속해서 &quot;미안한데 이거까지는 합시다 고객은 뭐다? 무조건 옳다!&quot;(염병 좆을 까고 자빠졌네 그건 소금 치고 쿠폰 뿌려서 해결되는 장사에나 쓰는 말이고요 이 씨발아) 소리에 예 예 하고 따르며 막판까지 스스로를 갈아넣던 그 때, 내가 힘들었던 건 일 자체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애를 써서 나아지는 게 뭐지? 이게 그렇게 도움이 되나? 이러면 정말 세상이 더 좋아지긴 하나? 아무리 봐도 그냥 마트 상품 가격 몇 개 보여주면서 옆에 광고 띄우는 게 단데? 이깟 것 아무리 잘 하고 예쁘게 해봐야 이 대형마트 장사에나 도움 되고 이 S사 단말기 세일즈에나 도움 되고 결국 일회용품 장치, 쓰레기 데이터 양산하며 대자본들 배나 불려 주고 뼈다귀 살점 좀 받아먹는 겨우 그딴 짓거리 아닌가? 이게 정말 예수님께서 기껏 구해 주신 백년짜리 목숨의 지적 능력의 최대치를 투여해서 할 가치가 있는 일이 맞나? 뭐 이런 수준으로까지 확대된 회의감을 갖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내 기도의 첫마디는 그런 차원에서 정직하려고 한 것이었다. 실제로 나는 2천 년 전 예수님 사역하시던 세계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이 좋은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어디를 둘러봐도 풍요, 호화, 여유, 최첨단 따위뿐이었고 순간 나의 이 고생은 오롯이 나의 억하심정 자격지심일 뿐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이 좀 힘들다고 그걸 불평하면 쓰나? 하는 생각을 하려고 하고 있었는데, 그 찰나조차도 허락지 않으시고 바로 보여주신 것이 그 무화과나무였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니야. 불평할 수 있어. 나도 그 무화과나무가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어. 바쁘고 힘들어 죽겠는데 내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던 그 나무. 날 도와줬어야 하는데, 도와줄 수 있었을 텐데도 도와주지 않았던, 자기 변명만 크고 자기 혼자만 풍성하고, 아버지께서 원하셨던 세상으로 회복시켜 나가는 과정에 아무 역할도 의미도 없었던 그 나무. 나도 솔직히 그때는 그냥 좀 울컥한 것도 있었어. 지금 네가 느끼는, 저 끝없이 늘어선 매대며 한쪽에 너희가 다소곳하게 설치 중인 그 장치들과 그 아래 진열된 &quot;상품&quot;들이며 그 주변을 서성이는 너의 &quot;상사&quot;들을 보며 느끼는 그 울컥함 말이야.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가 죽으라고 그랬지. 그러니까 나무는 죽고, 제자들은 '진짜 죽었네요' 그러는데, 사실 그때는 뭐라 둘러댈 말이 없어서 둘러대느라고 말이 길어졌어. 솔직히 '일이 너무 개같고 상황이 너무 짜쳐서 홧김에 죽였다' 그럴 순 없잖아 안 그래?&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도 마찬가지로 이 글이 계획에 없이 너무 길어졌다. 어찌 보면 그냥 지난 한 달, 아니 지난 석 달, 아니 최근 반 년, 아니 지난 1년하고도 3개월 정도가 그냥 개같고 짜쳤다 한 마디면 됐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렇게까지 주절주절 뭔가를 적어놓은 것은, 그런 더럽고 치사하고 힘든 세월의 정점의 한복판에서, 주님께서 말씀을 주신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여 저의 세계는 이렇게나 안락하고, 주께서는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던 주님이시니이다. 이런 과하게 에피파니적인 순간들이 있는 탓에 그리스도의 도를 버리지 못하겠는 면이 하나 있는가 하면, 이야말로 이 지난 세월을 가장 바르고 짧게 요약하는 관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또 한 측면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쩌면 이 자본주의 체제가 통째로 그 무화과나무인지도 모르겠다. 소문은 무성하고, 어떤 성취는 그 규모가 무시무시하며, 그래서 겉으로는 무언가 실질을 기대할 만해 보이지만, 정작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면 결국 사람을 살리는 열매는 아무것도 없고 지금은 철이 아니라는 식의 뻔뻔한 변명만 튼튼한 피조물. 그리하여, 아낌없이 찍어서 불구덩이에 던져도 하루아침에 말라 비틀어 죽어 버려도 아쉬울 것 없는, 대체 그게 다 뭐냐 싶은 풍요. 자본주의 사회까지는 모르겠고 일단 지금까지 다닌 이 회사 하나만큼은 확실히 그런 피조물이었다. 그 토요일 자유 일정을 마치고 공항으로 가는 Grab 콜택시 안에서 왼편에 스쳐 지나가는 그 대형마트 현장을 바라보며, 퇴사를 최종적으로 결심한 것은, 그래서다.&lt;/p&gt;
&lt;div id=&quot;code_1782037545210&quot; data-ke-type=&quot;html&quot; data-source=&quot;&amp;lt;iframe width=&amp;quot;560&amp;quot; height=&amp;quot;315&amp;quot; src=&amp;quot;https://www.youtube.com/embed/AmBiTjUazrc?si=U6ZYr4tqTw7-Wll-&amp;quot; title=&amp;quot;YouTube video player&amp;quot; frameborder=&amp;quot;0&amp;quot; allow=&amp;quot;accelerometer; autoplay; clipboard-write;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 web-share&amp;quot; referrerpolicy=&amp;quot;strict-origin-when-cross-origin&amp;quot; allowfullscreen&amp;gt;&amp;lt;/iframe&amp;gt;&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AmBiTjUazrc?si=U6ZYr4tqTw7-Wll-&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15&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div&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말라 죽은 무화과나무의 교훈은 명백하다.&lt;br /&gt;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시장하셔서 잠시 들러 보셨을 제 생명 살리는 데 소용 있는 뭔가가 아무것도 없을 경우, 그게 무엇이/누구가 되었든, 그 최후는 명백히 그 무화과나무의 전철 그대로 즉각적이고 최종적인 고사일 것이다.&lt;br /&gt;그 마트는 어떻게 될까.&lt;br /&gt;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는 뻔하고, 이 사회는, 이 체제는, 나는 과연 어떻게 될까.&lt;/p&gt;
&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PS. siyon님 혹시 이 글 보고 계십니까? 지금이니까 드리는 말씀인데 나는 2025년 한 해 당신과 같이 일하고 싶었던 날이 단 하루도 없었습니다. 나만 그랬을 거 같나요? &quot;나는 그게 궁금해.&quot; 아무튼 알아서 고독사하시기 바라고, 내 인생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십시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5-11-28 22-02-27 0543.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Oi6mj/dJMcabiJRea/A5YZO55NgGk8Hva9jRb60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Oi6mj/dJMcabiJRea/A5YZO55NgGk8Hva9jRb60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Oi6mj/dJMcabiJRea/A5YZO55NgGk8Hva9jRb60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Oi6mj%2FdJMcabiJRea%2FA5YZO55NgGk8Hva9jRb60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3024&quot; height=&quot;4032&quot; data-filename=&quot;25-11-28 22-02-27 0543.jpg&quot; data-origin-width=&quot;3024&quot; data-origin-height=&quot;4032&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4 생각을 놓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6</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6#entry896comment</comments>
      <pubDate>Sat, 6 Dec 2025 01:17:44 +0900</pubDate>
    </item>
    <item>
      <title>천육백만 명의 몽정</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5</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방금&amp;nbsp;다시&amp;nbsp;찾아봤는데,&amp;nbsp;이&amp;nbsp;친위쿠데타&amp;nbsp;잡범을&amp;nbsp;대통령&amp;nbsp;만들어줬던&amp;nbsp;사람들이&amp;nbsp;1600만명이&amp;nbsp;넘는다.&lt;br /&gt;정확히는&amp;hellip;&amp;nbsp;천육백삼십구만&amp;nbsp;사천팔백&amp;nbsp;열다섯&amp;nbsp;명이다.&lt;br /&gt;백만 명씩 모듬을 잡아도 이런 그룹이 전국에 열여섯이나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게 대체 다들 누구일까.&lt;br /&gt;지금쯤 현시국 앞에 무슨 생각을 할까.&lt;br /&gt;아니 과연 그건 정말 &quot;생각&quot;일까? 혹시 그들은 지금도 몽정 중인 것은 아닐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혹시 그들은 그때도 지금도, 울상 된 이재명이 엄청나게 큰 어깨를 가진 윤석열에게 영원히 두들겨맞는(이 그림은 실제로 존재한다 &quot;짤림 방지&quot;로 지금도 어딘가에서 쓰인다), 사탄마귀 이재명의 추락과 &quot;애국보수&quot;의 천년왕국이 영원히 되풀이되는 대안서사로서의 계시록을 눈앞에서 생생히 보는 꿈을 꾸는 중인가? 혹시 그건 모종의 분출 실패한 육욕이 스스로 만드는 포르노인가? 그래서 그 꿈을 꾸는 이들마다 이토록 잠꼬대가 심하고, 뭐에 홀린 사람처럼 흥분해서, 제정신이라면 안 할 언동을 골라서 하는 것인가?&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Shokasonjuku.jpg&quot; data-origin-width=&quot;799&quot; data-origin-height=&quot;526&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2aPQl/btsM3lcPeVz/DMsW69lkqclb1ZTtuXUC7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2aPQl/btsM3lcPeVz/DMsW69lkqclb1ZTtuXUC7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2aPQl/btsM3lcPeVz/DMsW69lkqclb1ZTtuXUC7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2aPQl%2FbtsM3lcPeVz%2FDMsW69lkqclb1ZTtuXUC7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99&quot; height=&quot;526&quot; data-filename=&quot;Shokasonjuku.jpg&quot; data-origin-width=&quot;799&quot; data-origin-height=&quot;526&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메이지와 일제가 태어난 곳이 요시다 쇼인의 송하촌숙 임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그 학당은 문자 그대로 두메산골 오막살이다. 그런데 그 요사(妖師)는 거기에 아이들을 몇 명 모아놓고 지나치게 야한 꿈을 지나치게 강력하게 계속해서 꾸어댔다. 대륙! 제국! 천황! 그 꿈이 어찌나 선정적이고 음란했던지, 원자폭탄 두 번이 있고서야 그들은 겨우 대동아공영권의 잠꼬대와 카미카제의 몽정에서 깼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야한 꿈이 위험한 것은 몽정을 시킬 수 있는 까닭이다. 다들 경험이 있으실 터이다. 어 이게 뭐지 뭔가 형체도 분명찮은 것이 너무 기괴하고 혼란스러운데 그 와중에 견딜 수 없이 꼴린다. 일어나서 보면 알지 못하는 배설물로 침상은 더러워져 있고 배설에 의한 쾌감은 여전히 잔잔하다. 제대로 사춘기를 끝낸 성인은 여기서 불쾌해하며 이불을 치운다. 오직 미성숙한, 혹은 포르노에 절여진 이들만이, 그 경험을 좋았다고 여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요컨대, 지난 역사 그리고 각자의 성장기를 통해 알 수 있는 바, 미성숙한 인격(들)이 평소 제대로 배출해놓지 않은 음탕한 정욕을 꽁꽁 숨기고만 살고 있다가, 덜컥 야한 꿈이라도 한 번 잘못 꾸어 버리면, 그때는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예상치도 대비치도 않았던 개인적 낭패를 당하는 건 물론이요, 그 규모가 조금이라도 크거나 그 파급이 조금이라도 실제적이었다가는, 고스란히 아시아를 파괴하는 파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개인과 집단의 차이가 있다면, 개인은 몽정을 일부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지만, 집단은 서로의 음란한 꿈이 되어 줄 수 있다는 점일 테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news-p.v1.20250119.6996d6b6506c4e229b1b582710050b08_P1.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7&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vDRPu/btsM46MjyqN/L2PWbtiBjuf8LIN2CyoKG1/img.webp&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vDRPu/btsM46MjyqN/L2PWbtiBjuf8LIN2CyoKG1/img.webp&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vDRPu/btsM46MjyqN/L2PWbtiBjuf8LIN2CyoKG1/img.webp&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vDRPu%2FbtsM46MjyqN%2FL2PWbtiBjuf8LIN2CyoKG1%2Fimg.webp&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700&quot; height=&quot;467&quot; data-filename=&quot;news-p.v1.20250119.6996d6b6506c4e229b1b582710050b08_P1.webp&quot; data-origin-width=&quot;700&quot; data-origin-height=&quot;467&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문재인과 이재명이 구속되고 노무현이 추락하는 꿈을 은밀히 혹은 공연히 거듭 품고 있는 이들을 생각한다. 그들 중 천육백만의 유권자로 진입한, 전광훈의 바짓가랑이 밑에 모인, 성조기와 태극기와 육각성기를 빳빳이 세우고 흔드는, 서울서부지방법원에 진입하는 데까지 이른 그들의 그 음란한 꿈을 생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모든 꿈이 나쁜 것은 아니다. 나쁜 꿈은 첫째 깰 수 없는 꿈이요 둘째 잠꼬대와 몽정과 몽유병을 일으키는 꿈이요 셋째 자꾸만 현실을 그만두고 그저 그 꿈이나 더 꾸고 싶어지게 되는 꿈이다. 파시즘이니, 대안우파니, 후기자본주의의 하부구조적 병폐가 정치사회 상부구조에 전가되는 경향이니 복잡한 말이야 얼마든지 쓸 수 있을 테지만, 전반적으로, 그저 음란한 꿈을 꾸며 집단 몽정 중인 이들이 있을 뿐인 것 아닌가 생각한다. 조금만 제정신으로 보면 분명한 형체 없이 흉측하기만 한, 그러나 꼴린 기분에 취해서 보면 분명 더할 나위 없이 원초적으로 야하고 흥분되게 뵈는, 확실하게 발기시켜 주고 사정시켜 주는, 그래서 더 꾸고 싶어지는, 그 꿈 때문에 일어난 일들에 점점 개의치 않게 되는, 오히려 그 꿈 덕분에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더 취하게 되는, 그 은밀하게 더러운 꿈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헌법재판소의 내란수괴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이제 다음 질문이 필요하다.&lt;br /&gt;아직도&amp;nbsp;꿈을&amp;nbsp;못&amp;nbsp;깬&amp;nbsp;그들은&amp;nbsp;누구고&amp;nbsp;어디&amp;nbsp;사는가?&lt;br /&gt;그들이&amp;nbsp;꾸는&amp;nbsp;꿈의&amp;nbsp;구체적인&amp;nbsp;효과와&amp;nbsp;해몽은&amp;nbsp;무엇인가?&lt;br /&gt;그&amp;nbsp;꿈으로만&amp;nbsp;발산되고&amp;nbsp;있는,&amp;nbsp;사실&amp;nbsp;그러지&amp;nbsp;말았어야&amp;nbsp;할&amp;nbsp;그&amp;nbsp;억압,&amp;nbsp;그&amp;nbsp;욕정,&amp;nbsp;그&amp;nbsp;악은&amp;nbsp;무엇인가?&lt;br /&gt;이것을 일깨울 원자폭탄은 무엇이고 몇 개인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당신은 휴대폰으로 무슨 갤러리 무슨 유튜브를 온종일 돌아다니며 백주대낮에 몽정하는 이들과 앞으로도 같은 나라를 쓸 생각인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공화국은, 그 천육백만명의 몽정을 끝낼 수 있는가?&lt;/p&gt;</description>
      <category>1 내</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5</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5#entry895comment</comments>
      <pubDate>Wed, 2 Apr 2025 10:37:48 +0900</pubDate>
    </item>
    <item>
      <title>OZ751</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가&amp;nbsp;어딜까. &lt;br /&gt;비행&amp;nbsp;고도&amp;nbsp;10972m. &lt;br /&gt;대략의&amp;nbsp;위치는&amp;nbsp;싼야&amp;nbsp;와&amp;nbsp;마닐라&amp;nbsp;사이. &lt;br /&gt;도대체 여기가 어디일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싱가포르 소재의 웬 POS 개발사에 개발자로 취직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막상 그토록 별렀던 외국에서의 돈벌이 생활을 출발하고 보니 심지어는 제일 재미있어야 할 0일차부터 설렘이며 기대감, 자기효능감 따위는 없고 은은한 긴장과 불안만 있을 뿐이다. 여권이 가방에 있는지를 두 번이나 확인했고, 내 발밑 짐칸에 내 캐리어가 없을 경우에 대한 걱정을 해보고 있다. 나도 내가 이렇게 걱정 많은 인간인 줄 몰랐다. 아마도 이번에는 내가 뭔가를 입증해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겠지. 영어로. 없는 머리 열나게 굴려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머리를 비우고 생각을 없애는 방식으로 충성했던 회사가 날 권고사직한 이후 여태까지의 몇 개월은, 내가 되고 싶은 게 정녕 무엇이었더냐는 질문을 피하지 못했던 시기였다. 난 뭐가 되고 싶지? 시니어? 팀장? PM? 풀스택 웹개발자? PHP 엔지니어? 그냥 어디에선가든 어떻게인가든 하여간 돈을 벌어 집에 보태는 장남? 뭔가 잘난 힙스터? (정말 그거였던 걸까 까지도 생각해보고 있다. 진지하게 스스로를 프로파일링해 볼 필요가 있어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소름 돋을 정도로, 나는 내가 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 그저 어떤 교통수단, 커리큘럼, 분기 목표 따위에 날 태워 앉히고 어디로든 가면 뭐든 되겠지 하는 인생이었다. 맘만 먹으면 지금부터도 한동안은 그럴 수 있겠지. 일단 가서 뭐라도 하면 어떻게든 안 되겠냐? 하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난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lt;br /&gt;남은&amp;nbsp;비행&amp;nbsp;거리&amp;nbsp;2050km. &lt;br /&gt;바깥&amp;nbsp;온도&amp;nbsp;-43&amp;deg;c. &lt;br /&gt;난 대체 어디를 가겠다고 한 것일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바다 저쪽으로 건너가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지금 그 바다를 건너가고 있다. 이 일터에서 저 일터로의 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마치 고물에서 주무시는 주님을 깨우던 그 제자들처럼 지난 몇 달 몇 주 사이에 유난히도 호들갑이었다. 갈릴리는 그들의 평생의 일터였겠지만, 여기서 저기로 가는 과정이 조금만 흔들거려도, 그들은 아이고 나 죽는다고 잠자는 주님을 깨워 가며 비명을 지른다. &quot;주여! 주여! 우리의 죽게 된 것을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까?&quo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예전에는 이 대목이 한심하게 우습다고 생각했는데, 일자리가 안 구해지는 시기며 면접 전형 결과를 몇 날이고 며칠이고 초조히 기다리는 시기를 지나니, 나도 이 소리가 절로 나왔었다. 근데 실은 그 이동은 내가 자초했고 내가 원했고 내가 책임져야 했고 그러겠다고 호언장담해 놓은 것이었다. 경력자라면, 이 바닥을 안다면 문제 없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를 과신한 오만의 결실이 지난 몇 달의 고생길이었던 것이다. 기술면접을 한국어로 망칠 때는 내내 몰랐는데 이번에 영어로 망치고 나니 그제야 겨우 자각했다. 아 나는 내가 내 실무를 보여줄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난 기술면접을 못 보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엔지니어도 아니고 PHP 엔지니어도 아니고 그저 PHP라는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구나.&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 풍랑 속에서 뒤집히기 직전의 배에서 주님을 흔들어 깨우던 제자들에게도 갈릴리가 그랬을까? 그들 역시, 그 바다가 정확히 어떤 호수인지, 그 물의 기후라는 게 뭔지, 애초에 기상악화라는 게 뭔지 하나도 모른 채로 그저 노 저어 그물 칠 줄만 알던 몸이었음을 뼈아프게 자각하게 되었을까? 그들도 자기들이 처한 상황이 수치스러웠을까? 자기들이 노 저어 나아온, 자기들의 생업의 터전이던 곳에서, 제일 아마추어 같은 꼴로 곤란을 당하고, 내 인생 이러다 어떻게 되는 거냐고 진짜로 불안하게 긴장해야 했던 그 상황이?&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풍랑을 잔잔하게 하신 사건 자체는, 일반적으로는 그저 예수님의 초자연적 권능을 증거하는 기적으로 그러나 다분히 일화적이고 부수적이며 다른 비슷한 사건들 사이에서 독창성을 뽐내지 못하는 해프닝으로 회자되고 지나간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자기만의 갈릴리 호를 건너고 있는, 그 바다를 매일 뻔질나게 주님과 드나들며 사는, 그러다가 바로 그 바다 위에서 곤경에 빠지는 모든 이들을 위한 복음인지도 모르겠다. 결론만 놓고 보면 나는 어쨌든 그 어렵다는 해외 개발자 취업을 거의 성공한 입장이고, 제자들은 자연이 잠잠해지는 권능을 목격한 것이다. 나도 그들도 그저 &amp;ldquo;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amp;rdquo; 소리밖에 못 하는 건 그래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자 그러면 이제는 그 바다를 건넌 뒤에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제는 무엇이 되고 싶어야 할까. 일단 제자들은 그 갈릴리를, 그 사람 예수님을 전하고 다니다 죽었다던데. 그것만 해내기도 짧은 인생, 그것마저 못할 수는 없는 입장이었다는 모양인데.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되게 될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단은 가자. &lt;br /&gt;비행&amp;nbsp;속도&amp;nbsp;907km/h. &lt;br /&gt;남은&amp;nbsp;비행&amp;nbsp;시간&amp;nbsp;2시간&amp;nbsp;1분. &lt;br /&gt;오늘&amp;nbsp;밤에는&amp;nbsp;이&amp;nbsp;바다를&amp;nbsp;건너는&amp;nbsp;것까지만&amp;nbsp;생각하자.&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20240826_192651.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2268&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MRJ7S/btsJiivz686/KgBdF0Rn6JKchvVdSBLNM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MRJ7S/btsJiivz686/KgBdF0Rn6JKchvVdSBLNM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MRJ7S/btsJiivz686/KgBdF0Rn6JKchvVdSBLNM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MRJ7S%2FbtsJiivz686%2FKgBdF0Rn6JKchvVdSBLNMk%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4032&quot; height=&quot;2268&quot; data-filename=&quot;20240826_192651.jpg&quot; data-origin-width=&quot;4032&quot; data-origin-height=&quot;2268&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description>
      <category>0 주니어 PHP 개발자</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3</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3#entry893comment</comments>
      <pubDate>Tue, 27 Aug 2024 22:33:05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자기 얼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배우를 할 수 있다</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2</link>
      <description>&lt;blockquote class=&quot;twitter-tweet&quot;&gt;&lt;p lang=&quot;ko&quot; dir=&quot;ltr&quot;&gt;배우에게 젤 중요한 건 얼굴이다. 잘생겼다 예쁘다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더불어 자기 얼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배우를 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얘기들은 모두 배우에게 먼저 들은 후 많은 배우들을 관찰/대화해본 후 나도 공감하게 된 이야기.&lt;/p&gt;&amp;mdash; 임수연 IM Sooyeon (@vagabond_sy) &lt;a href=&quot;https://twitter.com/vagabond_sy/status/1817552533524775058?ref_src=twsrc%5Etfw&quot;&gt;July 28, 2024&lt;/a&gt;&lt;/blockquote&gt; &lt;script async src=&quot;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quot; charset=&quot;utf-8&quot;&gt;&lt;/script&gt;
&lt;blockquote class=&quot;twitter-tweet&quot; data-conversation=&quot;none&quot; data-dnt=&quot;true&quot;&gt;&lt;p lang=&quot;ko&quot; dir=&quot;ltr&quot;&gt;연기를 &amp;#39;안 하는&amp;#39; 배우들이 자꾸 뭘 하려고 하거나 쪼가 심한 배우보다 연기가 빨리 는다는 말을 어떤 감독이 했었는데 그 말도 공감... 뭘 해야 하는지 모르던 사람들이 뭘 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갑자기 깨우치게 되면 어느 순간 연기를 잘할 때가 있음;; 혹은 버릇을 버리는 훈련을 열심히 하거나&lt;/p&gt;&amp;mdash; 임수연 IM Sooyeon (@vagabond_sy) &lt;a href=&quot;https://twitter.com/vagabond_sy/status/1817556120191549633?ref_src=twsrc%5Etfw&quot;&gt;July 28, 2024&lt;/a&gt;&lt;/blockquote&gt; &lt;script async src=&quot;https://platform.twitter.com/widgets.js&quot; charset=&quot;utf-8&quot;&gt;&lt;/script&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배우에게 젤 중요한 건 얼굴이다. 잘생겼다 예쁘다 이런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더불어 자기 얼굴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배우를 할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이 얘기들은 모두 배우에게 먼저 들은 후 많은 배우들을 관찰/대화해본 후 나도 공감하게 된 이야기.&lt;br /&gt;연기를 '안 하는' 배우들이 자꾸 뭘 하려고 하거나 쪼가 심한 배우보다 연기가 빨리 는다는 말을 어떤 감독이 했었는데 그 말도 공감... 뭘 해야 하는지 모르던 사람들이 뭘 해야 하는지 현장에서 갑자기 깨우치게 되면 어느 순간 연기를 잘할 때가 있음;; 혹은 버릇을 버리는 훈련을 열심히 하거나&lt;br /&gt;&lt;br /&gt;2024년 7월 28일, 임수연 씨네21&amp;nbsp;취재팀장&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최근 유난히 유난스럽게 이직을 하면서 &quot;나 뭘 잘 하지? 뭘 못 하지? 나는 뭐가 되고 싶지? 나는 뭐지?&quot; 하는 &quot;정체성 위기&quot;를 좀 느꼈었고 그 시기 중간에 접한 이 통찰을 계속 생각하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유튜브를 꼬박 6년을 했으니 내 얼굴 내 목소리 내 생긴 꼴이 어떤지는 모르지 않는데, 일단 내 자의식이 이걸 모른 체하며 여전히 가상 자아를 갖고 살려고 하고 있고, 내 실천 자체도 남들이 이런 생김새의 내게 걸고 있는 기대에 부응하고 있지 않기도 하다. 그나마 최근에는 바로 이 현상태 상황 자체가 좀더 생생히 와닿는 정도가 진전이라면 진전이다. 요컨대 '아.. 사람들이 나를 이러이러하게 보는구나.. 나는 나를 그렇게 보지 않지만 하여간 현실은 그렇구나..' 하는 자각이 온달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나라는 사람의 특이함에 대해 나 자신은 초등학생 때 진작 질리고 말았다. 지난 &quot;PHP 엔지니어&quot;로서의 삶은 어쩌면 그걸 주박으로 여겨 본 나날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와서는, 그리고 실은 시종일관 내내, 남들에게 내가 맘대로 써서 내줄 수 있는 공수표라곤 이게 거의 유일하다. 이 얼굴, 이 특이함, 지겹게도 지독하게도 그저 나이기만 한 내 모습. 이제는 내 얼굴을 받아들여야 하겠지. 내가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얼굴임을. 잘생겼다 예쁘다 그런 게 아닌, 그냥 이게 주어진 나임을. 그래야 한국이라는 현장, 2024년이라는 현장, 집이라는 현장, 회사라는 현장, 내 인생이라는 현장에서 내가 뭘 해야 하는지 갑자기든 서서히든 깨우칠 수 있겠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다른 배우 인터뷰들도 좀더 읽어볼까. 아무튼 요새는 마음이 어렵다. 이 정도로 &quot;정체성 위기&quot; 겪은 적이 고3 이후로 있었던가.&lt;/p&gt;</description>
      <category>2 다른 이들의</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2</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2#entry892comment</comments>
      <pubDate>Fri, 9 Aug 2024 20:25:49 +0900</pubDate>
    </item>
    <item>
      <title>고래주주총회 후기 잡감</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024년 고래주주 간담회 1차 일정을 다녀왔다. 엷은 봄비가 그칠 듯 그칠 듯 하면서 계속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그 자리에 손님으로 온 사람은 나까지 대략 8명 정도였던 것 같고.&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내 입장에서 작년 2월경에 내 통장에는 돈이 썩어나게 많았다. 이게 썩 거북하던 차에 마침 규항넷에 고래주주 공모글이 올라온 걸 보고 반쯤 홧김에 질렀다. 한데 막상 1구좌 200만원을 납입하고 나니, 그 이후 나는 '주주'로서의 무슨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고래를 따로 구독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quot;4천고래동무&quot; 캠페인에 자극 받아 고래동무 일시후원을 한 번 한 것이 전부고. 그러고 얼마 안 가서는 주주간담회를 한다기에 '음... 사정이 많이 궁한 모양이군...' 하고 가서 들어보니 아니나 다르랴 였다.&lt;/li&gt;
&lt;li&gt;이 이상 자세한 얘기는 출자자들끼리만 알고 있는 게 맞을 거 같아 각설하고... 대신 내 입장에서 몇 가지 새로운/놀라운 정보들을 접하게 된 바 그걸 좀 적어볼까 싶은데.&lt;/li&gt;
&lt;li&gt;한창 지면 개편을 해나가는 중이고, 그 일환으로써 대상 연령대를 지금보다 더 낮출 생각이란다. 더 쉬운 걸 더 고연령의 독자가 보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나.&lt;/li&gt;
&lt;li&gt;조국이 고래 구독자였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고 그게 좀 충격적이었다. 김규항 선생이 &quot;조국 사태&quot;에 입장이 유난히 각별한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된다. 말하자면, 고래가그랬어는, 조민을 만든 잡지인 셈이다.&lt;/li&gt;
&lt;li&gt;최근 몇 년 간 주변 상황이 좀 바뀐 바 그간의 노선대로는 강행할 수 없다는 입장인 모양이다. 일단 이제 소비자들은 고그를 오로지 어린이 교양지 상품으로서만 접하고 이해하고 구매한다는 것이다. 한때는 고그를 누가 만드는지, 왜 만들었는지, 뭘 하려고 만드는 건지 등에 동조한 사람들이 고그를 '후원'해 줬는데, 지금의 실제 고객 전환은 그냥 '물건 자체가 좋고 애들이 좋아해서' 발생한다나.&lt;/li&gt;
&lt;li&gt;비슷한 맥락일 텐데, &quot;교육이 어때야 하고 사회가 어때야 한다&quot; 하는 '토론', 현상태를 문제시하고 극복하자는 기조 자체가 담론장에서 아주 퇴출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quot;이번에 선거에서 진보신당[sic.]이 한 석도 못 얻었잖습니까?&quot; 듣고 보니 주간경향에서 연재하던 교육 자체 관련 칼럼도 스리슬쩍 우찌끼리 상태고. 그런 차원에서도, '사회가 어떠해야 하고 어린이의 삶이 어떠해야 하니, 고그를 읽어야/읽혀야 한다' 하는 당위 가지고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지 말아야겠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속으로 '성인용 고그 교육지도서', '편집후기 뉴스레터'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입장을 이해하고 나니, 별 도움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겠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lt;/li&gt;
&lt;li&gt;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특히 어른들은 &quot;교육 탓&quot;을 한다. 일선의 교육자들은 피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성인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교양 부족을 욕하기 바쁜 아주 괴상한 수라장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성인 대상의 무언가'를 추진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미련이 남는다.&lt;/li&gt;
&lt;li&gt;고래가그랬어가 괜찮은 어린이 잡지로 평가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MSG 없이 좋은 재료로 콤팩트하게 만든 음식을 어린이들이 곧잘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건 정말 적게 정말 좋은 재료를 듬뿍 써야만 가능한 경지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 한번에 비슷한 맛을 먹이자면 MSG를 쳐 가면서 자극적으로, 해로운 성분을 섞어 가며, 필연적으로 부실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quot;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어린이 대상 추천도서&quot;는 그렇게 탄생한다.&lt;/li&gt;
&lt;li&gt;이게 '교육', '어린이' 도메인에 한정해 논할 사안은 아닌 거 같다는 막연한 의구심이 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인지라 정신도 늘 일용할 양식을 찾게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 성인들은 매주 일요일의 대형 교회, 이런저런 트위터 계정의 이런저런 주장, 포털 사이트 뉴스, 뉴스 댓글, 유튜브, 유튜브 댓글창 등등 영 먹을 게 못 되는, 싸구려인, 불량식품에 가까운 마음의 양식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문득 EBS가 '딩동댕 대학교'를 런칭했던 것이 생각난다. 아니면 '성인용 구몬학습지' 같은 거(이건 주주총회 자리에서부터 연상했던 것이다). 그런 기획들은 왜 등장하는가? 오늘 우리가 어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실은 별로 어른이 아니고, 시민사회의 근대화된 교양 개인은 어른들 가운데서도 썩 부족한 것이 아닐까?&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근데 이 이상은 나도 구체적인 주장거리가 없어서 말을 못 잇겠다. 어린이가 아닌 사람, 구독자가 아닌 사람이면서 이 기획에 연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최 무슨 수를 내 주어야 좋을지가 막막하다. 돈은 둘째 문제다. 세상이 이렇다는데, 진짜 어떡하나.&lt;/p&gt;</description>
