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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2007. 11. 28. 18:06

쌀밥 그 이상의 감동
CGV
수       제      비

Posted by 엽토군
:
예, 그렇습니다. 전 지금 옛날 블로그를 다시 들추어가며 백업을 하는 중이지요. 재밌게 읽으세요.

꿈은 엄청나게 웃긴 전쟁놀이물이었다. -_-; 홈CGV에서 틀어준 아유레디? 의 압박이랄까.

꿈은 먼동이 트는 새벽으로 시작한다. 저 멀리 큰 호수가 보이는 평범한 산골짜기 어중간한 곳에 2층짜리 엉성한 목조건물이 있고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들이 아무렇게나 엉켜서 내무반에서 자고 있었다. 나도 거기 끼어서 군복도 아니고 무슨 평상복을 입고 mp3를 들으며-_-; 자고 있었는데 밖에서 보초서던 놈인지 '적군이다!' 하고 외치는 소리에 모두 깨고 조교인지 병장인지 "집합해!" 외치기에 어떤 놈은 아이 씨 뭐야... 하면서 마시던 코카콜라 내려놓고 철모 쓰고 옆구리에 성경책과 찬송가를 끼고-_-;;; 나가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니 옷 입고 철모 쓰고 나간다는 놈들이 총은 안 들고 다들 손에 손에 성경책과 찬송가였다(무슨 십자군인가-_-?;;;).
나도 이상하다 이상하다 하면서 2층 내무반에서 내려와가지고설랑(2층에 내무반이 대략 열 개 정도였다-_- 크기는 중학교 교실만한데-_-) 대략 50명 정도가 집합(그럼 정말 교실 사이즈군-_- 로얄배틀인가)했는데 뭐 잘못 보고한 거라나 뭐라나 해서 내려와라 올라와라 훈련이다 어쩌다 하면서 오전 시간이 훌렁훌렁 지나갔는데 무슨 예비군 훈련 같았다(내가 그걸 해 본 적은 없지만 너무나 대충대충 진행되었다. 여전히 손에 손에 성경책을 들고)-_-;; 그렇게 오전 시간 휙 지나가고 다들 올라가는데 전쟁중인 내무반 계단 앞에 음료수 자판기가 있었다-_- 그걸 뽑아먹는 놈들도 몇 패 있더라-_-;;;
그렇게 다시 새벽 때처럼 아무렇게나 다들 누워서 쉬고 있는데 오후 3시쯤(전쟁중인 내무반에 시계도 깔끔한 게 걸려 있더라=_=)에 다시 창문 밑에서 "적군이다!" 하는 소리가 들리길래 창밖을 보니까 정말 얼어붙은 호수를 달려 달려 어떤 놈은 말-_-; 타고 어떤 놈은 뛰어오고 하면서 대략 우리랑 맞먹는 숫자가 저 서쪽으로부터 이쪽으로 덤비고 있는 것이었다. 이거 뭐냐... 하면서 다시 듣던 mp3 내려놓고 철모 쓰고 성경책 들고 연병장에 4열 종대로 집합했다.
놈들도 우리 연병장까지 와서 우리랑 대진(對陣)했는데 사단장이란 놈이 날더러 말 탄 놈(쉽게 말해 보스)이랑 붙으란다-_-;;; 말 그대로 두사부일체의 그 장면이었는데 나는 암만해도 죽는 게 무서우니까 바닥에 성경책 내려놓고 웬일인지 따로 들고 왔던 베개-_-; 손에 들어 방패 삼고 눈 비벼가며 그 보스랑 맞짱을 떴다(아마 점심밥 먹고 나서 진탕 잤던 모양이다=_=;;;;). 놈은 창으로 찌르려 들고 나는 베개로 막고 근데 놈이 웬일인지 힘을 못 쓰더라-_- 그러는 동안에 어찌어찌 놈의 뒤가 비어서 보니까 적군 졸개들도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지 않겠는가=_=;;; 보스가 내 등 뒤에서 뭘 하는 건지 아무튼 정신없는 틈을 타 도대체 무슨 정신 무슨 배짱 무슨 남성적 포부였는지 거기로 가서 무릎을 꿇고 "자, 여러분 우리 이러면 안 됩니다. 우리 회개합시다."하고 내가 단체기도회를 진행하기 시작했다-_-;;;;;
작전상 후퇴인지 뭔지 어찌어찌 끝나고 다시 내무반으로 집합했는데 아까 그 사단장이 모두를 주목시키고서 윽박지른다는 소리가 "야! 아까 적진 들어가서 회개기도 시킨 놈 누구야!"=_=;;;;; 다행히도 아까 보스가 난리를 쳐서 사단장이 내 쪽에 신경을 못 썼던 모양이다-_-;;; 난 역시 죽는 것이 무서워서 입 꾹 다물고 있었고 꿈은 그렇게 끝났다-_-;;;;;;;;;;

해몽은? 진실은 저 너머에. 일단 웃자.

Posted by 엽토군
:
한컴사전과 아래한글에 대해 제가 아는 팁을 늘어놓겠습니다.
참고로 한글2002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네요.

1. 나만의 사전 만들기

준비물: 한컴사전
등록하기 원하는 단어들을 일단 순서대로 쭉 검색합니다. 가나다순으로 하면 더욱 좋습니다.
그 다음 [복습창] 탭을 엽니다. 단어목록에서 오른쪽 버튼을 눌러 "모두 지우기"를 누릅니다.
뜨는 경고창에서 "예"를 누르면 *.his 형식으로 지금껏 검색해 온 단어들이 복습단어장으로 저장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유용한 우리말만 골라서 '고운우리말.his'로 저장해 놓고 불러와서 씁니다.

2. 아무개 문자 적극 활용

준비물: 한컴사전
쿵쿵따를 하기 위해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로 되고 끝에 '름'이 들어오는 글자를 알고 싶으면
검색창에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름
이 검색결과는 세 글자이고 세 번째 글자가 '름'인 등록단어를 모두 찾습니다. 100개가 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로써 여러분은 쿵쿵따 최강이 되실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쉐'자가 들어가는 모든 단어를 알고 싶거든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쉐*
이 검색결과는 '쉐'의 앞으로 몇 글자든, 뒤로 몇 글자든 얼마든지 있되, '쉐'라는 글자를 포함하는 결과를 출력합니다. 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대략 15개 정도의 단어를 보여줍니다.
그러면 orthography라는 단어에서 중간의 tho와 끝의 phy 외에 5개의 철자가 더 있었던 것밖에 기억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빨리 찾을까요? 이렇게 입력하면 됩니다.
??tho???phy
이 검색결과는 11글자짜리 단어 중 중간에 tho, 끝에 phy를 포함하는 모든 단어를 찾습니다. 검색하면 대략 일곱 개 정도 나옵니다. 아주 찾기 쉽습니다.

