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49
=590,234

최근 김어진쇼라는 것을 하고 있다. 기본 토크쇼이고, 평범한 사람들 데려다가 별 말도 안 되는 얘기 가지고 아무말 잔치를 한다.

이것은 모랄까 지난 몇 년 간 콘텐츠 바닥에서 굴러 본 이후 약간 재활 비슷한 느낌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은 황금률들을 거의 전면적으로 초탈하려는 의지에 기반하고 있다.

  • 콘텐츠는 재밌어야 한다는 것.
    재미란 건 보통 두 가지인데, 만들어 팔 때의 재미와 사람들의 반응에서 나오는 재미다. 첫 번째 것은 유지 가능하다. 하지만 두 번째 것은 워낙 강렬해서 적잖은 이들이 그걸 다시 맛보고 싶어 발버둥치고 끝에 가서 헛다리를 짚어 자빠진다. 재미있게 할까 재미없게 할까 싶을 때는 재미없게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누구 말마따나, 노 잼 노 스트레스.
  • 콘텐츠는 특정한 내용이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것.
    내용이나 목적은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어쨌든 최소 몇 분간 이어폰 끼고 이걸 보고 있어야 하니까 그 짓을 한 보람은 줘야 한다.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 목표치를 설정하는 순간부터 그건 고스란히 과제가 되어 사람 목을 조른다. 이거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난 그러지 않을 것이다.
  • 콘텐츠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
    일관성 역시 마찬가지로 최소한만 있으면 된다. 칸트에 따르면 모든 게 매번 너무 다르면 아예 인간 인식의 범주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니까. 하지만 그 일관성을 가지고 해내려는 "브랜딩"이라는 것 역시 사실 좀 부질없는 (혹은 불가능한) 무언가에 가깝다. 특히 아마추어로서는 더더욱 그렇다.
  • 콘텐츠는 많을수록 좋다는 것.
    스윙 자체를 존나게 많이 휘두르면 누구나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아마추어 얘기고 프로라면 타율을 올릴 생각을 하는 게 이득이다. 최악은 수량을 채우기 위해 꾸역꾸역 재미도 감동도 없는 걸 자기착취해 가며 만드는 짓이다. 씹노잼 폐급 파일들 말고는 남는 게 없거든.
  •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아니 이건 완전히 틀렸다. 제작자로서만 말하자면,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이 좋아하도록 설득한다는 것이 정확하다. 사람들이 도대체 뭘 좋아하냐고? 그래서 우리는 몇 달간 "트렌드"와 "이슈"를 팔로업하는 훈련을 해 보았고 남은 건 그냥 네이버 실검 보는 게 빠르다는 교훈뿐이었다.
  • 영상 콘텐츠는 짧아야 팔린다는 것.
    누가 그걸 모를 줄 아나 보지? 그러면 뭐 짧으면 짧을수록 막 반비례해서 팔리게? 다들 부탁이니 일차함수적인 사고방식을 만나면 의심을 좀 해 보았으면 좋겠다. 내가 본 적지 않은 골드 유튜버들의 영상은 3분은커녕 10분도 넘길 때가 많다. 길이는 가장 irrelevant한 변수 중 하나다.
  • 사람들이 공감하거나 자기와 연관지을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
    이건 맞는 말이다. 사람들은 자기와 아무 연관 없는 것을 굳이 찾지 않는다. 수긍은 순순히 하지만 그냥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 부분은 포기하고 있다.
  • 기왕 하는 거 뭔가 남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것.
    이건 바꿔서 물어보고 싶다. 뭐가 안 남는 건 안 해야 하나? 오히려 뭐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필사적으로 덤비기 시작하면 그건 그거대로 불행할걸? 왜냐면 사람 일이라는 게 생각보다 뭐가 안 남거든.
  • 어쨌든 계속 해나가야 한다는 것.
    김어진쇼는 "지나치게 유명해지면 그만"할 계획이다. 예컨대 방송 섭외 요청이 들어오면 "김어진쇼가 어제 망했기 때문에 안 됩니다" 하고 거절할 생각이다. 이게 무슨 투석이나 핵분열 발전도 아니고 마지못해 계속하는 짓을 할 거면 애초에 하질 말았어야지 말이다. 언제 그만두어도 문제나 불행이 찾아오지 않는 걸 해야 한다.

아무튼 뭐냐면 결국 주객의 전도로부터의 해방을 하자는 것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의 상당수가 인생을 바쳐 콘텐츠를 소환해 인기와 성취를 얻는다. 다들 정신 좀 차렸으면 싶다. 그깟 게 뭐라고 삶을 바칠 필요는 없단 말이다. 그냥 무엇으로도 규정되지 않는 인생 그 자체를 일단 잘 살란 말이야. 왜 있잖아 사람 만나고 밥 커피 술 사고 농담 주고받고 뭐 그런 거. 그러다가 만약에 혹시 괜찮으면 기념사진 찍듯이 기념영상 찍어놓고 최소한의 편집만 해서 남겨놓고 그 정도면 안 되겠냐구. 무슨 영광을 보겠다고 막 장소 빌리고 사람 빌려와서 오만 생쇼를 하냐고. 뭔 지랄 염병을 떨어본들 YTN 하루 시청자 수에도 못 이길 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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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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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에 밤2시까지 삽질해 성공한 기념으로 아주 간략하게 작성. 질문 받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닷홈"이란 한국식 LAMP 스택의 shared hosting이라고 보시면 됨.