      <category>9 도저히 분류못함</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1</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1#entry891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Apr 2024 20:28:2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세월호가 침몰하기까지, 이 나라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나</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90</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0년 전 이맘 때쯤 청년좌파에서 성명문을 내놓은 일이 있다. 원문은 사이트째로 폭파되고 없다. 애초에 청년좌파도 해체한 지 오래고. 그 성명문만큼은 다른 언론사에서 통째로 전재했던 것이 있어서, 여기 내 블로그에도 백업 옮겨 놓는다. 링크들이 깨져 있는 꼴은 참말이지 볼 때마다 심란하고 적응이 안 된다.&lt;br /&gt;그건 그렇고, 아래는, 참말 지금 다시 보아도 전율이 치미는 절창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I. 무슨 일이 있었는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지난 4월 16일 8시 48분경, 인천-제주 정기 여객선 &amp;rsquo;세월호&amp;rsquo;가 침몰했다. 세월호에는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5명과 선원 30명, 그리고 언론과 대중에게 완전히 잊혀진 70여명의 승객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침몰의 결정적 요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검경합동수사본부는 &amp;lsquo;급변침&amp;rsquo;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급변침이 조타수의 실수 때문인지 조타기의 고장 때문인지 정전 때문인지는 아직 불분명하지만 이 배가 침몰하기에 충분했던 조건들은 속속 밝혀지고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세월호의 선주사인 청해진해운은 전두환 정권의 비호 아래 성장했던 ㈜세모가 전신이다. 1990년에도 세모가 운행하던 선박이 침몰하여 15명이 실종된 바 있으며, 당시 실종자 수 축소조작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2006년 이후 해양수산부의 고객 만족도 평가에서 네 차례 우수 등급을 받은, 정부가 인증하는 기업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세월호는 1994년 일본에서 취항해 18년 동안 운항하고 2012년 퇴역한 배로, 청해진해운이 이를 사들여 2013년부터 운항에 들어갔다. 20년 가까이 운행한 퇴역 선박을 사들인 배경에는 &amp;lsquo;제도적 수명연장&amp;rsquo;이 있었다. 2008년 정부는 선박의 제한수명을 종전의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 비슷한 시기 수명이 다한 고리 핵발전소의 수명을 10년 더 늘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수명연장이라고 해서 낡은 기계가 젊은 기계처럼 움직이도록 어떤 물리적 조처를 한다거나 건강상태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10년 더 쓸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주는 것뿐이다. 좀 더 쉽게 말하면, &amp;ldquo;안전에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amp;rdquo;라고 정부가 기업에 말해주는 것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한번 관 속에 들어갔다가 사망신고 취소로 좀비처럼 부활한 세월호는 그야말로 좀비의 몸이었다. 선박 주변의 물체를 식별하는 레이더는 최근 4개월 동안 3번이나 교체했고, 발전기를 돌리는 엔진과 배를 움직이는 엔진도 노후했다. 문제의 조타기는 사고 나기 보름 전에 오작동과 수리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 후 수리가 되었는지도 불분명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부활 직후 이 배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 마냥 개조당하기 시작했다. 물론 안전을 위한 개조는 아니었다. 전직 세월호 기관사의 증언에 따르면, 600여 명이 세월호의 본래 정원이었으나 300여 명을 더 태우기 위해 배 뒤쪽이 개조되었다고 한다. 맨 처음 개수했을 당시 5,997톤이었던 선박은 사고 당시 6,835톤이었다. 1,000톤 가까이 무게가 늘어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사고 1주일 전까지 세월호에 있었던 전직기관사는 JTBC 9시 뉴스에서, 세월호가 항해 중에 배가 자꾸 기울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 배가 &amp;ldquo;찜찜했다&amp;rdquo;고 표현했고, 찜찜한 배에서는 잦은 이직이 일어났다. 1년에 기관사 7명 중 5명이 바뀌었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전직 항해사는 &amp;ldquo;다른 결함보다도 사고 당시 세월호가 화물 결박을 제대로 안 했을 것&amp;rdquo;이라고 증언했다. 연합뉴스에서도 차량결박이 평소에 허술했었다는 단골 승객의 증언을 확보했다. 전직 항해사가 증언한 차량결박 부실의 이유는 결박을 연구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회사에서 좀처럼 해주지 않는다는 것.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접대비에 6,060만 원, 광고비에 2억 2990만 원을 쓴 반면에 안전교육 연수비로는 54만 원밖에 쓰지 않았다. 여기에 경제적 효용 이외에 다른 이유는 없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비용의 &amp;ldquo;절약&amp;rdquo;은 고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박의 수명은 긴 반면에 노동자의 수명은 짧았다. 세월호에 탑승했던 승무원 29명 중 절반 이상인 15명이 6개월~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 선박 안전관리의 핵심 보직인 갑판부 선원 10명 중 8명이 비정규직이었다. 사고의 방아쇠가 된 조타기는 누가 만졌을까? 조타수 3명은 모두 6개월~1년 계약직이었다. 선장 역시 1년 단위로 근로계약을 갱신하는 촉탁직이었다. 심지어 사고 당시 세월호를 몰던 선장은 청해진해운이 &amp;lsquo;인천-제주&amp;rsquo; 항로에 투입하는 또 다른 배 &amp;lsquo;오하마나호&amp;rsquo;의 교대선장이기도 했다. 통상 대형 선박에는 두 명의 담당 선장을 두는 것과 달리, 한 사람을 두 배의 선장으로 등록한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모든 것은 경제적 효용을 위해서였다. 정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운행제한 규제를 완화하고, &amp;ldquo;고용 유연화&amp;rdquo;를 추진해 기업이 비정규직을 멋대로 쓸 수 있도록 했다. 기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체가 된 배를 되살려냈고, 배를 비정규직으로 채웠다. 여기서 &amp;ldquo;비용&amp;rdquo;으로 분류된 것의 정체는 바로 생명이다. 청해진해운이 접대/광고비에 투자한 약 3억 원과 안전교육에 투자한 54만 원. 이 차이는 오늘날 시장에서 인명의 단가가 얼마인지 추정하게 해주는 척도다. 우리의 생명은 경제적 효용에 비해 약 0.000018%의 가치가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죽은 것 자체는 불의의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검토된 비용이다.&lt;/span&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II. 누가 죽었고 누가 다쳤는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절대다수는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이었다. 수학여행의 일정과 경로, 선박의 선정과 계약 등에 일체의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다. 또 이들 중 상당수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가족이었다. 수학여행은 교육의 일환이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이들의 수학여행은 대행업체에 위탁 진행되었으며, 대행업체의 선정기준은 최저가 입찰방식이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결정할 수 없는 자들이 최저가 입찰을 통해 안전하지 않은 것에 태워졌다.&lt;/span&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III. 수학여행 때문인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사고 이후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은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보류했고, 나머지 지방교육청들도 학교장들을 소집하여 대책회의를 논했다. 주간조선은 사고 직후 커버스토리 제목을 &amp;ldquo;이래도 수학여행 가야 하나&amp;rdquo;로 달았다. 수학여행을 폐지하자는 언론기사도 심심치 않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1.&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교육청이 수학여행을 취소/보류한 것은 물론 당연한 조치다. 전 국민의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굳이 학생들에게 유사체험을 시킬 필요가 없으며, 예정/계획된 수학여행들의 안전점검도 필요하다. 수학여행의 대행업체 위탁에 대해서도 재검토해야 한다. 물론 교육청이 당연히 그렇게 조치할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그렇게 조치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우리는 당연하지 않았던 다른 사례에 대해 기억한다. 태안에서 일어난 해병대 캠프 참사다. 사고 이후 사실상 의무적으로 학교에 부과되는 병영체험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교육청은 여전히 병영체험을 각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그렇다고 수학여행 폐지론을 들먹이는 언론들이 &amp;ldquo;병영체험 이래도 가야 하나&amp;rdquo; 따위의 기사를 썼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그렇다면 병영체험과 수학여행의 차이는 무엇인가? 단지 피해자의 숫자 차이인가? 가장 큰 차이는 교육내용의 차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학교 병영체험의 목적은, 교육청 공문에 따르면 &amp;ldquo;올바른 국가정체성 확립과 안보의식 함양&amp;rdquo;을 위함이다. 첫째로 &amp;ldquo;올바른 국가정체성&amp;rdquo;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병영체험에서 헌법의 가치를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정치적 사고의 훈련을 가르치는 것도 아니다. &amp;ldquo;민주공화국&amp;rdquo;이라는 성문가치를 병영체험을 통해 교육한다고는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다. 군사주의를 찬성하건 반대하건 말이다. 군사문화는 폭력을 기반으로 한다. 폭력이라는 단어가 질서정연하게 느껴지지 않아 불만이라면 무력이라는 단어로 대체해도 좋다. 상명하복이 기초원칙이며 옳든 그르든 군대에서 민주주의는 보류된다. &amp;ldquo;올바른 국가정체성&amp;rdquo;이라고? 합의된 가치에 기반을 두지 않은 &amp;ldquo;올바른 국가정체성&amp;rdquo; 교육은 정부의 이해관계에 따른 정치적 의식화 교육일 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둘째로 안보의식의 안보는 도대체 누구의 안보를 말하는 것인가? 국가의 안보인가 국민의 안보인가? 국가의 안보는 국민의 안보와 일치하는가? 안보의식이란 도대체 어떤 안보의식을 말하는 것인가? 국가의 안보는 국민의 안보를 위해서만 정당하다는 의식인가? 아니면 국가의 안보를 위해 국민이 봉공해야 한다는 의식인가? 모두가 이미 알고 있듯이, 오늘날 그 어느 곳에서도 &amp;ldquo;국민의 안보&amp;rdquo;라는 말은 쓰이지 않는다. 세상이 우려하는 것은 &amp;ldquo;국민의 안보&amp;rdquo;문제가 아니라 &amp;ldquo;국민의 안보 불감증&amp;rdquo; 뿐이다. 국민은 오로지 국가의 안보를 위해 동원되는 대상이며, 역을 가르치는 것은 필요치 않다. 그런데 그 필요는 대체 누구의 필요인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2.&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주간조선과 일부 언론의 &amp;ldquo;수학여행&amp;rdquo; 비판은 문제를 수학여행이라는 협소한 부분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시각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들에게 수학여행이 우려되는 이유는 중앙일보에 게재된 기사, &amp;ldquo;교육적 수명 다한 수학여행 폐지하자&amp;rdquo;의 첫 문장에서 간략하게 나타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dquo;수학여행은 대규모 인원이 단체로 움직이는 특성상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어떠한 가치관을 공유하는 이들에게 있어 비판의 시작이 될 이 문구는, 문구 자체로서는 이상하지 않다. 대규모 사상을 방지하자는 주장은 합리적이다. 불의의 사상을 방지하자는 합의가 있은 후에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다만 주간조선의 커버스토리 제목처럼, 문제의 핵심을 &amp;ldquo;수학여행&amp;rdquo;으로 지목하는 시각의 특징은 &amp;ldquo;대규모 사상&amp;rdquo;에 대한 문제의식이 &amp;ldquo;사상&amp;rdquo;에서 근거하지 않고 &amp;ldquo;대규모&amp;rdquo;에서 근거한다는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다시 말하지만 배가 침몰하고 사람이 죽은 것 자체는 불의의 사고가 아니다. 그것은 이미 검토된 비용이다. 예상하지 못했던 악재는 &amp;ldquo;수학여행&amp;rdquo; 뿐이다. 대규모의, 그리고 여론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계층의 죽음 말이다. 죽음을 단순한 숫자로 취급하는 것이 더는 두렵지 않게 되었을 때 언론은 경제학자들에게 묻게 될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dquo;몇 명의 죽음부터가 위험한 손실인가?&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이익 대비 손실, 수학여행의 필요와 병영체험의 필요는 이를 근거로 추산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3.&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어디 수학여행이나 병영체험 뿐인가? 인권의식이 발전할수록 청소년 자살률이 줄어드는 세계적 추세와 정반대로, 한국의 어린이&amp;middot;청소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지난 10년간 47% 증가했다. 교육부의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중 40%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고 9%가 실제로 자살을 시도했다고 한다. 자살의 동기는 &amp;lsquo;성적, 진학문제&amp;rsquo;가 53.4%라는 압도적인 자리를 차지한다. 매년 수능날이면 성적비관 자살 뉴스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 더 이상 사람들은 이런 뉴스로 놀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amp;ldquo;경쟁교육 이래도 계속 해야 하나&amp;rdquo;라는 질문은 아무렇지 않게 무시당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방과 후 문제풀이 수업, 강제보충학습과 강제자율학습, 토요 강제 등교 등 학생을 기계로 만드는 교육방식은 시간이 갈수록 &amp;lsquo;공부시간 인플레&amp;rsquo;현상을 만들고 있다. 정부와 교육부는 사회적 반대도 무릅쓰고 중고등학교의 일제고사를 강행하며, 탈락한 청소년들을 자살로 몰고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죽음을 무릅쓴 교육은 도대체 누구를 위함인가? 죽은 청소년을 위해서는 분명 아닐 것 아닌가.&lt;/span&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IV. 생명은 이윤보다 무거운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물론, 반박할 수 있다. 인간의 가치는 0.000018%로 취급되고 있지 않으며, 특수한 회사의 특수한 상황일 뿐이라고. 그러나 세월호 사건이 고발하고 있는 것은 청해진해운이라는 한 회사만이 아니다. 아니, 이 사회 전체가 온몸으로 자신의 속성을 고발하고 있다. 상조회사는 공무원을 사칭해 유족에게 접근하고, 세월호를 소재로 삼은 스팸문자는 전 국민의 손안에서 요동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언론은 조회수와 특종을 위해 자극적인 보도와 저열한 제목들을 뱉고 있다. &amp;ldquo;기레기&amp;rdquo; 때문이라고? 멀쩡한 사회에서 기자들이 도덕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켰단 말인가? 시장도, 소비자도 권하지 않는 폭동을, 오로지 그들이 악랄하기 때문에?&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이것이 사업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다. 죽음을 투자비용으로 전제한 사업이 참사의 요인 중 하나였다면, 참사 이후 벌어진 것은 죽음 자체가 고부가가치의 상품으로 등장한 모습이다. 생명은 이윤보다 무거운가? 이 물음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겠다. 생명은 가공을 통해 이윤을 창출하며, 죽음 또한 그렇기 때문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2011년, &amp;ldquo;아랍의 봄&amp;rdquo;과 함께 바레인이란 이름의 아랍 섬나라에도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바레인 왕정은 군대를 동원해 강경 진압을 펼쳤고, 이 진압에 주로 사용된 장비는 최루탄이었다. 그해 12월 31일, 15세 소년 사예드 하쉬엠 사에드가 최루탄을 얼굴에 맞고 사망했다. 그리고 얼마 후, 경찰은 조문객들을 해산시키기 위해 장례식장에 최루탄을 쏘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사에드의 얼굴을 때린 최루탄은 한국산이다. 지금까지 바레인 왕정은 한국 기업들로부터 최루탄 150만 발을 수입했다. 바레인 전체 인구 약 120만 명. 국민 1인당 1발씩 쏘고도 남는다. 최루탄만이 아니다. 필리핀에는 한국산 경공격기가 날아다니고, 서아프리카에서는 한국산 총알이 날아다닌다. 박근혜 대통령은 무기산업을 &amp;ldquo;창조경제 꽃피우는 동력&amp;rdquo;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국산 경공격기 24대가 이라크로 수출된다는 소식에 방송은 앞다투어 &amp;ldquo;쾌거&amp;rdquo;를 칭송하고 2조원의 수익이 생겼다고 보도했다. 그 공격기가 대체 누구를 공격하는지는 관심 밖이다. 무기 수출을 &amp;ldquo;국가 경쟁력&amp;rdquo;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 누구도 반문하지 않는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창조경제의 꽃이라면, 창조경제의 정체는 생명의 무게를 초과하는 이윤 바로 그것이며 양심은 비효율적인 비용에 불과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더 새로운 상품은 끝없이 요구된다. 죽음 비즈니스 조차 포화한 오늘 블루오션을 찾는 자들은 금기의 벽을 깨길 원한다. 물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amp;ldquo;유족충&amp;rdquo;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유족 혐오발언은 하루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등장하고 있다. 어느 잊혀진 우익논객은 유족들의 분노에 대해 &amp;ldquo;시체장사&amp;rdquo;라고 표현하고, 인생역전을 원하는 어느 우익언론의 편집장은 &amp;ldquo;이 (유족)여자는 종북야권 성향입니다. (가족이)참으로 잘 죽었네요&amp;rdquo;라는 말과 함께 유족의 사진을 배포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혐오발언을 통해 관심을 끄는 것뿐이다. 소위 &amp;ldquo;어그로&amp;rdquo; 말이다. 50년대 우익의 정치선동을 흉내내며, 혐오사회의 진보를 여는 낭중지추가 되고자 하는 넷우익들은, 지적 열등감의 치료비를 벌기 위해 무정부 상태의 뇌세포를 불쏘시개로 만들며 초과노동에 몰두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선구자다! 한국사회라는 기차가 이대로 계속 달린다면 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V. 나 이외에 누구도 선동하지 말지어다&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이 와중에 집권여당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마치 &amp;ldquo;엉뚱한 곳&amp;rdquo;처럼 보이는데 쏠려있다. 한기호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이 기회에 좌파를 척결하자고 주장한다. 송영선 의원은 &amp;ldquo;국민 의식부터 재정비할 기회가 된다면 꼭 불행인 것만은 아니다. 좋은 공부의 기회가 될 것&amp;ldquo;이라고 말했다. 이 말들은 &amp;rdquo;망언&amp;ldquo;이며 &amp;rdquo;말실수&amp;ldquo;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맥락을 공유한다. 국민의 생명은 기회비용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국회가 물리적으로는 여의도에 있되 영적으로는 올림푸스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이 말들은 실수가 아닐뿐더러 논리적이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위하여 저 멀리 떨어진 이라크 국민들의 죽음을 감수하듯이, 저 멀리 떨어진 바레인의 죽음을 감수하듯이, 저 멀리 떨어진 밀양에 송전탑을 짓기 위해 현지 주민들에게 경찰부대를 보내는 일을 감수하듯이, 그들도 지상에 있는 국민들의 죽음을 감수하는 것이 이상한가? 만약 그것이 이상한 일이라면, 모든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물론 신들에게도 걱정은 있다. 그 걱정은 바로 신들에게만 허락된 일을 인간이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고귀한 정치적 발언의 권리이며, 선동의 권리다. 그러기에 그들은 정부 관료에게 항의하는 유가족을 &amp;ldquo;선동꾼&amp;rdquo;이라 선동하며, 책임지지 않는 정부에 대한 모든 분노를 &amp;ldquo;북한의 선동에 놀아나는&amp;rdquo; 것이라고 선동한다. 한편으로는 이미 언론을 통해 알려졌듯이, 국정원이 나서서 참사 관련 전문가들의 &amp;lsquo;인터뷰 통제&amp;rsquo;에 힘쓰고 있다. &amp;ldquo;조금이라도 안 좋은 말이 나가면 누가 말했는지 찾아낸다&amp;rdquo;는 학자들의 증언과 같이, 작은 불경함도 놓치지 않는다. 정치도 선동도 오로지 올림푸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 누구도 선동하지 말지어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VI. 모두가 너희들 가운데서 나리라&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도망친 선장은 만고의 죄인이 되었고, 끝까지 남은 승무원은 죽어서 영웅이 되었다. 죽은 학생들의 뒤를 따라 자결한 교감은 의인으로 남았다. 각자의 행동에 대한 의로움의 저울눈금을 누가 의심하겠는가? 그러나, 그 눈금을 다 합쳐도 책임의 저울눈금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누가 &amp;ldquo;진실로&amp;rdquo; 모르겠는가? 저 중의 그 누가 안전하지 않은 배를 만들었고, 저 중의 누가 그 배의 운행을 허가했는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악당도 영웅도 오직 결정할 수 없는 자 안에서만 나며 비교 역시도 그들 안에서만 이루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은 오로지 &amp;ldquo;정규직 귀족노조&amp;rdquo; 때문이며, 빈곤한 자의 죽음은 오로지 &amp;ldquo;이웃의 무관심&amp;rdquo; 때문이다. 사장은 어디로 갔는가? 정부는 어디로 갔는가? 지난 23일, 25번째 쌍용차 해고노동자가 죽었다. 이 사람은 누구 때문에 죽었단 말인가? 책임의 저울은 대체 어디로 사라졌는가? 저들을 올리기에는 당치도 않게 거대한 그 저울 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그 저울은, 400km 밖에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VII. 박근혜는 누구인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4월 20일, 피해자 가족/유족들이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함에 항의하며 청와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진도에서 청와대까지 400km의 여정은 고작 10km도 가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경찰부대가 그들을 막아섰기 때문이다. 경찰은 &amp;ldquo;안전을 위해서&amp;rdquo;라고 이유를 설명했지만, 그것이 누구의 안전을 말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사복경찰들을 유족들 틈에 배치해 유족들을 감시하게 하고, 곳곳에서 열리는 추모제들을 방해하고, 정부를 향한 비판이 나오지 않도록 촉각을 세우는 모습들이 유족들의 안전을 위한 것은 아닐 터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피해자 가족의 청와대 항의방문이 성공적으로 진압된 다음날, 박근혜 대통령은 상식 밖의 발언으로 언론을 들끓게 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dquo;저뿐 아니라 국민들께서 경악과 분노로 가슴에 멍울이 지고 있다.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의 행위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살인과도 같은 행태였다&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대통령의 말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현대사회의 어떤 정치인도 말하지 않을 법한 말을 두 가지 발견할 수 있으며, 그 말들로부터 네 가지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1. &amp;ldquo;저뿐 아니라 국민들께서&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i. 대통령은 자신이 &amp;ldquo;분노하는&amp;rdquo; 주체이며 피해자라고 믿는다. 이는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amp;ldquo;회사도 피해를 입었다&amp;rdquo;고 항의하던 이준 회장의 태도와도 같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ii. &amp;ldquo;국민뿐 아니라 저도&amp;rdquo;가 아니라 &amp;ldquo;저뿐 아니라 국민들께서&amp;rdquo;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 보다 자신이 분노하는 것이 더 당연히 예측 가능한 일이라고 판단하며, &amp;ldquo;저뿐 아니라 국민들께서(도)&amp;rdquo; 분노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2. &amp;ldquo;선장과 일부 승무원의 행위는 ~ 살인과도 같은 행태&amp;rdquo;&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i. 대통령이 책임자가 아니라 심판자의 자격을 자처하고 있으며, 책임의 소재를 선장과 승무원에 국한시키고 있다.&lt;/span&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ii. 외신들이 이미 비판했듯이, 대통령이 판결에 영향을 주는 발언을 하고 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국민의 안전이라는 구실을 제외하면 한치의 존재 이유도 없는, 오히려 민폐에 불과한 것이 국가와 정부라는 존재다. 그러한 존재의 수장이라는 자가 스스로의 책임을 자연인의 수준으로 격하하고, 자신을 피해자의 위치에 놓았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박근혜 대통령의 판결에 따르면, 범인은 선장이다. 오로지 선장이다. 우리는 이 선장이 비도덕적이었다는 것에 동의한다. 많은 이들을 살릴 수 있었던 가장 유력한 사람이 도망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강조하지만 이 월 수입 200만 원 정도의 1년짜리 촉탁직 선장이, 낡은 배를 운행할 수 있게 규제를 완화했고 배를 비정규직으로 채우게 만들었으며 안전비용을 대폭 축소했다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 그는 &amp;ldquo;그 배 안에서만&amp;rdquo;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가 설사 이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자라 할지라도, 그는 이 사고를 주재할 능력이 애초에 없었다. 대통령의 판결은 정의도 추리도 그 무엇도 아니고, 오로지 말의 목을 자르는 행위일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발걸음을 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대통령이 세월호 사고 앞에서 보여준 것은 사과가 아니라 분노였다. &amp;ldquo;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묻겠다&amp;rdquo;며 도통 자기는 책임을 질 것이 없는 양 굴고 있다. 이 자가 정말 말 그대로의 &amp;ldquo;국정책임자&amp;rdquo;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하는 자인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군주 조차도 국가대사에는 죄를 스스로 청하는 법인데, 통치하되 책임지지 않는 이 자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인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정할 것을 정하며 목소리로 말하되 실패의 책임은 오로지 무도한 백성에게만 존재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의 정체는 신의 음성을 전하는 무오류의 제사장이 아닌가? 그렇다면 신은 어디에 있는가?&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VIII. 이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국가와 사회라는 집합체는 태생을 잊고 마침내 그 이름 자체가 신물이 되었다. 국민들은 왕 보다도 더 형체가 없는 것을 숭배하고 있다.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 신의 제사장이 통치함에 따르는 사이비 율법국가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squo;경제적 성장&amp;rsquo;이 &amp;lsquo;인간의 행복&amp;rsquo;이라는 가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경제적 성장 그 자체가 가치이며 인간의 행복은 그 가치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것이 오늘의 율법이다. 그리하여 수단이 가치가 되며, 수단을 위한 수단이 가치가 되며, 만들어진 것들을 위해 본래 있었던 자들이 봉공하는 것이 오늘의 질서다. 어떠한 경로의 폐기도 용인하지 않는 것은 계급을 막론한 다수 국민정서의 공통성이다. 부동은 곧 정상성이며, 체제의 변동은 상상으로도 인정되지 않는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공존을 위한 혁명이 학살보다 비도덕한 사회에도 도덕적이고자 하는, 혹은 그렇게 인정되고자 하는 욕망은 상존한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신의 도덕성을 증명하려 하고 타인의 도덕성을 복원하려 하지만, 그들의 행동은 현재의 비극을 대변할 뿐이다. 죽음을 팔 용기도 잔인함도 없으려니와 그러한 시대를 용인하지 못하는 애꿎은 자의 정의감은, 그가 책임의 저울에 올라 제사장의 죄를 대속함으로써 이 시대를 유지하는 핵심 동력이 된다.&lt;/span&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IX. 침묵은 무엇인가&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모든 것은 일어났던 일이고, 앞으로도 일어날 일이다. 그리고 이 말 조차도 이미 20년 전 성수대교 붕괴사건으로 가족을 잃은 유족의 입을 통해 경고되었던 말이다. 말의 목을 수없이 자르고 질주하면, 우리는 다른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혹은 예의와 추모로 그것을 막을 수 있을까?&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불편한 침묵이 이 나라를 황사처럼 떠돌고 있다. &amp;ldquo;진로를 바꾸자&amp;rdquo;는 말은 금지되며, &amp;ldquo;죽음을 슬퍼하는 마음을 가질 것&amp;rdquo;은 요구된다. &amp;ldquo;애도&amp;rdquo;라는 똑같은 취지에서! 이 앞뒤가 다른 주문은 한가지로만 설명된다. 그 죽음은 &amp;ldquo;필요한 필연&amp;rdquo;이며 &amp;ldquo;권장되는 희생&amp;rdquo;이라는 것. 그러니 그것이 누구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건, 우리는 그 말에 따를 수 없다.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은 예의도 아니고 대응도 아니며 오직 &amp;ldquo;하지 않음&amp;rdquo;일 뿐이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지금 우리가 제사장을 걷어차는 것뿐 아니라 그 신전 자체를 뒤엎자고 말한다면, 성장주의 율법을 폐기하자고 말한다면, 대통령의 직위를 폐기하고 모든 죽음의 비즈니스를 - 그러니까 무기수출도, 핵발전도, 불안정노동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모든 경쟁과 차별도! - 폐기하자고 말한다면, 지금 이 시간에도 &amp;ldquo;규제를 혁파하자&amp;rdquo;며 지갑을 만지작거리는 자들을 몽땅 끌어내고 이윤보다 생명이 그 어느 순간에도 우선하는 것을 우리의 율법으로 삼자고 말한다면, 그렇다면 당신들은 그것을 선동이라고 욕할 것인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그렇다. 우리는 선동하려 한다. 추모하고 슬퍼하되 참극은 그대로 계속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당신을 상대로. 어떠한 요구도 배제하고 어떠한 설득이나 견해의 개입도 허용하지 않는 &amp;ldquo;순수한&amp;rdquo; 태도야 말로 불순하며, 비정치적인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야만적인 정치다. 뭇사람들이 그토록 저주하는 &amp;ldquo;선장의 죄&amp;rdquo;는 바로 그 요구였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dquo;움직이지 말고 거기에 멈춰있어라!&amp;rdquo;&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amp;ldquo;순수한&amp;rdquo; 자들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는 상상조차 필요없다. 침몰하는 배에서 누구의 편도 아닌 부동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니 하찮은 중립놀이는 제쳐두고, 우리는 당신을 선동하려 한다. 당신 역시 모두를 선동해야 한다고.&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진중한 애도의 물결 속에서 시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우리가 무례한가? 맞다. 우리는 무례하다. 무례한 체제 안에서 예의바른 구성원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 속에 화염이 존재할 수 없듯이. 그러나 더 무례한 것은 생명에 대해 무례한 절대 권력을 침묵으로 용인하는 것이며, 더욱더 무례한 것은 그 무례를 권장하는 것이다. 그것은 생명에 대한 무례이며, 인간에 대한 무례다.&lt;/span&gt;&lt;br /&gt;&lt;br /&gt;&lt;br /&gt;&lt;/p&gt;
&lt;blockquote style=&quot;font-family: 'Nanum Gothic'; background-color: #f9f9f9; color: #474747; text-align: justify;&quot;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h2 style=&quot;color: #333538;&quot; data-ke-size=&quot;size26&quot;&gt;X. 이 정부를, 그 전통을 통으로 들어내야 한다&lt;/h2&gt;