3. 획수로 한자 찾아 입력하기

綠이라는 한자는 '선 선' 자인지, '기록할 록' 자인지, '푸를 록' 자인지 헷갈립니다. 이 때는 아래한글의 부수로 입력 기능을 쓰면 됩니다.
아래한글에서 Ctrl+F9(또는 입력>한자 부수/총획수)를 눌렀을 때 뜨는 창은 한자 부수/총획수 검색입니다. 일단 실사변(絲)이 있으니 6획으로 갑니다. 다음 나머지 획수가 몇 개인지 셉니다. 8획이군요. 나머지 획수 검색에 8획을 찾아 나오는 한자 중 맨 끄트머리에 나오는 푸를 록(綠) 자를 선택, 확인을 누르면 되는 겁니다.

4. 아래한글로 글 쓰던 도중 즉각 단어의 의미 확인하기

준비물: 설정이 조작된 한컴사전 (이하에 기록)
아래한글로 글을 쓰다 보면 자기가 쓰고 있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궁금해질 때가 있지요. 이럴 때를 대비해 즉각 단어의 의미를 보는 방법을 알려드립니다.
우선 한컴사전의 환경설정에서, '단어 자동 인식'에 체크해주세요. 이것이 설정 조작입니다.
그 다음에는, 아래한글에서 글을 쓰다가 모르는 단어의 중간 정도나 끝쪽으로 커서를 옮겨(방향키를 쓰면 되겠죠?) F12를 누릅니다. 그러면 그 단어를 자동으로 인식해서 의미를 보여 줍니다.
예를 들어 '재판을 속개했다'라는 문장에서 '속개'의 의미를 알고 싶다면 '속'과 '개' 사이로 커서를 옮기세요. 그리고 F12를 누르면 '잠시 중단되었던 회의 따위를 다시 계속하여 엶.'이라는 풀이가 시원스럽게 나오지요.

5. 한글에 매치되는 한자 찾기

준비물: 한영사전, 영중사전이 설치된 한컴사전
아래한글을 잘 구하셨다면 영중사전과 중영사전도 포함됩니다. 이걸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깨지다'라는 말에 매치되는 한자어는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깨지다' 로 한영사전에서 찾습니다. 적절한 단어 'break'를 선정해, 다시 break로 검색합니다. (또는 그냥 더블클릭) 그 뒤 영중사전을 보면 '깨뜨릴 파(破)'자가 보일 겁니다.
※ 영중사전을 구하기 힘드신 분들은 그냥 일한사전으로도 어느 정도 커버됩니다. 단 어려운 한자어의 경우에는 직접 쳐서 알아봐야 하니 그건 나중에 설명드립죠.

6. 요미가나(한자 위에 읽는소리를 쓴 가나) 달기

준비물: 아래한글
먼저 설정이 좀 필요합니다. 입력>글자판>글자판 바꾸기(또는 Alt+F2) 로 들어가셔서 일본어 키보드를 하나만 설정해주세요. 단축키는 여러분 재량으로 하시고... 그 다음 일본어 입력으로 전환하신 뒤(설명 생략합니다. 설마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할 리가!), 다시 입력>글자판>언어 선택 사항(또는 Shift+F3)에서 확정 탭>요미가나를 위 덧말로 를 선택하시고 확인을 누르세요. 그러면 이제부터 일본어 입력 시 한자어의 위에 읽는 법이 입력됩니다. 단 한자어를 어떻게 읽는지 모르고 계시다면 낭패!
그리고 이제부터는 일본어 입력 방법입니다. 기본적인 설정이라면 로마자 입력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watasi라고 입력하면 わたし가출력되는 거죠(실제로 이 시스템이 우리에겐 훨씬 쉽습니다). 그러면 '빠가야로'를 요미가나까지 달아서 써 볼까요? bakayarou라고 입력하고 스페이스를 누르면 馬鹿野郎라고 변환되나요? 이제 엔터를 쳐 주시면 이렇게 뜹니다. 

() 鹿 () () (ろう)

이것이 요미가나 달기의 완성!

7. 영단어 발음기호 사용하기

준비물: 한컴사전, 아래한글
한컴사전이 깔려 있다면 자동으로 설치되는 서체가 2종 있습니다. '한컴돋움'과 '한컴바탕'이 그것입니다. 이 2종의 서체는 발음기호를 지원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단지 여러분이 찾고자 하시는 영단어를 찾아 그 발음기호를 쭉 복사하시고, 한글 편집창 본문에 붙여넣은 뒤 폰트를 '한컴돋움'이나 '한컴바탕'으로 바꾸어 주시면 되지요. 어떤 문서에서는 이미지를 사용하던데... 좋치 않습니다-_-;

Posted by 엽토군
:

어느 날

2007. 11. 28. 17:33

my.netian.com/~eojin도 어느 날 사라졌다.
koj89.hihome.com도 어느 날 사라졌다.
yuptoche.wo.to도 어느 날 사라졌다.
hanmir, lycos도 어느 날 사라졌다.
skysoft도 어느 날 사라졌다.

어느 날인가는, 여기도 사라지고, 그동안 해 왔던 온갖 뻘짓도 다 사라질 거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고 있는가.

간단하다. 사라지는 건 사라지는 거고 일단 나는 살면 된다.
생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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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옛날에 대회 나가려고 썼던 논고입니다. 그냥 읽어보세요. 장려상조차 타지 못한 일반론입니다.

<경제현상 논고論告>
지름신은 어째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는가

하남고등학교 30536 김어진


가. 지름: 젊은이들의 새로운 소비문화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 ‘지르다’라는 동사를 매우 희한한 용법으로 사용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용례는 다음과 같다.
― 근성으로 이겨내고 질러라!
― 연체가 문제냐… 있을 때 질러라…
― 지르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이 독특한 사회방언에 대한 나름의 정의에 따르면 지른다는 것은,
“어떤 물건을 사겠다고 결단을 내리고 마침내 여태 모아 온 돈을 들여 그것을 사 버린 것을 뜻한다. 이 말은 비싼 물건에 쓰는 경우가 많다. 물건을 지르게 하는 원인을 설명할 때에는 "지름신"이라는 것을 써서 설명한다.”
라고 하며, ‘지름신’은 다음과 같이 정의되어 있다.
“어떠한 물건에 대한 소유욕을 증폭시켜 사지 않고는 배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는 신.”
이외에도 지름(지르는 행위)에 관한 신조어는 몇 가지 더 있다. ‘뽐뿌’는 구매충동 또는 그것을 일으키는 요인을 의미하며, ‘뽐뿌 받는다’, ‘정말 뽐뿌지 않아요?’ 등으로 사용한다. ‘총알’은 무엇을 지르기 위한 자산을 의미하며, 단위는 ‘알’이고 1알은 1만원 정도를 상정한다. ‘이거 지르려는데 총알이 모자라요’, ‘넉넉한 총알을 항시 준비해 두어야 한다’ 등으로 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는다.

