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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레터링을 촌스럽다고 말하려면, 우리가 얼마나, 얼마나 메마르고 무식하며 천박한 타이포그래피 환경에서 살고 있는가를 되묻지 않을 수 없다.


88올림픽으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한글을 걱정하지 않는다.
모양이 개발괴발이든, 서로 하나도 안 어울리고 다 따로 놀든 아무 상관이 없다. 그냥 읽어지기만 하면 되는 게 21세기의 우리글이다. 기껏해야 산돌 정도나 돼야 다음 세대에까지 필요해질 한글꼴을 생각해보자는 것 같고, 나머지들은 죄 온통 현 시류에 묻어가려는 무책임자들이다. 그리고, 나도 부끄럽지만 장기하로부터서야, 김기조를 만났다.

그는 70년대로부터 80년대 말까지 있었던, 아주 묘한 의미에서의 문화적 풍요를 기억하는 사람이다.

정보를 접하는 길이라고는 책이나 잡지뿐이고, 음악을 즐기는 방편으로서 TV가 음반이나 라디오보다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은 그야말로 물질은 빈곤하지만 순수하게 바라고 들어 오던 숱한 낭만과 그 발현에 대한 욕망만은 주체할 길이 없던 어떤 때였다. 그 때 우리는,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우리가 '촌스러움'이라고 기억하는 어떤 맨손으로 된 풍요를 직접 만들어서 누렸다. 성탄절 때마다 형광색 우드락 보드판을 오려 '축 성탄' 글자를 만들어 교회 강대상 위에 붙이고 딱지와 종이인형을 그리고 오리고 접어 만들어 붙여 놀았다. '수공업소형음반제작', '지속가능한 딴따라질' 등의 개념과 행위는, 우리가 그들의 행보를 흘긋 쳐다보고 쉽게 운운하는 키치니 무어니가 아닌 바로 그런 코드의 연장선에 있다. 무엇을 직접 하되 맨손으로, 시류가 주지 못하는 로맨틱한 소박함을 우리가 알아서 때운다는 그런.

이것은 빈곤이나 빈티지가 아니라 저항에 가까운 유지보수이고 그래서 시대착오적인 하드코어이다. 그를 무식하거나 구시대적이거나 꽉 막힌 샌님일 거라고 생각한다면 아직도 그의 디자인과 그것을 이해하자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블로그, 포트폴리오, 행보를 보건대 그는 분명 이것저것 깨알같이 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꽤 많이 참고 양보하고 계산하고 있다. 그가 일부러 촌스러움을 택하는 데는, 이런 가볍지 않은 생각들이 깔려 있다고 보인다.

'연아' 니까 하는 이유만으로, 이 '스티카' 세트가 3000원에 불티나게 팔린다면, 우리는 '핑클빵'이 팔리던 시절부터, 그리 몇발자국 나서지 않은게다. [출처]

김기조는 저평가되고 있다. 우리는 그가 보여주는 좋은 의미의 시대착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사자가 자랑스러워하는 물건 하나를 보자.



장담하는데, 이제 그림자 궁전이란 글자를 이것보다 더 "그림자 궁전" 같아보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더 이상 없다. 기껏해야 한창 유행하는 모양의 'ㄹ' 모양 한 번 보여주면서 흐릿한 선으로 캘리그라피랍시고 휘갈기거나, 산돌카리스마체 같은 걸로 대충 때우겠지. 그가 동네의 오래된 점포 간판 등을 유심히 공부하며 숙달해 온 그 '시골스러운' 디자인은, 이런 구석에서 갑작스러워 보이게 빛을 발한다.
그가 물려받은 것은 촌스러운 게 아니라 낭만으로 꽉 찬 것이고, 투박한 게 아니라 맨손과 시간과 노가다 정신으로 가득한 어떤 것이다. 그래서 그의 도안은, 휴가 나와서 후다닥 해놓고 돌아가며 내놓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잊어버려선 안 될 어떤 위대한 유산의 주변부에 있다.