&lt;/blockquot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아, 여전히 당신은 의로운 권력자와 의로운 기업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한 자들이 존재하며, 희망이라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예를 들어 저 세월호 보도로 칭송받는 JTBC를 만든 삼성이라거나, 도도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역으로 피해자들을 위해 묵념하자고 제안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라거나.&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그러나 그 숭고한 묵념 후,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을 상대로 꺼낸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바로 규제완화다. 미국 정부는 지금 한국의 산업은행 민영화, 스크린 쿼터제 완화, 독점 대기업의 횡포를 제한하기 위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 폐지, 환경정책과 의약품 가격 인하 정책 재고 등을 요구하고 있다. 오바마의 묵념은 &amp;ldquo;이 요리를 위해 희생된 생명들에게 명복을 비는&amp;rdquo;　식사전　기도에 불과하다. 당신은 예의바른 도살자를 원하는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침묵이 허공을 도는 가운데 오로지 삼성자본을 등에 업은 JTBC만이 진실의 기수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세월호 침몰에 &amp;ldquo;안타깝다&amp;rdquo;며 삼성 2호 크레인을 급파한 이건희 회장은, 정작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백혈병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에게는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amp;ldquo;산재 없는 삼성&amp;rdquo;의 브랜드를 위해, 산업재해 신청을 시도하는 유족들을 회유 협박하는 등 끔찍한 행동을 지속하고 있다. 게다가 그 삼성 2호의 형뻘인 삼성 1호가 한 일을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태안반도에서 최악의 기름유출사고를 일으킨 삼성중공업이 사고 직후 한 일은 사과도 수습도 아니고, 항해일지 조작이었다는 사실을 모두 기억하고 있지 않은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아 혹시 당신은 그들이 집권하지 않았던 태평성대 시절의 권력자들을 이야기할 셈인가? 비정규직도 없었고 국민의 생명이 소중했으며 이윤이 생명보다 소중하게 다뤄졌던 시대를. 부실 시공된 지하철도 없고 침략전쟁에 파병하지도 않았고 핵발전도 없었으며 대통령이 타국의 수장과 만난 자리에서 한국산 무기를 사달라고 공개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던 그 시대를. 그런데, 기억이 안나서 그러는데 그게 도대체 언제인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이 나라는 그 어디도 망가지지 않았다. 부자부터 가난한 자 까지, 합심하여 전통을 지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성수대교 붕괴에서 세월호 참사까지, 모두 그저 전통이 무사히 지켜지고 있다는 신호에 불과하다. 모든 참극은 성장주의 계획의 파편이며, 그 계획이야 말로 우리가 망가뜨려야 할 대상이다. 선거 때까지 기다리자고? 맙소사, 우리는 이윤보다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을 확인하는데 투표가 필요하단 말인가?&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절벽으로 질주하는 고속도로를 우회하는 길은 거친 숲길 뿐이다. 생명의 대척점으로 가는 경로에서 과속을 주장하는 이 정권을 제거해야 한다. 그 후로 더 이상은, 이 경로를 폐기하려 하지 않는 그 어떤 정권도 진입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입을 봉한 채 기도하는 자들 가운데, 실눈을 뜨고 입술을 달싹거리는 모든 자들이여, 우리는 신심의 열정을 무시하고 제사장의 매서운 눈치도 외면한 채 제단 위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지르고자 한다.&lt;/span&gt;&lt;br /&gt;&lt;br /&g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333333; text-align: justify;&quot;&gt;저 놈들을 당장 쫓아내자!&lt;/span&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014년 4월 27일&lt;br /&gt;청년좌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원문&lt;span&gt;&amp;nbsp;&lt;/span&gt;&lt;a href=&quot;http://yleft.kr/wp/?p=967&quot;&gt;http://yleft.kr/wp/?p=967&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2 다른 이들의</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90</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90#entry890comment</comments>
      <pubDate>Sat, 20 Apr 2024 19:39:45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9</link>
      <description>&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스크린샷 2023-11-17 오후 7.16.34.png&quot; data-origin-width=&quot;1110&quot; data-origin-height=&quot;1198&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qhhZT/btsAvqXFpgf/3U4EaR4D8Z6tJlHLIjcACk/img.pn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qhhZT/btsAvqXFpgf/3U4EaR4D8Z6tJlHLIjcACk/img.png&quot; data-alt=&quot;눅18:1-8(RNKSV)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qhhZT/btsAvqXFpgf/3U4EaR4D8Z6tJlHLIjcACk/img.pn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qhhZT%2FbtsAvqXFpgf%2F3U4EaR4D8Z6tJlHLIjcACk%2Fimg.pn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1110&quot; height=&quot;1198&quot; data-filename=&quot;스크린샷 2023-11-17 오후 7.16.34.png&quot; data-origin-width=&quot;1110&quot; data-origin-height=&quot;1198&quot;/&gt;&lt;/span&gt;&lt;figcaption&gt;눅18:1-8(RNKSV)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lt;br /&gt;최근 가장 마음에 드는(?) 예수님의 비유 중 하나는 과부와 재판관 이야기다. &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LUK.18.1-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누가복음에만 실려 있는 이 이야기&lt;/a&gt;는, 예수님의 비유로서는 드물게, &quot;이 삽화의 의도/의미/목적은 이러하다&quot;라는 명토가 박혀 있다. 그것도 첫마디, 이야기를 운도 떼기 전부터 말이다. 아마도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일러두기'였을 게다. 경고! 여기서부터 나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은 의미만을 가집니다. 그 이상의 뜻을 탐색하려고 시도하지 말 것.&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2.&lt;br /&gt;이해는 된다. 이 우화의 주장은 (가뜩이나 급진적인) 예수님의 견해 가운데서도 독보적으로 위태롭기 때문이다. 요컨대 원하는 걸 얻을 때까지 조르고 떼 쓰면 된단 얘기지 않은가? 이 메시지를 이렇게 그르게 읽고 틀리게 받아들여 버리면, 그건 고스란히 잘못된 태도와 실천과 문화와 조직을 낳을 것이다. 로마 제국 치하의 피식민지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런 사태만큼은 막아야 했을 것이고, 그래서 이 이야기를 &quot;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quot;라는 교훈으로 공식 국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실은 어느 제국 치하에서든지 마찬가지다. 그 얘기는 잠시 후에 다시 하기로 하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3.&lt;br /&gt;아무튼 그래서 여기서는, 정경의 정설/정론이 인정할 수 있는 수준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실질적으로 이 메시지를 읽어볼까 한다. 내가 이 비유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4.&lt;br /&gt;역설적이게도, 나는 이 이야기가 딱히 &quot;신앙적&quot;이지 않다는 점에서 은혜를 받고 있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신앙적이기는커녕 대단히 인간적인 '속세'의 이야기다. 과부가 원하는 바를 이루는 그 전체 서사 가운데 믿음, 기도, 선행 따위는 일절 등장하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곤 오직 재판관 한 명을 죽어라 따라다니며 집요하게 시위하는 한 여자, 그리하여 마침내 그 덕분으로(만)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고독한 여자뿐이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초반의 머릿말이 아니었던들 &lt;/span&gt;이 이야기는 &quot;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quot;이 되기가 대단히 어렵다. 흡사 창세기/사사기적이기까지 한 이 세속적인 삽화에는 신앙적인 요소가 딱히 없고, 그래서 우리는 그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5.&lt;br /&gt;&quot;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quot;라는 언급이 있는데 그게 신앙적인 요소가 아니라고? 당연히 아니다. 과부가 재판관을 졸라대는 것을 보고 하나님 두려운 줄을 알게 된 것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과부가 시위하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시위해야 된다고? 그건 또 무슨 아닌 밤중의 잠꼬대인지 모르겠다. 됐고, 재판관의 혼잣말을 들어보자. 그가 이 사건을 외면하다가 마침내 접수하기로 맘먹는 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어서인가? 과부가 그에게 기도를 했기 때문인가? 아니다. 오직 &quot;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quot; 한다는 이유뿐이다. &quot;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quot;(눅18:5b).&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6.&lt;br /&gt;선행 연구 근거자료 없이 하는 소리지만, 이 재판관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언급은, 그가 기독교적/유대교적 의미에서의 불경죄를 저질렀다는 식의 문자적인 진술이 아니고, 그가 그만큼 부도덕하고 몰염치했다는 묘사를 위한 수사였을 가능성이 더 크다. 말하자면 '직업 윤리가 심각하게 결여된 법조인'이라는 개념을 그렇게 표현하신 거였겠지. 이 개념은 요즘의 우리에게도 어렵다. 하물며 1세기 무렵 고대 근동의 저학력 아람인과 헬라인에게는 어땠겠는가? 자연히, 우리말의 &quot;땡중&quot;에 해당하는 표현을 써야 했을 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7.&lt;br /&gt;요컨대 그는 직업 윤리가 부족한 판관이다. 하지만 무능하거나 멍청하지는 않다. 실은 오히려 반대다. 그는 냉정하리만치 객관적이고 명석한 판단력의 소유자다. 나로서는 특히 이 부분이 흥미롭다. 상상해 보시라. 몇 날이고 며칠이고 질리지도 않고 동네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는 과부를 겨우 외면하여 집에 돌아온 그 재판관이, 왠지 그날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자기 방에 앉아, 직업적으로 훈련받은 생각을 시작하는 거다.&lt;br /&gt;'지금까지 이 과부 때문에 내가 얻은 득과 실은? 앞으로도 이 과부가 나를 괴롭힐 확률은? 난 이런 원고의 탄원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놈이지만, 혹시 만약에 내가 이 탄원을 접수해 주면 그때 내가 얻는 득과 실은?'&lt;br /&gt;그리고 그는 이 판단에(만) 근거하여 결정을 내린다. 어쩌면, 이렇게까지 자기 상황을 제삼자적으로 조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어설픈 정의감 같은 것보다 더 세련된 자질일는지도 모른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8.&lt;br /&gt;혹시 그는, 바로 이 태생적 기질 때문에, 어느 날부턴가 이런 재판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건 아닐까? 설마 그도 처음부터 이런 판사는 아니었을 테다. 이 재판관이 과부의 탄원을 처음부터 덮어놓고 &quot;들어주려고 하지 않&quot;았을 리는 없다. 처음에는 그냥 다른 탄원 보듯이 똑같이 봤겠지. 그래서 봤더니 이런! 아무래도 사건성이 없는 거다. 피고가 애매했든지, 책임 소재나 비중이 불분명했든지, 피해라고 주장하는 그걸 현행법 내에서 규명하기가 곤란했든지 했을 테다. 그래서 처음 한두 번은 이 탄원을 점잖게 돌려보냈겠지. 참 안됐는데 이건 내가 법정에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는 사안이니 딴 데 가서 알아보라고. 그랬더니 이게 과부 입장에서는 &quot;드디어! 내 사연을 읽은 재판관이 한 명은 나왔다!&quot;가 되고 말아서, 그때부터 이 과부와 재판관의 악연이 시작된 그런 것일 테다. (그렇게 읽어야, &quot;왜 이 과부는 다른 판사는 냅두고 꼭 얘한테만?&quot; 하는 의문이 풀린다. 애초에 이게 가장 현실성 있는 전개이기도 하다.)&lt;br /&gt;그리하여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열려 있되 어느 정도는 해피 엔딩을 기대해볼 수 있다. 그 과부는, 그 억울함을 100% 풀지는 못했을지라도, 최소한 &quot;사법부의 판단을 받았다&quot;라는 부분만큼은 한풀이를 했을 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9.&lt;br /&gt;문득, 태평로, 테헤란로, 의사당대로 여기저기에 몇 날이고 며칠이고 너덜너덜 걸려 있는 피켓, 텐트, 분향소들을 생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0.&lt;br /&gt;슬프게도, 예수님 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바, 사회적 약자가 공공과 공권력을 향해 뭔가를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요구 혹 탄원하며 시위하고 있을 경우, 그 요구와 탄원은 그 지속력이 다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끈질기게 무시된다. 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사회적 정의는 과연 (왜) 실현되지 않는가? 사회적 약자들의 억울함이 해결될 길은 (어디에) 있을까?&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lt;span&gt;&amp;nbsp;&lt;/span&gt;예수님은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하고 계신 것이다.&lt;/span&gt; 이걸 알아채지 못하고 이 이야기를 복음서에 싣지 않은 다른 제자들은 아무래도 &quot;꿘&quot;이 아니었는가 보다. 이 농담은 끝에서 한 번 더 하기로 하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1.&lt;br /&gt;잠시 성경책을 보던 눈을 들어 그대로 주변을 읽어 보자. 일본 정부가 &quot;하나님을 두려워&quot;하고서야 과연 전범국으로서의 송구함이 없는 철면피 얼굴로 노인의 얼굴에 돈다발을 던지는 태도를 보일 수 있을까? 모 반도체 대기업이 &quot;하나님을 두려워&quot;했던들 과연 그들 밑에서 일한 것 외에 아무 공통점이 없는 &quot;또 하나의 가족&quot;들의 희귀병을 그렇게 차갑게 나몰라라 할 수 있었을까? 해병대 제1사단장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 이상민 &quot;장관&quot;이, 김건희가, 남양과 쿠팡과 카카오와 아디다스의 오너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했더라면?&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2.&lt;br /&gt;퍽이나 그렇겠다 그치? 안 그러니까들 저러는 거야. 저것들은 &quot;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는&quot; 정권이고, &quot;사람을 무시하는&quot; 자본이며, 직업 윤리가 심각하게 부족한 전문직능집단이고 사회적 도의가 없는 기득권이야. 그래서 끈질기게 모르는 체하는 거라고. 분명히 어느 정도는 자기들이 말을 듣고 책임을 져야 하는 여자들의, 유가족들의, 사회적 약자들의, 너희들의 탄원과 불매와 시위를.&lt;br /&gt;그런데 말이지, 아무리 그래도 정말로, 정말로 끈질기게 탄원하고, 끝까지 불매하고, &quot;자주 그에게 가서&quot;(눅18:3b) 투쟁하고 시위하면,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니? 저것들도 어느 날인가는 질려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해보는 날이 오게 될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남편 없는 여자 같은 것들이 나를 괴롭게 하니, 해 달라는 걸 해주고 확 치워버려야겠다' 같은 생각을 말이야. 혹시라도, 정말 드물게 가끔씩이라도, 정말로 그런 일이 있고 정말로 그런 날이 오면, 너희의 소원과 억울함은, 잠깐이나마 조금이나마, 이 세상에서 풀리고 해결되는 걸 볼 수도 있지 않을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3.&lt;br /&gt;나는 너희들의 삶에 그런 싸움이 있어도 된다고 봐. 그런 싸움은 그런 식의 승리도 얼마든지 괜찮다고 생각해. 세상은 악하기 짝이 없지만, 악을 이기려는 노력 자체는 어떤 이유로도 무작정 좌절될 필요가 없어. 정말이야.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그런 싸움은 승리할 수 있고, 그 승리에는 어떤 그럴싸한 드라마나 종교적 교훈도 필요가 없어. 내 이름까지 들먹일 것도 없어. 말이야 바른 말이지 &quot;&lt;span style=&quot;background-color: #ffffff; color: #121212; text-align: start;&quot;&gt;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lt;/span&gt;&quot;(눅18:8b)&lt;br /&gt;왜냐면, 현실에서도, 아주 가끔 악이 패배할 때는 그렇게 패배하거든. 다른 게 아니고, &lt;/span&gt;질려서. 너희들에게 질려서. 너희가 정당하다는 걸 깨달아서도 아니고, 너희를 갑자기 존중하기 시작해서도 아니고,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걸 (너희를 통해서) 깨달았다느니 되도 않는 종교적 도덕적 분칠 때문도 아니고, 그냥 나약한 그릇됨이, 너희의 옳은 호소를, 그 호소의 지구력을 더 버티지 못해서, 어느날 하루 아침에 우르르 무너지고 휙 뒤집히고 그러기도 하는 법이거든. 그런 건 소망해도 좋아. 내가 정말 이 얘기는 꼭 한 번은 해 보고 싶었어. 이걸 &quot;누가&quot; 좀 적어주면 좋을 텐데.&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4.&lt;br /&gt;직전의 두 단락은 아마 예수님의 목소리로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웬 백발 미치광이 '길거리 목사'가 짝퉁 민중신학과 짝퉁 레닌주의를 적당히 섞어 떠드는 취한 소리처럼 들렸겠지. 그럴 만도 하다. 누가복음 18장의 이 대목은, 예수님의 다른 가르침들과 비슷하게, 이 정도의 현실적 구체적 묵상, 설교, 의논을 누려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참 이상하지. 분명 원래의 예수님 말씀은 당대 일반 인민의 일상에서 진리를 추출한 것이었고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기가 더 어려웠는데, 오늘날의 &quot;그리스도인&quot;들은 그걸로 '비유풀이' 같은 미신, '관주주해', '원어분석' 같은 지적 유희 등을 탐닉하기 바빠, 이해해야 할 요점만 쏙 빠지는 &quot;성경 공부&quot;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5.&lt;br /&gt;그리고 &quot;공중 권세&quot;는, 사회 기득권은, 악의 제국은 그 상태를 기꺼이 방치하고, 필요하면 더 강력한 오독을, 더 확실한 맹목을 장려 및 조장하기도 한다. 그게 그들의 수성전에 도움이 되니까. 나는 개인적으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행태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quot;피해자&quot;를 &quot;비난&quot;한다는 기상천외한 조합이 어떻게 성립한다는 건지부터를 모르겠는 입장이다. 하지만 분명 이 사회는, 누구랄 것 없이 어느 나라랄 것 없이, 기회 닿는 대로 피해자를 비난하기를 마지않는다. 하물며 그 피해자들의 피해 자체, 억울함 자체, 불합리와 부조리와 모순에 대해서는 더 볼 것이 있겠는가? 과부의 청을 무시하는 &lt;span style=&quot;color: #333333; text-align: start;&quot;&gt;재판관이&lt;span&gt; 되려면,&lt;/span&gt;&lt;/span&gt; 그 재판관은 최소한 &quot;사람을 무시&quot;(눅18:2b)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자본에게 이윤이 된다면, 정권에게 표가 된다면, 알량한 자아와 기득권 유지에 도움이 된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역량을 정확히 거기에 집결시킬 의지마저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는, 누가복음 18장을 분명 읽고 듣고 설교하고 QT하는데도 불구하고, 사회의 소수자들, 투쟁하는 단위들, &quot;과부&quot;들에 대해 완전히 눈멀고 귀먹은 교인들을 길들이고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6.&lt;br /&gt;그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워 믿은 사람으로서는, 누가복음 18장에서 봤던 바로 그 과부와 바로 그 재판관이 눈에 띄면, 과부 편을 들어야 한다. 그게 맞다. 그리고 그 억울한 과부는 국민신문고와 &quot;단식 n일차&quot; 텐트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고, 그 불의한 재판관은 날마다 TV 뉴스와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 이 모든 시위 투쟁을 성경 속 과부처럼 &quot;낙망치 말&quot;고 모두 끝까지 밀어붙이자면, 그건 고스란히 &quot;혁명&quot;, &quot;노동자 대투쟁&quot; 같은 것이 될 터이다. 그 불의한 재판관이 참아내지 못했고, 이 사회 기득권 역시 결코 참아낼 생각이 없는 그런 싸움 말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17.&lt;br /&gt;나는 그 싸움을 지지한다. 최대한 공감하고 연대하며 그 억울함을 풀기 위한 지구전에 되는 대로 합력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굳이 따지자면 나는 천상 &quot;꿘&quot;인 편이니까. 여러분은 어떤가? 누가복음 18장의 말씀을 그냥 &quot;항상 기도&quot;하라는 이야기로만 듣고 헤헤 웃고 큐티 책 덮는 그쪽에 있고 싶은가? 예수님은 이쪽이신 것 같은데 말이다. &quot;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quot;(눅18:7)&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9</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9#entry889comment</comments>
      <pubDate>Wed, 29 Nov 2023 20:38:18 +0900</pubDate>
    </item>
    <item>
      <title>삽비라와 아나니아: 하실 말씀이 고작 그것뿐이신가요들?</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8</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나니아와 삽비라 일화'는 굉장히 유명한 성경 삽화 중 하나다. 그도 그럴 것이 내용이 자못 충격적이다. &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ACT.5.1-11&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그 남편이 베드로의 꾸중을 듣고 급사를 했고, 잠시 후 찾아온 그 부인도 베드로에게서 똑같은 꾸중을 듣고 똑같이 급사했다는 얘기니까.&lt;/a&gt;&lt;br /&gt;&lt;b&gt;이렇게 논쟁적으로 폭력적인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래서 그런지, 무례하리만치 무시로 인용된다.&lt;/b&gt; 최근에는 무슨 목사 임직식 예배의 1부 설교 본문으로도 나오는 것을 봤고, 심지어 가끔은 유치부 초등부 설교 시간에도 다뤄지곤 한다. 이야기의 '수위'를 생각하면 절대 전체이용가는 아닌데도 말이지. 참말 현대의 교회란 그저 &quot;불순종&quot;에 따르는 벌에 관해 호통을 칠 수만 있으면 뭐든 다 OK인 모양이다. 이 얘기는 좀 있다 더 하기로 하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무튼 &quot;수위 드립을 친&quot; 김에 '콘텐츠'의 관점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자면,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연은, 그로부터 교훈을 얻기엔 좀 '억까'인 면이 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대체 이 부부가 지은 죄가 뭣이기에 그들은 찰나의 회개 기회도 없이 각각 즉결 처형돼야 했던가? 재산의 '일부'만 가져와 헌납하고는 '이게 전부다'라고 말한 것이 그 죄의 내용이다. 현대 형법 기준으로 보면 죄형 균형의 원칙이 전혀 맞질 않거니와 당대 기준에도 좀 너무 무서운 얘기였을 것이다. &quot;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quot;&lt;a href=&quot;https://my.bible.com/ko/bible/88/ACT.5.11.krv&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행5:11)&lt;/a&gt;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나오는 설교는 대체로 거짓말하지 마라, 하나님은 속마음을 다 아시는 분이고 그걸로 심판하시는 분이다, 교역자 속일 생각 하지 마라, 헌금하고 헌신해라 하는 삼천포로 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넘 모욕적이지 않나? 겨우 그런 사자소학 소리나 하라고 주님께서 이 대목을 성경으로까지 써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하면.&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mdash;&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사도행전 4장 후반에서 5장 전반까지가 다루는 것은, 순종이니 거짓말이니 하는 유아적인 주제라기보다는, 아주 낯선, 새로운 규칙으로 사는 어떤 새로운 공동체다.&lt;/b&gt; &lt;a href=&quot;https://my.bible.com/ko/bible/88/ACT.4.32-37.krv&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그 공동체는 &quot;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quot;고, 그걸 &quot;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quot;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래서 &quot;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quot;다.&lt;/a&gt;&lt;br /&gt;능력에 따라 부를 창출하고 필요에 따라 부를 분배해서 경제적 평등을 실현해? 이것들 빨갱이냐? 당연히 빨갛겠지 다들 어린양 보혈로 씻고 나왔는걸. 그렇다. 이건 오늘날의 맑시즘에서도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A%B8%B0%EB%8F%85%EA%B5%90_%EA%B3%B5%EC%82%B0%EC%A3%BC%EC%9D%98&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quot;기독교 공산주의&quot;&lt;/a&gt;라고 부르며 여전히 연구하고 시도하는, 지금의 교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급진적인, 정말 이상하고 신기한 공동체다. 그런데 심지어 이 공동체에 대해서는, &quot;발 앞에 둔다&quot;는 표현을 통해, 각자의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후술하겠지만, 바로 이 점이 이 모임을 그 주변의 다른 흔한 모임과 결정적으로 구분하고 있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서 4장 후반부~5장 전반부는 누가 뭔가를 &quot;사도들의 발 앞에&quot; 두었다는 얘기가 반복 제시된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했다' 하는 일반론, 그 다음에는 개중에도 특히 바나바는 어땠다 하는 특기(特記). 그런데 그 직후에 이어지는 진술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것이다. 그들도 뭘 발 앞에 두긴 뒀는데, 일부러, 앞의 둘과는 좀 다른 것을, 조금 열등하게 두었다고.&lt;br /&gt;&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MAT.25.14-3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달란트 비유&lt;/a&gt;와 똑같은 패턴으로 3개 사례를 대조하는 이 수사법이 무슨 요점을 빌드업하고 있는지 눈치챘는가? 화자는 그들이 &quot;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둔다&quot;는 그 공동체 규칙을 진정 따르지 않고 어설프게 따라하는 데 그쳤음을 강조하는 중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삽화는, 사도행전에서 꽤 자주 반복되는 '세속적 모방 실패' 미담의 범주에 포함되고, 읽어야 할 내용의 초점은 그 깊이가 달라진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세속적 모방 실패 일화란 무엇인가? 그냥 내가 만들어본 용어인데, &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ACT.19.11-2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스게와의 일곱 아들&lt;/a&gt; 얘기나 &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ACT.8.18-2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마술사 시몬&lt;/a&gt; 얘기가 여기에 속한다. &lt;b&gt;사도와 초기 교회의 놀라운 행실을 본 세속인들이, 그 가르침과 삶을 받아들이지는 않고, 그 겉모양만 따라하여 그 긍정적 효과(즉 효험)만을 취하려다가 쪽박을 찼다는 일화들 말이지.&lt;/b&gt; 사도들의 자랑거리를 늘어놓은 책이라 그런지 사도행전에는 이 모티브가 꽤 자주 등장한다. 앞서 살펴본 바, 내 생각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일화도, 그 수사법에 의해, 이런 목적으로 삽입된 이런 일화의 하나로 간주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부부가 재산의 '일부만' 바친 이유는 설명이 된다. 뭔가 효험을 얻고 싶어서 뭔가를 겉으로 모방하는 연기를 하는데, 그런 일에 전 재산을 바칠 수는 없을 테니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그렇다면, 대체 이들이 얻고 싶었던 그 효험이란 무엇이었고, 왜 이들은 그걸 원했다는 이유로 꼴까닥해야 했을까? 애초에 뭘 원했는지도 잘 모르겠는데.&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쯤에서 이 사건을 이해하려고 앞서 골치 썩은 신약학자들이 남긴 단서를 참조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연구에 따르면, &lt;b&gt;이 부부는 어쩌면 이 초기 교회 공동체에 &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ki/%ED%94%BC%ED%98%B8%EC%A0%9C&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피호제'&lt;/a&gt;를 도입하려 했던 것일 수도 있다고 한다.&lt;/b&gt; 피호제란 무엇인가? 창작자 후원 사이트 이름이기도 한 영단어 &quot;패트리온&quot;, 오늘날 '고객'을 뜻하는 &quot;클라이언트&quot;가 연관된 개념인데, 요컨대 돈 있고 빽 있는 자(&quot;patronus&quot;)가 돈 없고 빽 없는 자(&quot;cliens&quot;)에게 찾아가서 &quot;내가 네 생계와 신변을 책임져줄 테니 너는 내게 정치적 사회적 충성을 바쳐라&quot; 제안을 하고, 이 제안에 쌍방이 합의하여, 상호 신의에 의해 서로의 이익을 꾀하는 사회 계약 방식이다.&lt;br /&gt;마피아가 정확히 이렇게 운영된다고 하는데, 마피아가 아직 없던 고대 로마에서도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건국자 로물루스가 물려준 당연한 사회 권력 관계로 알고 살았다고 한다. 어느 시대건 보통은 돈을 주는 쪽이 &quot;갑&quot;이다. 그건 아마 사도행전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게다가 이 사건은 피호제가 당연하던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는 곳에서 벌어진 일이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이름만 보아도 비유대인이다. 자연히, 그 신약학자들의 가설은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상상을 제공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보 저기 예루살렘 어디에 웬 유태인들이 새로 집단 생활을 시작했다는데 서로가 서로에게 돈을 주면서 산다는 모양이야.&lt;br /&gt;그래? 예산 규모가 얼마라는데?&lt;br /&gt;얼마얼마밖에 안 된대.&lt;br /&gt;우리 재산의 반에도 못 미치네? 그거 갖고 어떻게 산대?&lt;br /&gt;서로 필요에 맞게 나눠주다 보니 부족한 건 못 느끼고 사는가 보더라고.&lt;br /&gt;그래? 그럼 우리가 가서 그 사람들을 좀 도와주고 보호자가 되면 어떨까? 우리 재산 좀만 줘도 거기서는 엄청 큰 패트리온이 될 거 아냐?&lt;br /&gt;그러네! 그러면 그 피호자들은 우리한테 그만큼의 충성을 바쳐야만 되겠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부부가 정말 이런 의도로 사도행전 5장에서 등장했던 거라면 그건 확실히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앞서 사도행전 4장이 밝히고 있었던 것은, 이 맥락에서 다시 읽어보면, 그들이 꾸린 공동체에 피호제 따위는 필요 없었다는 요점이기도 하다.&lt;/b&gt; 그들 가운데 특별히 누가 더 가난하다거나 꿇린다거나 &quot;을&quot;의 입장에 처해 있거나 하지 않았는데 그건 모두가 모두의 보호자이자 피호자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곳은 그런 피호제의 인식 틀로 보아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기적의 사회였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모두가 누군가의 피지배계급이거나 피호자일 뿐인 로마 제국에서, 이 공동체가 신성하게 여겨지며 사람을 끌어모았던 데는, 이런 근본적 정신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lt;br /&gt;&lt;b&gt;그리고 이어지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삽화는, 이 맥락에서 다시 읽어보면, 그들이 꾸린 공동체에 피호제를 도입하려던 시도가 저지된 사건을 기술한 것이다.&lt;/b&gt; 뭐라고? 지금 이 부부가 우리의 벤처투자자가 되어 주겠다고? 안 되지. 그건 안 돼. 이 사람들 이거 우리 형제, 자매가 되려는 게 아니야. 그냥 파트로누스, 스폰서, '갑'이 되겠다는 거야. &lt;a href=&quot;https://my.bible.com/bible/142/ACT.5.4&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아예 다른 이들처럼 재산권 자체를 포기하고 들어온다면 또 모를까, 자기 재산권은 계속 가지면서, 왜 그 중 일부를 가지고 우리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은 양 꾸며내고 있는 거야? 사실은 그게 아니면서?&lt;/a&gt; 이것들 지금 우리 공동체를 피호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주님을 모욕하고 있는 것 아니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mdash;&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좀 엉뚱하게도 나는 여기서 문득, 경제 지원을 한사코 거절하는 북한을, 그리고 전두환의 차남을 생각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단 북한부터 설명하자면, 북한은 '그깟 돈 얼마 받는' 경제 지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그런 제안에 모욕을 느낀다는 식으로 화를 내곤 한다.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는 한없이 귀엽고 가여운 발악처럼 보일 수 있겠으되, 북한을 조금 공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는, 북한은 그 지원을 &quot;당신들은 우리의 비호와 후원이 없으면 살아갈 수 없다&quot; 하는 조롱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얘기가 그렇다면 확실히 그건 자존심이 상할 것 같다. 아무리 헐벗고 배고플지언정 &quot;세상에 부러울 것 없어라&quot; 하는 나라가 그들의 궁극의 지향일진대, 기껏 그 이상을 추구하고 살다가 하루아침에 &quot;막상 돈을 받고 보니 세상에 부러울 것 있어라&quot;로 전향할 수는 없다. 체면이랄까 신념이랄까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잖은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전두환의 차남 전재용은 왜 갑자기 생각나는가 하면, 얼마 전에 본 시사 프로그램에서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교회를 찾아간 장면 때문에 그렇다. 전두환 일가라고 하면 그보다 더 치사하고 사악할 수 없게 자기 친인척 주변인을 보호하고 피호하는 더럽고 불의한 관계로 돈과 지위를 누리며 떵떵거리는 도당들인데, 그 피호제 체제를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인스타그램으로 뛰쳐나와 고발을 이어나가는 것이 전두환의 손자 전우원이고, 그 애비라는 새끼는 웬 교회에서 교역자를 하고 있다. (이미 여기서부터 비위가 상한다.) 그래 전우용이 카메라를 대동해서 그 교회에 찾아가 여기 내 아버지가 있느냐, 그를 면회할 수 있겠느냐고 하니, 모자이크된 교인들은 사람 좋은 목소리로 &quot;그러게 그 전도사님이 이번 주일에도 교회 오시긴 했는데 요새는 잘 못 보겠네 안 보는 게 좋지 않아?&quot; 따위 사람 말 같지 않은 소리로 짖고 웃어넘기며 지나간다.&lt;br /&gt;&lt;b&gt;그렇다. 이 나라는 제 자식도 내다 버리는 전재용이라는 새끼가 전도사를 참칭할 수 있는 나라다. 모두가 전두환 일가를 기꺼이 '슈퍼 파트로누스'로 섬기며, 교회도 &lt;b&gt;교단부터 일개 성도까지&lt;span&gt; &lt;/span&gt;&lt;/b&gt;한 줌 부끄러움 없이 그 피호를 마다않고 받아먹는 치들이다.&lt;/b&gt; 전우원은 전재용이 자기 전화를 받지 않음을 확인하고 그 교회에서 돌아선다. 교회가 참 한남 유충 실좆 같지. 이보다 더 심한 욕이 있다면 쓰고 싶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런데 비단 교회뿐이겠는가? 팍스 아메리카나의 오늘날 현대 사회는 팍스 로마나의 그때와 똑같은 양상으로 크고 작은 제국식 계약과 &quot;세상적인&quot;(ㅋㅋ) (비)도덕이 판치는 곳이다. 멀리는 미국의 PAC 제도에 의한 금권 선거부터 가깝게는 헌금 많이 내는 장로와 출자 많이 하는 주주가 1인 1표 이상을 행사하는 각 기관까지 피호제가 구현되어 있는 면을 찾기가 전혀 수고스럽지 않다. 오죽하면 한국인들은 보호자-피호자 사이에 합의된 역할 이상을 요구하고 나서는 보호자에 대해서 &quot;갑질한다&quot;는 욕설까지 개발해낸 상태다. 다만 로마 시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안 되고 있는 게 있다면, 그런 피호제적 관계 이상의 도덕과 섭리로 운영되는 공동체의 성립이 그것이다. 초대 교회는 얼마 못 가 교황과 황제가 영합하는 방향으로 전향했고, 오늘날 한국 교회는 전재용을 앉히고 전우용을 내쫓는 조직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왜 그래야 하는가? &lt;b&gt;왜 우리는 아나니아를, 삽비라를 자꾸 우리 모임에 들이려고 하는가? 애초에 그들을 알아보고 경계하기는 하는가? 이 믿음을 가진 이들의 모임에, 그 &quot;재정&quot;과 그 &quot;인맥&quot;이, 그 &quot;스폰서&quot;가 그토록 간절히 필요한가?&lt;/b&gt; 전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지 않던가? 천지 창조자 하나님의 백성 된 덕분에 서로가 서로를 먹일 수 있었던 베드로의 교회의 후신이 우리 아닌가? 