사전 준비사항

  • 이 글은 모든 작업을 윈도우에서 한다고 가정한다. 리눅스/맥 쓰시는 분들은 훨씬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니 필요한 명령줄은 알아서 연구하시길.
  • 최소한의 php 상식
  • php, composer (라라벨 인스톨러는 쓰지 않는다.)
  • Git 관리툴 (FTP로 수동배포하는 과정에서 버전을 관리하기 위한 용도. 잘 모르면 소스트리 쓰자.)
  • FTP 클라이언트 (닷홈에 수동배포하려는 용도. 잘 모르면 파일질라 쓰자.)
  • PHP 5.6.4 이상이 돌아가는 닷홈 계정 (닷홈에서 PHP 7.0을 굴리려면 무제한 호스팅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도메인 구매하는 댓가로 FREE 티어를 쓸수있게 해놓았으니 참고하시길... 제길 이런글 쓴다고 레퍼럴 받는것도 아닌데)


tl;dr

이하의 서술은 닷홈 호스팅의 두 가지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을 안내한다. composer와 artisan을 못 쓰는 문제, 요청 실행 담당 파일이 마음대로 지목되지 않는 문제. 이 두 가지가 별문제가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더 읽지 않아도 됨.

로컬에서는 php artisan make:migration create_foo_table 같은 콘솔도 쓸 수 있고 composer install foo 같은 것도 얼마든지 실행할 수 있지만 닷홈의 대부분 호스팅 상품은 공식적으로 SSH 접속이나 컴포저 실행, 쉘스크립트 실행 등을 할 수 없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패키징 체계로 되어 있는 웹앱 개발 환경에서 이는 치명적인 제약이다.

게다가 로컬의 라라벨과 프로덕션인 닷홈은 웹 요청 수행 방식이 다르다. 라라벨은 루트폴더의 server.php를 실행하는데, 닷홈은 별도의 .htaccess 설정이 없는 한은 걍 아무 생각 없이 각 계정에 대하여 /host/home숫자/계정명/html 디렉토리의 index.htm(l)이나 index.php만을 열고 보기 때문이다. 어떤 요청에 대해서 .htaccess가 특정 파일을 포인팅해 주지 않으면, 그 요청의 응답은 영원히 403404, 500 또는 310(Too many redirects)뿐일 것이다.

여기에 사소한 몇 가지 요점을 짚고 가려고 한다. 예컨대 라라벨 버전 문제인데, PHP 7.1이 아닌 PHP 7.0의 서버라면 라라벨 버전은 5.5까지만 쓸 수 있다. 이제부터 조금씩 살펴보자.


1. 상쾌하게 새 앱으로 시작하기 (단, 버전에 맞춰서)

이미 로컬에서 돌아가고 있는 라라벨 앱이 있다면 최악의 경우 그 앱을 다운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런데 라라벨에서 다운그레이드란 새 프로젝트를 낮은 버전으로 시작해 거기에 마이그레이션하는 것만을 뜻한다. 그렇게 따지면 아마도 이 스텝은 필수인 듯.

1-1. 라라벨을 올리고 싶은 닷홈 호스팅의 PHP 버전을 알아내고, 이 버전을 지원하는 최신 라라벨 버전이 뭔지 각 버전별 설치 문서에 가서 확인해 본다. 대리클릭을 해드리자면 PHP가 7.0일 땐 5.5까지, PHP가 5.6.4 이상일 땐 5.4까지.

1-2. 앱을 설치할 디렉토리로 가서 커맨드를 열고 라라벨 설치 명령을 실행한다. 예컨대 설치할 수 있는 라라벨 최고 버전이 5.5버전대라면 이렇게 입력한다. (자동으로 현시점 최신 버전인 5.5.28을 깔아준다.)

> composer create-project laravel/laravel 앱이름 "5.5.*" --prefer-dist

1-3. 컴포저 특유의 무반응이 잠시 이어지다가 한바탕 폭풍 설치가 끝나면 Git 관리툴을 열고 이 폴더를 기존 존재하는 저장소로서 생성해 커밋&푸시하고 버전 관리를 시작한다.
소스트리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New Tab > Create > 지금 만든 폴더 선택 > 저장소 이름이나 나머지는 뭐 알아서 > 생성 > Yes > 작업공간 > 모두 스테이지에 올리기 > 커밋 > Push.

1-4. 설치된 디렉토리로 이동해 php artisan serve를 실행해본다. 별문제가 없어야 한다.

1-5. /public 폴더에 assets라는 이름으로 빈 폴더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 css 폴더와 js 폴더를 때려넣어 둔다. 3번 스텝에서 해야 할 작업을 미리 해놓는 것.


2. 최초 버전 unzip 배치

이짓을 하는 이유는 /vendor 디렉토리에 너무 많은 폴더와 파일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걸 전부 FTP로 올리는 것은 바보짓이며, 번번이 이렇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composer가 바로 이 문제를 해결한 툴이지만, 우리는 닷홈 서버를 빌려 쓰고 있어 컴포저를 쓸 수 없으니 일단 갓 구워진 라라벨 정도로만 올려보자. AWS 엘라스틱 빈스톡에서 영감을 얻음.

2-1. 라라벨이 설치된(=server.php 파일이 있는) 폴더의 내용 전체를 압축해 파일명.zip을 만들어둔다.

2-2. 다음 코드를 적당히 활용한 적당한이름.php 파일을 만들어둔다.

<? header("Content-Type: text/html; charset=UTF-8"); ?>

<a href="?unzip=true">Unzip 실행</a>

<?php
if ($_GET['unzip']) {
$zip = new ZipArchive;
if ($zip->open('파일명.zip') === TRUE) {
$zip->extractTo('./');
$zip->close();
echo '<br><br>배치 성공';
} else {
echo '<br><br>배치 실패';
}
} else {
phpinfo();
} ?>

대단히 스트레잇포워드한 코드인데 설명하자면 이렇다. 파일을 웹브라우저로 딱 보면 Unzip 실행이라 써진 링크 하나가 있고 그 밑에 이 서버의 php 정보가 줄줄이 달린다. 링크를 누르면 그 정보가 없어지고 배치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알려준다.