▲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몇 십만 원 규모의 구매행위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용케 해내며,
▲ 그 과정은 대체로 ‘지름신’, ‘뽐뿌’ 등의 비합리적인 요인에 의해 좌우되지만,
▲ 총알을 마련한다느니 연체를 두려워 말고 지르자는 등, 구매 시 지출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기존 경제이론대로라면, 경제적 인간의 소비 행위 자체에는 ‘합리적’인 의사결정 과정이 있는 법이다. 그런데 이 이론은 도저히 지금의 ‘지름’ 문화를 설명할 수 없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발달한 현대 시장의 한복판에서, 소비의 최전선에 서 있다는 청장년층의 이러한 소비문화는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왜 그들은 지름신의 강림을 말하며 ‘돈이 없으면 카드로 질러라!’라고 소리 지르는 것일까? 지금부터 하나하나 짚어 본다.


나. 뽐뿌: 구매욕구의 적극적 표현

한국 경제는 1950년도의 한국전쟁을 이겨내고 세계 경제발전 역사에 남을 만큼 눈부시게 발전했다. 당시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 피땀 흘려 일했던 세대(이하 기성세대라 함)의 경제관념은 지출보다는 생산과 저축 위주였다. 지금의 우리는 절대적으로 빈곤한 세계의 후진국이다, 그러므로 가능한 많은 소득을 올려야 하고 가능한 크게 성장해야 한다, 이것이 기성세대의 경제 패러다임이었다. 그들은 소비할 시간도 없었으며, 소비욕구를 감히 가져볼 수도 없었다. 자연히 그들은 검약을 미덕으로, 낭비와 충동구매는 죄악으로 보는 사람들이 되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후대의 자손들 역시 물자와 돈을 절약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믿었다. 이에 따라 경제 교육도 당연히 ‘꼭 필요한 것만 사서 아껴 쓰는’ 매우 합리적인(?) 관념을 심는 데 주력하였다.
그러나 1980년대에 즈음하여 대한민국은 절대빈곤에서 벗어났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전반적인 소비 의식은 바뀌게 되었다. 일단 경제 발전으로 인해 시장의 규모 자체가 커져, 다양한 소비재가 생겨났다. 그리고 국민의 절대다수가 일정 수준 이상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구매력이 있는 누구든지 거의 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IMF 사태 이후 경기가 위축되었다고는 하나, 그래도 우리는 ‘살 만한’ 나라에서 돈을 쓰는 사람 노릇을 하게 된 것이다.
이런 시대에서 살아 온 신세대는 적극적으로 경제적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욕구를 자극하는 상품이 많으며 그에 대한 다양한 정보 접근도 매우 간단하다. 특히 90년대 후반 이후 급속도로 진전된 정보화와 대중 매체의 발전은, 신세대를 시장의 주 타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TV와 인터넷 등에서는 오락기와 취미생활용품부터 연예인의 패션에 이르기까지 온갖 상품들이 소개되고, 신세대는 이 정보들을 정면으로 접하며 구매 욕구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품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둘째, 그들은 욕구를 숨길 필요가 없다. 다시 말하면, 사고 싶은 것을 사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전술(前述)하였듯이 신세대는 빈곤하지 않은 시대만을 거쳐 온 사람들이다. 따라서 이들은 ‘빈곤의 공포’보다는 ‘풍요의 즐거움’을 더 잘 인식하고 있다. 기성세대가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에 따라 소비생활을 하였다면, 신세대는 많이 가질수록 좋은 일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소비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개념에서 가난을 물리쳐야 한다거나 만일을 위해 절약해야 한다는 등의 개념은 상대적으로 희박하다. 요약하자면, 시대의 소비 풍조와 그에 따른 잠재적 가치관이, 욕구를 줄이기보다는 적극 발현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현대의 신세대들은 자신들의 소비심리를 적극 표현하고 있으며 소비생활에도 열심이다. 기성세대가 ‘뽐뿌 받는’ 물건 앞에서 감히 지갑을 열지 못했다면, 이제 신세대는 지름신의 강림으로 뽐뿌를 이기지 못하고 돈으로든 카드로든 지르고 보는 것이다.