근데 왜 자꾸 그런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배반적 고백을 거듭하는가? 왜 자꾸 하나님 이외의 누군가를 파트로누스로 모시려 하는가? 당신들이 그 갑님들을 모시면, 그들이 당신들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책임져줄 거라고 믿는가? 그딴 것도 믿음인가? 당신들이 이걸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더 끔찍하게 죽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인가? 오~ 교회여!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전두환과 전재용의 다이아 반지가 그렇~게 탐나더냐?&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까지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가지고 내가 늘어놓을 수 있는 풍월이다. 보다시피 졸라 길고 복잡하며 충분히 생각해볼 만하다. 그런데 왜 목사님들은 그걸 못 하는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안 하는 거겠지. 하고 싶을 리가 없다. 그건 단지 &quot;고대 근동 로마 제국 치하 피호제의 원리가 어쩌구&quot;를 주일 대예배 때 설교하기 힘들어서가 아니다. 논리의 복잡함은 핑곗거리가 안 된다. '갑질'이라는 용어를 가지고 충분히 풀 수 있으니까. 여러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여기서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심판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교회가 되길 원하는 척하면서 실은 교회 안에서 갑이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추론 근거는 무엇이며... 그러나 우리는 그간 부끄럽게도 일제 치하에서는 신사에 참배를 했으며 군사정권 치하에서는 구국 조찬기도회를 주도하였고... 이런 역사를 회개하면서 우리 교회와 각자의 삶의 영역에서도... 운운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 그러면 교회 조직과 출석교인 간의 피호제마저도 재고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b&gt;교역자들, 교회라는 기관, 현대 기독교라는 제도는 출석교인 각각에게 &quot;구원의 확신&quot;이라는 '영적 신변'을 확보해 주고, &quot;하나님의 크~~~신 축복&quot; 등의 '영적 풍요'를 제공한다. 그 댓가로 출석교인들은 주일 성수, 십일조 생활, 봉사 선교 건축찬조 등의 '비-영적 충성'을 공납한다.&lt;/b&gt; 그게 이들의 관계이고, 보다시피 이보다 더 피호제적일 수 없다. 상징적인 양상이 그런 것뿐이라면 차라리 다행이라 하겠다. &quot;무조건 이명박 찍어&quot; 소리에는 &quot;아멘으로 화답&quot;하고, 세습을 하건 횡령을 하건 믿음페이를 강요하건 논문을 조작하건 찍 소리 하나를 못 하고, &quot;하나님 나한테 까불면 죽어&quot; 하는 목사는 열렬히 따르라고 내버려두는 진짜 충성도 뻔히 발생하고 있잖은가. 이렇게 상하 수직 주종 관계 명확한 피호제를 고대 로마 제국 치하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심지어 알고 보니 그게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의 꼬락서니라고 들으면, 그들은 과연 어떤 표정으로 머리를 흔들며 뭐라고 비웃을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런 관계에서 잘들 살던 중에, 자기에게 '신앙적 피호자'의 목줄이 채워진 줄도 모르고 있는 그 클리엔스들에게, 그 '신앙적 파트로누스'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자세히 풀어줄 이유나 의리가 있는가? 그 사건은 피호제가 얼마나 세상적인지, 사악한지, (최소한) 하나님 나라의 질서는 아님을 더할 나위 없이 뚜렷이 보여준 사건인데, 그걸 있는 그대로 그 클리엔스들에게 소개해 주면, 갑자기 그들이 자기 처지의 실제가 무엇인지 재고해 보고 말지 않겠는가? 그러고 나면, 그래서 그들이 목줄을 풀고 &lt;a href=&quot;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5333&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quot;교회갱신공동체&quot;&lt;/a&gt;로 거듭나고 진짜로 만인 제사장의 하나님 나라를 조그맣게나마 시작해 버리면, 파트로누스 입장에서는 좀 많이 곤란하지 않겠는가? 자연히 그들에게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가능한 최대로 납작하고 싱겁고 희멀겋게 유지해야 하는 말씀이 된다.  정 안 되면 &quot;도로~ 묵이라고 하여라~&quot; 같은 싸구려 토크라도 써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amp;mdash;&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정리하고 끝내겠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단순히 '교역자에게 거짓말하면', '하나님을 속이려고 하면' 따위의 교훈만을 위해 전승된 사건이 아니다. (하물며 &quot;시대가 필요로 하는 목사&quot;에 대해 설명하라고 주신 말씀일 리는 더더욱 없다. 대체 뭐 하자는 코미디 연극인지?) 그 사건은 초대 교회가 세속의 다른 사회와는 어떤 면에서 근본부터 새롭고 은혜로웠는지, 그래서 당대의 무슨 통념에 정면 도전하는 급진적인 모임이었는지 설명하기 위해 삽입된 사건이다. 오죽하면 그 실질은 이해하지 못하고 그 겉모양만 취해 효험을 보려던 이들이 이렇게까지 크게 망하고 말았겠느냐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리고 나는 지금껏 이 사건에 대해 이 정도 혹은 이 이상 말하는 &quot;한국 교회 교역자&quot;를 본 적이 없다. 교회가 꿀 먹은 벙어리일 때마다 벙어리 냉가슴 앓는 입장에서는 야속함도 냉소도 다 지나고 그저 좌절 섞인 의분만이 모루를 맞으며 달구어진다. 왜 말을 안 해? 왜 내가 궁금해하거나 추정하거나 연구해 보았거나 확실히 이해하는 그 이상을 말하지 않아? 실천하라고, 지상에 실현하라고까지는 요구하고 싶지도 않아.&amp;nbsp; 뭐 너네 보고 갑자기 전두환 욕하라고 할 생각도 없어.&amp;nbsp;왜 닥치고들 있는 거냐고. 왜 유치부에서나 필요할 수준의 설교를 초등부에서 또 하고 중등부에서 또 하고 고등부에서 또 하고 청년부에서 또 하고 대예배에서 또 하고 루디아회, 바울회에서 또 하고 장년부에서 또 하고 노년부에서 또 해? 정말 할 말이 그것뿐이야?&lt;br /&gt;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우스워? 아나니아가 베드로 말 한 마디에 뒤지고 삽비라가 베드로 말 두 마디에 뒤진 게 그렇게 별볼일 없는 일이야? &lt;b&gt;아니지, 니들은 이 사건이, 이 말씀이 우스운 게 아니고 성도가 우스운 거구나? 그들을 자녀 삼으시고 그들에게 같은 말씀을 주신 하나님이 우습구나 그렇지?&lt;/b&gt; 말씀이 없어 주려 죽는다는 그 성도들이 하찮아 보이지? 그럴 거야 니들한테는 그들이 그저 주일 출석과 헌금을 바치는 피호자 머릿수일 뿐이잖아. 저들도 당신들의 영적 보호와 잠 오는 설교 아래 졸고 있기를 기꺼워하니까.&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8</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8#entry888comment</comments>
      <pubDate>Thu, 8 Jun 2023 19:38:5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인스타그램에 썼다가 지운 것)</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7</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인스타그램을 하는 예의가 아닌 거 같긴 한데 좀 우울한 얘기를 써볼까 한다. 근황이 다소 울적한 때문에.&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회사 일은 최근 반 년 정도를 거의 놀았다. 아니 그렇다고 정말 논 건 아니고, 휴가도 잘 안 써 가면서 꾸역꾸역 출근해 앉아 있다 오긴 했고 이런저런 일도 하긴 했지만, 대부분이 개발팀 동료, 시니어, 팀장님 파트장님 CTO님의 공적이고 나는 &quot;쉬운 일 주워먹기&quot;만 하다가 끝나곤 했다. 당시에는 &quot;내가 암만 이러자 저러자 해봐야 결국은 동료, 시니어, 팀장님 파트장님 CTO님들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지 않나&quot; 했고, 실제로도 어느 정도 그렇긴 했지만, 되돌아보면, 어느 정도는 나 스스로도 &quot;2년간 기반 없이 굴렀으면 됐지 이젠 나도 회사 좀 편하게 다니자&quot; 하면서 일을 주워먹은 면도 있었던 거 같다.&lt;/span&gt;&lt;/li&gt;
&lt;li&gt;아무튼 정말 단 1인치도 성장하지 않은 나 자신을 목도하는 요즘인데 이게 김어진쇼도 비슷하다. 270회 넘게 에피소드를 발행할 그 긴 시간 동안 콘텐츠로서의 김어진은 단 1인치도 개선되지 않았구나 싶은 좌절감이 있다. 270가지 서로 다른 뭔가를 해나간 270주라고 생각했는데, 딱 1가지의 뭔가를 270가지의 포장으로 팔아치우기 급급하면서 무슨 개인 취미가 어쩌구 일상의 기록이 저쩌구 핑계만 는, 그런 시간이었나 하는 좌절감이 있다. 끝낼 때 끝내더라도 6주년은 채우고 끝낼 건데 솔직히 그 다음은 잘 모르겠다.&lt;/li&gt;
&lt;li&gt;성장이랄지 변화랄지 하는 건 좀 하고 싶은데 어케 하는 건지 모르겠다. 요즘의 즐거움은 웬 중국제 휴대용 게임기를 하나 사서, 어릴 적에 정말 하고 싶었던 게임들(만)을 채워넣고 틈날 때마다 하는 건데, 내가 정말 정말 정말 게임을 못한다는 사실만 재삼 절감하며 좌절하고 있다. 돈이라면 있다(실제로도 있고, 까짓거 에뮬레이터의 Start 버튼만 누르면 크레딧은 들어가니까). 시간도 의지도 아주 없지는 않다. 그런데 정말이지 나 스스로 알겠을 정도로 &quot;게임 운영&quot;을 너무너무 못한다. 아직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익혔어야 하는 감각을, 이제 와서, 혼자, 어릴 적의 한을 푸는 차원으로 배워 보려고 하니 이게 되겠는가. 난 심지어 2048도 못한다. &quot;512&quot;를 못 보고 6000점대에서 죽기가 일쑤다. 남들은 다 떼고 워들 같은 거나 하고 있는 지금에 와서 지하철에서 휴대용 게임기로 2048 하면서 똑같은 방식으로 지고 또 지고 또 지는 35살 남자 어떻게 생각해요?&lt;/li&gt;
&lt;li&gt;게임 하니까 생각이 나는데, 대체로 이렇게 울적한 심정으로 살고 있고, 그래서 &quot;스트레스를 해소&quot;할 필요가 있는 와중에 그놈의 스트레스 해소라는 건 또 당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모르겠다. 요즘은 재밌는 콘텐츠를 즐기거나 맛집을 다니는 것도 약발이 잘 들지 않는데, 왜냐고 하면 그냥 기분 때문이다. 내가 먹고 싶어하는 그 모든 것들은 분명 설탕과 지방을 뒤집어쓰고 있을 테고, 아이패드에 깔려 있는 모든 앱과 그 안의 모든 콘텐츠는 분명 내 뇌에서 도파민과 아드레날린을 분비시켜 줄 터이다. 그 부분이, 그렇게 자동적인 쾌감과 보상이 보장되어 있다는 바로 그 점이 께름칙하다. 이게 이렇게 쉽게 보상받을 수 있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 하는 기분을 말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된다고? 나도 그렇다. 최근 군것질을 줄인 이유는 당뇨 위험부터 다이어트까지 여러 가지 있지만 최근에는 '나 자신에게 너무 자주 보상을 주지 말자'라는 부분이 추가가 되었을 정도다. 뭐랄까, 이걸 이토록 간단하게 해소해 버리는 건 너무 허무하달지 셈이 안 맞는 것 같다는 찜찜함을 느끼며 결국 대체로는 그저 눌러담아 참고 있다.&lt;/li&gt;
&lt;/ul&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울적할 이유가 없는데 왜 이렇게 울적한지 모르겠다. 사실 마음의 습기는 항상 일정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고 울화도 항상 일정량은 마음에 차 있는 편인데(그래서 한숨을 쉬는 버릇이 있다 항상 어느 정도는 갑갑하거든.) 그게 왜 요새 들어 유난히 감각되는 건지 그걸 모르겠다. 몸이 흔들리며 마음까지 흔들리다가 이제 몸이 차분하게 안정되니까 마음의 흔들림이 뚜렷이 보이는 뭐 그런 원리일까. 이 이상은 심리학적으로 틀린 소리가 될 테니 이 얘기는 여기까지.&lt;/p&gt;</description>
      <category>4 생각을 놓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7</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7#entry887comment</comments>
      <pubDate>Sat, 29 Apr 2023 16:56:06 +0900</pubDate>
    </item>
    <item>
      <title>범인은 현장에 돌아온다</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6</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제 비가 좀 덜 내리게 되었으므로 그제야 그들은 거길 가볼 생각이 났다. 간밤에 그들이 사람을 죽인 곳을. 숫자로 말하자면 일가족 총 세 명을, 행정적으로 말하자면 관악구 어딘가의 반지하에 세들어 사는 세 명을, 언론 보도를 인용하자면 '모 노동조합 지부장 모씨와 그의 언니인 발달장애인 모씨 그리고 그의 10대 딸 모씨'를 죽인 그곳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동 중 그들이 보인 굳게 닫힌 입과 별다른 표정이 없는 그 얼굴은 언뜻 보면 최소한의 염치를 가진 일반인, 혹은 그 죽음에 대해 송구함을 표해야 할 입장인 정치인을 연상시키는 면이 있긴 했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창문 밖을 바라보며 그렇게 근엄하게 생각했던 것이란 실은, 근데 관악구가 어디쯤이었지, 아 모르겠네 안 간지가 오래 돼서, 따위의 것이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그렇게나 태평했다. 아니지. 어떤 종류의 살인은, 제 몸과 제 정신을 완전한 거짓으로 둘러입고 사는 자만 할 수 있는 법이니까, 고쳐 말하건대, 그들은 그렇게 내내 태평할 생각으로 사람을 죽이기도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와 윤은 거의 동시에 그 자리에 도착했다. 둘 다 같은 검은색 신사용 대형 우산을 직접 들고, 노란색 윗옷을 입고 현장으로 조심조심 다가갔다. 그 자리에 가까워올수록, 안 그래도 축축한 골목에 비가 다 마르지 않아 더욱 질척거리는 듯한 땅과 공기,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현장을 보존하고 수습하기에 여념이 없는 일선 경찰과 공무원들, 그 모든 갑자기 낯설어진 주변을 걱정스럽게 구경 나온 주변 주민들, 그들이 뿜어내는 인열 등등에 대해서, 윤도 오도 거의 동시에 이맛살을 찌푸렸다. 반사적으로, 그 어떤 악의도 없이, 받은 메스꺼움을 그대로 뱉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들의 평소 습관대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서성이던 윤과 오는, 그 주변에서 상황을&lt;span&gt;&amp;nbsp;설명하던&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공무원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경청하는 것으로, 그 심리적 알리바이 형성 작업에 착수했다. 그 설명은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뿐이었다. 하지만 그걸 모른 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기실 바로 그것, 모르는 체하기야말로 그들의 유일한 천부적 재능이었다. 그들이 그간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며 그 나이가 되도록 이렇달 굴곡 없이 출세가도를 타고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여 기득권층으로 편입한 덕분이다. 계획적인 살인범은 공모자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그들은 다른 살인범들이 꼬드겨 세운 공모자였고, 이제 그들 자신도 경력 살인범이 될 참이었다. 차라리 그 자리는 자격 시험에 가까웠다. 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하게 모르는 체를 해야 했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는 그래도 비슷한 걸 몇 번 해 본 입장이었지만, 윤은 이런 종류의 시험이 처음이었던지라, 아무래도 그렇게 속단했던 거 같다. 이거 너무 쉬운 거 같은데. 그냥 적당히 걱정해 주는 말이나 해 주고 혀나 좀 차 주고 명복이나 빌고 가면 되겠구만. 속단한 것은 속결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윤이었으므로 그는 그 주변에 나와 있던 다른 주민들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넌지시 혼잣말처럼 말을 걸어 물었다. 근데 여기 어떻게, 여기 계신 분들은 미리 대피가 안 됐나 모르겠네. &quot;미리 대피한다는 게 가능한 줄 아느냐, 15분도 지나지 않아서 순식간에 모든 게 급변한다, 순식간에 땅이 꺼지면서 삽시간에 물이 불어나는 걸 모르느냐&quot; 같은 말이 들려왔지만 윤은 전혀 듣지 않았다. 자기가 말했고 상대방이 반응했다. 그러면 대화는 성립한 것 아닌가. 더 들을 필요가 없었다. 오는 그걸 옆에서 바라보며 내심 걱정했다. 이러다가 우리가 범인인 걸 들키는 건 아닐까 하고.&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윤은 내친김에 사건과 관련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다른 말도 더 해 볼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quot;...대피하고 싶어도 수압 때문에 문이 안 열리게 되기 때문에 못 나간다&quot; 하는 누군가의 고성이 끝나가고 있었어서, 그걸 요령 좋은 반말로 뚝 부러뜨리고, 거기에 제 말을 찔러넣었다. 아 문이 안 열려서? 아니, 어제 엄청났던 것이, 서초동에 우리 제가 사는 그 아파트가, 전체적으로는 좀 언덕에 있는 아파트인데도, 거기가 1층이 지금 물이 들어와가지고 침수될 정도니. 제가 퇴근하면서 보니까 벌써 다른 아파트들도 아래쪽에 있는 아파트들은 벌써 침수가 시작이 되더라고. 그러니 뭐. 제가 있는 아파트가 약간 언덕에 있잖아요. 그런데도 그 정도니. 그건 분명, 제깐에는 최선을 다해서, 보아하니 참 힘들어 보이던데 당신들도 참 힘들었을 거 같고 여기 사셨던 분도 참 힘드셨을 거 같다, 하는 소리를 한다고 한 셈이었다. 무식해 보이리만치 무모했을지언정 틀리지는 않은 연기였다. 어떤 비전문가가, 살인범이, 자기가 죽인 사람을, '힘들었겠다'고 공감해 줄 거라고 믿겠는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오는 이쯤이면 됐으니 적당히 다시 자리를 뜨고 싶었다. 적당한 곳에 숨어서 뉴스를 지켜보며 자기가 다시 나서도 되는 시점을 골라야 했으니까. 하지만 윤은, 자기의 범행 현장에 처음 와 본 살인자답게, 현장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시 가 보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어느샌가 그의 발걸음은 그 반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향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말렸다. &quot;여기는 아직도 여전히 사비로 양수기 써서 물을 퍼올리고 있다. 지하에 6가구가 살고 있다. 당신을 들여보내도 좋은 상황이 전혀 아니다.&quot; 그제야 그는 마지못해 층계참을 좀 지난 애매한 위치에 엉거주춤 주저앉아서는, 뭐라도 한 마디 할 생각으로 그 계단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보통 사람은, 아니 그 자리에서 그 사건의 범인이 아닌 이상에는 누구도 결코 느껴볼 일이 없는 대단히 특별한 감정에 휩싸였다. 아 그런가. 이게 여기가 이렇게 됐단 말이지. 그렇군. 여기가 지금 저 사람들 눈에는 이렇게 보이는군. 그런 거군. &lt;span&gt;그러면서, 그는 별 말 없이 그 자리에 잠시 쪼그려 앉아 있었다.&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Origin&quot; data-filename=&quot;57132d49-eb9b-4be5-81ed-6c4c07baef3c.jpg&quot; data-origin-width=&quot;560&quot; data-origin-height=&quot;373&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cxNNii/btrJAe2Eoue/tNQuWwSMsQtWQmGqBtxlv0/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cxNNii/btrJAe2Eoue/tNQuWwSMsQtWQmGqBtxlv0/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cxNNii/btrJAe2Eoue/tNQuWwSMsQtWQmGqBtxlv0/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cxNNii%2FbtrJAe2Eoue%2FtNQuWwSMsQtWQmGqBtxlv0%2Fimg.jpg&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 loading=&quot;lazy&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73&quot; data-filename=&quot;57132d49-eb9b-4be5-81ed-6c4c07baef3c.jpg&quot; data-origin-width=&quot;560&quot; data-origin-height=&quot;373&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이상 현장에 다가갈 수는 없다는 공무원의 제지를 받으며 윤은 끌려나오다시피 그 계단을 벗어나 건물 밖으로 인도되었다. 사실 이제 용건은 더 없었지만, 아직 그들은 정말 보고 싶은 것을 보지 못한 상태였다. 특히 윤의 입장에서는, 그 세 사람이 실제로 죽어가던 그곳의 정취를 아직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에, 다소 무리를 하더라도 그 반지하방 안을 볼 방법이 있는지 찾고 싶었다. 아마 윤이 '창문으로 탈출 못하나?' 같은 멍청해 보이는 질문을 해서 유도를 받았던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오와 윤은 그 창문 앞으로까지 안내를 받았다. 그들의 얼굴이 그 창문 앞에 다다랐다. 그들은 눈을 크게 뜨고 그 어둠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들여다보여지는 저편 방향에서는 역광에 비친 그들의 몸뚱아리 그림자가 불쑥 나타났고, 그 속에서마저 그들의 퍼런 안광이 번뜩였을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둘은 그 안을 들여다보면서 당장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안을 바라보기 바빴다. 겉으로야 티가 안 났을지 모르지만 속으로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은밀한 흥분을 감추며 그들이 살인을 자행한 곳의 진짜 광경을, 그것도 낮밤을 바꾼 시간대에, 어떤 고소, 고발, 탄핵소추, 주민소환, 용의선상 조사 취조도 받지 않는 자유인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그런 순간 정도에만 진실로 감각하고 경탄할 수 있었다. 자기가 안전하고 정당하며 우월하고 결백한 존재라는 것을. 자기는 저 자리에서 죽어나간 사람도 아니고, 저런 어둡고 지저분하고 쿰쿰한 곳과 관계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저곳에서 죽을 만한 사람을 죽여 줬을 뿐이라는 것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한동안 그런 비정상적인 감각에 도취돼 있다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정신이 들었다. 아마도 그들이 우산을 받쳐들고 쪼그려앉아 그 안을 들여다보느라 다리가 저려 와서 그랬을 것이다. 이제는 정말로 이 현장을 뜨자는 뜻에서, 서로 간단한 눈빛만 주고받은 그들은 마지막으로 그 창문 앞에서 시바이를 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이건 남 일이라는 듯이, 내 일이 아니라는 듯이,&amp;nbsp; 잘은 모르겠지만 참 안됐고 그러니 이건 절대로 내가 죽인 건 아니라는 듯이.&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야 이거 참, 왜 대피를 못 했을까. 그러니까요. 왜 대피를 못 했을까요. 햐 참 진짜 이거 반지하가 문제야. 여기는 지대가 낮으니까 이게 다 직격탄 맞잖아. 서울시가 반지하가 너무 많아요. 이거 다 이제 금지시키든가 해야지 이게 무슨 일이야 그래. 우리는 저기 그런 거 없나? 강수량 측정해서 국민들 알려주는 앱 같은 거 없어? 그런 거 좀 만들라고 해봐.&lt;/p&gt;</description>
      <category>1 내/ㄴ 문학</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6</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6#entry886comment</comments>
      <pubDate>Fri, 12 Aug 2022 22:04:02 +0900</pubDate>
    </item>
    <item>
      <title>(페북 휴지통에서 꺼낸 글)</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4</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부 교회들이 오늘을 어린이주일로 섬기는 모양이다. 우리 교회는 공예배에서는 쇠지 않고 어린이부만 어린이주일로 쇤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웃기는데, 광고 시간에 그런 소리가 나온다. 아 지금 전 교단이 문제에요. 저출산이다 코로나다 하면서 전국적으로 어린이부가 줄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 어린이부를 &quot;부흥&quot;시키고 싶은가? 교회 외벽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커다랗게 예스키즈존 이라고 써붙여 보시오. 다음 주부터 교회가 미어터질 것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니 진짜로 해보라고. 모든 물건이 어린이 손에 닿을 때까지 높이를 낮추고, 뾰족한 것 딱딱한 것 무거운 것 뜨거운 것 다 치우고, 마이크 볼륨을 좀 줄이고, 대예배당에 어린이들이 어디든 앉게 해 주고, 우는 애 내쫓지 말고, 모자실을 폐쇄하고 대예배당을 모자실로 써라. 그리고 여기 앉은 어느 어른에게 어떤 장난을 쳐도 절대 화내지 않겠다고 잼민이들에게 약속해 보시라. 장담하건대 그날부로 그 교회는 기적의 대부흥이 일어날 것이다. 단지 어린이가 주께 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않을 뿐인데도.&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현실은, 한국 교회야말로 한국 경제문화사상 가장 유구하고 능숙한 노키즈존이다. &quot;모자실&quot;이란 소싯적이나 지금이나 참말 부끄러운 것이다. 애와 애엄마를 방음 잘 되는 한쪽 구석에 처박아놓고 테레비 하나 연결해서 대머리 목사의 근엄한 말씀을 중계하는 것은, 그 안에서 애가 울건 말건 그저 나 하나만 대예배당에 근엄하게 앉아 설교나 들으면 그만이라는 대머리 장로들의 탐욕 덕분 아니었던가? 그 탐욕을 생각하다 보면, 무슨 식당 무슨 카페 주인이 어쨌다더라 하는 심술은 하찮게 느껴질 지경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우리 중에 누가 크니이까? 라고 다 큰 어른들이 물어보는 꼴 역시 예수님 눈에는 세상 하찮게 느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류 사상 최초의 예스키즈존을 설치하며 꾸짖으신다. 니들이 크긴 뭐가 커 얘네들이 크면 컸지 그러니까 허튼소리들 말어. 그로부터 이천 년쯤이 지났고 우리는 노키즈존 매장 출근 전 1부 예배를 드리며 애와 애엄마를 모자실에 처박아두는 어른들이 됐다. 뭐라고? 어린이부가 줄었다고? 그야 그럴 테지 니들이 줄였잖아. 교회가 노키즈존인데 어린이부가 어떻게 부흥해.&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1&quot;&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진짜 이제 이런 소리는 페북에 그만 쓰고 기독교인 스탠드업 코미디 클럽에나 가서 해야겠다 그런 게 없어서 문제지만.&lt;/p&gt;
&lt;/blockquote&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4</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4#entry884comment</comments>
      <pubDate>Sun, 1 May 2022 23:51:24 +0900</pubDate>
    </item>
    <item>
      <title>&amp;quot;개발자&amp;quot; 관련 탐라 플로우 단상</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3</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사실 엄청나게 간단한 얘기다. 개발자는 특수한 직군이지만 특권을 가진 직군은 아니다. 그나마도 내 생각엔 개발자가 특수한 직군인 것도 지금 한때나 그러고 말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lt;span style=&quot;letter-spacing: 0px;&quot;&gt;개발자건 다른 어떤 직군이건 어떤 직군이 타 근로자와 일반 공동체로부터 '이해 불가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를 자동으로 획득하지는 않는다. &lt;b&gt;그런 시도는 무력화돼야 하며 그런 욕망은 제압되어야 한다. &lt;/b&gt;&lt;/span&gt;&lt;b&gt;수단이 목적을, 사익이 공익을, 엘리트가 일반 대중을 압도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된다.&lt;/b&gt; 이렇게 서본결이 완벽한 간단한 아젠다가 어째서 거듭 되풀이 성토되고 있는지 그게 오히려 희한하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lt;b&gt;'불가해한 영역으로 남을 권리', 바로 이것이 쿨타임만 차면 돌아오는 바 '일부 짜증나는 개발자들에 대한 짜증'을 유발하는 근본 원인이 아닌가 생각된다.&lt;/b&gt; 현시점의 현업 개발자들은 (또는 블로그와 유튜브로 코딩하는 &quot;개발자&quot;들은) 의식적으로건 무의식적으로건 자신들이 '개발자'로 라벨링되는 과정을 즐기고 있거나 최소한 의식적으로 거부하지 않고 있다. 사실 뭐 그건 개발자뿐 아니라 의사, 변호사, 교수 등등 전문 지식으로 먹고 사는 직군 종사자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사회 자본에 대한 욕망의 발로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것이지만.&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개발 직군이 전문 직종들 중에서도 유난히 이런 차원에서 튀는 것은 두 가지 요인이 더 있다고 생각된다. 하나는 업계의 미성숙이다. &lt;a href=&quot;https://udnxt.com/2020/05/1596/&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다른 글&lt;/a&gt;에서 한 번 슬쩍 건드려본 적이 있긴 한데 &lt;b&gt;개발이라는 분야는 현재 매우 초기 단계에 속하고 그래서 법령/표준 도입, 정량적 능력/성과 측정, 표준 근로 프로세스 등이 존재하질 않는다&lt;/b&gt;. 그러다 보니 어떤 기업/서비스/종사자도 명쾌하게 평가되지 않으며 어떤 성공/실패도 필연적이지 않다. 이러므로 실제로 이 분과는 현재 어느 정도는 실제로 이해 불가한 영역이며 제3자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객관적 접근 시도가 (주로 당사자에 의해) 무산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개발 직군이 다른 전문 직종들보다 유난히 더 스스로를 신비화/특권화하려고 하는 현재의 경향의 다른 추가적 요인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은, 그 직군이 갖는 인구통계학적 편향이다. &lt;b&gt;절대 다수가 남자이고 상당수가 2030이며 이념 스펙트럼상으로는 대체로 가운데-오른쪽에 쏠려 있다.&lt;/b&gt; 하루 종일 코드만 쳐다보고 사는 그들의 사상은 결과적으로는 목적 지향적이며 단순한 계량적 공리주의로 쏠리고, 그들의 윤리는 (반사회적이진 않더라도) 비사회적으로, 상대적으로 매우 정밀하게 취사선택적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게다가 사회가 &quot;4차 산업 혁명 고액연봉 개발자 우대 전쟁&quot; 운운하며 떠받들어 주니, 이 과정에서 이들은 알게 모르게 사회와 동떨어지는 엘리트주의적 동조 집단을 형성하고 만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lt;b&gt;이런 식으로 특정 전문직군의 특권계급화가 시도되려고 하는 시기에 공동체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그 생산 수단 및 생산물을 최대한 공공화하는 작업이다.&lt;/b&gt; 거시적으로는 (그 빌어먹을 놈의) &quot;AI&quot;를 사용하는 기업마다 회원 가입 약관 및 정례 보고서를 통해 그 기술의 작동 원리 및 작동 현황을 공개하도록 규제하자는 얘기까지도 해 볼 수 있겠지만, 미시적으로는 &quot;저는 개발자라서&quot;, &quot;근데 개발이라는 분야는&quot;으로 시작하는 '야부리'를 금지시키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이다. 그런 '썰'을 수시로 제지시키고, 알아들을 수 있는 설명을 요구하고, 설명된 사실에 근거한 객관적 평가로만 그들을 다시 엄격하게 측정해 줌으로써, 자기의 중량을 과대 평가하려는 시도 일체를 저지해야 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 우리말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 하는 말이 있다. 기백 년 전 조선에도 &quot;홍동백서 조율이시&quot; 운운하는 복잡한 전문 지식은 존재했고 그에 대한 당시 언중의 사태 파악도 진작에 끝났던 것 같다. 우리도 슬슬 상황 파악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날 개발자들의 갖은 장광설과 자기 변호성 웅변들은, 결국 한마디로 요약하면 '파이썬 놔라 슬랙 놔라' 하는 소리에 불과할 수 있으니까.&lt;/p&gt;</description>
      <category>4 생각을 놓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3</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3#entry883comment</comments>
      <pubDate>Sat, 3 Jul 2021 16:08:29 +0900</pubDate>
    </item>
    <item>
      <title>자살이라는 옵션: 14년 전의 메모를 다시 쓰기</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2</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런 시사평론(?)을 쓴 적이 있다.&lt;/p&gt;
&lt;figure id=&quot;og_1623072819728&quot;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opengraph&quot; data-ke-align=&quot;alignCenter&quot; data-og-type=&quot;article&quot; data-og-title=&quot;자살률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 하나&quot; data-og-description=&quot;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연예인은 고사하고 심지어 주변인의 주변인조차 자살하기 일쑤다. 옛날엔 그나마 '자살사이트'가 사회문제&quot; data-og-host=&quot;blog.yuptogun.com&quot; data-og-source-url=&quot;https://blog.yuptogun.com/55&quot; data-og-url=&quot;https://blog.yuptogun.com/55&quot; data-og-image=&quot;https://scrap.kakaocdn.net/dn/fCYVo/hyKutQHPAv/U2BkWUkA4TPMYcBho1FsN1/img.png?width=800&amp;amp;height=800&amp;amp;face=0_0_800_800,https://scrap.kakaocdn.net/dn/bSv3zO/hyKunXiocN/gfKlGEORL1VVO57jyyvlI1/img.png?width=800&amp;amp;height=800&amp;amp;face=0_0_800_800&quot;&gt;&lt;a href=&quot;https://blog.yuptogun.com/55&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 data-source-url=&quot;https://blog.yuptogun.com/55&quot;&gt;
&lt;div class=&quot;og-image&quot; style=&quot;background-image: url('https://scrap.kakaocdn.net/dn/fCYVo/hyKutQHPAv/U2BkWUkA4TPMYcBho1FsN1/img.png?width=800&amp;amp;height=800&amp;amp;face=0_0_800_800,https://scrap.kakaocdn.net/dn/bSv3zO/hyKunXiocN/gfKlGEORL1VVO57jyyvlI1/img.png?width=800&amp;amp;height=800&amp;amp;face=0_0_800_800');&quot;&gt;&amp;nbsp;&lt;/div&gt;
&lt;div class=&quot;og-text&quot;&gt;
&lt;p class=&quot;og-title&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자살률이 '갑자기' 늘어난 이유 하나&lt;/p&gt;
&lt;p class=&quot;og-desc&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연예인은 고사하고 심지어 주변인의 주변인조차 자살하기 일쑤다. 옛날엔 그나마 '자살사이트'가 사회문제&lt;/p&gt;
&lt;p class=&quot;og-host&quot; data-ke-size=&quot;size16&quot;&gt;blog.yuptogun.com&lt;/p&gt;
&lt;/div&gt;