2-3. FTP 클라이언트로 닷홈 계정에 접속해 파일명.zip 압축파일과 적당한이름.php 파일을 같이 루트폴더에 올린다. (닷홈은 전형적으로 /html 폴더가 루트임)

2-4. http://닷홈계정주소/적당한이름.php 에 접속해본다. 설명한 대로 링크 하나와 php 설치정보가 떠야함.

2-5. 과감하게 Unzip 실행을 한다.

2-6. 배치 성공이라 떴는지, 그리고 실제로 FTP로 새로고침을 했을 때 로컬에 보이는 폴더와 파일들이 막 보이는지 확인한다.

2-7. 큰 산을 넘었다는 안도감을 가지도록 한다. (이후 필요할 경우 /vendor 폴더에 대해서만 이 꽁수를 써서 일괄 업로드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tractTo() 함수는 덮어쓰기가 기본이므로 별문제 없을 것.)


3. public 폴더 바꿔치기

이 스텝은 왜 필요한가 하면 앞서 설명한 index.php를 루트에 띄워주기 위해 필요하다. 희한하게도 서양에서는 'public' 폴더가 닷홈 호스팅의 'html'에 해당한다고 한다. 요컨대 라라벨 앱 업로드 과정에서 그 public을 이 public으로 자연스럽게 덮어쓸 수 있으면 OK라는 것이다. 그래서 물정 모르는 서양 답변자들은 가끔 "퍼블릭폴더 위에 앱을 설치하면 그만인데 왜 우는소리를 해~" 같은 속터지는 소리를 한다. 하지만 닷홈은 그게 안 되니까 이짓을 하는 것.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은 이 문서.

여기서는 라라벨을 닷홈 서버의 루트에 설치한다고 가정한다. 이 작업 자체는 닷홈 서버에서만 수행한다.

3-0. 잘 모르겠다면 다음 내용을 복사해 루트폴더에 .htaccess 파일로 저장하고 접속해 본다. 해결이 안 되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Thanks to 잘보고갑니다

<IfModule mod_rewrite.c>
RewriteEngine On
RewriteRule ^(.*)$ public/$1 [L]
</IfModule>

3-1. 1-5를 아직 해놓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해놓고 닷홈서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해 준다.

3-2. /public 폴더에 있는 '파일들'을 모두 복사해 그 위 폴더인 루트 폴더에 붙인다.

3-3. 라라벨 5.5 기준으로는 지금 붙여넣은 루트폴더의 index.php에 이런 라인들이 있을 것인데, 각각 알맞게 고친다.

require __DIR__.'/../vendor/autoload.php'; // 이렇게 생긴 라인은
require __DIR__.'/vendor/autoload.php'; // 이렇게 고칠것

$app = require_once __DIR__.'/../bootstrap/app.php'; // 이렇게 생긴 라인은
$app = require_once __DIR__.'/bootstrap/app.php'; // 이렇게 고칠것

한마디로, /public 폴더 기준으로 써져 있었던 로딩 파일들 주소를 루트폴더 기준으로 고친다.

3-4. 하나 더, 루트폴더에 있는 server.php를 고쳐준다.

# 고치기 전

if ($uri !== '/' && file_exists(__DIR__.'/public'.$uri)) {
    return false;
}

require_once __DIR__.'/public/index.php';


# 고친 후

if ($uri !== '/' && file_exists(__DIR__.$uri)) {
    return false;
}

require_once __DIR__.'/index.php';

3-5. http://닷홈계정주소/home 에 접속해 본다. 뷰 파일을 건드린 적이 없는데도 css와 js 파일이 로딩되지 않아 와장창 깨지고 있을 것이다. 이 부분을 4단계에서 해결한다.


4. 환경 구분해주기

이제 거의 모두 해결됐고, 3단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퍼블릭 애셋 경로 문제만 남는다. php 소스들 자체는 로컬에서나 닷홈에서나 같아야 하는데, 로컬에서는 asset() 함수에 'assets/css/app.css' 경로를 넘겨줘야 되는 반면 닷홈에서는 'public/assets/css/app.css'를 넘겨줘야 된다. 어쩌면 좋냐고? htaccess 쓸줄 모른다고? 걱정마시라. 이런 건 env로 아주 간단하게 조치하면 된다.

4-1. 로컬의 루트에 있는 .env 파일을 편집기로 열고 다음 설정을 아무데나 추가한다.

ASSETS_DIR=assets

4-2. 소스코드 내 필요한 모든 곳에서 다음과 같은 찾아바꾸기를 실시한다. 4-1에서 저장한 변수를 불러오도록 하는 것.

// 바꾸기 전
{{ asset('assets/css/app.css') }}

// 바꾼 후
{{ asset(env('ASSETS_DIR').'/css/app.css') }}

4-3. 로컬의 .env 파일 내용 전체를 복사한 다음, 닷홈서버의 루트에 .env 파일을 새로 만들고, 그 파일의 내용을 방금 복사한 내용으로 덮어쓴 다음에, 이 부분을 고친다.

ASSETS_DIR=public/assets

4-4. 이것으로 우리는 마침내 로컬에서 돌아가는 여러분의 앱이 닷홈에서 그 모습 그대로 똑같이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앞으로 애셋을 불러와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아묻따 env('ASSETS_DIR') 하나로 오케이.


5. 부록: 버전을 관리해서 필요한 파일만 추가 FTP 배치하기

아주 간단히 설명하고 지나간다.