다. 총알: 지불 능력과 의사가 있는 신세대

꼭 사고 싶다고 마음먹고 시장에 갔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좀 비싼 값에 팔리는 물건 앞에서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만약 좀더 가격이 떨어지거나 요행이 있어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지갑을 닫는다면 당신의 소비관념은 기성세대와 같다. 그러나 신세대의 소비관념대로라면, 사기로 마음먹었으면 ‘총알을 모아서’ 질러야 한다. 이를 판매자 입장에서는 어떻게 설명할까? 그들은 말할 것이다. ‘신세대 소비자 고객들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지불 능력이 있다’라고.
지불 능력이라고는 하지만, 단순히 신세대가 돈이 많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과거의 또래들에 비해 현재의 신세대들이 월등하게 재력(?)이 큰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지불 능력이 있다는 것은, 시장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이에 대해 반발하거나 수요를 줄이지 않고 오히려 소득을 축적해 이 가격에 맞추어 지불할 수 있다는 뜻으로서, 지불 의사가 매우 확고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있다.
과거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들은 소득을 늘릴지언정 지출을 늘릴 수는 없는 시대를 살았다.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는 물건 앞에서 그들은 당연히 지갑을 닫았다. 그러나 신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소득 목표를 세우거나 만일을 대비해 저축하는 등 기성세대가 해 왔던 소비 습관을 굳이 따르지 않는다. 그보다 그들은 현재 자신의 욕구 그 자체에 충실을 다한다. 왜 그러한가를 나름대로 분석해 보자면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그 첫째 원인은, 간단해진 구매 절차가 즉각적인 소비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신용카드와 홈쇼핑, 온라인 쇼핑 등의 이용이 크게 팽창하면서 ‘지르기 좋은’ 소비 환경이 조성되었다. 신용카드가 있으면, 지금은 긁고 월말에 월급 탈 때 내면 된다. 홈쇼핑에서는 무시로 ‘뽐뿌를 일으키는’ 상품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 몇 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구매가 폭주하니 ARS를 이용해 주세요’ 등등의 말로 ‘지름신 강림’을 부추긴다. 인터넷 경매 사이트나 직거래 게시판들은, 보면 볼수록 지금 지르지 않으면 영영 없어질 것처럼 느껴지는 물건들만 있는 듯하다. 온라인 입금이나 신용카드로 값만 치르면 그것만으로 구매가 성사된다. 나도 최근 경매 사이트를 통해 디지털 캠코더를 ‘질렀는데’, 당시 통장 잔고는 내가 원하는 물품의 가격을 간신히 맞출 수 있을 정도뿐이었다. 만일 내가 통장을 들고 전자제품 매장에 들렀다면 과연 그 캠코더를 지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담당자가 다른 제품을 추천할 수도 있고, 원래 찜했던 것 외의 다른 것도 구경하다가 기가 죽어 그냥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손쉽게 상품을 획득하라고 촉구하는 마케팅에 신세대는 노출되어 왔고, 간소화를 꾀하며 발달한 지금의 지불 방식에 힘입어 신세대는 ‘잘 지르는’ 고객이 된 것이다.
둘째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유행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다. 새로운 휴대전화 모델이 나오면, 광고나 TV프로그램 속 협찬, 혹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입소문 등을 통해 그에 관한 정보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이것은 곧 유행 혹은 대세가 된다. 유행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지만 특히 상품 구매와 관련된 유행은, 이에 편승하지 않을 때 ‘뒤떨어진다’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다른 이들이 하나둘 유행을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며 느끼는 초조함이 지름을 부추기는 하나의 요인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의 유행은 예전처럼 느긋하지 않다. 자꾸만 새로운 상품이 출시되고 새로운 것이 유행이 되다 보니, 소비자는 실질적인 상품의 유효기간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게 된다. 쉽게 말해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구식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상품을 불필요하게 혹은 불가피하게 ‘지르는’ 데 한몫한다.
이상에서 살펴볼 때, 신세대의 지불 능력이 큰 이유들에는 한 가지 맥락이 있다. 그들의 지출은 ‘빠른 결정’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자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 바로 시간 자원이다. 왜냐하면 시간은 돈이나 능력 등과 달리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므로, 그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소비하느냐에 따라 효율성이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세대의 소비 과정에서는 시간 자원과 재정 자원 중 시간 자원의 극소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재정에 조금 부담이 가더라도 ‘더 늦기 전에 빨리 사는’, 즉 지르는 소비풍토가 생겨난 것이다. 이런 신세대들에게 돈이란, 차곡차곡 모아 큰 목표를 이루는 데 쓰는 ‘벽돌’ 같은 것이 아니라 한바탕 지르기 위해 잘 장전해 두었다가 한순간에 쏴 버리는 ‘총알’로 인식되는 것이다.


라. 지름신: 신비한 존재가 비합리성을 정당화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뜨문뜨문 언급해 두었듯이 이러한 신세대의 ‘지름’ 문화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하다. 건전한 재정 지출의 기본은 계획성과 합리성이다. 내키는 대로 무작정 돈을 쓰면 언젠가는 지출을 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고, 요모조모 따지지 않으면 기회비용만 더 커지는 불상사를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돈을 지출하는 데 있어서는 계획에 따라 손익을 따져 최선의 결정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이러한 관념이 신세대에게 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어릴 적부터 가정과 학교 등으로부터 기성세대의 경제관념을 알고 배웠다. 그래서 이들은, 만일을 대비해 저축을 하는 것이 좋고, 동전은 함부로 하지 말고 모아야 하며, 사고 싶다고 당장 사는 버릇은 좋지 않다는 등의 가치관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다’에서 설명한 사회적 배경과 문화의 변동 등으로 인해 신세대는 자꾸만 뽐뿌를 받게 되고, 이는 그들이 배웠던 ‘모범적인 소비습관’과 정면으로 대치한다. 그들의 경제적 욕구가 강렬한 만큼, 자기의 소비 태도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식 역시 강력하게 그 욕구의 분출을 막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신세대들 스스로도 배운 것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이것을 사 버리면 자신이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린 것으로 평가되리라고 생각한다. 실제 인터넷에서 수집한 다음과 같은 글들은, 신세대라고 해서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지른다기보다는 욕망과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며 지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 복무를 마치고 유럽일주를 하는 그날까지… 지름신이 강림하지 않기를…….
― 애플의 아이팟에 한번 마음을 빼앗기면 좀처럼 지름신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들어진다.
― 울며 가로되 “이미 카드의 압박은 나를 숨통까지 죄여오나이다.”
그러나 제재와 강제성이 없는 한 경제적 인간은 공공의 도덕률이나 이상보다는 자신의 사익을 더 중시한다. 따라서 신세대의 판단도 비합리적이나마 구매를 해 버리는 쪽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한다. 무엇을 지르는 순간, 자신의 소비 행위를 어떻게든 합리화․정당화해야만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소비의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기껏 고뇌하여 결정한 의사가 한낱 ‘돈 버린 짓’, ‘충동구매’등으로 치부될 것이고, 그나마 지름을 통해 얻은 편익마저도 심각하게 무시당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지르는 데는 조리에 맞는 명분이 그다지 없다. 자신이 판단해서 계산한 (비용)-(편익)의 부족분을 소비 욕구로 채워 구매를 결정한 것이 지름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뭔가를 지른 사람은 곧 ‘내가 이것을 왜 질렀을까’라는 애매모호한 질문에 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세대 소비자의 고충이 만들어낸 우상이 바로 ‘지름신’이다. 우리는 흔히 ‘신이 내렸다’, ‘신이 지폈다’ 등의 말을 사용한다. 둘 다 사람이 비합리적이고 인간의 의지를 초월한 행위를 할 때 쓰는 말이다. ‘지름신’ 역시 ‘지름+신’의 형태로 이루어진 말로서 ‘지를 때 내리는 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지름신은 앞서 설명한 소비자들의 복잡 미묘한 소비심리와 소비상황을 알고 있어서, 그들의 지름 행위를 이치에 맞게 합리화하지 못하고 있던 ‘지른 자들’을 변호하는 존재인 것이다.
사람들은 지름신이라는 단어를 ‘지름신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지르다’, ‘지름신이 오셔서 잔뜩 사다’ 등으로 사용한다. 마치 지름신이라는 존재가 정말로 있어서 자신들이 지름신의 살(煞)을 맞았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논리적․합리적 의사와는 별개로 강력하게 작용한 초의지적 존재 때문에 지른 것이다. 이 얼마나 동정할 만한 변명인가? ‘지른 자들’은 이런 논리로 자신의 비합리성을 옹호한다. 한 술 더 떠서 어떤 이들은 지름신이 친히 자신의 구매 욕구를 충동하여, 더 이상 번뇌에 얽매이지 않고 확 지를 수 있게 도와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신세대들은 지른다는 것 자체가 비합리적임을 알면서도 결국 지르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우는 우상이 바로 지름신인 셈이다.