실제로 김기조는 붕가붕가레코드와 음악적 취향이 비슷하다. 산울림이나 송골매와 같은 밴드들을 좋아했다는 그는 단지 옛 정서에 취해서가 아니라 그들의 음악이 여전히 세련되며 오히려 당대로 이어지지 않는 점에 의문을 가져왔다고 한다. [출처]

몇 종류만 해서 폰트로 안 만드시냐고 한 번 바람을 넣어봐야겠다. 그는 분명히 수요가 있다. 아니, 지금처럼 노가다를 촌스럽다고 무시하고 세련(細鍊)[각주:1]되지도 않은 것을 세련되다고 우기는 이 허풍선이 천국의 한글 디자인 세계에서, 그는 차라리, 이 사회에 공급해 줄 필요가 있는 정신이다.

오바하지 말라고? 그럼 '공정한 사회'라는 웃기고 자빠진 개념을 이거보다 더 신랄한 타이포로 비웃어줄 수 있는가 함 해 봐라. 이건 진심.

 




P.s 이 글에 모두들 유난히도 호응해주신다. 좋은 걸 좋다고, 그것도 꽤나 개인적인 어조로 풀어놨을 뿐인데도 이렇게나 (심지어 김기조님 당신한테서까지도) 좋은 리뷰라고 고마워하시는 분위기다. 과연 한국의 타이포그래피 디자인 바닥은 천박한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가보다, 왠지 그를 촌스럽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될 듯한 무언의 압박을 주는.
  1. 다 알겠지만 본디 세련되다라는 말은 갈고닦였다는 뜻이다. 오랜 시간 공들인 것은 뷰티풀해진다는 말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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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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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도 제 2호에 대해 시각적으로 제일 잘 해석해 놓은 작품.

작품 제목이 "시낭송". 느낌이 아주 좋았다.


옛날에 이거 비슷한 시를 쓴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뭐야 몰라 이거... 무서워...

"이상한 짤방". 이게 내용이 있는 타이포인가 아닌가로 한참 고민했음.

알고보니 저 파란색은 '이상'이라는 글자의 추상화.

오감도 제 1호를 시각적으로 제일 잘 해석한 작품.

"건축무한육면각체"를 시각적으로 제일 잘 해석해 놓은, 아니, 그 시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인듯

이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

김해경 아니 이상은, 1937년 4월 17일, "멜론 향기가 맡고 싶소"라고 중얼거리더니, 날아갔다.

― 왜 미쳤다고들 그러는지 대체 우리는 남보다 수 십 년씩 떨어지고도 마음놓고 지낼 작정이냐. 모르는 것은 내 재주도 모자랐겠지만 게을러 빠지게 놀고 만 지내던 일도 좀 뉘우쳐 봐야 아니 하느냐.
여남은 개쯤 써 보고서 시 만들 줄 안다고 잔뜩 믿고 굴러다니는 패들과는 물건이 다르다. 二千點에서 三十點을 고르는데 땀을 흘렸다. 31년 32년 일에서 용대가리를 딱 꺼내어 놓고 하도들 야단에 배암 꼬랑지커녕 쥐꼬랑지도 못 달고 그냥 두니 서운하다.
: 이상, <작자의 말> (조선중앙일보, 1934.8.8) 中

― 글자 자체를 디자인하는 것도, 디자인된 글자를 가지고 다시 재구성 하는 것도 모두 타이포그래피의 범주에 속한다. 그리고 그 두 가지 활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를 또한 타이포그래퍼라고 한다.
이상은 후자에 속한다. 그는 이미 디자인된 글자 요소들을 가지고 디자인작업을 하는 타이포그래퍼였다. 물론 그가 직접 글자를 디자인한 적도 있지만 글자를 가지고 자신의 시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 더 많다.
: 안상수, 미니 인터뷰 (www.fontclub.co.kr, 2010.2.3) 中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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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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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성경

2007. 12. 6. 14:03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타이포 연습.
1024*768이기 때문에 배경화면으로 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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