5-1. Git 클라이언트를 열어 마지막으로 푸쉬해 놓은 로컬 커밋 지점이 어디인지, 정말 그 지점이 현재 닷홈 서버상으로도 최신이 맞는지 확인한다.

5-2. 로컬에서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작업을 완료한다.

5-3. Git 클라이언트 작업 공간에서 지금 어느어느 파일이 바뀐 건지 확인한다. composer install로 패키지를 깔았다면 git에는 잡히지 않으니 주의.

5-4. Git을 통해 파악한 변동 있는 파일들만 골라서 수동으로 FTP로 닷홈에 덮어쓴 다음 실제 접속해 봐서 잘 적용됐는지 확인한다. 이론상 로컬과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
새로 패키지를 설치한 경우 composer.json 자체는 잡히니까 역시 닷홈에 올려 덮어써 주고, /vendor 디렉토리에서 새로 생긴 디렉토리를 통째로 올린다.
잘 모르겠으면 2번스텝에서 만들어 놓은 코드를 활용해 /vendor 디렉토리를 압축한 파일을 올리고 그파일을 /vendor 디렉토리에 덮어쓰는 코드를 실행시켜도 된다.

5-5. 문제가 없으면 지금 변동 내역을 모두 스테이지에 올리고 커밋&푸시해서 다음에 작업을 시작할 기준점으로 삼는다. 문제가 있으면 과감히 직전 버전으로 롤백한다.


6. 부록: 아티즌 콘솔 써서 마이그레이션 하기

닷홈서버의 DB에 이미 잔존하는 테이블을 활용하는 거라면 걍 DB 덤프받아 로컬에 복붙해 시딩하고 php artisan make:model Foo 돌려 모델 만들고 그걸 배포하면 그만이지만, 없던 테이블을 만든다면 라라벨의 컨벤션에 맞게 정식으로 스키마를 만들어 마이그레이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6-1. 일단 로컬에서 마이그레이션 직전까지 해놓는다. php artisan make:migration create_foo_table을 실행해 파일 자동 생성을 시키고, 생성된 파일의 up() 메소드와 down() 메소드를 적당히 매뉴얼 봐 가면서 채운다.

6-2. /routes/web.php 파일의 맨 끝에 아티즌 콘솔 명령을 실행하는 라인을 하나 넣는다.

Route::get('/artisan_console', function(){
Artisan::call('migrate');
});

6-3. 로컬에서 localhost:8000/artisan_console 에 접속해 up() 메소드가 계획대로 잘 돌아갔는지 확인하고, 확인되었으면 닷홈서버의 /database/migrations 디렉토리에 생성된 마이그레이션 파일을 올린 다음 /routes/web.php에 로컬과 같은 수정내역을 적용해, 마찬가지로 접속 실행한다. 닷홈DB에 migrations 테이블이 자동으로 만들어지게 되는데, 없으면... 걍 하나 만들면 됨.


후기

  1. 쓸데없이 길어졌네요. 제가 읽고 싶었던 문서를 제가 쓰다 보니 그렇게 되었던듯
  2. 아무튼 .htaccess는 웬만하면 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RewriteBase, RewriteCond, RewriteRule 같은것 붙잡고 씨름하고 계시다면 머리를 비우고 새로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 보시길.
  3. 도움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잘보고갑니다
    2018.04.17 21:35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html/.htaccess

    <IfModule mod_rewrite.c>
    RewriteEngine On
    RewriteRule ^(.*)$ public/$1 [L]
    </IfModule>

    얘는 어떨까요?
    • 2018.04.18 11:48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ㅎㅎ 이렇게간단한 방법도 있군요!!
      PHPSlim에서는 되는것 방금확인했는데 라라벨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아마 될듯)

늘 쓰고 싶던 테마였는데 이번에 무한도전 "시즌1" 종영을 기념하여 아주 콤팩트하게 써본다. 이거보다 길어지면 나도 헷갈리고 모두가 헷갈리는듯.


세트장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이야 너무 당연해진 개념이지만 예전에는 '버라이어티 예능'을 하기 위해 도입된 혁신적 장치였던 세트장이란, 어떤 굉장한 볼거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리고 그것을 보장받기 위해) 각종 장치와 설비가 고안되어 작동하는 기계/전기 조립체 일체였다. 사람들은 그 안에 들어가서 울고 웃고 때리고 뒹굴며 '오락 프로'를 만들었다.

세트장은 목적지향적, 결과지향적 엔터테인먼트의 정수라 할 수 있다. 세트장을 만드는 이유 자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그림'만큼은 '따내겠다'라는 의지에 있기 때문이다. 세트장은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대신 그 반대 급부로서 주어진 규격과 분량에 맞춰서, 계산된 재미를 위해서, 모두가 각본에 따를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는 자세히 다루지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세트장은 21세기 초엽까지 우리에게 주어져 있던 성장 중심적 계획과 사회의 첨병에 다름아니었다. 어떤 목표와 도전 과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보장하는 대신, 각 개인의 계획과 규격, 행복의 기준과 방향을 제어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았고, 그게 어느 정도 순기능을 했다. 우리는 한때 대형 버라이어티 쇼의 거대한 세트장을 진심으로 우러러보았던 적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초창기 무한도전은 바로 이 '세트장'을 빠져나오려 하는 예능이었다. 아하 게임을 하던 '스튜디오'(그것은 최소한의 의미에서의 세트장이기도 하다)에서 시작한 그들은 장충체육관으로, 동대문 운동장으로 (이것들은 좀더 세트장에서 멀어진 것이다) 가더니 지하철과 달리기를 할 수 있는 어딘가로(여기서부터 세트장이 아니었다) 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물리적인 세트장을 탈피해 왔다.