마. 전망과 결론

21세기로 진입하면 구세대와 신세대 사이에는 가치관, 문화, 주도권 등에서 상당한 변화와 교체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선 21세기로 들어서면 기술, 사회적 추세 등은 그전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변화를 거듭할 것이며, 20세기까지의 사회가 이성과 논리를 중시하였다면, 21세기는 바야흐로 감각적이고 어느 정도는 비합리적이기도 한 문화가 사회 전반에 퍼질 것이라고 한다. 20세기까지의 경제가 성장과 생산을 외쳐 온 데 비해, 21세기에서는 소비와 분배가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리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국가주의에 충성했던 사람들은 이제 개인주의자로 변할 것이며, 신세대는 기성세대의 가르침과 가치관을 부정하며 구시대와 작별을 고하고, 자신들만의 이상과 목표를 내세우며 시대를 이끌어 가리라는 예측도 있다. 종합하면, 기존 질서의 해체라는 큰 경향 속에서 사회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변혁과 교체 현상은 여기저기서 크고 작은 규모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름 문화’다. 기존의 가치관이 아끼기, 필요한 것만 사기 등이었다면, 이제는 소비자 자신의 욕구를 중히 여기는 가치관이 구시대의 소비 가치에 대항하여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름 문화는 과연 바람직한 현상인가? 물론 권할 만하지는 않다. 가장 이상적인 소비활동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 지름은 ‘원하는 물건이 원하는 가격에 있어 기꺼이 값을 지불하고 만족을 얻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신세대는 기성세대처럼 소비 심리를 감추고 억누르지만은 않는다. 그들은 구매욕을 자극하는 상품에 대한 뽐뿌를 적극 표현하며, ‘지름신’으로 대표되는 소비욕구를 물건 구매 결정 과정에 반영하고, 값을 치르기 위해서 아껴 두었던 총알도 미련 없이 ‘지르기도’ 한다. 이처럼 21세기의 변화 양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름 문화가 좀더 학문적으로 자세하게 접근해 볼 필요가 있는 흥미로운 현상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경제현상 논고論告>
지름신은 어째서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는가 <끝>

Posted by 엽토군
:

