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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요환님의 "이젠 악플 익숙하다"란 말에 용기내어 트랙백으로 꺼내 길게 씁니다. 솔직히 좀 부럽습니다.

두발제한폐지운동(대부분이 두발자유화라고 하는데, 용어에 대해서도 밑에서 얘기해보기로 하죠)의 과제는 언뜻 생각하기에는 교내 두발 관련 교칙 삭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두발제한폐지 운동의 진짜 목표는 따로 있습니다. 이 운동은 현실과 사실을 알리고 인권의식, 책임자유 의식을 신장하기 위한 캠페인이라는 거지요.
가만히 관찰해 보면 학교란 굴종, 조작된 동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학습시키고 생활화하는 계급사회입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로 일단 피지배 계급을 기만한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동의서를 내밀지요. 군중 심리, 역사라는 우상, 일방적인 사회적 가치의 내면화 등은 이 동의를 조작하고요. 한 사회가 민주적이고 다원적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가'인데, 이 지표만으로 보면 현재 한국의 학교란 독재사회나 다름없습니다.
정치 과목을 배우셨다면 동의하시겠지만, 이런 꽉 막힌 신민형 체제에서는 하향 명령은 받고 상향 건의는 못 하는 전형적인 예스맨들이 양산된다는 겁니다. 구성원들(아니면 피지배층)이 명령 듣는 법만 알지, '니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야'라던가 '내 서면동의도 없이 감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같은 말을 하는 법은 배우질 못합니다. 방금 예를 든 두 마디는, 아마도 부당한 세상 앞에서 한 번쯤은 외쳐 줘야 될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은커녕 아침조회 시간에 교장이 하는 이야기에 '그런가 보다'하는 표정으로 박수나 치는 학생이 학교가 키우고 있는 인간군상이란 말입니다. 교육부가 뭐라고요? 21세기를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지식인 양성? 열심히 꿈꾸라죠.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지간에 한마디로 현재의 한국 교정은 너무나 비민주적입니다. 미래의 새싹들이, 절대다수의 구성원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 권리도 행사할 줄 모르는 사회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어두운 한국의 앞날을 걱정해서라도 이건 고쳐야 할 일이지요. 그리고 그 대변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얘깃거리, 즉 '두발'인 겁니다. 그래서 두발자유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겉으로는 머리 자르지 말라고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도 불만은 있다고, 우리도 자유롭게 동의할 권리는 있다고 소리치는 겁니다. 그래서 전 그 원래 취지 혹은 바람직한 취지를 생각해서 두발'자유'화라는 말보다는 두발'제한폐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머리카락만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다가 아니고, 오히려 학교의 구성원이자 절대다수로서 권리를 되찾고 일으켜 행사하고, 동의할 수 없는 모든 제한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돼지 신세로 진주를 받으면 뭐합니까, 사람으로 거듭나서 진주를 받아야지요.
물론 어쩌다보니 '우리도 패션을 따르고 싶고 우리 멋대로 하고 싶다'라는 쪽으로 와전되어 버려서(와전이라기보단 삼천포로 빠진 거겠지요?) 어른들이 '뭐 대단한 거 아니구만, 그런 건 지금 공부하고서 대학 가면 해'라는 얄미운 결론을 내고 있는 게 최근의 구도인 듯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 이 운동, 이 캠페인은 철저하게 왜곡되었습니다. 홍보를 잘못 한 셈이지요. '우리의 머리가 막 잘려나간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는 어디 갔느냐'로 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게 현재 두발자유화 운동이 부딪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아마도 입요환님이 두발제한폐지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시는 건 바로 윗단락에서 적어 본 최근의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래 취지를 헤아려 보신다면, 두발제한폐지 캠페인은 과소평가할 것이 못 되며, 오히려 민주적인 생활양식을 배우기에 좋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일이라는 게 제 견해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매듭지었고, 또 기회 되는 대로 여기저기에 말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 하는 벽은 높은 거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정말 길게 썼습니다. 아마 앞으로 이보다 더 열심히 두발제한폐지 문제를 논할 일은 논술시험에 나왔을 때 빼곤 없겠네요. 건설적인 논의 부탁합니다.


P.s 자진방법. 써놓고 보니 트랙백 본문과는 좀 멀어져 있군요. 이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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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이상스러울 정도로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연예인은 고사하고 심지어 주변인의 주변인조차 자살하기 일쑤다. 옛날엔 그나마 '자살사이트'가 사회문제로 여겨질 만큼 자살이 괴한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마치 구렁이가 담 넘듯 가랑비에 옷 젖듯 네이버가 IE 점령하듯 자살이 '보편화'되더니 '익숙한' 일이 되었다.

이거 왜 이럴까? 왜 하필 갑자기 이러는 걸까? 삶에 대한 사회통념이 어그러진 때문이다.