한때는 전형적이고 다소 상투적이기까지 했던 방송가의 물리적 세트장을 벗어나는 것만으로도 큰웃음이 보장되곤 했다. 대표적으로 모내기 특집이 그랬다. 비 오는 논두렁에서 뒹구는 일은 그 자체로 시답잖게 우스운 것이다. '세트장 아닌 세트장'을 통해 변칙적으로 재미를 확보하는 이러한 의존성은 최근의 방콕 특집 같은 것에도 발견되었던 바다.

아무튼,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물리적 세트장을 벗어나기만 해서는 머지않아 '(성장 발전상의 )동력' 자체를 잃어버릴 것을 직감한 TEO 사단은 새로운 세트장을 구성한다. 바로 관념적 세트장이다. 무한도전은 갈수록 'OOO 특집'의 이름으로 특정 주제/과제/컨셉을 내걸고 이것 하나에 모든 여건과 아이디어와 몸개그를 전면 집중해 70분을 채우는 (그걸 실패한 '특집'은 통편집되어 재방송을 타는) 체제를 만들어냈다.

왜 관념적 세트장이냐면, 기존의 세트장에서 볼 수 있던 철골 구조물, 카펫, 폭죽 같은 물리적 요소들은 사실상 없어지되 개그, 상황극, 캐릭터, 도전, 팀 꾸리기, 액션, 교훈, 사회적 의의 등등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요소들을 철저하게 계산하여 특정 감동과 재미를 창출할 수 있도록 배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계획대로 잘 될수록 그 특집은 레전설이 되었고, 잘 안 되었을 때는 통편집되어 창고에 박혀 있다가 발굴되곤 했다.


그들은 과연 세트장 자체에서 벗어난 것일까? 그렇게 보기 어렵다. 방송의 본질상 70여분간 별 요점이 없는 신변잡기를 내보낼 수는 없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의 지난 십몇 년 역사상 그들은 성장주의, 목적주의, 성과주의에서 결코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각본과 세트장이 주어지지 않는 예능에서도 빅재미를 만들어낸다며 뛰쳐나간 그들이 정작 스스로 만든 각본과 세트장에서 낑낑대게 된 꼴이란 아이러니가 아니면 무엇인가.

심지어 '쉬러 간다', '우천시 취소하는 특집으로 한다' 같은 관념적 세트장을 나가는 듯한 기획마저도 사실은 치밀하게 (또는 어쩔 수 없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각본, 체계, 어떤 그림을 무조건 따내기 위해 고안된 설계와 배치로 기능했다. 방송이니 그래야만 했다. 심지어 무한도전은 리얼 예능을 표방한 탓에 오히려 그 반대로 작위미, "일부러 철저하게 어떠어떠하게 한다" 하는 기획이 주는 즐거움도 넘볼 수 없게 됐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 "시즌1" 종영은 시사적이다. 이렇게까지 일부러 대본과 내용구성, 로케이션 등을 '어기고' 다닌 방송은 일찌기 없었는데, 그런 쇼가 유지 불가능성이 가시화된 이후로 그걸 끝내 부정하다가 마지못해 마침내 수긍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까? "그것이 쇼이기를 표방하는 이상은, 그것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기획, 각본, 목적하는 결과의 집합체(set)에서 실행되게 되며 그래야만 한다."


무한도전은 자기가 얻어야 할 교훈을 이미 다 얻었겠지만, 그걸 보며 몇 년을 함께한 일반 대중은 과연 어떤 교훈을 제대로 얻고 있을지 모르겠다. 이들의 삶 여러 영역에, 사실은 불가능한 그리고 누구도 강요한 적 없는 성장주의 계획이 삼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물리적 세트장을 가질 수 없었기에 철저히 자신들의 엔터테인먼트를 자본과 미디어에 의존하고 있었던 일반 대중도, '디카'와 스마트폰을 손에 넣으며 다른 의미에서 물리적 세트장 없이 '쇼'를 해 오기는 했다. 그러나 어쨌든 쇼는 쇼이므로 이들에게는 크게 둘 중 한 가지 일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무한도전이 그랬듯 각종 컨셉과 설정으로 무장한 관념적 세트장을 구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 인생 전체를 물리적이고 통합된 세트로 구성해 버린 것이다.

둘 다 별로 건전하지 못하다. 전자는 경제규모 상위국가의 대표 민영방송사의 간판 예능조차 끝내 버티지 못한 고강도의 정신 노동을 일반 대중 개개인이 감수한다는 점에서 그러하고, 후자는 속된말로 자기 인생을 팔아서 관심을 얻고 유지를 하는 마이너스 게임이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보고 배운 것은 무한도전이나 인간극장, 세상에 이런일이 등이었을지언정, 그들이 정말 그것을 동경하고 모방할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탈-세트장 예능의 대표주자였던 무한도전의 종언 이후 가장 질서 있는 퇴장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냥 순순히, 물리적이고 인위적이며 전면적이고 조작적인 계획의 존재를 인정해 버리는 것도 방법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쇼"라고 이해하는 세계는 철저히 그 계획 속의 세계로 한정하고 샌드박싱하여, 그 안에서만 쇼의 문법과 방식이 작동하게 내버려두고 현실을 사는 사람들은 그 밖에 나와 있는 방식인 것이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아주 그로테스크한 만화의 작가가 될 수는 있겠으나, 작가로서의 그를 예능 방송 게스트로서의 그의 자리에 불러내는 일은 하지 않는 방식일 것이다. 또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더라도, 자기 개인사를 죄다 털어놓는 지금 대다수 유튜버들의 방식을 따르기보다는, 채널 속 자아를 좀더 허구적 체계로 확립하고, 분리 관리하며 그것을 게임의 룰로 이해하는 방식일 수도 있겠다.