천호동 실로암분식 설거지하는 김씨 아줌마
written by 김어진, 2006

천호동은 서울의 전형적인 누항- 서민들이 울고 웃고 싸우고 손잡으며 오손도손 살아가는 익숙한 동네입니다. 강남이 A클래스들의 메이저리그고, 명동이 자본 그 자체라면, 천호동은 이름 그대로 일천 가구가 돈이고 계급장이고 할 것 없이 한바탕 뒹구는 삶의 터라 하겠습니다.
이런 천호동이니만큼 먹을거리도 아주 익숙합니다. 순대 2인분을 떡볶이 3인분에 푹푹 찍어먹으면 학생 넷이 끼니를 때웁니다. 아무리 호화판으로 먹는대도 한두 점 입주해서 겨우 유지비 본전이나 건지고 있는 패밀리 레스토랑이나 대형 쇼핑몰 안에 있는 일식집 정도입니다.
학생들이 워낙 많다 보니 학원이 흥하고, 학원 옆에서는 온갖 분식, 야식, 패스트푸드집이 말 그대로 장사진을 이룹니다. 그리고 천호동 한자리에 버젓이 위치한 ‘세계학원’ 밑에는 퍽 오래된 ‘실로암분식’이 있습니다. 2층부터 위로 세 층 크기로 입주한 세계학원 외벽에는 빗물이 주름처럼 흐느적흐느적하게 묻어 있고, 해마다 그 골이 깊어가는데, 1층에 덕 버티고 앉은 지 오래인 실로암분식 가마솥 옆에도 해마다 기름때, 연기 그을음이 농해져 갑니다. 두 집은 매상도 같이 올리고, 불황도 같이 겪고, 나이를 같이 먹어가는 것입니다.
실로암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보내심을 받음’이라는 뜻인데, 기원후 대략 32년쯤 되던 어느 날 이스라엘의 어떤 맹인이 한거리에서 한 고귀하신 분의 도우심으로 놀랍게 눈을 뜨고서 그 눈을 깨끗이 씻은 자리로 유명합니다. 신기하게도 이 기적을 어떤 사람들이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이야기와 ‘실로암’이라는 지명이 좀 두껍고 신기한 책에 실렸고, 이 책은 유사이래 최대의 판매고를 올립니다. 그 성자께서는 “거 너무 자랑 말고 가서 씻고 보아라” 타이르셨을 뿐이지만, 이 맹인(이었던 이름 없는 이)은 그분의 위대하심을 대놓고 알아보게 해 준 하나의 증거로 기억됩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그 소경과 같은 인생역전을 꿈꾸므로, 지구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주식회사 실로암이 있고, 실로암 교회가 있고, 실로암 가게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늦봄날이었던가, 작년 겨울 실로암분식에 새 식솔로 들어온 김씨 아줌마는 여느 때처럼 말없이 부엌 바닥에 의자 하나 놓고 앉아서 컵이며 그릇을 닦고 있었습니다. 실상 설거지야말로 김씨 아줌마가 그곳에 들어가 고무장갑 낀 뒤부터 이때껏 해 온 일의 전부입니다. 분식 동료 아줌마들이 하도 ‘설거지 아줌마, 설거지 아줌마’ 하고 불러댄 바람에 학생들도 김씨 아줌마가 어쩌다 부엌을 나와 있으면
“설거지 아줌마, 물 한 컵만 좀 주세요!”
하고 으레 그 이름을 불러보는 겁니다.
그런데 김씨는 원래 사람이 그런 그릇인지 어떤지는 몰라도, 이 일이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았나 봅니다. 첨 김씨가 실로암분식에 찾아왔을 때, 그는 왼손에 광고가 난 신문 오림을 들고, 대뜸
“일할게, 돈 좀 줘요.”
하고 되게 퉁명스러웠다나 봅니다. 아니나 다르랴, 김씨 아줌마는 하는 것마다 불평이고 맡는 일마다 볼멘소리였습니다. 돈을 벌어가기 위해 여기 있을 뿐이라고 그는 행실로 보여주었습니다. 접때 언젠가는 김씨 아줌마가 튀김을 맡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지 좀 늦게 출근한 김씨가 앞치마도 두르기 전에 튀김 바구니가 휑뎅그렁한 것을 보고는 식겁을 하더랍니다.
“어머머, 기가 막혀. 방금 튀김 맡은 아줌마 누예요?”
누구도 뭐라는 사람 없는데, 김씨는 하늘이 꺼지기나 하는 듯이 다급하게 굴었다죠. 당장 손을 후닥닥 씻더니 고구마며 푸성귀, 새우 따윌 팔팔 끓고 있는 기름 가마솥에, 그것도 방금 막 씻은 그 맨손으로 덤벙덤벙 빠치우고 새 튀김을 막 만드는 겁니다. 젖은 손으로 튀김을 하는데 뭐나 잘 되겠습니까? 김씨는 아야 뜨거 제미럴, 튀어 오르는 기름에 욕을 하면서, 그 깊은 뜻을 설명했습니다.
“이거 이렇게 몇 개 안 남기고 대충 하다가 갑자기 튀김 찾는 손님들, 앗 따거! 손님들이 그래 떼거리로 찾아오면 어쩔려구들 그랬어요? 나처럼 미리미리, 앗뜨! 이렇게 많이 미리 튀겨놓아야 손님들 보기두 좋구 대접도 맘 놓고 할 거 아니겠어요?”
왕언니(말이 왕언니지 법적인 실로암분식 점주입니다)가 겨우 입 열어서 “아니, 지금 이 시간께야 별루...” 하고 말이나 하려는 찰나 어떤 교복 입은 소년 대여섯 명이 김씨 아줌마 튀김을 한 번 보더니, 참 재수도 희한하지,
“아줌마 튀김들 얼마예요?”
하고선, 방금까지 김씨가 튀겨놓은 걸 모조리 사 갔습니다. 김씨는 의기양양 “봐라요, 누가 맞나.” 으쓱대며 그제야 장갑을 끼고 가방 치우고 앞치마를 둘러 제대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뿐이냐고요? 그날 수업을 땡땡이쳤던 한인고 불량배 여섯 명이 길거리에서 심한 복통을 호소하여 응급실로 호송되었더랍니다. 믿거나 말거나.
무슨 얘길 하다가 이 지경까지 왔지? 예, 암튼 김씨 아줌마가 실로암분식 녹을 타 먹은 지도 어느덧 넉 달을 막 넘기던 그 어느 늦은 봄날. 컵이며 떡볶이 접시며 수저며 하는 것들의 설거질 제대로 막 끝냈는데 분식 문이 열리면서 젊은 사람들 여럿이 엉큼성큼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손님 드는 시간보다 좀 이르긴 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은 아니었기에 아줌마들은 이 단체고객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들은 확실히 혈기가 왕성해서, 들어오자마자 덥다며 에어컨과 선풍기를 건드리고, “으아, 물은 또 셀프네?” 하면서 물을 계속 찾았습니다. 분식 전체 좌석의 7분의 5 정도가 차기에 이르렀습니다. 김씨 아줌마는 갑자기 바빠졌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썰물 때(손님이 바닷물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즉 일손이 별로 필요가 없을 시간대였으니까요. 왕언니도 고참 주씨 아줌마도 이 시간까지는 근무하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지금 같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는 것은 짬밥이 낮은 김씨 같은 사람들인 겁니다. 새로 씻은 식기 날라 바치랴, 음식 대접하랴, 상 닦고 에어컨 만져주랴...
그 때 한 남자가 앉아 있다가 지폐를 손에 들고 일어났습니다.
“아줌마!”
“예, 가요.”
김씨 아줌마가 그 앞까지 와서 무슨 일이냐고 물을 때에야 그는
“미리 낼게요.”
하고서, 파란 돈 노란 돈 빨간 돈을 섞어서 잔뜩 주었습니다. 김씨 아줌마는 그 남자를 쳐다보며 돈을 자기 호주머니에 푹 찔러 넣었습니다.
“그거 정확히 팔만칠천 원이니까, 그 안에서 막 시켜먹을게요.”