&lt;/a&gt;&lt;/figure&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벌써 14년 지난 글인데 아직도 네이버에서 '자살률 원인' 따위를 검색해 자살률 증가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하시는 분들 덕분에 간간이 조회가 되는 모양이다. 다시 읽어 보니 고등학생 특유의 좁은 시야와 어휘력 부족이 절실하게 느껴져서, 안 되겠다 싶어 개정 보론을 적어볼까 한다. 그때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는지 요약 정리를 좀 해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이 글을 쓰던 시절 내게 관찰됐던 것은 '자살'이라는 엄청난 사건이 보편화되려는 흐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정확히는, 그건 '표면화'였는지도 모른다. 삼국 시대부터 &quot;IMF&quot;에 이르기까지 과연 극단적 선택을 했던 가장과 집안이 정말로 그 수가 그렇게 적었을까. 하지만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그런 죽음은 항상 놀랄 만한 일이고 비상한 사건이었으며 아무튼 끔찍한 비극으로 간주됐다. 그러던 것이 새천년 이후로, 굳이 따지자면 뉴스를 접하거나 뉴스거리를 접하는 경로가 TV며 신문 외에도 더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기쯤부터, &lt;b&gt;자살이란 것이 더 다양한 계층에서, 더 많은 종류의 (그리고 더 허망한) 이유로,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자주 발생하는 사건임이 두루 체감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lt;/b&gt; 이 이상은 객관적 증빙 자료가 없으니 각설하고&amp;hellip;&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아무튼 자 그러면 어쩌다가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보편적으로 많아졌을까? 그건 다시 말해서 '왜 자살률이 늘었을까?'라는 질문일 텐데 이 질문은 사실 잘못됐다. 옳은 질문은 이것이다. &quot;자살이 일반인의 보편적인 '선택지'란 말인가?&quot; 생각해 보면 새삼 소름끼치게 이상한 일이다. 어째서 하나뿐인 목숨을 버리는 것이 '옵션'일 수 있는가? 그래서 오랜 세월 자살은 자연스러운 금기였고 애초에 물망에 올라갈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었다. 아무리 시궁창 같은 상황일지라도 살아서 뭔가를 해야지, 그냥 죽어버린다는 건 너무나 이상하고 잘못된, 생각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고, 그래서 보통 오답으로 간주됐다. 원래 글에서 장광설을 늘어놓으며 서술하려고 했던 &quot;지금껏 우리가 지녀 왔던 통념&quot;은 바로 이걸 가리킨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렇다면 질문은 바뀐다. 어떻게 자살이 하나의 '옵션'이 되었는가? 내 생각에, 딱 이 맥락에만 한정해서 보면, &lt;b&gt;여기에서 '자살'이란 '살아서 이걸 한다', '살아서 저걸 한다' 운운하는 기존 선택지들에 대한 &quot;위 보기 중 정답 없음&quot;이라는 새로운 선택지라고 봄이 타당하다.&lt;/b&gt; &quot;죽는다&quot;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quot;안 산다&quot;를 의미하는 것이다. 14년 전의 고딩이 당연히도 몰랐던 바 전세계에 심각하다고 소문난 우리나라의 '노인 자살률'은, 오직 이 논리로서만 설명이 된다. 산업 사회의 부속품으로서만 가치를 인정받으며 줄곧 착취당하다가 하루아침에 정년이랍시고 퇴직금 몇 억과 함께 세상에 던져진 뒤 대책 없이 십몇 년을 여기저기 전전하고 나면, 그때 선택 가능한 보기는 '살아서 창업한다'도 아니고 '살아서 은퇴를 즐긴다'도 아니고 '자식들에게 얹혀 산다'도 아니다. 오직 '위 보기 중 정답 없음'만이 유일한 선택이 된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 질문을 한 번만 더 덮어써 보자. 요컨대 '살아서 ~를 한다' 하는 선택들이 주어져 있음에도 '그 보기들 중 정답 없음'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처럼 보인다는 건데, 그것 하나가 나머지 선택들을 압도하게 된 것은 웬일일까? 여기서 원문이 &quot;편한 삶에의 추구&quot;라고 잘못 묘사한 사태가 문제가 된다. 그 사태는 정확히 어떤 사태인가? &lt;b&gt;'정상적인 삶의 첨예화'&lt;/b&gt;다. 확실히 어느 시점부터인가 '남부럽지 않은' 삶이 생각보다 어려운 (객관적으로는 더 어려운) 목표가 됐다. 그건 분명 중산층이 붕괴한 IMF 이후였고, 이때부터는 암만 열심히 산들 정상 가족의 불안 없는 생활에 도달하기가 점점 쉽지 않아졌다. 그래서 그런 이들의 그런 삶은 불필요한 각광과 조명을 받았다. &quot;최근 편하게 사는 사람이 갑자기 우대받기 시작했다&quot;고 쓴 것은, 이 간단한 생각을 뒤집어 입은 꼴이었던 셈이다.&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요컨대 중산층의 도산 이후 '정상적인 삶'에 도달할 가능성이 희박해지면서, '삶 자체'를 계속 선택할 지구력이 바닥난 이들이 탈락하게 됐고, 그 상황이 모종의 제반 변화에 의해 최근 들어 더 분명하게 가시화되었으며, 그게 2000년대 이후 자살률이 급증한 것처럼 보이는 이유라는 게 내 생각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14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생각이 변한 것은 없고, 다만 14년 전의 나는 이걸 이렇게 간단히 말하질 못해서 중언부언을 늘어놨으며, 그나마 대책 내지 제언 부분에서는 불일치를 보인다. 14년 전의 나는 사회 풍토를 탓하고 있다. (과연 대입 논술 앞에서 끙끙 앓던 인간답다.) 지금의 내게 물어본다면 차라리 나는 법률과 제도를 탓하겠다. '그래도 한 몇 년만 더 살아볼까? 그래도 안 되면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지원금, 할당제, 재교육 프로그램, 정책 토론회, 교육과정 개편, 조세율 조정, 보증, 보험, 시행령, 개정안, 전문 인력과 전담 기구를 내놓으라고 말이다. 왜 흔히들 농담으로마저 그러지 않는가. &lt;b&gt;힘든 사람에겐 격려를 해줄 생각 말고 그저 곁에 있어 주면서 고기를 먹이고 돈을 주라고.&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마지막으로 이 주제 자체에 대해서만 조금 감상적으로 되어 보자면... 그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모르겠다. &quot;비정규직 철폐 투쟁 결사 투쟁&quot;이라는 구호는 노무현 때 끝날 줄 알았던 것이 아직도 쿠팡이니 배민이니 하는 곳을 기준으로 '현재 진행형'이고, 서민들이 &quot;정선카지노&quot;에서조차 희망을 찾지 못해 &quot;바다이야기&quot;로 몰리던 줄거리는 스케일만 &quot;떡상&quot;한 채 주식과 '잡코인'을 통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다. 여전히 부동산은 위세가 등등하고 강남은 불패이며, &quot;남들 다 사는 만큼 살고 싶다&quot;는 사람들은 정작 이미 통계상으로는 남들 다 사는 만큼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대 그 위치에서 행복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걸 자본의 뜻에 맡겨놓으면 자연히 그려지는 어떤 2차원 포물선의 정점을 향해 가는구나 하고 덤덤하게 받아들여지다가도, 아니 근데 진짜 어떻게 사람 사는 세상이 이럴 수가 있어 이 씨팔, 하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만다. &quot;자살마렵다&quot;는 최근의 유행어를 생각할 때와 비슷한 느낌으로.&lt;/p&gt;</description>
      <category>1 내</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2</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2#entry882comment</comments>
      <pubDate>Tue, 8 Jun 2021 00:01:33 +0900</pubDate>
    </item>
    <item>
      <title>EZ2ON Reboot:R</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1</link>
      <description>&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일단 EZ2DJ라는 브랜드 자체에 대해서 조금 느낀 바를 적자면&amp;hellip; 1st부터 2021년(!)까지의 모든 수록곡이 일단은 다 실려있는데, 처음의 인싸 감성은 어느 순간부터 완전히 씹덕후 느낌으로 싹 전환되고 있는 게 새삼 보였다. 사실 EZ2DJ는 모두가 킹오파나 보글보글, 펌프 등을 하고 있던 그 시절에도 좀 아싸 느낌이 있었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뒤로 가면 갈수록 BGA도 오타쿠스러워지고 음악도 뭔가 시대와 동떨어져 가고 있었다. &lt;b&gt;마치 막판에 '일코'를 포기하고 책상에 피규어를 올려놓기 시작한 말년 개발자처럼 보인달까?&lt;/b&gt; (모르긴 몰라도 EZ2ON 개발자들은 그랬을걸?) 이 브랜드가 왜 뒤로 갈수록 처지고 맥빠졌는지 알 것 같았다. 감을 잃어버린 거지.&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게임플레이에 대해 논하자면, 쇼에서도 했던 얘기인데, 고인물들을 위한 리듬게임이라는 느낌이다. 게임의 판정에 자기를 맞출 수 있는 사람, 이미 EZ2DJ의 띵곡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십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랄까 그런 것들뿐이다). BGA만 감상할 수 있게 해금을 하는 미션 같은 것도 없고 그냥 순전히 예전의 스킨을 가지고 예전의 BGA와 음악을 깔끔한 퀄리티로 다시 보는 게 핵심인 게임이다. 좀 이상한 기분이다. 확실히 나는 이걸 기대하고 돈을 냈으므로 그건 아깝지 않은데, 과연 나 아닌 다른 아무라도 2021년에 딱 이것을 얻기 위해 그 돈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하면, 그건 글쎄올시다 말이지.&lt;/p&gt;
&lt;p&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ea3J2mybOLI&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15&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서부터는 쇼에서 하지 못했던 얘기인데, 요즘 불어닥치고 있는 '리부트'와 '리메이크'의 바람 아닌 바람에서, 이 게임은 좀 아쉬운, 나쁘게 말하면 실패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적절할 것이다. 애초에 리부트 붐 자체가 2021년의 콘텐츠 업계(그리고 이 사회)가 맞부딪힌 상상력의 절벽을 반증하는 것이므로 그건 좀 감안해야겠지만, 그럼에도 EZ2DJ는 그저 철저히 사용자의 기존 취향과 향수를 자극할 뿐 거기서 더 나가지 않고 있다. 아직 이렇달 업데이트가 없어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로 &quot;싸이월드 부활&quot; 같은 걸 보는 기분이다. &lt;b&gt;딱히 모두가 애타게 찾던 것도 아니었고, 있으니까 반갑긴 한데, 그렇다고 그게 21세기 지금에 대체 불가하게 필요한 위치에 있느냐 하면 또 그건 잘 모르겠는.&lt;/b&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그래도 아직 PC방이 드물던 한때 시절에는 수준 있는 다양한 음악 스펙트럼을 소개했던 명색의 EZ2DJ였는데, 지금은 그저 판권과 명의와 소스 코드들만 누더기로 남은 채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근근이 명맥을 잇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그게 좀 안쓰럽다. 유튜브 댓글에 반농담으로 달았던 말이지만, EZ2ON은 상업화 -- 그러니까, 요즘 시대 맥락에서 이는 곧 다시 '인싸' 감각을 되찾는 걸 의미한다 -- 에 성공을 해서, &quot;20000000000의 매출을 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quot;. 그건 기존 팬들에게서 십시일반 받고 팔아서는 절대 달성할 수 없는 매출이고, 일반인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가능한 수익이며, 어디 사운드클라우드나 좀 돌아다녀야 겨우 들을까 말까한 오타쿠식 트랜스코어를 최신곡입네 가져오는 지금의 센스에서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점에서.&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lt;/p&gt;
&lt;p data-ke-size=&quot;size16&quot;&gt;여기까지가 2021년 3월 게임 갓 출시됐을 때의 코멘트고 지금에 와서는 거의 다 말이 안 되는 소리들입니다. 네오노비스는 요즘 세상에 참 보기 드문 굉장한 운영사입니다. 야심이 있고 그 야심을 실현할 실력도 있으니 얼마든지 다음 제품 출시해도 좋고 돈을 벌어도 좋을 것입니다.&lt;br /&gt;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outdated되었으므로 더이상 읽을 가치가 없는 코멘트지만, 그래도 제 인터넷 활동의 일관성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세상 어떤 것은 첫인상과 다르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이 글은 삭제/비공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둡니다. 야 참 저땐 몰랐죠 이지투온이 갓겜 될줄은...&lt;/p&gt;</description>
      <category>3 늘어놓은/메타리뷰</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1</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1#entry881comment</comments>
      <pubDate>Tue, 23 Mar 2021 23:07:50 +0900</pubDate>
    </item>
    <item>
      <title>7-zip으로 외국 언어 압축파일 압축풀기</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80</link>
      <description>&lt;p&gt;1. 7zip 이 시스템 환경 변수에 없다면 추가해 준다. 이 부분은 '환경 변수 추가'라고 검색하면 이미 다 나오므로 생략&lt;br /&gt;2. &lt;a href=&quot;https://docs.microsoft.com/en-us/windows/win32/intl/code-page-identifiers&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여기&lt;/a&gt;에서 적당한 identifier 숫자를 찾는다. 일본어로 압축된 파일의 경우 아마 932 (shift_jis)&lt;br /&gt;3. cmd, 파워쉘 등을 열고 다음을 실행한다.&lt;/p&gt;
&lt;pre id=&quot;code_1611625822677&quot; class=&quot;html xml&quot; data-ke-language=&quot;html&quot; data-ke-type=&quot;codeblock&quot;&gt;&lt;code&gt;7z x 압축파일 -mcp=찾아놓은identifier숫자&lt;/code&gt;&lt;/pre&gt;
&lt;p&gt;예를 들어 압축파일 경로가 C:\foo.zip 이고 mcp가 932라면:&lt;/p&gt;
&lt;pre id=&quot;code_1611626047755&quot; class=&quot;html xml&quot; data-ke-language=&quot;html&quot; data-ke-type=&quot;codeblock&quot;&gt;&lt;code&gt;7z x C:\foo.zip -mcp=932&lt;/code&gt;&lt;/pre&gt;
&lt;p&gt;4. 될 때까지 2~3을 반복한다. 끝.&lt;/p&gt;
&lt;p&gt;반디집 없어도 되네 ㅋㅋ &lt;a href=&quot;https://7zip.bugaco.com/7zip/MANUAL/cmdline/switches/method.htm&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참고 매뉴얼&lt;/a&gt;&lt;/p&gt;</description>
      <category>2 다른 이들의</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80</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80#entry880comment</comments>
      <pubDate>Tue, 26 Jan 2021 10:51:04 +0900</pubDate>
    </item>
    <item>
      <title>뜻이 있으셔서 그러실 거에요</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9</link>
      <description>&lt;p&gt;때는 금요일 오후 6시 40분쯤인가였고, 기본적으로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으며, 아직은 퇴근을 못 하고 있는 사람들이 각 팀별로 한두세 명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중 개발팀 당번이 된 꼴이었고, 기획팀에서는 내 등 뒤 저쪽 자리 아이맥 앞에 앉은 모 과장님이 그랬던 모양이다. 나야 지난 몇 주간 무슨 되도 않는 초등영어 라이브방송 관련 기획 구현하느라고 상습 야근 중이었으니까 그렇다 치지만, 저 과장님은 요즘 뭐가 바빠서 갑자기 야근을 하시지? 하고 좀 궁금해하고 있으려니까, 마침 그 과장님이 내가 안쓰럽다는 듯이 등 너머로 물어본다. &quot;엽토군 씨&amp;hellip; 왜 퇴근 못 하고 있어요&amp;hellip;?&quot; 이걸 진지하게 답하고 싶지 않아서 되물어봤다. &quot;과장님은 왜 퇴근 못 하고 계시는데요?&quot; &quot;몰라요&amp;hellip; 엽토군 씨 일 많이 힘들죠&amp;hellip;?&quot; 힘들다고 답할 힘도 안 나서 그저 잠자코 있었더니, 머쓱하다는 듯이 뒤늦게 덧붙은 말 한 마디.&lt;/p&gt;
&lt;p&gt;다 뜻이 있으셔서 그러실 거에요 그쵸? 엽토군 씨 교회 다니잖아요.&lt;/p&gt;
&lt;p&gt;유일신의 의지를 믿는 종교에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그런 신앙의 관점을 존중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 여기엔 당연하게도 대다수 멀쩡한 기독교인이 해당되고 ― &quot;신의 뜻&quot;에 대해 가장 많이 잘못 이해하는 것 두 가지는, 첫째 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곤란과 고통이 그 자체로 신의 뜻에 포함된다는 것이고, 둘째 결국 그 모두가 &quot;합력하여 선을 이루&quot;리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곤란과 고통에 대해 &quot;다 뜻이 있으셔서&quot;라고 주억거릴 수 있게 된다.) 둘 다 신의 뜻을 원천적으로는 잘못 이해하고 있는 관점이다. 그래서, &lt;b&gt;서로를 직접 알아가려 하지 않는 커플들이 기계처럼 주고 받는 기호화된 성애적 상호작용이 바로 그러하듯이, 이러한 신정론적 결론 역시 덮어놓고 쌓아올리며 생활해 나가다간 어느 순간 반드시 그간 쌓였던 오해를 터뜨리며 믿음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주범이 된다.&lt;/b&gt;&lt;/p&gt;
&lt;p&gt;우리 인간이 당하고 있는 각종 곤란과 고통이 그 자체로 신의 뜻이라면, 그건 그 신에게 너무나 무례한 소리이다.&lt;/p&gt;
&lt;p&gt;그게 무슨 신이냐 말이다. 기본적으로 신은 인간의 곤란과 고통을 가여이 여기고 해결해 줄 존재로 이해된다. 신이 그 본질상 인간을 초월하는 전지 전능 전선의 인격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는 논리적으로도 필연이며, 그래서 실제로 세계 어디의 어느 시절 종교관이든지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이 부분에서는 딴소리 없는 것을 볼 수 있다. 오직 중간에 뭔가 아주 단단히 잘못 이론화되어 전파된 청교도식 기독교만이 이런 영적 구속구를 차고 있다. 잘 생각해 보라고. 이건 정말이지 여호와 하나님 입장에서도 민망한 얘기다. &lt;b&gt;&quot;오 주님! 저는 지금 너무나 아프고 힘들고 괴롭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당신의 뜻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생기고 웃음이 납니다! 자! 저에게 더 큰 고난도 능히 감당할 힘을 주사 저의 믿음이 증명되는 것을 똑똑히 보아 주시옵소서!&quot;&lt;/b&gt; 음, 써놓고 보니 별로 변태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각종 수련회와 기도굴에서 오늘도 쩌렁쩌렁 울리는 통성 기도들이 생각나서 그런 것일까?&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기독교에만 한정해서 얘기하자면,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고난은 궁극적으로는 아담을 조상으로 갖고 태어난 우리의 잘못이다. 그리고 아담을 빚은 하나님의 뜻은, 아담 옆에 선악의 나무를 두시던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한결같이 딱 두 가지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버릴 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을 선택하기를, 그리고 자기들끼리는 좀 사이 좋게 불화 없이 잘 지내기를.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베어물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시작한 ― 말하자면 수오지심이라는 게 생겨난, 즉 인간들이 하나님이 주신 적 없는 관습과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제도와&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행동 양식을 구성하기 시작한 ― 그때부터, 인간사에 일어난 일 중, 정말로 그 하나님의 뜻 두 가지가 실현되었던 순간은 눈물겨우리만치 드물었다. 그래? 다 뜻이 있으셔서 내가 근무 시간 다 끝나고도 테스트 결과 기다리며 야근하고 핫픽스 올리는 인생을 살고 있다 이거지? 솔로몬과 로마 황제와 트럼프를 다 지켜보신 하나님은 그런 발상에마저도 애써 동의하려고 노력하고 계실 것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내가 야근하고 있는 건 그냥 일이 많아서다. 내가 일이 많은 이유는 그냥 이 회사가 이래서 그런 것이다. 이 회사가 이 모양인 이유는 그냥 오늘날 이 나라 경제 돌아가는 꼴이 이 꼴이어서다. &lt;b&gt;그렇다면 내가 야근하는 것은 누구의 뜻이랄 것도 없고 굳이 말하자면 이 체제를 이렇게 굴리고 있는 인간들의 더 큰 죄악에 의해 아래로 캐스캐이딩 되어 우리 회사 내 자리까지 내려온 악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걸 한 번도 의도하신 적이 없다. 굳이 따지자면, 주님은 그런 우리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애쓰시는 분이다.&lt;/b&gt; 보아라! 사탄이 심지어 너희를 밀 까불듯이 까불게 해 달라는 이슈 티켓까지도 열어 놨다. 그러나 나는 너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하여 기도하였나니&amp;hellip; 그러므로 우리도 기도하자. 우리의 믿음이 더 정확해지고 성숙해지고 완전해지기를. 체념하듯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는 듯이, 별로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우리가 자초한 이 모든 곤란과 고통을 신 덕분이라고 결론짓는 습관을 그만둘 수 있기를 말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신 덕분이라고? 신의 탓이 아니고? 그렇다. 잘못된 관념 그 두 번째에 의하면, 우리가 자초한 이 모든 환란과 고난은 신 덕분에, 결국 다 좋게 좋게 끝난 해피 엔딩으로 갈 것이기 때문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그야 물론 해피 엔딩으로 가겠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입장에서야 하여간 언젠가 우리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시고, 더 이상 눈물과 고통과 아픔과 헤어짐이 없는 세상이 오고야는 마니까. 근데 말이지요, 결국 어찌저찌 해서 다 좋게 좋게 되었더라 하는 이야기라고 뭔가를 요약하는 건, 그 이야기를 지은 사람에게 얼마나 모욕 또는 수치가 되는지 압니까요들? 좋은 서사일수록 뿌려진 떡밥들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음이 밝혀지며 훌륭하게 회수된다. 애초에 정말 잘 지은 이야기라면 필요 없는 떡밥은 절대 아무렇게나 흩뿌려지지 않는다. 반대로 나쁜 전개일수록 이것도 했다 저것도 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알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다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등장하여 막을 떨어뜨리고 도망가는 법이다. 19세기에 세계 대전쟁을 하고 20세기에 세계 대전쟁을 또 하고 21세기에 세계적 유행병이 또 퍼지는 이 인류 역사가, 정말, 주님 재림과 휴거 한 방으로 모두 갓띵작 해피엔딩 된다고? 그게 무슨 뻔뻔스러운 궤변인가 말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말은 똑바로 해야지. &lt;b&gt;그 해피엔딩이란, 모든 일이 협력해서 선을 이루는 장면이란 언젠가 지금이 아닌 미지의 나중에 한방에 빡 하고 오는 대사건이 아닌, 지금 이 순간 우리 주님의 함께하심으로 인해 수시로 발현돼야 하는 상태인 것이다.&lt;/b&gt; 내가 왜 지금 이 시간 야근을 하면서 결제 테스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가? 이 결제 테스트가 잘 돼야 결제가 잘 될 거고 그래야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잠재 고객들이 우리 상품을 이용할 거고 그래야 그들의 삶의 질이 올라갈 거고 그래야 경제가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나인 프론티어즈'의 비즈니스 영역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올 거라서? 아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그냥, 실제로 결제에 오류가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제 테스트를 해보자는 것이고, 그러니까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거다. 그게 다다. 일은 일일 뿐이다. 내가 무슨 새마을 운동이며 실업 선교사 하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그리고 결과만 말씀드리면, 결제 자체는 문제가 없었는데 그 다음 처리가 이상하다는 리포트가 들어왔고 실제로 보니 내가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었어서 앗 죄송합니다 하고 그 부분을 고치고 퇴근할 수 있었다. 그런 거다. 갖은 일이 결국 선을 이룬다는 건, 결국 그 정도로 충분한 것이다.&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랄까 사실은 언제나 딱 그런 정도까지만이었던 게 아닐까 싶다. 요컨대 거창해지지 않고 너무 멀리 허황되이 바라지 않고 지금 이 광야와 땅끝에 필요한 게 뭔지 생각하며 주님의 마음으로 그곳을 개간해 나가는 것이다. 초기 선교사들은 그렇게 했다. 물론 처음에야 빌리 그레함 같은 파송자들이 &quot;가라!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주 영광 위하여&lt;/span&gt;&quot; 하니까 &quot;가야겠다&quot; 하고 왔겠지만, 와서 살아보니 이건 내가 예수님을 전하고 어쩌고 그 이전에 병원부터 학교부터 좀 있어야겠다고 정신이 드는 거지. 그래서 예수님 전하는 건 나중에 하더라도 일단 그 지역 그 영혼들의 필요를 채우며 열심히 손해를 보다가 죽은 것이다. 그 삶이 고스란히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저렇게 손해 보다 죽었을까' 하는 감동이 되어 그 지역을 기껏 복음화해 놓았더니, &lt;b&gt;그 후손들은 어째서인지 &quot;주 영광 위하여&quot; 어쩌구 하면서 세습하고 부동산 놀음하고 태극기 흔들며 광화문과 국제분쟁 지역으로 밀어닥치는, 거창하게 하찮은 삶을 살고 있다. 아니면 정반대 방향으로, 이를테면, &lt;b&gt;노조를 결성하고 법을 바꾸어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들을 수요기도회의 침묵 속에 유야무야 떠내려보내는 온순한 기독교인들이 되어주고 &lt;/b&gt;있다.&lt;/b&gt; 그 부조리마저도 주님의 선한 뜻을 이루는 데 이용될 거라는, 지배 계급이 좋아하는 한숨 섞인 믿음으로.&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그 과장님께는 이렇게 길게 대답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생각 하지 않으려고 해요. 일은 일로 해야지요. 이런 일 하나하나에 하나님 뜻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치고 제대로 된 일 하는 사람 없단 말이에요. 그마저도 맨 끝의 요지는 적당한 예시가 생각이 안 나서 헛소리처럼 뭉그러지고 말았다. 나는 그 금요일 퇴근 직전에 동생에게 전화하여 오늘 퇴근하면 치킨을 먹자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려고 저녁을 굶었고 8시 좀 넘어서 퇴근해 기어코 치킨을 시켜 동생과 먹고 잤다. &lt;b&gt;'내가 이렇게 힘들어 뒤지겠는데 하나님 너 이 새끼는 빨리 튀어나와서 내 문제를 해결하고 나 빨리 퇴근시켜서 선을 이뤄줄 것이지 대체 뭐 하느라 코빼기도 안 뵈십니까?' 같은 소리를 하지 않고, 대신 그냥 약속을 지키고 할 일을 한, 그래서 나쁘지 않은 편이었던,&lt;/b&gt; 그런 저녁이었다고 생각한다.&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9</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9#entry879comment</comments>
      <pubDate>Sat, 16 Jan 2021 15:43:23 +0900</pubDate>
    </item>
    <item>
      <title>MMB라는걸 알게 되었다...</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8</link>
      <description>&lt;p&gt;제로보드 4가 아직 현역이라는 (실화)공포 스토리를 트위터에 올려 RT좀 받은 게 언젠데 아직도 PHP 4~5의 망령은 가시질 않는다...&lt;/p&gt;
&lt;p&gt;MMB라는게 있는 모양이다 일단은 CMS 프레임워크인데... 전해들은 말로는 원작자가 20년전에 손을 놨으며 스킨 개발자는 10년전쯤에 연락 두절됐다는 뭐 그런 소스이다... 그런데 아직도 누군가가 다운받아서 깔아서 쓰고 있다... 아 너무 무섭다...&lt;/p&gt;
&lt;p&gt;index.php를 VS Code로 까봤는데 인코딩이 깨진다. 아니나 다를까 다 EUC-KR 인코딩된 파일...&lt;br /&gt;이게 돌아간단 말인가...&lt;br /&gt;암튼 소스를 까봤고...&lt;/p&gt;
&lt;pre id=&quot;code_1598612772077&quot; class=&quot;php&quot; data-ke-language=&quot;php&quot; data-ke-type=&quot;codeblock&quot;&gt;&lt;code&gt;&amp;lt;?
include &quot;env.php&quot;;
include &quot;lib.php&quot;;
include &quot;config_data.php&quot;;
include &quot;option_data.php&quot;;
include &quot;mtype_plugin/extend_lib.php&quot;;
include &quot;mtype_plugin/db_admin.php&quot;;
include &quot;KDM_skin_data.php&quot;;
include &quot;KDM_fontcol_data.php&quot;;
include &quot;KDM_tb_data.php&quot;;


header (&quot;Pragma: no-cache&quot;);

$ad_ico = &quot;&amp;lt;img src='$ad_icon' border='0' onerror=\&quot;this.style.display='none';\&quot;&amp;gt;&quot;;
$maxleng_w = strlen($max_width);
$maxleng_h = strlen($max_height);
$emowidth = $cfg_emolist*72; //사용하시는 이모티콘의 가로 사이즈가 클 경우 곱셈 값을 올리세요.

//비공개 게시판 모드
if($mem_login=='on')
	{
		if($memberlogin == $cfg_member_passwd);
		else
			{
			gourl(&quot;./admin.php?member=1&quot;);
			exit;
			}
	}

if($memberpasswd === $cfg_member_passwd)
{
  setcookie (&quot;memberlogin&quot;,$memberpasswd,0);
  $isMember = 1;
}
else $isMember = 0;
	// 관리자 패스워드쿠키가 있으면서 관리자암호와 같으면 관리자모드임
if($ckadminpasswd == $cfg_admin_passwd &amp;amp;&amp;amp; $ckadminpasswd !=&quot;&quot;)
{
	$isAdmin = 1;
}&lt;/code&gt;&lt;/pre&gt;
&lt;p&gt;후.. 이 이상은 너무너무 무서워서 생략한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2&quot; /&gt;
&lt;p&gt;제로보드4도 그렇고 사실 이런 류의 CMS Frameworks들은 일관되게 특수한 요구사항들이 몇 가지로 압축된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no-brainer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시키는 대로만 하면 컴맹도 설치해서 쓸 수 있어야 함.&lt;/li&gt;
&lt;/ul&gt;
&lt;/li&gt;
&lt;li&gt;hackable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기능을 넣고 빼고 &quot;커스터마이징&quot;을 할 수 있어야 함.&lt;/li&gt;
&lt;/ul&gt;
&lt;/li&gt;
&lt;li&gt;accessorizable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quot;스킨&quot;을 입힐 수 있어야 함.&lt;/li&gt;
&lt;li&gt;기본 프레임워크를 그대로 두고 추가 설치하는 것들 - 테마, 플러그인 등으로 흔히 부르는 거 - 을 만들고 배포하고 적용하는 게 가능해야 하며 정말 쉽게 가능해야 함.&lt;/li&gt;
&lt;/ul&gt;
&lt;/li&gt;
&lt;li&gt;minimally dependen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의존성은 없을수록 좋음.&lt;/li&gt;
&lt;li&gt;무슨 익스텐션이 필수라느니 어디가서 뭘먼저 깔라느니 하는거 질색 팔색이라는 뜻.&lt;/li&gt;
&lt;li&gt;MMB 는 심지어 DB도 mysql 같은거 안쓰고 자체 파일DB를 쓴다. 그 정도로 의존성이 꺼려지는 것이다. 꼴에 DB라고 쓰기 락까지 구현해 놨던데 진짜 까무러칠 뻔함.&lt;/li&gt;
&lt;/ul&gt;
&lt;/li&gt;
&lt;li&gt;compact than extensive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게시물 입력폼, 관리툴 같은 것은 기능이 많지 않음.&lt;/li&gt;
&lt;li&gt;딱히 기술적으로 최첨단도 아님.&lt;/li&gt;
&lt;/ul&gt;
&lt;/li&gt;
&lt;li&gt;socializing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quot;친목질&quot;이 가능한 수준의 권한관리, 사용자관리, 글-댓글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해야 함.&lt;/li&gt;
&lt;/ul&gt;
&lt;/li&gt;
&lt;/ul&gt;
&lt;p&gt;최근 대부분의 CMS가 반대로 가는 방향성들은 몇 가지 있다.&lt;/p&g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 data-ke-list-type=&quot;disc&quot;&gt;
&lt;li&gt;customizing not accessorizing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워드프레스부터 OctoberCMS, 기타 각종 CMS들은 테마, 플러그인 등의 좀더 포괄적이고 기술적으로 타당하고 규모가 큰 개념으로 접근한다.&lt;/li&gt;
&lt;li&gt;일반인들에겐 이것조차 장벽인 듯?&lt;/li&gt;
&lt;/ul&gt;
&lt;/li&gt;
&lt;li&gt;dependent in the best practices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의존성을 적극적으로 가져가되, 최대한 모범적이고 표준적인 방법으로 가져가는 게 대부분의 추세다. 사실 그게 맞고. (Composer가 왜 나왔겠나?)&lt;/li&gt;
&lt;li&gt;뭘 하기도 전에 뭐 먼저 해라 뭐 먼저 깔아라 하는 건 확실히 장벽이긴 하다.&lt;/li&gt;
&lt;/ul&gt;
&lt;/li&gt;
&lt;li&gt;extensive than compact
&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
&lt;li&gt;대부분의 CMS는 관리 도구를 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아직도 폐기되지 않고 돌려써지고 있는 프레임워크들과는 반대다.&lt;/li&gt;
&lt;li&gt;대신 이런 '프레임워크'들은 입력폼이 정말 단촐하다. 관리툴도 straightforward 하다. 대부분의 최신 CMS들은 사실 &quot;그래서 새글쓰기가 어디야?&quot; 싶은 감이 없지 않다.&lt;/li&gt;
&lt;li&gt;뭔가 이 대목이 아주 묘하다. 우리 개발자들은 최첨단의 굴레에 사로잡혀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lt;/li&gt;
&lt;/ul&gt;
&lt;/li&gt;
&lt;/ul&gt;
&lt;p&gt;이 이상은 생각 정리가 안 되므로 이하 생략&lt;/p&gt;</description>
      <category>9 도저히 분류못함</category>
      <category>CMS</category>
      <category>php</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8</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8#entry878comment</comments>
      <pubDate>Fri, 28 Aug 2020 20:30:32 +0900</pubDate>
    </item>
    <item>
      <title>유튜브는 직관적이니까 사람들이 이제 복잡한 내용은 생각하지 않게 될까?</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7</link>
      <description>&lt;p&gt;오늘 08 동기 결혼한다길래 국수 먹으러 가서 새로 바꾼 폰으로 첫 동영상을 촬영하고 대충 국수 먹다가 오랜만에 대학 선배님과 얘기를 좀 할 일이 있었다. 따로 커피 마시러 나가서 이런저런 얘기가 나오다가 대충 이런 질문이 나왔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근데 요즘은 유튜브로 사람들이 (정보를) 다 접하잖아. 근데 유튜브는 되게 직관적이니까, 사람들이 앞으로는 이런 철학적인 얘기는 잘 안 하고 이해도 못 하고 그렇게 되지 않을까?&lt;/blockquote&gt;
&lt;p&gt;아 맞아요 그럴 거 같아요 바보상자 유튜브 나빠요 같은 맞장구나 치고 넘어가면 좋았을 걸 그 와중에 그래도 성심껏 앞에 앉은 이의 질문에 의견을 내드리겠다고 잠시 생각하고 나서 답변을 했다. 음, 글쎄 그럴 거 같지는 않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어린이 학습만화' 같은 걸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비싼 등록금 부어서 철학 공부 찔끔 한 다음 이 나이 먹도록 별볼일없이 살면서 매주 유튜브를 찍어 올리고 있는 입장에서 말이지.&lt;/span&gt;&lt;/p&gt;
&lt;p&gt;-&lt;/p&gt;
&lt;p&gt;일단, 유튜브가 &quot;직관적&quot;이라는 건 좀 뭉툭한 서술이다. &lt;b&gt;더 정확히 말하자면, 유튜브는 매우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매체인데, 그렇다고 해서 직관적인 매체인 것은 아니다. 둘은 다르다.&lt;/b&gt; 직관적이라는 것은, 뭔가가 너무나도 함축적이고 복합적이고 고문맥적인 나머지, 부연 설명이 구구절절 따라오지 않더라도,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그걸 한 번 보기만 하면&lt;/span&gt; 그걸로 이미 설명이 충분히 제공될 때 그런 걸 직관적이라고 한다. 예컨대 &quot;빨간 버튼&quot;이 그렇다. 그런 걸 회원정보수정 화면 어딘가에 붙여 놓으면, 심지어 그 버튼에 '눌러도 별일 없습니다'라고 써있을지라도 (그리고 실제로 눌렀을 때 별일 없더라도) 사람들은 그걸 함부로 누르지 않는다. 그 버튼을 위험한 버튼이라고 직관해 버리기 때문이다.&lt;/p&gt;
&lt;p&gt;유튜브가 시각적으로 직접적이기 때문에 그걸 문자로 써서 '직관(直觀)'의 매체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사실 그렇지는 않다. 어느 쪽이냐 하면 유튜브는 텔레비전이 갖고 있던 &quot;바보상자&quot;의 악명을 계승하는 중인 매체이다. 유튜브는 말초적이고 즉각적이며 단편적인 시각적/지적 자극을 제공하는 매체로서 이해되고 있고, 그런 점에서 사람들을 종합적 판단, 비판적 수용, 주체적/메타적 사고로부터 이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21세기의 텔레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quot;마윈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quot; 같은 퀴즈가 마윈 얼굴보다 더 크게 박혀 있는 섬네일을 눌러, 10분짜리 영상을 보고 나면, 확실히 마윈의 성공 비결에 관한 팩트 몇 가지는 대충 기억이 나지만, 그밖의 내용은 며칠 뒤에 잊혀지고, 그 영상에 대한 '감상'은 있었는지도 모르게 없어지고 만다.&lt;/p&gt;