요는, 쇼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어쭙잖게 대본과 세트장과 계획과 목적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하다간 실패만 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무한도전 역시 무한하지 못하게 도전을 멈췄다. 우리는 아직 목적지향주의 자체를 중단하고 그 너머를 상상할 만큼의 급진성과 거기 따르는 각종 능력 요건을 갖추지는 못했으므로, 쇼는 결국 쇼이니 순순히 세트를 짜고 그 안에서 행동하자는 겸손한 교훈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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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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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으로 기고한 리뷰에서 아래 내용을 요약해 두었습니다. 참고 바랍니다.
애국청년 변희재 : 이것은 다큐멘터리가 맞다


- 꽤 오랜 기간 진행된 프로젝트였고 부침이 심했는데 드디어 실물을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2018년 3월 1일 IPTV 배급 개시 기념 시사회를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2관에서 별도 신청 절차나 비용 없이 참석 가능하다고 해서, 가봤습니다.

상영관에는 약 120여 명의 관람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영화 상영과 이후 10여분간 진행된 관객과의 Q&A 시간에 이르기까지 장내는 별일 없었으며, 감독이 혹여나 걱정했던 바 “상영 항의 전화를 하던 분들”의 난입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현실 정치가 그렇죠 뭐!

- 영화를 보고 나서 한줄 요약평을 SNS에 올리자마자 지인들이 물어봅니다. “추천할 만합니까?” “자세한 얘기 좀 써줘여 가고싶었는데 까먹고 못갔음” 작품 자체는 관심작이었습니다. 정작 현장까지 가서 관심을 지불한 사람들이 120여명에 불과했을 뿐이지요. 추천할 만하냐고요? 이 리뷰는 바로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리뷰가 될 것입니다. 아울러, 이 리뷰가, 이 영화를 앞으로 ‘굳이 보실’ 분들이, 그때 좀 덜 당황하고 좀더 생산적으로 이 작업물을 이해하고 감상하실 수 있도록 돕는 가이드가 되기를 또한 바랍니다.

- 반대로, 그저 지금껏 하던 대로 “ㅋㅋㅋㅋ 변희재 새끼 결국 영화까지 나왔네 ㅋㅋㅋㅋ 애북고수들 좋겠넼ㅋㅋㅋㅋ 이런건진짜 왜만드냐 절대로 안본다 홍가놈들이나 보라고해라 ㅋㅋㅋㅋㅋ” 하고 지나가실 분들은 이 리뷰를 그만 읽으시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제가 변희재를 옹호하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게 참 뭐랄까… 세상의 이면과 모순의 층층을 더 깊이 들여다볼 의지나 지능이 없으신 분들의 행복 추구권을 어찌 제가 감히… 싶어서요.


-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릴게요. 영화로서 선뜻 추천하기가 어려운데, 그 이유는, 한국 다큐멘터리답지 않게, 영화가 시종일관 시청자에게 어떤 입장을 갖기를 요구하는 자료화면으로서 주어지고 있고, 그 과정에서 특히 변희재라는 인물의 ‘애국청년’ 캐릭터가 그것을 방해하는 함정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 먼저 함정이란 뭔가를 알려드리겠습니다. 정말 중요한 전제인데, 현재 대한민국 정치사회에서 변희재란 인물은 아주 납작하게 캐릭터화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 캐릭터화가 공정한가 어떤가는 접어두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를 ‘변듣보’, ‘변TM’으로 알면 충분하고(“저들”의 경우에는 ‘변땅크’), TV에서건 현실에서건 스크린에서건 오직 그런 변희재만이 알기 쉽게 등장해 알기 쉬운 행동을 해 주기를 기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는 가끔 코미디 내지 냉소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언제 그런가 하면, 변희재가 변듣보, 변땅크 등의 노릇을 할 때 그렇습니다.

- 이를테면, 관객들은 무슨 조건반사를 학습받았거나 사전에 안내라도 받은 듯이, 일베 표시 손동작을 한 시민과 기념 사진을 찍는 그림이 나오면 웃어 주었습니다. 허탈한 웃음과 냉소와 폭소가 정확히 같은 비율로 섞여서요. 글쎄요, 그건 불필요한 웃음입니다. 적어도 영화의 비평, 그리고 다큐멘터리 전체 서사를 따라잡는 데 있어서는 말이죠. 왜냐하면 엄밀히 말해서 그게 학습된 웃김이기 때문이에요. 요컨대 저들만의 리그 속에서 조그맣게 영웅 대접받고 있는 “애국진영후보 변희재”에 대한, 그런데 영화가 지시하지는 않는, 그냥 관객들이 멋대로 웃는, 그런 웃김.

- 한국 다큐멘터리는 그 생태적 환경에 의해 필연적 정치성을 띠고, 또한 대한민국이라는 정치사회의 맥락에 관계될 것을 요구받곤 합니다. 그러면 이해와 해석과 반응이 아주 간결하고 명쾌해지거든요. 그 조건에 가장 적극적으로 편승하는 것이 GO발뉴스와 김어준-주진우 브랜드 다큐들이라면, <애국청년 변희재>는 그 조건에 꽤 적극적으로 거리를 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까놓고 말해서, 변희재 한 명을 세워놓고 까르륵 까르륵 비웃는 영화는 아니라는 겁니다. 사람들은 그걸 기대했을지언정, 그리고 “원래 기획 의도 중에는 변희재라는 사람을 놀리고 비판하는 것도 있었”을지언정.

- 그래서 사실은 <애국청년 변희재>라는 제목조차도 작정하고 설치된 함정이고 ‘어그로’입니다. 고로 이 제목에 웃어주는 것은 여러분의 웃음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좀더 쓰겠지만, 한국은 이런 함정을 깔아 주면 신나서 걸려 주는 습성을 갖고 있고, 그렇기에 이 영화는 앞으로도 공정한 비평을 받기 어려울 것 같으며 한국의 정치문화는 갈 길이 까마득합니다.