김씨는 말없이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군말 없이 주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습니다.
단체고객들은 정말 힘도 좋게 잘들 먹었습니다. 먹으러 온 사람들처럼, 아니 말 그대로 걸신 씐 사람들처럼 안 먹는 듯하면서도 하하호호 떠들 것 다 떠들면서 계속 쿠역쿠역 먹는 겁니다. 추가도 계속 들어왔습니다. 한번에 그 많은 접시를 다 올려놓고 먹을 순 없으니 당연히 추가로 갈 줄은 아줌마들도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팔만칠천 원어치라고 하기엔, 추가가 어째 자꾸 들어오는 겁니다.
“설거지 아줌마,”
“왜요? 바쁜데!”
“접시 떨어졌어, 빨리 좀 씻어봐. 오므라이스는 끝났단 말야. 올리기만 하면 되는데.”
“기다려요!”
이런 식이었습니다. 방금 빈 접시 받아들고 갔다가 대강 허겁지겁 씻어서 다시 요리 받아오는 일이 한 번, 두 번, 계속 벌어졌습니다.
“돈 누가 받았어?”
“설거지 아줌마 아냐?”
김씨의 손은 집중해서 볼 수 없으리만치 바삐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김씨는 허리 굽히고 앉아서 힘겹게 설거지를 하다가는, 간신히 아줌마들을 향해 고개를 빠끔 돌려
“어? 아 몰라.”
하곤 다시 설거지대야로 시선을 내꽂았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젓가락 내려놓는 소리가 들려오고, 프라이팬과 조리대의 소란도 잦아들었습니다. 거의 모두가 식사를 끝낸 지 십오 분쯤 되어, 그들은 모두 일어나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잠깐만요 손님들.”
김씨가 느닷없이 나가는 사람들을 잡아 세웠습니다.
“돈 아까 냈는데요.”
“아니, 기다려 봐. 잠깐. 오므라이스 두 개, 치즈떡볶이 4인분, 라볶이 4인분, 제육덮밥 한 개...”
그러더니 마침내 김씨가 입을 열려 했고, 그 순간 뒤에서 김씨보다 짬밥 높은 윤씨 아줌마도 말을 꺼내고 있었고, 그래서 두 사람이 똑같이
“구만 원.”
손님들은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남자가 김씨에게 말했습니다.
“저희들 분명히 잘 계산해서 팔만칠천 원에서 딱 끊었거든요? 그지 윤서야? 너네 돈까스 시켜먹고 싶다가 말았잖아.”
뒤에서 한 여자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다른 남자가 끄덕였습니다. 김씨가 한 걸음 다가와서
“그런데 왜 그릇 세본 게 딱 구만 원인데? 언니두 말 좀 해 봐요.”
“어? 글쎄, 그러고 보니 뭔가 잘못 센 거 같기도 한데. 아까 하나 취소하지 않았었나?”
“아냐. 지금 그거 분명히 계산에 넣었어.”
윤씨는 천천히 다시 그릇들을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가 취소라는 말을 듣고서는
“취소면 확실하네. 야, 김민준. 넌 왜 아까 너 혼자 순댈 먹겠다고 그랬냐? 같이 먹으러 왔으면 같이 먹는 거지.”
젊은이들 중 맨 오른쪽에 서 있던 남자가 옆머리를 머쓱하게 긁었습니다.
“그죠? 됐네 뭐.”
“됐다고?”
김씨가 갑자기 말꼬리를 쑥 올렸습니다. 윤씨의 눈이 한순간 희미하게 흔들렸습니다.
“안 됐네요, 이 아저씨. 베테랑 아줌마랑 내가 같이 세 본 게 딱 구만 원어치고, 실제로두 저기 요리 아줌마들 다 만든 거 합쳐보면 구만 원 나오거든? 그리고 넌 왜 슬슬 반말이냐?”
“제가 언제 반말을 했다구 그래요?”
“돈이 없으면 돈이 없다고 솔직히 말을 하든가. 그러면 서비스라도 줄 거 아냐?”
남자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눈을 감고 숨을 고르고,
“예, 돈 없는데요, 그렇다고 분식집 설거지 아줌마 속여서 얻어먹고 그러지는 않아요.”
“뭐? 뭐? 말 다 했어? 설거지 아줌마?”
그 남자는 어쩌다가 아줌마들끼리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 한 번 말했던 거 같은데, 이게 결국 점화 스위치가 됐습니다.
“이 자식이, 너 나 알아? 내가 설거지 아줌마면 어쩔 건데 니는 말이 그 따위야? 에이 씨, 다 필요 없어. 돈, 가져가. 너네같이 싸가지 없고 어른들 속여 먹을라고 드는 연놈들 돈을 내가 얻어 써서 뭐 하냐?”
하면서, 김씨는 씩씩거리면서, 앞치마 주머니에 두 손을 푹 찔렀습니다. 거기 돈이 있을 리가 있나요? 김씨가 주머니 속을 휘둥그레 살펴보며 사태 파악(?)을 하는 동안 윤씨는
“저기, 김씨. 애들 돈 잘 계산한 거...”
사태를 바로잡으려 했습니다. 그렇지만 뭐,
“오호라.”
벌써 벌어질 일은 벌어졌죠.
“알고 보니 이거 돈 냈다는 말두 순 쌩이잖아?”
남자도 눈을 둥그렇게 뜨고, 손님 모두가 놀라워하면서 따졌습니다.
“냈다니까요!”
“저도 봤어요!”
“아줌마 주머니에 넣었잖아요!”
김씨는 벽창호.
“난 받은 돈은 무조건 앞치마 주머니 여기, 여기에 쑤셔 박는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여기 있어야 할 팔만칠천 원이 그래 그럼 어디...”
“김씨!”
참다못한 윤씨가 뒤에서 소리를 쳤습니다.
“그릇 계산 틀렸어. 방금 먹고 나간 손님들 그릇 안 치웠어. 그거 떡볶이에 튀김 한 접시, 삼천 원 맞어. 그리고 아까 김씨 선불 받았어. 거 애들 배고파서 먹고 간다는데 좀 과한 거 아냐? 기억 안 나?”
김씨는 딱 2초 동안 어안이벙벙해하더니
“아 몰라! 꺼져 자식들아! 다신 여기 오지 마!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린지, 다시 그 따위로들 하기만 해 봐!”
하면서, 그들을 냉큼 내쫓았습니다. 길거리로 사라지던 무리 중 한 남자는, 몸을 뒤로 돌려서 뭐라 고함을 치며 감자바위를 먹였지요.
다시 부엌으로 들어가는 김씨에게 조씨 아줌마가 한마디 했습니다.
“그리구 삼천 원쯤은 거 팔만얼마 대목이면 좀 보아 넘길 수도 있는 거잖아요. 왜 그러셨...”
“삼천 원이요? 삼천 원?”
김씨는 여전히 짜증이었습니다.
“누가 돈 달랬나? 싸가지가 틀려먹었으니까 그렇지!”
그런데 이번에는, 참 지금은 으레 손님 없는 썰물 땐데 재수도 희한하지, 또 다른 다섯 명의 손님들이 들어오면서
“미트치즈덮밥 5인분이요!”
미트치즈덮밥은 실로암분식 특제 요리인데 만들기가 상당히 귀찮습니다. 그런 요리를 5인분 시키다니. 수완 좋은 천씨 아줌마가
“손님들, 이거 오래 걸리는데. 먼저 다른 거 간단히 튀김이라도 드실래요? 특별히 싸게 드릴 테니깐.”
“그럴까?”
“그러면 기왕 튀김을 먹는 김에 떡볶이도 시켜서 일단 그걸 먹자.”
“그렇게 해 주세요.”
“예, 떡볶이에 찍어먹는 튀김, 5인분이니까 원래 오천 원 나오는데 특별히 사천 원 드리겠습니다.”
김씨는 아까부터 흥정 붙이는 천씨를 원망스럽게 보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모두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동안. 왜? 웬만한 그릇은 다 나갔었기 때문에, 천씨 덕에 당장 해야 할 설거지가 자꾸 늘어나고 있었으니까요!
“김씨, 덮밥그릇 먼저 빨리 좀 씻어 봐.”
“기달리라구요!”
“재촉하잖아. 떡볶이 4인분이 벌써 거의 비었어.”
김씨는 다시 조금 울컥해서
“진종일 쭈그리고 앉아서 듣느니 그릇 달란 소리고, 보느니 이 빨간 다라고, 어쩌라고요! 좀 기다려요!”