&lt;p&gt;선배님이 의문(또는 걱정)하고 계시던 부분은 이런 맥락이었다. 확실히 기독교는 변증과 서사의 종교고 사람들에게 뭔가를 구구절절 설명해야만 한다. 하지만 요즘은 유튜브 시대다. 사람들은 5분 안에 명쾌하게 시각적으로 주어지는 정답을 원한다. 이런 시대에 과연 우리가 뭘 말할 수는 있을까? 나는 없다고는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할 수 있다. 랄까 해야 한다. 유튜브 때문에 변증 못하겠다는 소리를 해선 안 된다는 말이지.&lt;/p&gt;
&lt;p&gt;그러면 지금 시대에 기독교는 어떤 변증을 해야 하는가? &lt;b&gt;동시대적이고 성경적으로 정확한 '도식'(diagrams, schema)을 개발하고, 그걸 과감하게 침투시켜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lt;/b&gt; (&quot;도식&quot;의 성질에 의해 자명한 바) '직관적'인 그림을 그려 보여줘야 하는데, 그 내용은 성경 진리를 충분히 소화해 압축한 것이어야 하고, 그 제재와 전개는 요즘 사람들의 일상에 밀접하게 가닿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나는 프로그래밍 드립들 중 기독교 진리의 도식에 도움이 되는 게 꽤 있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lt;a href=&quot;https://javascriptwtf.com/wtf/javascript-holy-trinity&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자바스크립트의 삼위일체&lt;/a&gt;이다.&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filename=&quot;the-javascript-trinity.jpg&quot; data-origin-width=&quot;659&quot; data-origin-height=&quot;317&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OBSHN/btqFOM8xvIE/tkt0sCSu4Ud56BU7difb61/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OBSHN/btqFOM8xvIE/tkt0sCSu4Ud56BU7difb61/img.jpg&quot; data-alt=&quot;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OBSHN/btqFOM8xvIE/tkt0sCSu4Ud56BU7difb61/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OBSHN%2FbtqFOM8xvIE%2Ftkt0sCSu4Ud56BU7difb61%2Fimg.jpg&quot; data-filename=&quot;the-javascript-trinity.jpg&quot; data-origin-width=&quot;659&quot; data-origin-height=&quot;317&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caption&gt;무슨 약을 하셨길래 이런 생각을 했어요?&lt;/figcaption&gt;
&lt;/figure&gt;
&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재미있게 놀라운 사실은,&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이 그림의 왼쪽과 오른쪽이 각각 자기 세계의 진리를 매우 정확히 도식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삼위일체론의 해괴망측함도 닮았고, 전체적 교리 이론에서 핵심이 된다는 점도 빼다박았다. &lt;/span&gt;그래서, 이렇게 정확한 도식이 우리에게 있으므로, 적어도 프로그래머들에게는 삼위일체론을 소개하기가 수월하다. 일단 이 그림을 보여주고, &quot;이처럼, 이게 왜 이렇게 되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성부, 성자, 성령은 타입도 서로 다르고 실질도 다르지만, 성부는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하나님이시고 성령도 하나님이 되신다&quot;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프로그래머들은 갸웃거리면서도 일단은 알겠다고, 그거 참 희한하다고 납득하고 지나간다. 오히려, 이런 정확하게 직관적인 도식이 없으면, 이런저런 말장난이 늘어벌려지면서 양태론이니 성부우월론이니 하는 요설로 빠지고 만다.&lt;/p&gt;
&lt;p&gt;물론 이런 도식적 변증을 개발하고 발전시켜 보급하기 위해서는 신학적으로 가장 정확하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 변증이 굳이 시각적이고 즉각적인 것일 필요도 없다. 실질 내용이 정확하고 온당한 게 더 먼저니까. 그럴 때는 '역설'로 치고 들어가는 것도 방법이다. &lt;b&gt;첨 들었을 때 당장은 &quot;그게 무슨 개소리야?&quot; 싶지만, 동시에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어지는, 그래서 듣게 되고, 듣고 나면 &quot;그런가?&quot; 싶어지는 그런 방식의 설명 말이다.&lt;/b&gt;&lt;/p&gt;
&lt;p&gt;오늘 선배와 얘기하다가 들은 신학 난제가 대표적인 예다. 자기 군생활 때 어떤 선임이 &quot;근데 하나님은 사람을 왜 만들었어?&quot; 물어보길래 예배받으려고 만드셨다 했더니 당장 돌아오는 답이 &quot;그게 말이 되냐?&quot;였다고 한다. 유구무언이 되고 말았다지. 지금 나보고 이 선임에게 대신 답해주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quot;말이 되죠, 인간을 만들어야 그 신은 진짜로 신이 되니까요.&quot; 딱히 궤변은 아니다. 우주와 자연은 신을 신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인간은 신은 신으로 대접하고 추앙할 수 있는 존재다. 기독교에서 신이 만든 것은 그런 존재이고, 그게 바로 인간인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게 &quot;예배받기 위해&quot;의 세속적 번역이다. 대예배당의 상자 밖에서 생각해본 적 없는 동료 기독교인들이 이해할는지는 모르겠지만.)&lt;/p&gt;
&lt;p&gt;이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오히려 이게 소위 &quot;유튜브 시대&quot;의 응전 전략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quot;유튜브 시대&quot;라고 해서 사람들이 꼭 짧고 쉬운 것에만 집중하지는 않는다고 나는 믿기 때문이다. 당장 '뉴스공장' 같은 거만 하더라도 김어준 혼자서 몇십 분간 저 혼자 떠들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한 마디나 놓칠세라 경청을 하지 않는가. 왜 그러겠는가? 그게 아무튼 귀에 쏙쏙 박히고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어지고 들어 보니 앞뒤가 맞는 거 같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인들 모두가 김어준 같은 달변가가 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뭐라는 건지 들어나 보자' 싶은 말은 할 수 있다. 지난 몇백 년간 선배님들이 관련 신학적 업적을 다 이뤄 놨으므로, 그 성과를 성경과 함께 씹어먹고 실용적으로 재가공해, 자기만의 오늘날의 언어로 번역하기만 하면 된다. 기독교는 진리에 한없이 가까우므로, 정확하게 잘만 전달하면, 인류의 대부분은 그게 무슨 개소리냐고 따지면서 귀를 기울이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다.&lt;/p&gt;
&lt;p&gt;-&lt;/p&gt;
&lt;p&gt;요컨대, 적절한 도식 및 역설적 설명을 가지고 요즘 사람들이 알아들을 만한 톤 앤 매너로 전달하면, 딱히 유튜브 시대건 포스트 유튜브 시대건 삼위일체론이건 간단한 설명이건 기독 신앙 변증 자체는 할 만한 일이라는 이야기다. 겁먹을 필요 전혀 없다. 일본 만화가 개방되면서 &quot;폭력적인 상업만화 성인만화가 청소년들 정서 함양에 해악을&quot; 어쩌구 할 때도 누군가는 과학과 역사를 잘 요약해 놓은 좋은 학습만화 보면서 잘만 자랐고, TV와 인터넷이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웠던 시절에도 누군가는 그걸로 배울 거 다 배우고 깨우칠 거 다 깨우친다. &lt;b&gt;그런 의미에서, 언제나 그랬듯 앞으로도, 중요한 건 좋은 설명과 충분한 설명력 그리고 동시대 매체에 대한 과감한 장악이다. &lt;/b&gt;가면 갈수록 매체의 발전은 '그런 걸 제공하지 않아도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쪽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말이다.&lt;/p&gt;
&lt;p&gt;뭐야 이게 다 무슨 소리지? 누가 요약 좀 해주세요.&lt;/p&gt;</description>
      <category>9 도저히 분류못함</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7</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7#entry877comment</comments>
      <pubDate>Sat, 18 Jul 2020 23:22:07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6</link>
      <description>&lt;p&gt;예수전도단 대학사역이 슬슬 MC 시즌이라고 인스타그램 업로드가 빈번해지기 시작했는데, (지금 보니) 이틀 전에 &lt;a href=&quot;https://www.instagram.com/p/CAwKgrhlGPg/&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이런 게 올라왔다.&lt;/a&gt;&lt;/p&gt;
&lt;p&gt;&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bp01VX/btqEv8GRZvv/IK7ThuCO53IJSORKdfetD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bp01VX/btqEv8GRZvv/IK7ThuCO53IJSORKdfetD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bp01VX/btqEv8GRZvv/IK7ThuCO53IJSORKdfetD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bp01VX%2FbtqEv8GRZvv%2FIK7ThuCO53IJSORKdfetD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Jq83p/btqEwJ0VENp/vITOoiOhbZrmlqkq0pMPY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Jq83p/btqEwJ0VENp/vITOoiOhbZrmlqkq0pMPY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Jq83p/btqEwJ0VENp/vITOoiOhbZrmlqkq0pMPY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Jq83p%2FbtqEwJ0VENp%2FvITOoiOhbZrmlqkq0pMPY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figure class=&quot;imageblock alignCenter&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gt;&lt;span data-url=&quot;https://blog.kakaocdn.net/dn/TDhrH/btqEw2FKEGR/5JfeUz59pm4nSXBiYA31OK/img.jpg&quot; data-phocus=&quot;https://blog.kakaocdn.net/dn/TDhrH/btqEw2FKEGR/5JfeUz59pm4nSXBiYA31OK/img.jpg&quot;&gt;&lt;img src=&quot;https://blog.kakaocdn.net/dn/TDhrH/btqEw2FKEGR/5JfeUz59pm4nSXBiYA31OK/img.jpg&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blog.kakaocdn.net%2Fdn%2FTDhrH%2FbtqEw2FKEGR%2F5JfeUz59pm4nSXBiYA31OK%2Fimg.jpg&quot; data-origin-width=&quot;0&quot; data-origin-height=&quot;0&quot; data-ke-mobilestyle=&quot;widthContent&quot; onerror=&quot;this.onerror=null; this.src='//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 this.srcset='//t1.daumcdn.net/tistory_admin/static/images/no-image-v1.png';&quot;/&gt;&lt;/span&gt;&lt;/figure&gt;
&lt;/p&gt;
&lt;p&gt;육성 설교로 들으면 눈치 못 채거나 의구심만 갖고 지나갔을 텐데 이렇게 텍스트로 정리된 걸 보니 확실히 알겠는 바, &lt;b&gt;어떻게 이렇게 속빈 말인지 모르겠다.&lt;/b&gt; &quot;가난이란 결핍을 내포한 말입니다.&quot; 이 무슨 하나마나한 소리인가? &quot;자신이 어떠한 것에 결핍이 있&quot;다는 서술이, 어떻게 대뜸 &quot;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늘 갈망하고 찾는&quot; 상태의 서술로 등치되며 도약하는가? 팔복처럼 알기 쉬운 말씀을 가지고 이건 무슨 (말)장난을 하자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lt;/p&gt;
&lt;p&gt;알기 쉽다고?&amp;nbsp;그렇다. 팔복은 알기 쉬운 교훈이다.&amp;nbsp;이런 블로그까지 쫓아오신 분들이라면 대충 알고 계시겠지만 그래도 대충 설명을 드리자면... &lt;b&gt;팔복은 딴거 없고, 당대 세속 필부들의 '복'에 관한 통념에 전면으로 도전하는, 그러면서 진정한 복의 개념을 밝혀 버리는 가르침이기 때문에 중요하고 강력하다.&lt;/b&gt; 뭐 사실 산상수훈 전체가, 아니 기독교 자체가 바로 그런 교훈들로 구성된 종교지만 뭐 그런 큰 얘기는 안 하기로 하고...&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5&quot; /&gt;
&lt;p&gt;그렇다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건 무슨 말일까?&amp;nbsp;팔복의 핵심은, 예수님이 나열하고 계신 바 '복 있는 사람'의 상태라는 것들이, 어째 하나같이 '없는 살림'에 나오는 '아쉬운 소리들'뿐이라는 데 있다.&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lt;br /&gt;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다.&lt;br /&gt;착해빠진(&quot;온유한&quot;) 자는 복이 있다.&lt;br /&gt;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lt;br /&gt;자비를 베푸는 쪽이 복이 있다.&lt;br /&gt;마음에 숨김이 없는 사람이 복이 있다.&lt;br /&gt;싸움을 말리고 중재하려는 사람이 복이 있다.&lt;br /&gt;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lt;/blockquote&gt;
&lt;p&gt;그럴 리가 없잖아?&lt;br /&gt;잘 사는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지,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복받은 사람이 되는가?&amp;nbsp;복 받은 사람이 배고프고 목마르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남들 싸움을 말리려고 뛰어다니는(&quot;화평케 하는&quot;) 사람이 복 받은 사람일 리가 없는데 말이지.&lt;/p&gt;
&lt;p&gt;잘 생각해 보면 새삼 놀라운 일이다. &lt;b&gt;세속의 인류는 한 번도 복에 대한 관점을 진실로 재고해 본 일이 없다.&lt;/b&gt;&amp;nbsp;고대로부터 오늘날까지 그 관점은 시종일관 동서고금 아주 따분하게 똑같다. 남들 눈치 안 보고 떵떵거리는 것, 배부르고 등 따수운 것, 웃음과 의기양양함으로 점철된 상태, 좋은 건 다 취하고 싫은 건 다 피하는 경지, 뭐 그런 것이 인류가 생각하는 복의 구체적인 형상이다. 그리고 그 정 반대 대척점에 있는 상태들, 예컨대 남들 눈치 보며 산다든가 주리고 목마르다든가 하는 상태가 복 받은 상태일 수 있다는 생각에, 인류는 단 한 번의 착념도 기울여준 적이 없다.&lt;/p&gt;
&lt;p&gt;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상태들이 복 받은 상태일 수 있다고, 아니, 그런 상태들이야말로 복 있는 자들의 상황이라고 역설하신다. 그건 이상하게 들린다. 그럴 수가 있단 말인가? 울고 있는 자가, 핍박받고 가난한 자가 복받은 자가 될 수 있다니? 어떻게 그렇게 된단 말인가?&lt;/p&gt;
&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이는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임이라.&lt;/blockquote&gt;
&lt;p&gt;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quot;만약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면, 그들은 가난해도 복이 있고, 그 가난은 심령의 가난이 된다.&quot;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인 한,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가진 이들인 이상은, 그들은 아무리 복과 멀어 보이는 상태에 있더라도 복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계시기 때문에, 만사에 자비를 베풀고 사는 이들은 복이 있고 그런 자들은 슬픔 중에 있더라도 복 받은 것이다.&lt;/p&gt;
&lt;p&gt;&lt;b&gt;예수님은 복에 관한 우리의 통념을 전복하여 바로잡고 계신다.&amp;nbsp;&lt;/b&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b&gt;사실은&amp;nbsp;하나님 그분 자체가 홀로 인류의 진정한 복락인 거라고.&lt;/b&gt; 하나님을, 하나님 나라를 가질 때 혹은 추구할 때 그 삶은 복된 것이다.&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우리는 복받은 결과로서의 현상들의 일부 -- 떵떵거린다든가 배가 부르다든가 하는 -- 에 천착하고 그게 복인 줄 알지만, 복에 관한 실상은 거기서부터 한참 멀리 천양의 차로 떨어져 있음을, 예수님은 이렇게나 도전적인 역설을 통해 말씀하고 계시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억지 해석 같지만 나름 근거는 있다.&amp;nbsp;&lt;/span&gt;&lt;/span&gt;마5:1-12에 병행하는 구절인 눅6:20-23이 그 뒷부분 눅6:24-26과 대칭을 이루며 '누가 복 받은 사람이며 누가 화를 당한 사람인지' 대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앞절을 통해 '무엇이 진짜 복인가'를 설명하신 바로 그 이치와 논지로,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배부른 자들, 웃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는 (역시나 우리가 갖고 있는 '화'의 개념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말씀을 하시며&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무엇이 진짜 화이고 큰일인가'의 개념을 바로잡으신다. &quot;만약 너희가 너희 자신을 충분히 합리화하였고, 너희가 너희 자신의 소유와 요행에 마냥 자신만만하다면, 너희가 부요하고 배부른 것이 아주 큰일난 일이다.&amp;nbsp;너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배고픔이,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하나님을 찾을 이유가,&lt;span&gt;&amp;nbsp;&lt;/span&gt;&lt;/span&gt;하나님 그분이 없지 않느냐.&quo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5&quot; /&gt;
&lt;p&gt;예수님께서 &quot;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quot;고 하셨을 그때, 기원후 30년 언저리 중동 한구석에서 오만 군중을 모아놓고 설교를 하셔야 했던 그런 맥락을 감안해 보자면, 여기서의 '가난'이란 정말로 '심령의 가난'(심령에 방점을 찍자면, 예컨대 신학적 깨달음에 대한 추구?)이라든가 &quot;심령이 늘 결핍에 있고 그걸 인정&quot; 운운하는 그 정도의 복잡한 관념이었을 것 같지는 않다. 높은 확률로, &lt;b&gt;그건 그냥 정말 문자 그대로의, 실제적인, 물리적인 가난을 뜻했을 것이다.&lt;/b&gt; 예수님이 팔복을 선포하시며 가난이며 애통, 억압, 핍박, 주림과 목마름을 말씀하셨을 때, 그 설교를 듣고 있던 그 필부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이 매일 매일 살아나가고 있던 가난이며 애통, 억압, 핍박, 주림과 목마름으로 곧이 들렸을 것이다. (눅6:20-23은 이 가설을 지지한다.)&lt;/p&gt;
&lt;p&gt;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그냥 좋은 말로 위로하려고 하신 게 아니었다. 그런 절망적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보이는 평범하고 누추한 그대들의 삶에도 행복이 있다는 벅찬 소식을 전하신 것이다. &quot;너희는 분명 가난하게 살고 있고, 그건 어떻게 봐도 복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너희에게는 매일 슬퍼할 일이 끊이지 않고, 매일 매끼 주리고 목말라 괴롭다. 너희는 어딜 가나 착하게 살아야 하고, 싸움을 말리는 억울한 입장이 되어야 하고, 번번이 억울한 핍박을 당하며 산다. &lt;b&gt;하지만 너희에게 하나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의 자비가 있고 하나님 그분이 있다면, 하나님이 너희의 복이 되시니, 너희는 결코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lt;/b&gt;&lt;/p&gt;
&lt;p&gt;그때 너희는 배고프지만 배부를 것이고, 심령의 가난 외에는 가난을 모르게 될 것이며, 어떤 슬픔이 있다 한들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실 것이다. 너희는 너희의 터전을 얻을 것이고, 하나님을 뵐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너희에게 하나님이 있는 한, 하나님 나라가 너희들의 것인 한 너희의 슬픔이며 아픔 등은 너희의 불행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이 될 것이다. 그때에는, 하물며&amp;nbsp;&lt;span&gt;너희가 모욕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 공갈 협박과 모든 악한 말을 듣더라도 너희는 불행하지 않다. 너희에게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분의 복이다. 선지자들이 모두 그랬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도다.&quot;&lt;/span&gt;&lt;/p&gt;
&lt;p&gt;&lt;span&gt;이런 메시지를, 매일 생로병사의 번뇌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이들이 들었을 때는 어떻게 들렸을까? 솔깃한 소망의 메시지로 들리지 않았을까? '정말 그런가? 어떻게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을 수 있지? 나처럼 가난하고 힘들게 사는 사람도 하나님 나라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건가? 하나님 나라는 무엇일까? 내가 그걸 가질 수 있을까? 까짓거 하나님 잘 믿으면 되는 일인데 할 수 있지 않을까?' 팔복이 그때나 지금이나 평범한 대다수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바로 이런 지점에 있다. &lt;b&gt;예수님은 복받아 잘 사는 모습에 대한 우리의 통념과는 차원이 다른 복을 설명하시면서, 그 복을 누리고 싶은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시다.&lt;/b&gt; 하나님 나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진정성 있게, 그들의 마음을 흔드시면서, 그러면서도 그 귀에 쏙 들리도록 쉽고 명확하게.&lt;/span&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5&quot; /&gt;
&lt;p&gt;가난하더라도, 슬프더라도, 핍박을 받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면 그들은 복이 있고 불행할 수 없다. 사실 팔복에서 이 이상 우리가 더 복잡하게 배배 꼬아서 곱씹을 내용은 별로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뭔가를 창고에 무한정 쌓아올리며 좋아라고 해해 웃는 망할 짓거리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가난과 박해를 일부러 받으러 다닐 일도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추구해야 하고 삼위 하나님 그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분 자신이 인류의 복이고, 그분을 가지는 것이 인간 행복의 요체이며, 배가 부르니 배가 고프니 돈이 없니 심령이 가난하니 하는 것은 어떤 식으로도 그 유일한 기준을 갈음하지 않으므로.&lt;/p&gt;
&lt;p&gt;명색이 YWAM CMK쯤 됐으면 성경 말씀 공유를 할 때는 대충 이 정도 수준의 연구라도 좀 공유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하고 많은 성경 주해라도 타이핑해다가 올려주면 어디 덧나는가 말이다. &quot;심령이 가난한&quot;이라는 어구 하나에 딱 목매어 아무 말 대잔치를 카드 다섯 장으로 늘어놓는 거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을까 싶다.&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6</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6#entry876comment</comments>
      <pubDate>Tue, 2 Jun 2020 00:48:2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에벤에셀: 기묘한 이야기</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5</link>
      <description>&lt;blockquote data-ke-style=&quot;style2&quot;&gt;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삼상7:12, KRV)&lt;/blockquote&gt;
&lt;p&gt;영 신통찮은 교역자가 담임목사랍시고 부임해 와서는 매주 뜬금없는 본문에 뜬금없는 예화를 붙여 뜬금없는 설교를 늘어놓기가 벌써 다섯 달쯤이 넘었다. 급기야는 이젠 넌 설교해라 난 성경 볼란다 하고 저 혼자 잘못 읽는 성경 본문을 나 혼자 아이패드 미니로 막 읽고 졸고 하다가 성가대석에서 내려오는 마당인데... 지난 주 설교본문은 또 하필 저 구절이었어서, 그 일요일 이후로 사무엘상 앞쪽을 좀 살펴보게 되었다.&lt;/p&gt;
&lt;p&gt;그건 좀 이상한 이야기였다. &lt;b&gt;에벤에셀의 이야기는, 여러분이 막연히 알고 있던 것보다, 더 기묘하고 심오하다.&lt;/b&gt;&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7&quot; /&gt;
&lt;p&gt;&lt;a href=&quot;http://www.holybible.or.kr/cgi/biblesrch.php?QR=%BF%A1%BA%A5%BF%A1%BC%BF&amp;amp;OD=&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사무엘상에서 '에벤에셀'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 보면 3개의 구절이 나온다.&lt;/a&gt; &amp;nbsp;3장, 4장 그리고 7장인데, 에벤에셀이라는 지명의 유래는 그 셋 중 맨 마지막에 위치한다. 이 3개의 검색결과만 놓고 보아도 사실은 벌써 이상스럽다. 마치, 에벤에셀이라는 곳은, 사무엘이 돌 쌓고 명명하기 전부터, 이미 사람들이 &quot;에벤에셀&quot;이라 부르고 있었던 것 같은 것이다. 이것부터가 요상하지만, 사실은 그 '에벤에셀'이란 지명이 처음 나오는 대목부터 마지막으로 나오는 대목까지를 죽 읽어내려가다 보면, 정말 낯설고 당황스러운 옛날 얘기 하나를 만나게 된다.&lt;/p&gt;
&lt;p&gt;소수민족 이스라엘을 치려고 전투민족 블레셋이 진을 친다. 이스라엘은 맞서 싸우지만 4천 명쯤을 잃고 진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전개다. 그런데 갑자기 이스라엘 장로들이 회의를 한다. 우리의 신의 언약궤를 가져다 앞장세우면 이길 수 있지 않을까? 제사장의 아들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언약궤를 떠메어 온다. 이스라엘은 벌써 신나서 파티를 연다. 그걸 보고 엉뚱하게도 블레셋은 &lt;a href=&quot;https://www.bible.com/ko/bible/142/1SA.4.7-9.RNKSV&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quot;죽었다고 복창해라&quot;&lt;/a&gt; 전의를 다지면서 이스라엘을 친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용맹히 나가 맞서 싸웠더니 &lt;i&gt;더 크게 패했다.&lt;/i&gt; 무려 3만 명이 전사하고, 기껏 가져온 그 언약궤는 홀랑 빼앗기고 만다.&lt;/p&gt;
&lt;p&gt;뭐? 이 각본은 문제가 있다. 소수 민족, 신의 권능과 상징, 소재가 이쯤 갖추어졌으면 당연히 소수 민족이 신심의 힘으로 승리하는 게 결말 아닌가? 왜 지고 앉았지? 이거 뭔가 플롯이 잘못되지 않았나?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어떤 유년부, 청소년부, 대예배에서도, 심지어 유튜브나 기독교 라디오 설교에서도 이 서사는 알려진 적이 없었다. 항상, &quot;에벤에셀&quot;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는 식의 너무나 희망차고 달달하며 알기 쉽고 행복한 격려의 말씀과 함께 나오던 것이었단 말이다. 살륙이 심히 커서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이었더라는 역사는 거의 은폐되다시피 했다. 이 문제는 잠시 후에 다시 다루기로 하고...&lt;/p&gt;
&lt;p&gt;아무튼 그런데, 가뜩이나 이상한 이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lt;b&gt;이어지는 사무엘상 5~6장의 사건을 추동하는 '주인공'은 ― 나도 말하면서 믿기지 않는다 ― 바로 그 언약궤다.&lt;/b&gt; 블레셋의 영토로 끌려간 그 언약궤는, 뜻밖에도 보통의 평범한 언약궤들처럼 가만히 있기를 거부하고, 그 옆에 있던 블레셋의 신 다곤의 신상을 두 번이나 제 앞에 거꾸러뜨려 육시를 해 놓는다. 블레셋의 사제들이 당황해서 이건 추방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리고, 수레를 끌어본 적이 없는 암소 두 마리에게 그 언약궤를 끌게 한다. &quot;저 소들이 벳세메스 산에라도 올라가지 않는 한 이 모든 일들은 우연이라고 보면 됩니다.&quot; 그리고 그 소들은, 이 이야기에서 유일하게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아니나 다르랴는 듯이, 곧장 그 산으로 올라간다.&lt;/p&gt;
&lt;p&gt;&lt;img style=&quot;width: 100%;&quot; src=&quot;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7/70/070.The_Ark_Is_Returned_to_Beth-shemesh.jpg/1136px-070.The_Ark_Is_Returned_to_Beth-shemesh.jpg&quot; /&gt;&lt;/p&gt;
&lt;p&gt;여기까지 집필을 마친 스토리 작가가 좀 지쳤던 모양인지, 결말부인 7장은 좀 맥없이 끝이 난다. 만지는 족족 벌을 받는 그 언약궤를 어찌저찌 굴리고 옮겨서 그 언약궤는 드디어 제자리를 찾고... 세월이 흘러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심이 돈독해졌는데...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서 죄를 회개하는 대집회를 열자 블레셋 군사가 그들을 일망 타진하러 몰려왔고... 사무엘이 기도를 하니까 막 번둥 천개가 우르릉 쳐서 블레셋이 패주하고... 이스라엘은 전진하여... 맨 처음에 자기네들이 진쳤던 자리까지는 영토를 확보할 수 있었고... 거기에 돌을 쌓아 '도움의 돌'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quot;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quot;고 했다더라... 뭐 그렇게 끝나는 것이다.&lt;/p&gt;
&lt;p&gt;잠시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시라. 이게 무슨 이야기지? &lt;i&gt;&lt;b&gt;내가 방금 뭘 읽은 거지?&lt;/b&gt;&lt;/i&gt; 도통 알 수가 없다. 희한하고, 알쏭달쏭하며, 놀라울 정도로 비상투적이어서, 묘한 숭고미마저 느껴지는 것이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7&quot; /&gt;
&lt;p&gt;왜 에벤에셀 이야기가 낯설게 다가오는가 하면, 앞에서 살짝 힌트를 주긴 했는데, 이 설화가 사실은 블레셋도 이스라엘도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언약궤', 그것으로 표상되는 하나님의 권세와 임재가 주인공인 서사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에벤에셀 사건이란 언약궤의 행적과 입장을 따라가야만 비로소 읽히는 이야기다. 이를테면 사무엘상 4장에서, 언약궤는 억지로 실로에서 소환되어 앞세워진다. 제사장 집에 멀쩡히 잘 있던 언약궤를, 자기들 전쟁에 효험 좀 보겠다고 그 먼 곳 전쟁 최전선까지 들쳐메고 오는 게 뭐 하자는 짓인가? 그걸 또 뭐 좋은 일이라고 제사장의 아들들은 보란 듯이 뻐기고, 사람들은 무슨 경사가 났다고 잔치인가?&lt;/p&gt;
&lt;p&gt;그래서, 이 서사의 주인공은 그 상대 악역인 블레셋에게서 필패의 운명의 멍에를 잠깐 벗기고, 그들을 잠시 덜 납작하게 만든다. 그 순간, 첫 전투에서는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그저 평면적인 악역에 불과했던 블레셋이, &quot;&lt;span&gt;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lt;/span&gt;!&quot; 하면서 덤벼드는 적극적이고 주관적이며 입체적인 존재가 된다. 그런 상대에게, 여전히 납작하고 맹목적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이 대패하고 마는 것은, 심지어 연극론적으로도 타당한 일이다. &lt;b&gt;언약궤를, 유일신 하나님의 상징과 권능을 무슨 금두꺼비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그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기는커녕, 그 언약궤를 모시고 있기에도 과분했던 것이다.&lt;/b&gt;&lt;/p&gt;
&lt;p&gt;그 언약궤는 계속하여 과격한 행보를 이어간다. 블레셋 한복판이건 이스라엘 접경 지대의 촌마을이건 자기의 권능을 몰라보는 것들에게는 죽을맛을 보여주고,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님을 보이며 벳세메스 산으로 꾸역꾸역 올라간다. (그리고 위세 높은 블레셋의 방백들이 그 뒤를 따른다.) 그리하여 마침내 언약궤가 매우 주체적으로 자기의 위치를 찾았을 때, 그리고 이스라엘이 제 주제를 겨우 파악하였을 때에야, 비로소 이 전체 서사의 진짜 주인공 ― 내지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 은 모두가 처음에 납작하게 기대했던 바로 그 평이하고 행복한 결말을 허락한다. 그리하여, 그 사연 많고 황량하고 지금은 위치를 알 수 없는 바로 그 공터에는,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묘한 지명 하나만이 남게 된다.&lt;/p&gt;
&lt;p&gt;아니지 아마도 사무엘은 그때 말이 좀 덜 나왔을 것이다. 그가 정말로 의도(해야 )했던 것은,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주체적인 일하심에 의해 우리가 여기까지&amp;nbsp;도움을 입었다'였을 것이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7&quot; /&gt;
&lt;p&gt;언약궤를 전쟁터에 대령해 바쳤다고 앞서 적은 제사장의 아들들을 기억하시는가? 한 놈은 홉니, 다른 한 놈은 비느하스라고 하는데 이들은 앞장 사무엘상 2장쯤에서 이미 천하의 개쌍놈들&lt;a href=&quot;https://www.bible.com/ko/bible/142/1SA.2.12.RNKSV&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quot;브네 블리야알&quot;)&lt;/a&gt;로 소개된 바 있다. 주님의 제사를 업신여기고 주님을 망신 주는 제사장 아들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자들이 '전쟁에 언약궤를 앞세우자' 하는 소리가 나왔을 때 무슨 생각으로 그 언약궤와 함께 앞장을 섰을까? 물론 성경은 &quot;주님께서 그들을 개죽음시키시려고&quot;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게는 그 장면이 그런 이유 외에도 그들의 성정, 그리고 에벤에셀 이야기의 핵심 갈등축을 잘 드러내고 있는 시사적인 장면이라고 생각된다.&lt;/p&gt;
&lt;p&gt;&lt;b&gt;그들은 정치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lt;/b&gt; 그들의 입성은 그 자체가 다분히 정치적인 맥락을 갖는다. 그들은 어쨌든 언약궤가 어느 정도 '효험' 내지 '신통력'이 있긴 있다고 믿었을 것이므로, 언약궤와 이 전쟁 사이에 긍정적인 연관 관계가 생기면, 이를 통해 제사장 직분의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확장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언약궤 입성 행렬에 앞장섰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제 2차 전투에 꽤 적극적으로 가담했으며, 그 결과 전사(戰死)하기에 이른다. 그 모든 돌아가는 상황이 실로에 가만히 임재해 계시던 하나님의 계획에 전혀 포함돼 있지 않던 것과는 무관하게도 말이다.&lt;/p&gt;
&lt;p&gt;이렇게 복잡다단한 에벤에셀 이야기를 설교 본문으로 딱 취하고서는 &quot;하나님이 도우신다&quot; 같은 달콤하고 곁가지적인 부분만 쏙 들어내어 모두의 귓가에 톡톡 두들겨준 뒤 다시 성경 뚜껑을 주여 삼창으로 닫아 버렸던, &lt;i&gt;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먹는 유권자 성도들에게 그 영향력을 과시하거나 확장하려고 야심을 품고 강단에 오르던 그 숱한 대머리 배불뚝이 장년 남성 설교자들이야말로, 사실은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의 홉니이고 비느하스이지는 않았는지?&lt;/i&gt; 오늘날 개신교인의 줄어듦이 심하여 매년 몇만 몇십만이 깎여나가고, 사람들이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더는 찾아보지 못하며, 애초에 기대하지도 않는 것은, 그들 덕분에 언약궤가 빼앗긴 상황과, 과연 얼마나 다른지?&lt;/p&gt;
&lt;p&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jluhHYL8qvY?start=2719&quot; width=&quot;560&quot; height=&quot;315&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p&gt;
&lt;p&gt;혹시 오늘날의 하나님도 그때 그곳에서 다곤 상을 거꾸러뜨리던 하나님이실지? 세상 인간들이 알아볼 수 있을 때까지 친히 이적을 베풀고 역사를 바로잡으며 모두의 시선을 국경과 주변부 존재들의 산마루로 이끌고 계시지는 않은지? &lt;b&gt;하나님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인간들이 시키지도 않은 짓을 벌이며 제 스스로를 망신 주는 동안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하나님께서는 온갖 해괴한 일을 통해서라도 &lt;b&gt;기어코&lt;span&gt;&amp;nbsp;&lt;/span&gt;&lt;/b&gt;당신의 위치를 찾으시어, 당신의 백성에게 세상의 지경을 다만 얼마라도 허락하실 계획인지?&lt;/b&gt; 그것은 지금 이름 없는 사람들의 손길을 통하여, 거스를 수 없는 시대 변혁의 정신을 통하여 이루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lt;/p&gt;