- 적어도 액면상으로는, 영화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서울대 미학과를 나와 진보진영의 괴짜 논객으로 활동하다 어떤 계기로 보수로 돌아서고 진중권과 사망토론을 하며 미디어워치를 운영하고 “탄기국”의 리더십이 된’ 사회적 맥락 속에서의 변희재가 아닙니다. 영화는 이러한 개인 이력을 1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런 건 다른 분들이 더 잘 할 수 있고 내가 잘 하는 건 그냥 지금 이 사람을 보여주는 것 아닐까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2014년을 중심으로, 그때부터 2017년까지의 변희재를, 상당한 절제력으로 집중하여, 전인적으로 기록(documenting)해 나갑니다.

- document라는 영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문서화하다, 기록하다, 기록으로서 남겨두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딱히 마이클 무어 식의 쇼잉과 텔링을 한다는 의미가 아니죠. 이 영화는 정말 문자 그대로 그 시절의 변희재가 중요한 몇몇 날들에 어디 가서 뭐 하고 어떤 술자리를 가졌나 하는 사실들을 기록으로서 촬영해 남겨두는 데에만 골몰합니다. 못 믿겠지만, 그게 이 영화의 전부에요. 뒤에 좀더 쓰겠지만 심지어 그 사실들의 나열을 통한 의미적 연결이나 구성을 상당히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듯 보입니다. 대신 그 장면들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인상들을, 보는 사람마다 제각기, 취사 선택해서 판단할 여지가 있을 뿐인 거죠.

- 예컨대 영화 초반 1분 정도는 여러분이 보신 예고편 그대로가 들어가 있는데, 그게 지나고 나면 새로운 장면으로서 뭐가 나오냐 하면, 그의 ‘애국산악회’ 활동이 조금 서투르다 싶을 정도로 가감 없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태극기를 등에 지고 땀 뻘뻘 흘리며 “이 길이 둘레길이 아니라고” 같은 말을 되뇌이며 산을 타는 걸 보는데 그런 생각이 듭니다. 뭐지, 이거 뭐 중요한 신인가, 무슨 의미가 있나. 어떤지 아세요? 이 신은 의미가 있으려면 있기도 하고, 없으려면 없기도 합니다.

- 무슨 말이냐? 이 시퀀스는 “산악회에서부터 시작해서 보수진영 조직을 형성”하려는 변희재의 정치활동 계획의 서두 부분일 뿐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변희재라는 인물의 내면의 은유라는 꽤 깊은 통찰이 담긴 것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등반자들이 박박 우기는 틀린 길을 따라가고, 그러면서도 “이 길이 아닌데…” 갸웃거리는, 그러면서 나름의 길을 찾아 다같이 정상으로 가려고 하는 등장인물. 주인공의 행동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포착하고 묘사하면 그건 극영화에서 무슨 의도입니까? 보통은 내면의 상태나 변화의 은유죠. 그렇게 읽히기를 바라는 듯, 영화는 전체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이 등산 장면을 꽤 공들여 보여줍니다.

- 뭐 아니면 감독이 개인적으로 이날 뭔가 의미가 각별해서 분량을 1초도 덜어내고 싶지 않았다거나… 그런데 강의석이란 사람이 그렇게까지 철부지는 아닙니다 여러분.


- 그렇게 영화는 계속해서 (주로 정치에 뜻을 품어 준비하고 출마하고 낙선하는) 변희재와 그 주변부를 비집고 들어가 밀착 취재를 해나갑니다. 그리고 그 과정 하나하나에서 감독은 플레이어가 되어 등장할지언정, 내레이터가 되어 개입하거나 해석하거나 정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강의석이 왜 변희재 옆에 있느냐’가 영화의 주요 갈등축 하나를 담당합니다! “저는 이 영화에서 비중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셨지만 아뇨 그게 그렇지가 않다니까! 당신이 어느 정도는 이 서사를 추동하고 있다고!)

- 그렇기 때문에 모든 장면들은 관객들에게 각자의 판단을 할 근거 자료로서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판단을 하기 힘든 컷일수록, 그 리액션도 시원찮습니다. 예컨대 변희재가 도림천 농구장에 나가서 사람들과 농구를 하거나 서울대에 가서 졸업증명을 받아 오는 장면들이 있는데, 이건 제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고 다른 관객들에게는 다소 당혹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뭐지? 왜 웃긴 게 안 나오지? 뭐라도 좋으니까 한심한 모습 좀 나와라’ 같은 분위기였달까.

- 애초에 이 영화에서 정말 웃긴 장면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예컨대 그 악명 높은 주옥순 대표가 변희재와 함께 다니며 지역구 주민 추천 도장을 받으러 다니는 장면은 어떨 것 같은가요? “왜 안 찍어준대” 묻는 주옥순에게 “저거 좌파야” 단언하는 변희재만큼이나 우스운 블랙코미디는, 적어도 제게는 바로 그 직전 컷이었습니다. 주옥순씩이나 되는 사람(영화에서 자막으로 엄마부대 대표라고 명시해 줍니다)이, 우리가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사근사근함으로 굽실거리며, 변희재의 앞에 서서 막도장 날인 한 번을 구걸하고 다니고 있거든요.

- 또는 이런 장면이죠. 변희재 캠프 선거인단 중 한 명이 삭발로 유권자에게 호소를 하자, 다른 선거인단이 천진난만하게 “나도 삭발할 거에요”라고 합니다. 되레 변희재가 기가 차서 담배를 물고 묻습니다. “…대체 어느 유권자에게 호소를 하려고 삭발을 한다는 거야???” 이 장면은 가히 이 프로젝트가 뽑아낸 최대 성과로서 빛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게 얼마나 절묘하게 사람 말문 막는 광경인지는 직접 보셔야 합니다.