“언니, 언니 오늘은 날이 아닌 거 같애.”
“시끄러워요!”
계속되는 재촉에 설거지만 계속 정신없이 하고 있는데, 드디어 미트치즈덮밥 5인분이 모두 나가고, 바로 그 때 왕언니 아줌마가 들어왔습니다. 왕언니는 기분이 매우 좋아서 모두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윤씨! 기분 좋아 보이네?”
“아유, 언니 말도 말아요. 열 명 넘는 애들이 방금 와서 팔만 얼마 팔아주고 갔어.”
“진짜? 오늘 장사 되겠는데! 천씨, 오늘 날씨 어떻겠어?”
“오늘은 진짜 뭔가 돼요. 좀 있다가 그냥 깜짝세일이라두 할까? 무슨 날인가 봐, 언니.”
그리고, 왕언니 아줌마는 한창 들떠서, 핸드백으로 김씨 등을 탁 치며,
“헤이, 설거지 마마. 오늘은 퐁퐁 잘 먹어?”
“몰라!”
김씨는 벌떡 일어나서, 딱 3초간 왕언니 눈동자를 구멍나라 째려보곤, 고무장갑을 벗어던지고 앞치마를 벗고 한데 두었던 가방을 집어 들었습니다. 김씨가 왕언니에게 반말로 꽥 소리친 전례도 없거니와, 분위기를 사정없이 깨 부셔버린 바람에, 김씨가 문 앞까지 성큼성큼 걸어가도록 아무도 제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김씨를 멍하니 보고만 있었습니다. 김씨는 드디어 이렇게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가 이따위로 푸대접받고 사는 건, 니미, 이 쬐깐한 분식집에 식기세척기가 하나 없기 때문이야!”
딸랑딸랑. 김씨는 씩씩거리며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습니다. 모두가 언어도단에 이른 상황에서, 조씨 아줌마가 모기 같은 목소리로 혼자
“퇴근 인사가 뭐 저렇대.”
했다가, 천씨에게 옆구리를 맞았고요. 이후 김씨는 한동안 출근하질 않았습니다. 왕언니는 “응? 징계 안 먹였는데?” 하며 그게 무슨 소리냐고 되물었죠. 김씨는 어디로 갔느냐고요? 광화문.
이 아줌마가 드디어 인생에서 가장 화려한 불꽃을 피워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분식업종사자조합’을 만든 겁니다. 이 아줌마가 억울하고 화딱지 나서 백방으로 알아보니 이건 뭐 사소한 다툼이라 법정에서도 기각할 거라고 하고, 자기는 생산자지 소비자가 아니라서 물어주지나 않으면 다행이라는 소리도 들리지 뭡니까? 김씨로서는 기가 차겠지요. 어느 날인가는 그래서, 서울 한복판에서 어디 가서 배를 채울지 어려워하다가 주머니에 있던 팔만칠천 원 중 천 원을 꺼내 삼각김밥을 사먹었죠. 그리고 조사해본 결과 노동조합 만드는 게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서, 김씨는 돈을 좀 들여서 일을 벌인 겁니다. 먼 친척이 가진 빌딩에 어렵게 싼 값으로 입주해서 본부 차리고, 조합원 모으고, 부당대접 사례 접수받아서 구제해 준다는, 그래서 건전하고 명랑한 대한민국 분식시장 창조에 기여한다고는 했지만, 사실 그들(?)의 제일안건은 ‘식기세척기 설치의 권고 내지 의무화’였습니다. 그렇죠. 김씨는 이제 쪼그려 앉아 설거지만 하는 신세, 승진도 못 하고 늘 따까리 취급받는 신세에 넌덜머리가 난 겁니다.
“이 중에 설거지 전문적으로 맡으신 고무장갑 여러분 손 좀 들어보세요. 저두 설거지만 했거든요. 솔직히 우리가 하는 일이 뭐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그냥 닦으면 되고 씻으면 되죠. 그게 문젭니다! 맨날 똑같은 일만 하고, 쪼그려 앉아서 물 묻혀야 되고, 누구나 다 시키면 할 수 있는 단순 업무만 하니까 여러분 짬밥이 안 오르는 거라고요!”
김씨의 불꽃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일단 불이 붙자 그 많은(예상외로 많은 분식집 아줌마들이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입들 했다죠) 조합원들을 선동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습니다. 언젠가 조합원 참모 박씨가
“하지만 법안으로 상정하는 건 무리가...”
하고 무리수를 내비쳤을 때에도, 김씨는
“법률이 안 되면 명령으로, 명령이 안 되면 시행령으로! 못할 건 뭐고 전경련은 뭐 국 끓여 먹자고 있는 거래요?”
톡 쏘아붙이는 겁니다. ‘전분조’에 세 번째로 가입한 박씨가 그리 면박을 당했는데 누가 뭐라고 감히 이의를 달겠습니까.
그리고, 드디어 왕언니 이하 실로암분식 아줌마 일동이 식겁을 하게 되는 대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마침내 전분조가 「분식업에 관한 권고 및 명령 청원서」를 서울시청에 제출한 겁니다. 어떻게 됐게요? 통과! 어떤 공무원들이었는지 김씨의 우격다짐에 이렇다 대꾸할 깜냥이 없었던가 봅니다. 한 두어 달쯤 지나니 서울 내의 분식업자들은 식기세척기나 그에 준하는 식기세척 장비를 설치해야 한다는 보도가 짤막하게 나갔습니다. 인터뷰는 김씨 대신 박씨가 국어 교과서 읽듯이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김씨는, 그 보도가 나간 뒤 며칠 후 방글방글 웃으면서 출근했습니다.
“여러분 안녕?”
언제나처럼 조씨는 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려고 했는데, 천씨 아줌마가 그의 옆구리를 찔렀고 조씨 아줌마는 다시 뻣뻣이 섰습니다. 모두가 김씨를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김씨는 평소처럼 늘 풀어놓던 자리에 가방을 풀어놓고, 늘 걸려있던 자기 앞치마를 집어 들고 밖으로 나가 먼지를 털고, 들어와서 그걸 두르고 늘 그랬듯이 한곳에 고이 접어져 있던 고무장갑을 끼고 부엌 한가운데 서서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머,” 하면서 한구석에 있는 중고 식기세척기 하나를 가리켰습니다.
“식기세척기네요.”
“예.”
왕언니 아줌마가 매우 딱딱한 말투로 대답해 주며, 그에게 다가왔습니다. 모두가 조용히 아줌마 지나가는 길을 비켰습니다.
“저두 이젠 쪼그려 앉아서 일할 필요가 없군요. 기뻐요.”
“기쁘세요?”
왕언니가 한 번 웃어주더니,
“정확히 말해 드릴까요?”
김씨는 여전히 웃음을 얼굴에 남겨놓고
“?”
왕언니 아줌마는 완전히 굳은 표정으로 통고했습니다.
“김씨 아줌마, 아줌만 이제 여기서 ‘일할 필요’가 없어요.”
“?”
“식기세척기가 닦아줄 건데 김씨가 무슨 필요가 있어요? 접때 못 받은 돈은 그 앞치마 주머니에 있으니 갖고 나가요. 김씨 같은 고집불통은 실로암분식에서 일 못 해요.”
김씨는 고무장갑 낀 손으로 자기 앞치마 주머니에서 삼천 원을 집어 들고, 딱 21초간 허공을 보며 어벙하게 있었습니다. 전분조는 다음날 해체되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후 그들의 청원은 행정 판결에서 취소 처분되었지요. 이렇게 해서, 천호동 실로암분식에서 설거지하는, 아니 설거지를 했던 김씨 아줌마는 다시 실업자가 되었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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