옛날 만화나 영화 등을 보면 좀 낯간지럽긴 하지만 '내 가장 큰 밑천은 젊음이야'라는 대사로 절망을 이기는 주인공들이 많이 있었다. 그것이 당대 사회, 아니 지금껏 우리가 지녀 왔던 통념이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생에 최소한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 자신들의 가능성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하다못해 떳떳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라도 인생에는 부단한 노력과 반드시 거쳐야 할 역경 등이 필요함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것은 교육이 가르치지 못한다. 사회가, 문화가, 풍토가, 역사가 가르칠 수 있는 것이다. 굴곡과 희노애락에서 인생이 빛난다는 사실, 화려하든 소박하든 '삶'을 살아나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존경할 만하다는 사실은 보고 배워야 할 일이지 그런가보다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 법을 찾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기 시작했고, 언젠가부터 세상은 돈을 위주로 돌아갔으며, 언젠가부터 아이고 학부모고 너나할 것 없이 입시의 꿈에 목을 매달기 시작했다. 버는 대로 누리는 세상, 돈만이 무언가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세상으로 뒤집혀 버렸다. 그래서인지 12년 동안의 투자로 나머지 한평생이 편할 수 있다는 출처 모를 이데올로기가 검버섯처럼 퍼지기 시작했다. 새삼스럽지만 인생 초반의 12년이 나머지 인생을 결정한다는 것처럼 삶을 모욕하는 아이디어가 있을까? 그러나 사람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고 믿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그것도 요 수 년 전부터. 갑자기.
그러는 사이 인생수업은 뒷전이 되었다.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는 않고 삶에 언제나 봄날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은 교과서에서도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건 앞서 말했듯이 사회적 분위기 아래서 몸소 겪으며 혹은 본받으며 배우지 않고는 의미가 없다. 이렇게 부질없는 개념 학습만 대강 해 두고 나머지 시간 동안에는 대학 붙으면 뭘 할까, 이번 행정고시 경쟁률은 좀 떨어졌을까 하는 생각이나 하며 구차하고 코앞에 닥친 나날에만 급급하게 된 것이다. 인생은 80부터라고 말은 하고 1분 뒤와 10년 뒤를 동시에 생각하며 꿈꾸는 자만이 미래를 본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는 당장 그날그날 쪽지시험 치는 것만 생각해 보아도 하루살이 인생을 훈련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세월이 얼마간 지났다. 세상에 나와 보았다. 듣기로는 세상은 거칠고 인생은 알아서 살아가는 거라는데, 그런 건 잘 모르겠고 내 인생 이십몇 년이란 책상 앞에 앉아 딕셔너리 넘기듯 번뜩이는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로만 남아 있다. 이제 뭐 하고 살까, 뭐 그건 방학숙제처럼 적당한 때 되면 어떻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몇 달간은 알바나 뛰어야겠는데, 별안간 어떤 악플들이 나를 괴롭게 한다. 대책이 안 나온다. 너무 쓰라리다. 난 이런 건 감당할 수 없다. 저 창문 밖으로 나가면 땅에 닿을 때는 아플까. 죽으면 천국이 있다지. 그렇게 한 인생이 허무하게 찌그러진다.
그렇다. 최근 열심히 사는 사람이 천대받기 시작하고 편하게 사는 사람이 갑자기 우대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편한 삶을 얻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늘어났고, 그들은 열심히 사는 삶을 모른 채 여기저기서 나자빠지고 마는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편한 삶'이라는 신기루를 없애지 않으면, 인생이라는 모래벌판에서 지프차가 없다며 드러누워버리는 사람이 더 생겨나고 말 것이다. 사회 제반 분위기가 바로잡혀야 한다. 교육체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삶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이 증대되어야 한다. 아니면 하다못해 드라마로라도 이전투구하는 삶을 보여주기라도 해야 한다. 함부로 살다 죽다 할 수 없다는 것, 자살을 뒤집으면 살자가 된다는 것, 노력이란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 번의 빅매치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58세에 들어서 보람차게 살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절실하게 요구된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누가 번역 좀 해 주세요.

+ 2013.7.29: 7년 전의 이 글은 오늘에 와서야 엇비슷하게 검증되는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철학 책이나 강좌 없이도 철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그들의 부모가 이웃들이 모두 삶의 철학자들이었으니. 그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철학공부였으니. 마을 사람들은 움직이는 철학 책들이며 마을은 살아 숨쉬는 철학도서관이자 철학학교였으니. 오늘 아이들에게도 부모와 이웃과 마을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철학교사도 철학도서관도 학교도 아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건 인간의 성장이 아니라 성공에 관한 것들이다.

아이들은 사람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인생의 의미에 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채 자라난다. 아이들도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지라 제 삶과 세계에 대한 답답함과 막막함에 질문이라도 할라치면 우리는 한목소리로 그들의 입을 막는다. “현실이 어쩔 수 없다!” 그 아이들 중 몇몇은 답답함과 막막함에 기진하여 스러져간다. 그 아이들에게 우리가 정색을 하고 ‘생명은 소중한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한들 울림이 있을까.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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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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