&lt;p&gt;누가 알겠는가? 온갖 이해할 수 없는 (랄까 뭔가 각본이 잘못된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이 왕왕 일어나고 있는 오늘날은, 최후의 날 하나님 나라 역사책에서는, 또 하나의 에벤에셀 설화 같은 것으로 요약될지 모르는 일이다. 요컨대 에벤에셀의 이야기란 하나님 그 자신과 그 하나님의 권능을 멋대로 빙자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갈등이 일방적으로 촉발되고 일방적으로 해결된 이야기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구약과 인류사를 통틀어 내내 반복되어 온, 언제나 인간이 촉발했고 하나님이 해결하셨던 그런 갈등 말이다. 그리고 그 갈등은, 그냥 덮어놓고 '하나님만 믿으면 뭐든 다 무조건 도와주셔요' 하는 동화적인 소리와는, 하늘땅 차이의 거리가 있다.&lt;/p&gt;
&lt;hr contenteditable=&quot;false&quot; data-ke-type=&quot;horizontalRule&quot; data-ke-style=&quot;style7&quot; /&gt;
&lt;p&gt;우리 기독교인들은, 에벤에셀 이야기를 제대로 읽고 깨우쳤다면, 최소한 세계를 우리 입맛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뜻을 우리 이해대로 재단하려는 행위를, 요컨대 하나님의 언약궤를 우리가 원하는 곳에 끌고 가 앞세우려는 일체의 시도를 철저히 배격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다. &lt;b&gt;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그런 짓을 또 하려고 했다가는 참패와 모멸을 안기실 것이며, 우리가 그런 깽판을 벌이건 말건 당신 스스로 당신에게 합당한 영광을 우리에게서, 이방에게서 모두 받아 누리시고 회복하실 것이고, &lt;/b&gt;우리는 그저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주어진 &quot;도움&quot;을 기념하며, 대체 이게 다 뭐였냐고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lt;/p&gt;
&lt;p&gt;하지만 이 정도의 고찰도 교단에서 공유되지 않고 있는데, 그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은혜가 더할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감사합시다 같은 염불만 외는 마당에는 뭘 기대하나 싶고 좀 그렇다. 다음 주엔 또 어떤 기묘한 설교 본문이 얼마나 알기 쉽게 고아져서 나올는지 그냥 그게 (안) 궁금할 뿐.&lt;/p&gt;
&lt;p&gt;&amp;nbsp;&lt;/p&gt;
&lt;p&gt;PS. 이 글 제목과 관련된 농담을 하나 하고 끝맺고 싶다. 제목(과 대표이미지 썸네일)은 불보듯 뻔하게 &amp;lt;Stranger Things&amp;gt;의 패러디이다. 사무엘상 4~7장을 읽는 동안, 만나는 장면 하나하나를, 동네의 흔한 넷플릭스 코즈믹 호러 시리즈로 각색해서 상상하지 않을 수 없었던 탓이다. 어떤가? 좀 그럴듯하지 않은가? 모르겠으면 말구.&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category>구약성서주해</category>
      <category>사무엘상</category>
      <category>에벤에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5</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5#entry875comment</comments>
      <pubDate>Fri, 3 Jan 2020 23:13:54 +0900</pubDate>
    </item>
    <item>
      <title>평범한 인물에 관하여</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4</link>
      <description>&lt;p&gt;요즘 생각하는 것은 인물(characters)이라는 요소이고, 특히 '평범한 조연/몹 캐릭터'에 관심이 있다.&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동생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무슨 새삼스러운 소리냐고, 안 그래도 님은 러키스타를 보면서 시라이시 미노루에 꽂혀 있던 이상한 놈이었다고, &quot;WAWAWA 와스레모노&quot;를 불러대던 게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흑역사(?)를 털어서 피차 좀 민망하긴 했다. 흑역사랄 것도 없고 솔직히 그건 사실이다. &lt;/span&gt;평범캐 자체는 (내 기억이 맞다면) 고딩 때쯤부터 꽂혀 있는 모에 요소이긴 했으니까. 근데, 지금 돌이켜 보면 그건 또 하나의 모에 요소에 대한 관념적이고 의식적인 취향이었을 뿐이지, 정말로 그 평범한 인물들의 평범함 자체를 들여다보고 그걸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다. 시라이시 미노루의 사례를 들자면, 앉은자리에서 동생에게 반박했던 바, &quot;아니 근데 미노루는 거기서 평범함이라는 캐릭터로 부각이 됐었기 때문에 정말로 평범한 건 아니었어. 따지고 보자면.&quot;&lt;/p&gt;
&lt;p&gt;&lt;b&gt;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바 내가 요즘 꽂혀 있다는 평범한 캐릭터란 어떤 것인가? 캐릭터가 없는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lt;/b&gt; 작품이 특정한 속성이나 전형을 부여하지 않고, 그런 속성이나 전형이 생길 만한 사건도 주지 않고, 그저 작품 안의 시공간을 살게 내버려두고 기르고 있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이를테면 최근에 넷플릭스로 1~12화를 재주행한 뒤 원작 4~9권을 중고로 사서 방금 막 일독하고 돌아온 &quot;&lt;a href=&quot;https://ko.wikipedia.org/w/index.php?oldid=24400020&quot; target=&quot;_blank&quot; rel=&quot;noopener&quot;&gt;시모세카&lt;/a&gt;&quot;에서의 누레고로모 유토리 같은 캐릭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인물이 얼마나 비중이 없느냐 하면, 일단 이 작품이 '애니화'를 할 때 아예 거기에 등장하지 못했고, 4권에서까지만 하더라도 그는 소위 &quot;4대 음담패설 지하조직&quot; 중 하나인 &quot;포유류&quot;의 두령(이었나 총무급이었나 아무튼) 정도로만 등장을 했었다. 그래서 '흠, 뭐 이런 인물이 있나 보지, 여고생이 거유 요소에 집착하다니 매우 이상한걸' 하고 지나가려고 했는데&amp;hellip; 그가 주인공 남자와 한때 친하게 지냈었고 흔하지만 꽤 슬프게 생이별해야 했다는 쓸데없이 자세한 과거 썰이 풀어지면서부터는 유토리 외의 캐릭터들은 급격히 납작해지면서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lt;/p&gt;
&lt;p&gt;사실 그 이후로 유토리의 비중이 갑자기 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렇게 출연시키는 방식은 아무리 그래도 좀 억지인걸, 팬들이야 좋겠지만' 하는 감상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작가의 관심도 그냥 그저 그래서, 급기야 9권(이었나?) 작가 후기쯤에 가서는 &quot;그러고 보니 유토리는 러브코미디 라인에 올라 있지도 않군요. 혼자만 영어 이니셜이 Y라서 그런 걸까&quot; 운운 망발을 일삼을 정도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이런저런 떡밥을 남겨 주며 잘 사용하고 있잖아요. 그럼에도 정말 가뭄에 콩 나게 보이는 그녀의 등장 장면과 대사 몇 마디, 행동 몇 가지, 서술 몇 마디가 그렇게 귀할 수가 없고 그것만으로도 캐릭터가 충분히 개연성이 생긴다는 느낌이다. 희한한 일이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다른 캐릭터들에게 쏠려 있는 비중에 비하면 애초에 &lt;/span&gt;등장 자체가 별로 없는데도 관심이 간다니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quot;아 이거 뭐냐고 완전 호라모젠젠 루트잖아 너무 슬프잖아&quot; 같은 관심이었지만, 뒤로 갈수록 어떤 '묘'를 깨우치게 되었다고 할까.&lt;/p&gt;
&lt;p&gt;그건 내가 변태라서라기보다는 ― 그게 진짜 이유라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니까 ― 그보다는 두 가지 이유 때문이 아닐까 싶다. &lt;b&gt;일단 첫째는 양적인 이유. 애초에 정보량 자체가 적으므로 상상할 여지가 있는 것이다.&lt;/b&gt; 말이 좀 궤변 같은데, 이렇게 뒤집어서 설명하면 어떨까? &quo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평범하지 않은&lt;/span&gt;&quot; 캐릭터들은 그 '캐릭터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체 너무 많은 정보를 소모한다. 그래서 그 인물은 다른 인물로 살아갈 여지가 적어지고, 상대적으로 재미없고 평면적인 인물이 될 위험이 높아진다. 평범한 인물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애초에 주어진 캐릭터성이 없기 때문에 좀더 여러 가능성을 상상하고 들여다볼 여지를 주는 것이다. 이 부분이, 잘 해내면, 썩 훌륭해진다는 게 요즘의 생각이다.&lt;/p&gt;
&lt;p&gt;이 이유에 있어서 적절한 사례를 하나 들자면 (역시 넷플릭스로 정주행 완료한) &quot;달링 인 더 프랑키스&quot;의 이쿠노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체계적으로 격리 육성된 어린이들이 남녀 한 쌍으로 거대 로봇에 탑승하여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어느날 지구에 나타난 규룡이라는 반-기계-반-생물 괴생명체들을 격퇴한다는 별 되도 않는 줄거리 속에서, 그나마 이쿠노라는 승무원(여자 승무원을 '피스틸'이라 부른다)만큼은 사뭇 다르다. &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이하 아마도 스포일러) 그가 속한 &quot;제13부대&quot;는 대다수가 굉장히 센 스토리라인과 전형적인 캐릭터를 갖고 있어서, 안경, 주근깨 외의 별다른 모에 속성도 없고 분량도 없는 그는 초반에는 아예 보이지를 않는다. 그래도 보면 드문드문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다. 뭘까? 싶어서 그 짧은 장면의 시사점들을 기억해 뒀다가 전체적으로 엮어서 보면... 뭐야? 갑자기 어떤 쓸쓸한 디나이얼 에이섹슈얼의 인생 여정이 썩 훌륭한 서브플롯이 되어 툭 튀어나오는데, 다른 건 다 몰라도 이 작품이 이건 좀 좋았다는 감상이다. 이 애니는, 뒤로 갈수록, 웬만큼 '몹캐'가 아니고서는, 모든 인물의 이야기와 입장을 꽉꽉 닫아서 시청자에게 딱 던져주고 결말 매듭을 지은, 대단히 지루한 전개를 선택했었기 때문에.&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두 번째 이유는 이거보단 좀 덜 궤변일 거 같은데, &lt;b&gt;질적인 이유. 평범한 캐릭터라는 건,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투입시키지 않는 한은, 웬만한 캐릭터들보다 더 만들기가 어렵다.&lt;/b&gt; 왜냐하면 그 캐릭터를 조형함에 있어 각종 속성과 템플릿은 쓸 수 없고 순전히 디테일과 내러티브만으로 인물 조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들이 일단 성공적으로 작품 줄거리에 안착을 하면, 그때부터 줄거리와 작품 전체는 그 캐릭터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의 존재 개연성을 의심할 수 없게 된다. 매력이 있는 어엿한 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lt;/span&gt;&lt;/p&gt;
&lt;p&gt;이 요지에 있어서 적절한 사례는 아마도 &quot;용왕이 하는 일&quot;이라는 작품의 키요타키 케이카가 아닐까 하는데, 이 인물은 특히 구체적으로 모티프로 삼고 있는 실존 인물이 있다는 것이다. 그분 역시 일본장기 프로 기사로서, 그 자격을 얻기 위해 오랜 세월 칠전팔기를 하였고, 하마터면 연령 제한에 걸려 꿈을 못 이룰 뻔했다고 한다. 냉정하게 말하면 흔하고 밋밋한 사연이다. 이걸 가지고 선명한 캐릭터를 세워서 모에캐로 팔기는 어렵다. 캐 만들기의 가성비만으로 따지자면, 이 작품의 메인 여주인공 &quot;아이쨩&quot;을 비롯한 '여자초등학생 장기연구회' 캐릭터들 같은 걸 막 찍어내는 게 더 나을 것이다. 아이쨩은 심지어 여관집 외동딸로 태어나 일본장기에 푹 빠져 머릿속으로 장기 두는 훈련을 거듭한 끝에 소질이 각성되었다는 별 말도 안 되는 스토리라인까지 갖고 있다. 이길 수 있겠냐고. 하지만 아이쨩의 사연은 어찌 됐든 기본적으로 공갈인 반면, 케이카의 사연은 기본적으로는 정말 다 있었던 일이다. 그래서 차이가 갈린다. 아이쨩이나 다른 &quot;일본장기천재 캐릭터들&quot;의 대국은 뭔가 대단하지만 잘은 모르겠다는 느낌인 반면, 케이카의 장기 국면들은 왠지 뭐가 뭔지 알겠다는 기분이었다. 재능도 없으면서 공연히 노력만으로 어떻게든 해 보겠다고 시간을 허비한 건 아닌가 하는 그의 고뇌가 고스란히 녹아 있었고, 스스로에게 원통함을 느끼며 펼치는 그의 일전은 한편 상투적이면서도 또한 그럴듯하게 처절했다. 나는 그 사연에 순순히 설득되고 있었고, 그를 &quot;여초연&quot; 캐릭터들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끼게 되었다.&lt;/p&gt;
&lt;p&gt;써놓고보니 전체적으로 결국 한 가지로 수렴을 하는데, 나는 아무래도 전형성보다는 입체성과 구체성을 더 요구하고 있는 모양이다.&lt;/p&gt;
&lt;p&gt;&lt;b&gt;요즘 콘텐츠업계와 상업예술계는 사실상 매력적인 (작품상의) 캐릭터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바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 캐릭터들 자체는 갈수록 특정 기호 몇 가지와 사회적으로 합의된 맥락 그리고 각종 포맷과 템플릿에 점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lt;/b&gt; 그걸로 캐릭터의 구체성이 확보되고 평면성이 해결될 거라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사람들이 알아듣는 기표 몇 개를 던져서 귀찮은 설명과 가능성의 여지를 특정하자는 것일까. 뭐 잘은 몰라도 일단 사람들은 이미, 필요하며 가능한 경우라면 언제든지 프로토콜에 기반한 인지와 사고와 행동을 하고 있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항간에 돌아다니는 &quot;파쿠리 논란 뜰때마다 생각나는 짤&quot; 같은 건 순전히 대중의 행동 양태에 대한 대응일 뿐이다.&lt;/span&gt; 업계가 거기에 저항할 의무나 의리는 없다. 어쩔 수 없지 사람들이 노쟈 로리 캐릭터는 무조건 쿠기밍이 해야 된다고 믿고 있으면 쿠기밍을 캐스팅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있겠냐고.&lt;/p&gt;
&lt;p&gt;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요구하고 싶은 것은, 솔직히 그렇게까지 막 선명하고 알아보기 쉽게 미쳐날뛰는 캐릭터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작품 내내 예상 가능한 방식대로만 행동하고 자아를 대본에 위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뻔한 행동만 취하다 퇴장하는 인물 대신, 정말 살아 있는 것 같은, 그 주관과 인생 사연이 보이는, 왜 저러는 것인지 좀더 알고 싶어지는, 정말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그런 인물들을 좀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 바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이미 너무 많이 처방되어 그 약발이 떨어진 몇몇 요소와 포맷과 전형에 의해 오독되지 않도록 추가적으로 각별히 신경써 주셨으면 하는 바다.&lt;/p&gt;
&lt;p&gt;사실 지금 우리가 닳아빠졌다고 비웃는 전형적인 인물상 중 일부는, 반세기쯤 전만 해도, 당시에는 매우 새롭고 생생했으며 구체적이고 놀랍게 입체적인 인물상들이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그 전형의 복제 재생산이 아니다. 그건 이미 충분히 많이 했다. 솔직히 말하면, 예컨대 핑크색 머리에 깨발랄하고 분위기 메이킹을 하지만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는 캐릭터 같은 건 정말 질색이다. 그건 몰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어떤 의미에서 &quot;여학생 C&quot;보다 더 모멸적인 단역이 아닌가 말이다. 그런 거 말고 유토리, 케이카, 이쿠노 같은 캐릭터를 달라는 얘기다. &lt;b&gt;그들을 들여다볼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고, 들여다보았을 때 뭔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으면 좋겠고, '혹시 이런 것 아니었을까' 하는 발견을 하고 싶다.&lt;/b&gt; 요 근래 들어 못 느껴본 지 오래 되었던 모에롭다는 감상을 즐길 수 있었던 건 그런 순간들이었다. 아직은 그래도 평범한 캐릭터들에게서는 그게 되는데, 어쩌면 지금 평범한 인물들에게 흥미가 돋우어지는 건 그 때문일까.&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늦었으니 오늘은 이쯤 해야겠다. &lt;/span&gt;내일은 &quot;평범한 사람들이 비현실적인 얘기 하고 노는 취미토크쇼&quot;를 표방하는 김어진쇼를 제작하러 나가야 하니까. 나라도 평범한 인물을 어떻게 해 볼 여지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김어진쇼에 나오는 김어진은 내가 봐도 평범한 구석이 하나 없어 &quot;소설 캐릭터라고 해도 안 믿어줄&quot; 수준이라 좀 힘들 거 같고 말이지.&lt;/p&gt;</description>
      <category>3 늘어놓은/메타리뷰</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4</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4#entry874comment</comments>
      <pubDate>Sun, 6 Oct 2019 02:50:58 +0900</pubDate>
    </item>
    <item>
      <title>&amp;lt;찬양이 노래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amp;gt; (2019, 곰도와니)</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3</link>
      <description>&lt;blockquote data-ke-style=&quot;box&quot;&gt;원래 '오말찬'이라는 브랜드는 많이 접어주는, 그럴 자격과 가치가 있는 브랜드지만, 기왕에 자비 출판으로서 책이 되어 엮여 나왔으니, 이에 대해서는 좀 많이 진지하게 에누리 없이 짤막하게 비평해 보기로 한다.&lt;/blockquote&gt;
&lt;p&gt;형식의 문제. 만화라는 기본 장르, 'B급 감성'으로 흔히 수식되거나 변호되는 간단하고도 서투른 작화, 결국 다 한바탕 꿈이었다는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유메오찌'의 틀,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초전개' ― 작품 내내 주인공은 아무데나 난입해서 아무거나 열어보고 아무하고나 아무렇게나 아무 말이나 주고받는 아무 일이나 다 한다, 그리고 서술자는 더더욱 그렇다 ― 는, 모두 잠시 후에 다루게 될 '내용'의 &quot;위험성&quot;을 은닉하기 위한 장치 또는 완충재로 보인다. 그 효과가 너무 탁월한 나머지, 그 완충재는 소재 자체를 실제보다 더 커 보이게, 또는 무거워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lt;br /&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현실과의 관계성의 문제. 작가는 주인공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현실 그 자체에 노출을 시키며, 신학에 대해서는 판타지적 묘사와 과장이 있지만 이 역시 어디까지나 '실제/실상의 서술'의 범주에 충분히 귀속된다. (그리고 '약스포'를 하자면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의 현실은 그 신학적 판타지에 디졸브된다.) 그런데 교회에 대해서만큼은, 작중 시종일관, 어떤 식으로도 정말로 현실을 지시한 것은 아니라는 식의 의식적 괴리가 항시 유지되고 있다. 교회에 관한 그 어떤 장면도 과장이나 '드립' 없이 표현되어 있지 않은데 이는 오히려 강박이라 해야 좋을 정도이다.&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내용의 문제. 이상 살펴본 모든 충돌과 불안정성은 모두 이 작품의 핵심 내용 및 주장에 기인한다. 교회가 &quot;찬양&quot;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께 심경을 토로하고 영광을 돌리는 행위의 일체의 총칭이나, 사실은 교회 그 자신이, 그 찬양이라는 것을 단지 악기 치고 노래하는 행위 그 자체로만 국한하고 격하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이제 &quot;주인공&quot;은 찬양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은폐될 필요나 가치가 없는&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자명한 현재 실상이고 비판과 대안의 제시가 절실한 문제 상황이다. 그러나 작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잣대에 비하면 너무나 관대하게, 이 내용을 철저히 비주제적인 것으로 한정한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시장과 공론장의 문제. 작가의 이 전략은 결국 한국 기독교 콘텐츠라는 장르와 그 토양의 문제로 귀결된다. 작가는 한국 기독교 콘텐츠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에끌툰'을, 한국의 정상급 CCM과 워십음악들을,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자기의 그 의견이 결코 존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amp;nbsp;&lt;/span&gt;복잡한 심경으로, 최종적으로는 멸시하고 기피한다. 정말로 찬양을 음악에 국한하지 않으려는 시도나 그 시도를 실현하려는 교회 같은 것은 이를테면 현재의 기독교 문화와 관습에 정면 대립하는 반명제인데, 그의 기준에서는, 어떤 플랫폼이나 사역단체도 정말로 이 테제를 수용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요약. &amp;lt;찬양이 노래라고 생각하는 당신에게&amp;gt;의 작가는 상대적으로 극단적인 소수의견을 설득시키기 위해 형식상의 선택과 내용상의 비주제화를 시도하였는데, 이것은 꽤나 성공적이면서도 유감스러운 생존 전략이라는 생각이다. 그 유감은 이런 &quot;안티테제&quot;(안티적이기는커녕 오히려 원론적인 것이지만)를 논의하지 못하는 환경에 대한 유감이다. 기실 그것, 그 분위기, &quot;감히 알려고 하는&quot; 행동에 대한 과도한 경계야말로, 전혀 과도하게 경계할 필요 없으며 오히려 타파해야 할 인습이다. 이 작품은,&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quot;찬양&quot;에 대한 신학적 내용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되,&lt;/span&gt;&amp;nbsp;최소한 우리가 그 인습을 성토하는 작업부터 해야 한다는 진술서로서는 매우 유효하다. (끝)&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3 늘어놓은/메타리뷰</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3</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3#entry873comment</comments>
      <pubDate>Thu, 18 Jul 2019 23:37:07 +0900</pubDate>
    </item>
    <item>
      <title>어제라는 오늘</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2</link>
      <description>&lt;p&gt;특별히 쓸 얘기는 없는데 그냥 요즘 블로그를 하도 안 해서, 근황이나 남겨 볼 목적으로 조금 적어 본다.&lt;/p&gt;
&lt;p&gt;내일은 김어진쇼 65회를 녹화/녹취하는 날이다. 그냥 모지리 같은 걸 할 생각이다. 테트리스의 테트리미노 중 정사각형 모양의 테트리미노가 얼마나 쓸모없는지에 관해서 웅변할 예정이다. 사전 조사를 좀 해야겠지&amp;hellip; 66회쯤에서는 아마도 옷과 신발을 사러 가지 않을까? 그리고 잊지 말고 운전면허 시험 재응시를 해서 67회에는 토요일 시험을 보러 가야 한다.&lt;/p&gt;
&lt;p&gt;김어진쇼 말 나온 김에 그러면 별도로 하고 싶은 것이 있느냐 했을 때는&amp;hellip; 사실은 스탠드업을 좀 해보고 싶기는 하다. 간밤에 구상을 해보았다. 무대에 나와서 오프너 토크만 70분을 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막이 닫혀 버리는 것이다. 대충 할 수 있을 것 같기는 한데 저번에 신규입사자 자기소개 세션에 10분 동안을 (심지어 앞으로 계속 알고 지내야 할) 사람들 앞에서 굉장히 가깝게 혼자 떠들어 보니 이것도 대본과 훈련과 계획이 없으면 다 허사 되겠다 싶어서 좀 많이 길게 보고 우선 닫아둔 상태다. 내 사운드는 굉장히 헛돌고 고르지 못하고 어딘가 계속 새는 걸 torque로 뻗대는 사운드라서 냉혹한 훈련 아니면 편집이 필요하다. 뭐 김어진쇼라는 좋은 핑계가 있으니 어떻게든 언젠가는 비슷하게 해 보겠지.&lt;/p&gt;
&lt;p&gt;무대가 그리우냐, 아니면 사람들에게 뭔가 선사하는 게 하고 싶으냐 하면 그걸 잘 모르겠다는 느낌이다. 김어진쇼는 요즘은 약간 뭐랄까 지난 몇 년 동안 하여간 뭔가 만들어서 내보내야 했던 그 루틴에 대한 의존성 습관이 되어 있다. 그다지 막 크게 재미있지 않은데 대충 이번 주도 때웠다 싶게 때우고 있다. 이런 식으로 기초 체력이 붙으면 뭐라도 나오겠지 하는 생각과, 이럴 거면 뭐하러 이렇게 힘들게 매주 고생하나 싶은 마음이 번민하는 중이다. 일단 무대는 그립지 않다. 무대는 그 자체로 사람을 홀리는 힘이 있기 때문에, 그걸 알고 있는 이상은, 의식적으로 홀려지지 않으려고 한다. 주관적으로, 선택적으로 내가 무대를 선택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는 뭐 집안 베란다만도 못한 구독자 수 100명 미만의 작디작은 스테이지지만&amp;hellip; 대체 나는 중학생 때 대학생 때 무슨 정신 무슨 쾌감으로 이젠 나조차도 안 보는 만화를 그렇게 열심히 그렸나&amp;hellip; 싶어지고 mazefind씨의 maze 작품들은 영영 다시 못 보는 걸까 싶고 문득문득 그렇다.&lt;/p&gt;
&lt;p&gt;그래서 생각이 나는 것은, 마침 최근 다시 홀린 듯이 재정주행하면서 보았던 &amp;lt;호기심 해결사&amp;gt;의 B팀이다. 캐리 토리 그랜드 세 사람은 이번에 조사를 해 보니 각자 알아서 제 갈 길 가는 중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좀 정신이 차려지면 그렇게 의협심과 어깨의 힘이 빠져 나가는 모양이지. 물론 옛날 하던 거 잘 했고 그 시절이 좋았다는 이유만으로 그저 그 모습에 마냥 머물러 있겠다는 꼴이야말로 가장 안쓰러운 몰골이 됨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여전히 과학과 속설과 최신 기술과 엔터테인먼트를 합친 교집합 어딘가를 서성이고들 있지만, 그래도 &amp;lt;호기심 해결사 2&amp;gt;와는 좀 적절하게 거리를 두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지금 그랜트 씨는 너무 멀리 가 있고 캐리 토리 콤비는 아직 너무 가까이에 있다. 내가 너무 까다로운 건지도 모르지만.&lt;/p&gt;
&lt;p&gt;마치 호기심 해결사를 졸업한 그 세 사람처럼 지인들도 하나둘씩 와웸과 찌라시와 트탐라를 졸업하고 저마다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힘들 쓰고 있다. 해찬이는 제이미가 되어서 랜선극장 극장주가 됐고&amp;hellip; 쇼에 나온 사람 중 (취미로나 업으로나) 만화를 하고 있는 인간이 무려 셋이나 있고&amp;hellip; 현익이는 잘 취직했고 찬영이는 글밥과 카페 식객 노릇으로 얼추 살 것 같고&amp;hellip; 어째 바로그찌라시 멤버들만 이렇게 보기가 힘들고 다 바라바라가 되었는지 야속해서 잠 못 이룰 일이다. 프사를 바꾸고 싶은 것은 그게 찌라시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이제 놓아줘야 하는 때가 오고 있는 거다. 생각의 재활용이니 호밀밭이니 오버스마트니 실천 가능한 20대 라이프 스타일이니 데뷔니 딴에는 꽤 의미 있는 관점들을 제시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한테나 의미가 있었지 아무래도 결국에는 다 시시하게 20대 시절의 재기발랄(씨발)로 귀결될 모양이다. 웃픈 일이다. 아직 그게 내 원동력으로 그리고 계기로 남아 주고 있으니.&lt;/p&gt;
&lt;p&gt;와웸 하니까 굳이 좀 적자면&amp;hellip; 엊그제인가에 내 동시대 서강 와웨머 두 명에게서&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5분 간격으로&lt;span&gt;&amp;nbsp;결혼 소식 카톡이 왔었다. 무슨 서로 신호라도 주고받아 가면서 보낸 줄 알았다. 적지 않은 와웨머들이 저들끼리 결혼한다. 그냥 그렇다고 쓰고 싶었을 뿐이고 좋다 나쁘다는 모르겠다. 좋다 나쁘다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명박근혜와 세월호를 지나고 &quot;비전 2020&quot;을 바라보는 이 시절에 와서까지도 아직 저러고 있는 CMK의 게으른 포즈다. 그리고 이건 나쁘다. 대학 사회를 복음화한다는 게 사실은 무슨 의미인지 정말 그걸 해 버리면 뭐가 좀 많이 곤란해지는데 그게 뭔지 하나도 모르고 하나도 안 가르치고 4년 내내 애들을 연애 금지 조례에 가둬 놨다가 세상에 풀어 버린다. 풋내기 1학년 때야 뭐 모든 게 행복하고 안전하고 예배가 맛있고 정서가 풀리고 아주 훌륭한데, 그게 이곳이 엄청나게 안전한 온실이라서 그런 거라는 걸 왜 아무도 명시적으로 말해 주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황야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그리고 대부분의 비신자 일반인들이 종교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란 술에 잔뜩 취해서 알 수 없는 죄책감이 피어오를 때 같은 순간(뿐)이라는 통계적 진실을 왜 안 알려주는 것일까? 아니 뭐 다 모르겠고 왜 우리는 전도단이라는 사람들이 변증 하나를 제대로 훈련 안 하고 맨날 3평짜리 우리 방에 틀어만 박혀서 운동장을 구경하며 &quot;음성&quot;만 처 듣고 다닌 것일까? 우리가 그렇게 대수롭게 홀리하고 스피리추얼했던가?&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할 수 있다면 기독교 테마의 무엇을 좀 하고 싶다. 근데 그게 다 일발성으로 끝날 요량이 있어서, 한마디로 '콘텐츠가 없어서' 못 하고 있다. 그리고&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할려면 신학 하는 사람이 좀 거들어줘야 하는데 내가 그 연줄이 없어서&amp;hellip; 그래도 뭐&amp;nbsp;&lt;/span&gt;저번에 환희랑 전화통화를 두 시간 가까이 했을 때의 일만 가지고 생각해 보자면, 간단하게 FAQ 토픽 몇개 늘어놓고 개똥철학을 늘어놓는 것만 해도 당장은 먹힐 것으로 보인다. 데모그래픽적으로 말해서는 현재 2030 신자 및 냉담자들의 사상적 기반이 말도 못하게 취약하기 때문이다. 조직신학까지도 필요없고 세계사, 교양철학, 기초과학, 기본적 수준의 비판적 사고만으로도 충분히 기독교 개론 가능하다고 나는 보는데 그게 안 돼 있으니까 온갖 좋은 소리 떡발라서 뼈대 없는 건물을 실면적 2만평짜리로 세워놓고들 다니는 거다. 와웸에서 유일하게 변증이며 신학 비슷한 걸 좀 알려주신 분이 이지웅 간사님인데 그분 강의가 세상에 그렇게 인기가 있었단 말이지. 그리고 그 청중들은 여전히 그 강의들과 조셉 프린스의 신나는 히브리어 강의와 &amp;lt;왕의 재정&amp;gt; 사이에서 전혀 분간을 못 잡고 살아간다. 예루살렘아&amp;nbsp;예루살렘아&amp;nbsp;선지자들을&amp;nbsp;죽이고&amp;nbsp;네게&amp;nbsp;파송된&amp;nbsp;자들을&amp;nbsp;돌로&amp;nbsp;치는&amp;nbsp;자여!&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돌아와서 개인사를 좀 논하자면&amp;hellip; 피똥 싸게 개발 중이다. 옆에서는 주구장창 유지보수 이슈대응 등만 맡고 있는 ASP 개발자 차장님이 &quot;와 재밌겠다 개발한다&quot; 하면서 구경하는데 구경 자체는 뭐 그렇다 치지만 정말 하루하루 다른 의미에서의 피 마름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레벨업하고 싶지 않았다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 건 어쩔 수가 없는데, 하필 빌링(결제)이다. 심지어 아임포트나 스트라이프 같은 것도 아니고 그냥 PG에서 준 코드를 날로 갖다 씌우고 있다. 이니시스는 모든걸 결국 CURL 치는 구조이고(최종 승인 과정에서 인증토큰을 태워 보내야 한다), KCP는 자기네 바이너리에 변수를 넣어서 돌리면 그 안에서 CURL 날리고 인증치고 변수 반환하고 하는걸 다 해주는 구조다. 동적으로 설정값 받아서 메소드 돌리는 class KCP를 만들 수는 있을 거 같은데, 그리고 그걸 말로만 듣던 프로바이더나 뭐 그런 것에 옮겨놓고 걍 툭툭 갖다쓰는 걸 구현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럴 시간이 없다. (그나마 퍼블릭 경로에 쑤셔박혀 있던 결제요청 바이너리를 소스 내부로 가져온 게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냥 일단 결제 자체가 성공해야 해서 미친 듯이 기존 레거시와 예제 소스를 뒤집어 까면서 최대한 앞뒤를 맞추려고 하고 있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잘 안 되면서도 어쨌든 되어가고 있다. 정말 1년차답구나 싶다. 아무도 내 코드를 봐주지 않는 가운데 베트남 외주개발업체 사람들과는 미친듯이 소통하면서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빠르게 결과물을 받아보고 있어 좀 많이 당혹스럽다.&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느낌상 초반에 이렇게 눈핑핑돌게 달린 다음 이후 몇 달 동안 나도 할 일이 없어 얼타게 될 삘이다. 그때쯤엔 뭔가 일을 만들어야지&amp;hellip;&amp;nbsp;&lt;/span&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이 회사에 3년은 있고 싶은데 그 이상은 정말 내가 그리고 개발팀이 그리고 대표란 사람이 장차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다. 어쨌든 이 회사 주요 상품은 교재와 교사 서비스이지 웹사이트나 &quot;체험상품&quot; 따위가 아니기 때문에. 뭐 그래도 최근 한국경제 단독으로 뜬 전직장 존망의 위기 관련 소식을 보면 그냥 아찔하다는 생각만 들지 뭐 지금의 상황을 왈가왈부할 처지는 못된다 ㅎㅎ 그냥 주는밥 먹고 얌전히 MSSQL과 씨름하다 집에 가면 될 것 같다. 아 맞다 SQL 공부를좀 해야 하는데&amp;hellip; 정말 싫다. 아 맞다 회계자격증 따고 봉사시간 채워야 하는데&amp;hellip; 어휴 이다.&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다 써놓고 보니 전반적으로 새삼 드는 생각은, 약간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이라는 긴 커밋로그의 어느 한 롤백 가능한 스테이블 배포판 태그 지점 같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슨 브랜치를 따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새 브랜치를 시작하려면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우물쭈물&amp;nbsp;&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핫픽스나 붙여 가면서 master에 머물러 있는 건데&amp;hellip; 그래서인 거였을까? 최근에 전혀 내 인생과 무관하던 킹오파 브랜드 신작 폰겜을 받아 봤다. (심지어 사전예약도 했는데 공식 채널 통해서 해서 그런지 별다른 보상이나 알림을 못 받았다.) 사실은 대다수 사람들이 초딩때 다 졸업했을 시라누이 마이에게 혹해서 시작해 봤지만 의외로 마이라는 캐릭터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느낌이고 (정말 당혹스러웠다 당연히 지금쯤 얘 보려고 게임 켜서 얘만 보고 있어야 하는데 안그러고 있음) 그냥 beat 'em up 장르를 (매우 순한)맛이나 보자는 느낌으로 너무 늦게 기웃거리고 있다. 게임 같은 게임을 좀 하고 싶은데 요즘 게임은 게임 같지가 않아서 곤란하다. &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플스를 사면 좀 나아질까 했다가, 그마저도 우선은 접었다.&amp;nbsp;&lt;/span&gt;오히려 클래식 테트리스가 게임 같을 지경이라 요즘은 소전 데차 라오진 다 버려두고 테트리스나 하고 앉은 상황이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그래서 다음 김어진쇼에서는 테트리스의 테트리미노 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테트리미노 랭킹을 매기는 영 머리 나쁜 기획을 관철할 예정이고&amp;hellip; 내일은 샤브샤브와 &amp;lt;걸캅스&amp;gt;를 볼 것 같다. 그게 오늘, 아니 어제의 일이다. 아니 오늘의 일이다. 그냥 지금은 그렇다.&lt;/span&gt;&lt;/span&gt;&lt;/span&gt;&lt;/p&gt;
&lt;p&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lt;span&gt;&lt;span style=&quot;color: #333333;&quot;&gt;지금 스크롤을 다시 돌려보니 영 황당하다. 뭔 임상학적 개소리를 이리 길게 써놨냐고.&lt;/span&gt;&lt;/span&gt;&lt;/span&gt;&lt;/p&gt;</description>
      <category>9 도저히 분류못함</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2</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2#entry872comment</comments>
      <pubDate>Sat, 11 May 2019 01:01:16 +0900</pubDate>
    </item>
    <item>
      <title>그러나 우리 하나님은</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70</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Yet Is Our God by Anointing Ministry&lt;/p&gt;&lt;p style=&quot;text-align: right;&quot;&gt;Translated by Eojin K.&lt;/p&gt;&lt;p&gt;&lt;br /&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qc0qVimHxk&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281&quot; allow=&quot;accelerometer; autoplay; encrypted-media; gyroscope; picture-in-picture&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p&gt;&lt;p&gt;&lt;/p&gt;&lt;p&gt;&lt;br /&gt;&lt;/p&gt;&lt;p&gt;# Verse 1&lt;/p&gt;&lt;p&gt;&lt;b&gt;Yet is our God still the mighty One&lt;/b&gt;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lt;br /&gt;&lt;b&gt;Praise Him for His strength, Hallelujah&lt;/b&gt; 전능하시니 할렐루야&lt;br /&gt;&lt;b&gt;And my soul shall be well&lt;/b&gt; 거센 폭풍에도&lt;br /&gt;&lt;b&gt;Even in most raging storm&lt;/b&gt; 내 영혼 안전하리&lt;br /&gt;&lt;b&gt;I'm in the LORD&lt;/b&gt; 주 안에서&lt;/p&gt;&lt;p&gt;&lt;b&gt;Yet is our God still the faithful One&lt;/b&gt;&amp;nbsp;여전히 우리 하나님은&lt;br /&gt;&lt;b&gt;Praise His trustfulness, Hallelujah&lt;/b&gt;&amp;nbsp;신실하시니 할렐루야&lt;br /&gt;&lt;b&gt;And no promise from Him&lt;/b&gt;&amp;nbsp;어떤 상황에도&lt;br /&gt;&lt;b&gt;Will cease away no matter how&lt;/b&gt;&amp;nbsp;그 약속을 이루시리&lt;br /&gt;&lt;b&gt;It's for the LORD&lt;/b&gt;&amp;nbsp;주 안에서&lt;/p&gt;&lt;p&gt;# Chorus&lt;/p&gt;&lt;p&gt;&lt;b&gt;Praise Him, praise Him&lt;/b&gt;&amp;nbsp;찬양 찬양&lt;br /&gt;&lt;b&gt;All praises and songs unto our LORD&lt;/b&gt;&amp;nbsp;주 찬양하라 노래하라&lt;br /&gt;&lt;b&gt;Shall sound the earth, shall fill the sky&lt;/b&gt;&amp;nbsp;온 세상에 주를 향한&lt;br /&gt;&lt;b&gt;To show how worthy is our God&lt;/b&gt;&amp;nbsp;찬양이 가득하도록&lt;/p&gt;&lt;p&gt;&lt;b&gt;Proclaim, proclaim&lt;/b&gt;&amp;nbsp;존귀 존귀&lt;br /&gt;&lt;b&gt;All honors&amp;nbsp;and thanks unto our LORD&lt;/b&gt;&amp;nbsp;오 주의 이름 선포하라&lt;br /&gt;&lt;b&gt;Shall lit the world and all around&lt;/b&gt;&amp;nbsp;온 세상에 주의 빛난&lt;br /&gt;&lt;b&gt;To show the glory of&amp;nbsp;our God&lt;/b&gt;&amp;nbsp;영광이 가득하도록&lt;/p&gt;&lt;p&gt;# Verse 2&lt;/p&gt;&lt;p&gt;&lt;b&gt;Yet is our God still the rightous One&lt;/b&gt;&amp;nbsp;그러나 우리 하나님은&lt;br /&gt;&lt;b&gt;Praise for His justice, Hallelujah&lt;/b&gt;&amp;nbsp;의로우시니 할렐루야&lt;br /&gt;&lt;b&gt;And the truth shall prevail&lt;/b&gt;&amp;nbsp;어떤 거짓에도&lt;br /&gt;&lt;b&gt;Over&amp;nbsp;the shadows and fakes&lt;/b&gt;&amp;nbsp;진리는 굳건하리&lt;br /&gt;&lt;b&gt;It's by the LORD&lt;/b&gt; 주 안에서&lt;/p&gt;&lt;p&gt;&lt;b&gt;Yet is our God still whom shall He be&lt;/b&gt;&amp;nbsp;여전히 우리 하나님은&lt;br /&gt;&lt;b&gt;Praise for He's alive, Hallelujah&lt;/b&gt;&amp;nbsp;살아계시니 할렐루야&lt;br /&gt;&lt;b&gt;And His words will be there&lt;/b&gt;&amp;nbsp;세상 다 변해도&lt;br /&gt;&lt;b&gt;When everything is falling down&lt;/b&gt;&amp;nbsp;주 말씀은 영원하리&lt;br /&gt;&lt;b&gt;It will be there&lt;/b&gt;&amp;nbsp;영원하리&lt;/p&gt;&lt;p&gt;&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1 내/ㄱ 번역</category>
      <category>어노인팅</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70</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70#entry870comment</comments>
      <pubDate>Tue, 11 Dec 2018 22:36:57 +0900</pubDate>
    </item>
    <item>
      <title>내려놓고 익명화하자는 게 과연 기독교인가?</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69</link>
      <description>&lt;blockquote class=&quot;tx-quote-tistory&quot;&gt;&lt;p&gt;어진 씨 교회 다녀? 난 어진 씨 보면 그 엔트로피라고 해야 하나? 그 차분한 느낌이 하나도 없고 막 부산스러워서 안 그런 줄 알았어. 사실&amp;nbsp;나도 교회 다니거든.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그냥 출석만 하는 건데, 목사님 말씀 들어 보면 다 결국 하나야. 익명화(anonymized)되는 거야. 자아를 죽이고, 내려놓고, 그분 말씀만 잘 순종하고 그러라는 거지. 살면서 뭐 선택할 일이 얼마나 많겠어. 근데 그걸 내가 하나하나 선택할 때마다 그게 다 짐이 된다 이거야. 그걸 다 내려놓으라 이거지. 요즘 우리 목사님이 거기에 꽂혀 계셔서 다 그 얘기거든.&lt;/p&gt;&lt;/blockquote&gt;&lt;p&gt;위와 같이 황당한 얘기를 회사 회식자리 파하고 집에 가는 길에 듣게 되어서, 그때 바로 얘기하면 술주정으로 들을까 봐 일부러 안 했던 이야기를 좀 적어놓으려고 한다. 그 자리에서는 &quot;그거 순 불교 가르침 같은데요?&quot; 정도로 퉁쳐 비비고 지나갔던 것인데 그걸 좀 길게 쓸 생각이다.&lt;/p&gt;&lt;p&gt;&lt;br /&gt;&lt;/p&gt;&lt;h2&gt;1. 대체 누가 누구더러 아무도 해달란 적 없던&amp;nbsp;익명화를 요구하는가?&lt;/h2&gt;&lt;p&gt;그 &quot;목사님&quot;의 &quot;말씀&quot;에 대한 요약과 그 용어는, 나도 해석된 것을&amp;nbsp;전해 받아 들은 바이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즉, 그 &quot;목사님&quot;이 정말로 '익명화해야 합니다 여러분 아멘?' 운운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전제이다.) 그러나 &quot;가정의 평화를 위해서&quot; 교회에 나가 설교를 구경하고 계신 분이 '가만히 들어 보니 결국 그 소리더라'라고 한다면, 그건 대상에 대한 전반적·전인적인 요약으로서 충분히 유효하다 할&amp;nbsp;정황이 있다 할 것이다.&lt;/p&gt;&lt;p&gt;자 그러면 이 요약에 대해 간단히&amp;nbsp;생각해 보자. 이게 과연 기독교적 가치인가? 아니오! 단언할 수 있는 부분인데&amp;nbsp;그게 절대 그럴 리가 없다 말입니다!&lt;/p&gt;&lt;p&gt;&lt;b&gt;그리스도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그리스도시다.&lt;/b&gt;&amp;nbsp;근거 성구가 한둘이 아니다.&amp;nbsp;마태를 보고 이르시되&amp;nbsp;나를 따라오라. 나사로야 나오너라. 삭개오야 내가 오늘 너의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심지어 이것은 우연한 인간적&amp;nbsp;습관이 아니고 오히려 이유가 있어서 나오는 본보기이다. &quot;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quot;(요10:3)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도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그&amp;nbsp;이름을 버리라고 하신 적이 없다. 오히려 (베드로더러&amp;nbsp;게바라고 부르는 식으로) 이름을 더 주시면&amp;nbsp;주셨지.&lt;/p&gt;&lt;p&gt;복음서 역시 (사실은 그리고 성경 전체가) 사람의 신원 파악(identification)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성경은&amp;nbsp;등장인물 하나하나에 대해서, 이름까지는 모르더라도, 누가 누군지&amp;nbsp;각각 무엇을 했는지 그 명부를&amp;nbsp;치사하다시피 세세하게 남겨 전하고 있다. 열두 지파, 열두 제자, 바울이 로마서 끝에서 안부를 물은 자매 형제들의 이름, 아니면 누가 누구의 자손 누구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구약이&amp;nbsp;지긋지긋하게 지키던&amp;nbsp;연표의 전통을 그대로 따른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연표를 여기 또&amp;nbsp;인용할 필요가 있는가? 없다.&amp;nbsp;기독교는 익명화를 요구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치 내 전화번호와 금융기관이&amp;nbsp;서로 그러하듯이,&amp;nbsp;&lt;b&gt;익명화를 요구하는 그 어떤 기독교도 본질적으로 종교적 피싱이다.&lt;/b&gt;&lt;/p&gt;&lt;p&gt;아니 그렇다면 대체 그 &quot;말씀&quot;들은 뭘 말하고 있었기에, 좍 걸러 듣고 요약한 엑기스가 &quot;익명화&quot;란 말인가? 짐작 가는 바는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황망하고 아찔하다.&lt;/p&gt;&lt;p&gt;그건 아마도, 무리와 제자들 보고 하신 말씀, &quot;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quot;(막8:34)에 근거하고 있는 얘기이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고'를&amp;nbsp;영어 성경들은 하나같이 'deny yourself'라고 번역해 놨는데, deny는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실관계'를 정정할 때,&amp;nbsp;아닌 걸 아니라고 말할 때 쓰는 동사라고 한다. 따라서 deny oneself는 이를테면 &quot;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여러분이 알고 계실지 모르겠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quot;라고 말하는 행동을 가리킨다. '그러면 당신은 뭔데요? 목사입니까? 선지자입니까?' 같은 질문을 들으면 그때는 등에 지워진 십자가를 보여주며 '나는 그저 예수님 따르는 사람올시다' 대답하라는 것, 그게 제자로의&amp;nbsp;부르심의 총체이다.&lt;/p&gt;&lt;p&gt;더도 덜도 아니라는 점, 이 이상도 이하도 요구하신 적 없음에 주목하자. &lt;b&gt;&quot;자기를 부인하고&quot;라는 말씀을&amp;nbsp;&quot;자기 존재를 지우고&amp;nbsp;몰개성하게&amp;nbsp;군중 속으로 숨도록 하고&quot;로&amp;nbsp;읽는다면, 이는&amp;nbsp;어떤 경우에도 오독이거나 비약이다.&lt;/b&gt;&amp;nbsp;논리는 간단한데, 'deny oneself'에&amp;nbsp;개성을 버리라든가 군중 속에 숨으라거나 눈에 띄지 않게 남들처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살라거나 하는 의미는 내포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학적으로 말하자면, 고등종교의 공통 요건&amp;nbsp;중 하나인 '자기부정'은 절망적 상태의&amp;nbsp;자아상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의미할 뿐이지, 무슨&amp;nbsp;실천적인 의미에서도 익명성에의 추구 등을&amp;nbsp;지시할&amp;nbsp;수 없다는 말이다.&amp;nbsp;그러면 다시 의문은 원점으로 돌아온다. 대체 누가 누구 좋으라고 이런 의미에서의 '익명화된 교인'을 말하고 생각하게 하는가?&lt;/p&gt;&lt;p&gt;잠시 후에 적겠지만, 이건 교회라는 시스템이 원하는 한 마리 양에 관한 이야기일 뿐 제자도와는 일체 하등 아무 상관없다.&lt;/p&gt;&lt;h2&gt;2. 뭘 내려놓고 집어들고 하는 소리는 또&amp;nbsp;어디서 주워들은 뻘소리인가?&lt;/h2&gt;&lt;p&gt;이 단락은 일단 결론부터 적자면, 그 &quot;목사님&quot;의 설교는 제자도에서의 자기 부정과 일생 여정에서의 행동 강령을 아무렇게나 짬뽕해 놓음으로써 세속적 종교 생활을&amp;nbsp;수요하는 다수 대중의 기대를 만족하고 통속적 종교관을 유지함으로써 그 청중을 호도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들으나마나한 좋은 말씀 매주 똑같이 약간씩 바꿔서 들려주는 것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결론이다.&lt;/p&gt;&lt;p&gt;어떻게 그렇게 감히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들어도 보지 않고 함부로 막 품평하느냐고? &quot;자아를 내려놓&quot; 운운하며&amp;nbsp;각종 관념을 유행어 하나로 묶어 팔아 기어코 기억까지 시키는 걸 보면 필시 그러하다.&lt;/p&gt;&lt;p&gt;이쯤에서 좀 솔직해져야겠는데, &quot;내려놓음&quot;은 처음에는 안타깝게 오독되었고, '더 내려놓음'에 와서는 악랄하게 영합을 한 아이디어라는 게 내 일관된 생각이다. 규장에서 &quot;내려놓음&quot;이 처음 나왔을 때 나는 한창 경건한 신학생 모드였고, 그래서 그 책을 읽지 않아도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lt;b&gt;애초에 사람이&amp;nbsp;뭘 정말로 가질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quot;제가 내려놓겠습니다&quot;는 우선 모순이며 결국 오만이라는 점이다.&lt;/b&gt;&amp;nbsp;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뭔가를 &quot;내려놓으라&quot; 하시는 것은, 그게 뭐든 실은 내 것이 아니며 내가 추구해도 좋은 유일한 것은 주님뿐임을 깨우쳐 주시려는 뜻이지, 그거만 딱 내려놓으면 무슨 우는 아이&amp;nbsp;젖&amp;nbsp;주듯이 &quot;더 큰 축복 더 큰 감사&quot; 같은 거 주시려고 그러시는 것일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말이다.&lt;/p&gt;&lt;p&gt;그런데 내려놓음은, 그리고 &quot;더 내려놓음&quot;은, 더 큰 축복, 더 큰 감사를 매우 강하게 암시한다. 그건 겉으로만 건강하고 속으로는 너무나 달콤해 물러 터지는 이야기다.&lt;/p&gt;&lt;p&gt;&quot;권리 포기&quot;라는 용어조차도 이런 실천적인 차원에서는 비슷하게 취약하고 불안하다. 분명 원래는 피조물의 피조물됨을 상기시킬 목적이었던 이 아이디어들은, 착한 일에 대한 댓가를 바라는 우리의 &quot;세상적&quot;&amp;nbsp;도덕 관념에 멋대로 근거하여, 더 좋은 뭔가를 위해&amp;nbsp;잠깐의 힘든 시절을 겪자는 얘기로 소비되고 있다.&amp;nbsp;예컨대 여러분이 집에 가다 말고 여러분의 교통카드를 내려놓는다(혹은 교통카드 이용 권리를 포기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리고 그 이유가 '오늘 내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기대해서'라고 하자. 이게 어떻게 은혜로운 사건인가?&amp;nbsp;그냥 대책 없는 충동이지. 하지만 우리는 몇 분 잠깐 기도하고 나와서는 그간의 사업상 결정 일체를&amp;nbsp;뒤집고 수많은 타인의 계획을 엎으며 뭔가를 했더니 더 큰 &quot;은혜&quot;와 &quot;감사 제목&quot;을 주셨다는 간증을 너무 많이 들어서 기어코&amp;nbsp;인지부조화가 오고 말았다.&amp;nbsp;그들이 주님을 위해 버렸다는 그것이&amp;nbsp;사실 단 한 번도 그들의 것이었던 적은&amp;nbsp;없는데.&lt;/p&gt;&lt;p&gt;심지어 번뇌를 내려놓고&amp;nbsp;해방되라는 소리는 아주 스토아철학적인 것이어서 대다수 고등 종교의 관념을 꿰뚫는 한 가지 테마이기도 한 바,&amp;nbsp;내려놓으라는 말은, 돌려쓰면 쓸수록&amp;nbsp;공허하고 납작한 말이기도 하다.&lt;/p&gt;&lt;p&gt;왜 그런 썰이 있었지 않은가? 성폭행당한 기억을 어떡하면 좋으냐고 하버드 나온 스님한테 물어봤더니 그 번뇌도 버려라 운운했다던.&amp;nbsp;이것은 아주 놀랍게&amp;nbsp;앞뒤가 맞아떨어지는 개소리인데, 왜냐하면&amp;nbsp;&lt;b&gt;자아에 관심이 있는&amp;nbsp;모든 종교철학적 관념은&amp;nbsp;필연적으로&amp;nbsp;일체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amp;nbsp;번뇌 탈출이라는 테마로 환원하려는&amp;nbsp;유혹에 빠지기 때문이다.&lt;/b&gt;&amp;nbsp;너무 쉽거든. 색은 공이고 공은 색이라고 단정해 버리면, 그 안에서는 배고픔도&amp;nbsp;사회문제도 트라우마도 다 그저 공이 된다. 하지만 나는 종교가 그냥 그러려고&amp;nbsp;존재하는 건&amp;nbsp;아니라고 믿는 프로테스탄트이며, 기독교는 인간의 자아상보다는 그걸 포함해 천지 만물을 지으신 삼위 하나님께 관심을 두(어야 하)는 신앙이다. 하지만 당장 생활의 안정과 마음의 안락, 현실로부터의&amp;nbsp;적당한 도피와 허황된 자아상을 필요로 하는&amp;nbsp;대다수 종교 소비자들에게&amp;nbsp;'내려놓기'는&amp;nbsp;위대한&amp;nbsp;깨달음의 경지였고 그래서 그토록 유행했다. 그들이 정말 원하는 건&amp;nbsp;번뇌로부터 해방되어&amp;nbsp;고통이 없는 상태이고,&amp;nbsp;불교니 기독교니 하는 것은 그걸 위한&amp;nbsp;액면상의 종교일 뿐이었기 때문이다.&lt;/p&gt;&lt;p&gt;그리고 이제 슬슬 진짜로 말을 꺼내 볼 생각인데, 바로 그 액면상의 형식적 종교를 공급하는 자들이야말로, 이러한 통속적 비대칭적 소시민적 종교인들을 양성해 아무 데도 데려가지 않은&amp;nbsp;확신범들이라는 생각이다.&lt;/p&gt;&lt;h2&gt;3. 누가 누구더러 무슨 근거로 누구 좋으라고 다 내려놔라 자기를 버려라 운운하는가?&lt;/h2&gt;&lt;p&gt;물론 권면과 동기부여의 차원에서 비유적으로 일컬어 깨우치는 말이라면 내려놓으라니 자기를 버리라니 하는 말의 효용이 1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비효용, 불경제, 자기모순이 이와 같이 명확한데도 그걸 매주 실질적으로 똑같이 반복하는 설법자들, 설교자들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 이치란&amp;nbsp;대체 무엇일까?&lt;/p&gt;&lt;p&gt;간단하다. 삯꾼 목자에게도 양떼 자체는 필요한 것이다.&lt;/p&gt;&lt;p&gt;'네 것을 내려놓으라', '너는 아무런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천국 백성 되어 세계 만방 사람들과 영생할 것이다' 같은 말을, 그 은혜롭고 위대한 맥락에서 썩둑 들어내어 그&amp;nbsp;문자들 그대로만 되풀이 들려주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과연 &quot;아! 나는 부르심 받은 제자이지만 내가 제자된 것조차도 나의 노력이 아니고 값없는 하나님 은혜이구나! 이 놀라운 역설이 주는 감격으로 삶을 승화해야지!&quot; 하는 깨우침을 얻을 수 있을까? 그건 극소수&amp;nbsp;적극적인 신앙인들이 누리는 행운이다. 일요일 오전 11시 반부터 12시 정도까지만 말씀 구경을 하고 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그게 그냥 문자 그대로 들린다. &lt;b&gt;'아 나는 아무런 대단한 존재가 아니구나. 그렇다면&amp;nbsp;나 자신을 그런 의미에서 부정해야겠네. 천국도 그냥 여기처럼 익명의 착한 존재로&amp;nbsp;살면 되는 곳인가&amp;nbsp;보다.'&lt;/b&gt;&lt;/p&gt;&lt;p&gt;심지어 그들은 행정적, 구조적으로도 철저하게 익명화되며 그 댓가로 생활에 어떤 위협이나 변혁도 가져오지 않는 소비적&amp;nbsp;종교 생활을 보장받는다. 관람객, 양떼 속 양이 되는 것이다.&lt;/p&gt;&lt;p&gt;대다수 교회 의자는 어느 자리에 누가 앉든 말든 상관없는 배치로 되어&amp;nbsp;있고, 교회 건축의 요체는&amp;nbsp;모든 청중이 모여 집중하는 단 하나의 점이 어디냐와 그 대중이 얼마나 빠르게 입퇴장을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우르르 몰려와 정해진 타이밍에&amp;nbsp;할렐루야 아멘 하고&amp;nbsp;지하주차장에서&amp;nbsp;쏟아져 나와 집으로 흩어지는 경험은,&amp;nbsp;영화관에 영화 보러 갔다 오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어서, 그 한두 시간 동안 시청하는 내용만 적당히 괜찮다면&amp;nbsp;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amp;nbsp;윤리적인 생각으로 기분을 전환하다 오는 주말 여가생활이 되고 만다.&amp;nbsp;흔히들&amp;nbsp;상투조로 &quot;예배는 드리는 거지 보는 거 아닙니다&quot; 하는 설교자들이 있는데, 이건 눈 가리고 아웅이다. 등장인물이 &quot;우리 예배를 드리십시다? 아멘?&quot; 하면 관객이 &quot;아멘!&quot; 외치는 게 규칙이라면, 그게&amp;nbsp;동네 오타쿠들의 &quot;라이브 뷰잉&quot;이지 무슨 예배냐는 말이다.&lt;/p&gt;&lt;p&gt;이걸 유지하려면 뭘 해야 할까? 뭘 하면 안 된다. 매주 매년 대동소이하게,&amp;nbsp;사실은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lt;/p&gt;&lt;p&gt;이런 주말 여가생활을 유지시켜야 하는 입장인 사람들이 있다. 그 존재는 필연적이다.&amp;nbsp;&lt;b&gt;여가 생활의 형식을 띠며 개인적 심신의 평화를 추구하는 세속적 종교란&amp;nbsp;본질적으로 '서비스업'이기 때문이다.&lt;/b&gt; (오죽하면&amp;nbsp;service라는 영단어가&amp;nbsp;실제로 이런 맥락의 '예배'를 의미하겠는가?) 윤리도덕적 컨텐츠를&amp;nbsp;전문적으로 생산해 소비자 고객에게 공급하고 그 댓가로 프로젝트 추진 기금 등을 합법적으로 모금 받으며&amp;nbsp;대중의 멸렬한 현실로부터 의식적으로 동떨어질 권리를 얻는 이들은, 얼마나 양심의 가책을 더 받고&amp;nbsp;덜 받냐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 한 가지 과제와&amp;nbsp;씨름하고&amp;nbsp;있는 것이다:&amp;nbsp;&quot;목사님 말씀은&amp;nbsp;언제 들어도 참 좋다&quot; 하는 얘기는 계속 들으면서 &quot;목사님 그 말씀은&amp;nbsp;좀&amp;nbsp;부담된다&quot; 하는 말은 가급적 안 듣도록 할 것.&lt;/p&gt;&lt;p&gt;자아를 죽이라느니 다 내려놓으라느니 하는 얘기들은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용되는 화제들이다. 영양학적으로는 불균형하고 결과적으로는 교활한 것이어서, 이렇게 많이 팔면 안 되는데도 말이다.&lt;/p&gt;&lt;p&gt;앞서 살펴본 바 자기를 익명화하라는 것은 기독교의 실제 가르침이 아닌데도 발신되거나 잘못 수신되는데, 그것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그게 실은 궁극적으로 '내려놓기',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인기 주제에 느슨하게 걸쳐 있기 때문이며, 그 주제는 이미 고찰하였듯이 자아의 아파테이아 상태에 관심이 있는 대다수 종교 소비자 대중의 수요와 욕망을 정확히 지시하므로&amp;nbsp;유행처럼 공급되고 있다. 그리고 그 생산의 다른 한 견인축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 종교를 소비할 청중을 유지하기 위한 서비스로서의 종교 기획인&amp;nbsp;것이다. 이미 자아가 없는 신도들은 누구도 두드러질&amp;nbsp;수 없는 건축학적 구조를 지닌 건물에 모여 자아 없이 살라는 텅 빈 가르침을 듣는데 그것은 이미 자기 자신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너무나 깊게 와닿는다. 그 좋았던 경험은 다시 다음 주에 그 건물에 모일 빌미를 만들어 주고, 그 건물의 유지비는 헌금함에 착실히 쌓인다.&lt;/p&gt;&lt;p&gt;이래도 그 목사 얘기가 그럴듯하게 들린다면, 그건 정말 당신의 문제다.&lt;/p&gt;&lt;p&gt;&lt;br /&gt;&lt;/p&gt;&lt;h2&gt;4. 대체 기독교란&amp;nbsp;정확히 어떤&amp;nbsp;기독교길래 이렇게 야단 법석인가?&lt;/h2&gt;&lt;p&gt;기독교는 내려놓음이니&amp;nbsp;몰개성한 인간이니&amp;nbsp;하는&amp;nbsp;것의 정반대 대척점에 서는 신앙이다. &lt;b&gt;굳이 말하자면 (익명화라기보다는)&amp;nbsp;자기를&amp;nbsp;'그리스도를 본받은 구체적인 무엇인가'로 철저히 개변시키자는 믿음, 그리고 그걸 위해 (내려놓는다기보다는)&amp;nbsp;자기를 세상에 '내어준다는' 믿음이다.&lt;/b&gt; 그렇게 해도 된다는 것, 우리 믿음의 창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셨다는 것, 그렇게 하는 것 말고&amp;nbsp;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해도 좋은 행위는 없다는 것을 기독교인은 믿고 긍정하고 그대로 한다. 자기를 철저한 자기나 타인으로 만들려는 것도 기독교가 아니지만, 자기를 이도저도 아닌 군중 속 소비자로 만들겠다는 것도 기독교가 아니다. 자기 손에 다른 게 쥐어지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면서 손을 펴는 게 기독교일지언정 다른 뭔가가 쥐어지길 기다리며&amp;nbsp;손을 벌리고 있는&amp;nbsp;건 도대체 기독교일 수 없다.&lt;/p&gt;&lt;p&gt;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인간의 생로병사&amp;nbsp;번뇌의 근원인 죄를 해결하려고 사람을 입고 오셨는데,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서 별 수를 다 쓰시다가, 막판에는 지상에서의 마지막 저녁 식사를 마치기도 전에 그걸 들어서 떼어 나눠주며 그러셨거든. 너네들 이게 내 몸이다 치고, 피다 치고, 다 먹어. 다 마셔. 그거 아냐, 이게 내일 내가 할 일이야.&amp;nbsp;난 죽으러 간다. 난 죽어서 내 몸 내 피를 너네한테,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구원으로&amp;nbsp;나눠주려고 나눠줄 것이다.&amp;nbsp;그니까 절대로 이거 잊지 마 알았어?&amp;nbsp;그런&amp;nbsp;부탁을 하신 분이란 말이다. 이게 내가 아는 기독교다.&amp;nbsp;&lt;b&gt;그건 정말이지 그 전체가 예수님의 일생처럼&amp;nbsp;절절하고 인간적이며 드라마틱하고, 무엇보다,&amp;nbsp;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직접 말을 거는 신앙이다.&lt;/b&gt;&lt;/p&gt;&lt;p&gt;그런데 이건 뭐 대체 얼마나 많은 &quot;교회&quot;의 &quot;목사&quot;들이 이름 없는 군중 모아다 놓고 은혜가 어떠니 만군의 여호와가 어떠니&amp;nbsp;꽃밭에 무지개 피는 얘기만 하고 있는 건지&amp;nbsp;모를 일이 되어 버렸다. 그게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만연해 있다면... 다같이&amp;nbsp;광야로 뛰어나가 메뚜기에 석청이라도 먹고 살아야 할 판이다.&lt;/p&gt;&lt;p&gt;&lt;br /&gt;&lt;/p&gt;&lt;p&gt;PS. 다 적고 나서 생각이 났는데 이런 거 말고도 유행하는 설교 레파토리들이 있는데 기회 있을 때마다 하나씩 이런 식으로 좀 뜯어보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당장 떠오르는 건 은혜, 믿음, 감사 정도? 이런 것들은 이제&amp;nbsp;예수님 장사 지낸 무덤보다 더 공허해져 버렸는데 주제별로 어떻게 드러내야 제일 효과적일지를 모르겠다.&lt;/p&gt;</description>
      <category>5 외치는</category>
      <category>권리포기</category>
      <category>극장종교</category>
      <category>기독교</category>
      <category>기복신앙</category>
      <category>내려놓음</category>
      <category>스토아 철학</category>
      <category>종교 대중</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69</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69#entry869comment</comments>
      <pubDate>Sun, 18 Nov 2018 16:22:14 +0900</pubDate>
    </item>
    <item>
      <title>김어진쇼에 관하여</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68</link>
      <description>&lt;p&gt;최근 &lt;a href=&quot;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jl4TIgQpTyqf18vCiSk2fhYRxpYDxK2V&quot; target=&quot;_blank&quot; class=&quot;tx-link&quot;&gt;김어진쇼&lt;/a&gt;라는 것을 하고 있다. 기본 토크쇼이고, 평범한 사람들 데려다가 별 말도 안 되는 얘기 가지고 아무말 잔치를 한다.&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facebook.com/plugins/post.php?href=https%3A%2F%2Fwww.facebook.com%2Feojinshow%2Fposts%2F252942942088134&amp;amp;width=500&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329&quot; style=&quot;border:none;overflow:hidden&quot; scrolling=&quot;no&quot; frameborder=&quot;0&quot; allowtransparency=&quot;true&quot; allow=&quot;encrypted-media&quot;&gt;&lt;/iframe&gt;&lt;/p&gt;&lt;p&gt;이것은 모랄까 지난 몇 년 간 콘텐츠 바닥에서 굴러 본 이후&amp;nbsp;약간 재활 비슷한 느낌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황금률들을 거의 전면적으로 초탈하려는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lt;/p&gt;&lt;ul style=&quot;list-style-type: disc;&quot;&gt;&lt;li&gt;&lt;b&gt;콘텐츠는 재밌어야 한다는 것.&lt;/b&gt;&lt;br /&gt;재미란 건 보통 두 가지인데, 만들어 팔 때의 재미와&amp;nbsp;사람들의 반응에서 나오는 재미다. 첫 번째 것은 유지 가능하다.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워낙 강렬해서&amp;nbsp;적잖은 이들이 그걸 다시 맛보고 싶어 발버둥치고&amp;nbsp;끝에 가서 헛다리를 짚어&amp;nbsp;자빠진다. 재미있게 할까 재미없게 할까 싶을 때는 재미없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누구 말마따나, 노 잼 노 스트레스.&lt;/li&gt;&lt;li&gt;&lt;b&gt;콘텐츠는 특정한 내용이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lt;/b&gt;&lt;br /&gt;내용이나 목적은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최소 몇 분간 이어폰 끼고 이걸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 짓을 한 보람은 줘야 한다. 모르지 않는다.)&amp;nbsp;다만 그 목표치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그건&amp;nbsp;고스란히 과제가 되어 사람 목을 조른다. 이거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lt;/li&gt;&lt;li&gt;&lt;b&gt;콘텐츠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lt;/b&gt;&lt;br /&gt;일관성 역시 마찬가지로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칸트에 따르면 모든 게 매번 너무 다르면 아예 인간 인식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까.&amp;nbsp;하지만 그 일관성을 가지고 해내려는 &quot;브랜딩&quot;이라는 것 역시 사실 좀 부질없는 (혹은 불가능한) 무언가에 가깝다. 특히 아마추어로서는&amp;nbsp;더더욱 그렇다.&lt;/li&gt;&lt;li&gt;&lt;b&gt;콘텐츠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lt;/b&gt;&lt;br /&gt;스윙 자체를&amp;nbsp;존나게 많이 휘두르면 누구나&amp;nbsp;안타도 치고&amp;nbsp;홈런도 치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추어 얘기고 프로라면 타율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게 이득이다. 최악은 수량을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재미도 감동도 없는 걸 자기착취해 가며 만드는 짓이다. 씹노잼 폐급 파일들 말고는 남는 게 없거든.&lt;/li&gt;&lt;li&gt;&lt;b&gt;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lt;/b&gt;&lt;br /&gt;아니 이건 완전히 틀렸다. 제작자로서만 말하자면,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이&amp;nbsp;정확하다. 사람들이 도대체 뭘 좋아하냐고? 그래서 우리는 몇 달간 &quot;트렌드&quot;와 &quot;이슈&quot;를 팔로업하는 훈련을 해 보았고 남은 건 그냥 네이버 실검 보는 게 빠르다는 교훈뿐이었다.&lt;/li&gt;&lt;li&gt;&lt;b&gt;영상 콘텐츠는 짧아야 팔린다는 것.&lt;/b&gt;&lt;br /&gt;누가 그걸 모를 줄 아나 보지? 그러면 뭐 짧으면 짧을수록 막 반비례해서&amp;nbsp;팔리게? 다들 부탁이니 일차함수적인 사고방식을 만나면&amp;nbsp;의심을 좀&amp;nbsp;해 보았으면 좋겠다.&amp;nbsp;내가 본 적지 않은 골드 유튜버들의 영상은 3분은커녕 10분도 넘길 때가 많다. 길이는 가장 irrelevant한 변수 중 하나다.&lt;br /&gt;&lt;/li&gt;&lt;li&gt;&lt;b&gt;사람들이 공감하거나 자기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lt;/b&gt;&lt;br /&gt;이건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아무 연관 없는 것을&amp;nbsp;굳이 찾지 않는다. 수긍은 순순히 하지만 그냥&amp;nbsp;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 부분은 포기하고 있다.&lt;/li&gt;&lt;li&gt;&lt;b&gt;기왕 하는 거 뭔가 남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것.&lt;/b&gt;&lt;br /&gt;이건 바꿔서 물어보고 싶다. 뭐가 안 남는 건 안 해야 하나? 오히려 뭐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덤비기 시작하면 그건 그거대로 불행할걸? 왜냐면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뭐가 안 남거든.&lt;/li&gt;&lt;li&gt;&lt;b&gt;어쨌든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것.&lt;/b&gt;&lt;br /&gt;김어진쇼는 &quot;지나치게 유명해지면 그만&quot;할 계획이다. 예컨대 방송 섭외 요청이 들어오면 &quot;김어진쇼가&amp;nbsp;어제 망했기 때문에 안 됩니다&quot; 하고 거절할 생각이다. 이게 무슨 투석이나 핵분열&amp;nbsp;발전도 아니고 마지못해 계속하는 짓을 할 거면 애초에 하질 말았어야지 말이다. 언제 그만두어도 문제나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 걸 해야 한다.&lt;/li&gt;&lt;/ul&gt;&lt;div style=&quot;text-align: center;&quot;&gt;&lt;iframe src=&quot;https://www.youtube.com/embed/isTjLzJvyL8&quot; width=&quot;480&quot; height=&quot;360&quot; allow=&quot;autoplay; encrypted-media&quot; frameborder=&quot;&quot; allowfullscreen=&quot;true&quot;&gt;&lt;/iframe&gt;&lt;/div&gt;&lt;p&gt;아무튼 뭐냐면 결국 주객의 전도로부터의 해방을 하자는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상당수가 인생을 바쳐 콘텐츠를 소환해&amp;nbsp;인기와 성취를 얻는다. 다들 정신 좀 차렸으면 싶다.&amp;nbsp;그깟 게 뭐라고 삶을 바칠 필요는 없단 말이다. &lt;b&gt;그냥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인생 그 자체를 일단 잘&amp;nbsp;살란 말이야. 왜 있잖아 사람 만나고&amp;nbsp;밥 커피 술&amp;nbsp;사고 농담 주고받고&amp;nbsp;뭐 그런 거.&lt;/b&gt;&amp;nbsp;그러다가 만약에 혹시 괜찮으면 기념사진 찍듯이 기념영상 찍어놓고 최소한의 편집만 해서 남겨놓고 그 정도면 안 되겠냐구. 무슨 영광을&amp;nbsp;보겠다고&amp;nbsp;막 장소 빌리고 사람 빌려와서 오만 생쇼를 하냐고. 뭔&amp;nbsp;지랄 염병을 떨어본들&amp;nbsp;YTN 하루 시청자 수에도 못 이길 일인데.&lt;/p&gt;</description>
      <category>4 생각을 놓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68</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68#entry868comment</comments>
      <pubDate>Tue, 9 Oct 2018 13:25:26 +0900</pubDate>
    </item>
    <item>
      <title>우리가 난민이었다</title>
      <link>https://yuptogun.tistory.com/867</link>
      <description>&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BD813B5B3BDB7B0F&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BD813B5B3BDB7B0F&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50&quot; filename=&quot;we-were-refugees-1.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52843B5B3BDB7C42&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52843B5B3BDB7C42&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50&quot; filename=&quot;we-were-refugees-2.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AC9A3B5B3BDB7C02&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AC9A3B5B3BDB7C02&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50&quot; filename=&quot;we-were-refugees-3.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quot;/&gt;&lt;/span&gt;&lt;/p&gt;&lt;p style=&quot;text-align: center; clear: none; float: none;&quot;&gt;&lt;span class=&quot;imageblock&quot; style=&quot;display: inline-block; width: 500px;  height: auto; max-width: 100%;&quot;&gt;&lt;img src=&quot;https://t1.daumcdn.net/cfile/tistory/990FE63B5B3BDB7D0D&quot; srcset=&quot;https://img1.daumcdn.net/thumb/R1280x0/?scode=mtistory2&amp;fname=https%3A%2F%2Ft1.daumcdn.net%2Fcfile%2Ftistory%2F990FE63B5B3BDB7D0D&quot; width=&quot;500&quot; height=&quot;750&quot; filename=&quot;we-were-refugees-4.jpg&quot; filemime=&quot;image/jpeg&quot; style=&quot;&quot;/&gt;&lt;/span&gt;&lt;/p&gt;&lt;p&gt;이 시간에 달빛에 잠깬 게 아까워서 만듦&lt;br /&gt;&lt;/p&gt;</description>
      <category>1 내/ㄷ 그림</category>
      <category>난민</category>
      <category>밀면</category>
      <category>윤동주</category>
      <category>임시정부</category>
      <author>엽토군</author>
      <guid isPermaLink="true">https://yuptogun.tistory.com/867</guid>
      <comments>https://yuptogun.tistory.com/867#entry867comment</comments>
      <pubDate>Wed, 4 Jul 2018 05:25:32 +0900</pubDate>
    </item>
  </channel>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