- 왜 이 컷들이 웃기는가 하면, 적어도 제가 해석하고 종합한 바, 이 영화가 말하고 있는 ‘보수 집결’의 실체 내지 실상을 좀 우스운 느낌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웃기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보수 집결의 실상이란 무엇인가? 그야말로 제 ‘편’을 들어주는 사람들과의 엉성하고 느슨하며 쓸데없이 결연한 연대감이라는 게 저의 감상입니다.

- 거듭 강조하지만, 영화는 이 감상을 유도하거나 제시하지 않습니다. 제가 멋대로 내린 결론일 뿐이죠. 여러분이 영화를 본다면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네요. 다음 단락은 다소 덜 객관적인, 저만의 감상과 해석입니다.


- 변희재 옆에 꾸준히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그는 ‘성호스님’을 곁에 두고, BJ검풍을 곁에 두고, 덩치 좋고 말수 적은 골수 “일게이”를 자기 선거원으로 둡니다. 강의석은 변희재가 둔 게 아니라 그 자신이 변희재 옆에 비집고 앉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서 다르죠. 아무튼 주옥순이 있고, 다른 보수파 선거원들이 있습니다. 그들 하나하나와 변희재가 어떤 관계이고 무엇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이루는가를 지켜보다가, 2017년으로 점프해 코엑스 앞에 총집결한 탄핵 반대 시위대에서 환영받는 변희재가 나오는 걸 보는데, 느낌이 쎄하더랍니다.

- 예컨대 이런 요약이 가능한 겁니다. 변희재란 어떤 인물인가? 그 사람 자체는 산 좋아하고 술 담배 좋아하고 그런 사람이다, 그런데 그는 “빨갱이를 죽여라~” 외치고 다니는 땡중을 굳이 선거차량 자기 옆 자리에 태우고는 그걸 말리는 양 아주 의미 불명한 웃음만을 짓는 사람이다. 아니면, 지하철역 출구 앞에 아침부터 나가서 인사하며 ‘부당해고’에 항의하는 1인 시위자에게까지도 명함을 돌리기는 하는데, 그런가 하면 그의 선거원과 1인 시위자가 ‘빨갱이’ 운운으로 시비가 붙을 때는 자기 선거원의 어깨를 감싸고 조용히 자리를 피해, 허공을 보며 아주 애매한 웃음을 애써 지어 보이는 사람인 것 또한 분명하다.

- 이 기분 나쁠 정도로 일관되고 모순된, 전혀 ‘논객 변희재’답지 않은, 분명치 않고 웃어넘기는 듯한 웃음. 어쩌면 바로 이 불분명함이야말로 (전혀 분명한 ‘애국’이 아니었던) “애국보수”를 집결시킨 무엇이 아니었나 합니다. SNS에 남긴 ‘불명확하다(uncertain)’라는 감상은 먼저는 이것을 의미합니다.

- 잠시 한국정치 얘기를 좀 할까요. 이른바 “세월호 정국” 이후 보수 특히 수구 진영은 사회적 도의라는 것에 좀 많이 질려 버렸습니다. 안 그래도 자유시장경제적 합리성을 추구하고 싶은 분들에게 “진실을 인양”하지 않으면 죽여버릴 듯한 그 분위기란 사실 거북하고 불쾌하며 (굳이 따지자면) 이중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이었거든요. 사회의 쓰레기통인 일간베스트가 총대를 메고 그 거부감을 수면에 띄워 주자, 비로소 수구 보수는, 사실은, 이 총체적이고 묵시적인 거부감을 바탕으로 하여 느슨하게 집결하게 됩니다.

- 이 ‘싫음’, 이 (“빨갱이“를 향한) 혐오 정서에 공감하기만 하면 무조건 애국 보수였던 시절이었기에 이때는 다들 ‘애국진영’의 깃발 아래 헤쳐모여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꽤 적당하고 엉성하며 사실은 꽤 위태로운, 아무것도 보장하지 않는 결사체였고요. 오직 강의석만이 변희재라는 인물 그 자체 때문에 그의 옆에 있었고, 한참 뒤에야 그의 인터넷 방송을 보게 된 사람들은 그걸 이해하지 못한 채 영원히 진정으로 궁금해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강의석 같은 것이 ‘변후보님’ 옆에 있느냐고.

- 그래서인지 그동안 그는 시종일관 진심이 담기지는 않은 듯한 웃음을 웃습니다. 그저 뭔가를 무마하려는 듯, 어떤 상황을 대강 퉁치려는 듯, 누군가와 그저 좋게 좋게 가려는 듯. 혹시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자기가 속한 우파의 당시의 연대는 반드시 그렇게 좋게 좋게 무마해야만 가능한 것이었음을. 본질적으로 당시 우파가 가지고 있었던 연대감의 근거란 ‘반감’이었음을. 그나마 그 반감이란 게 실은 인륜에 대한 ‘과도한’ 요구에 대한 반감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것을 전면에 내놔서는 안 되었다는 것을. 일단은 애국을 한다는 것으로 해야지, 아무리 “빨갱이”가 미워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말하거나 노골적으로 지지해선 안 된다는 것을.

- 모르는 일이죠. 여기서부터는 영 생각이 꼬이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 아무튼 돌아와서 정리를 하자면, 영화는 이렇게 철저히 주변부를 관찰(하게 )함으로써 당시 “수구꼴통”들이 어떤 느낌으로 일하고 생각하고 뭉쳤나를 짐작하게 해 줍니다. 그냥 단지 희귀 푸티지로서도 가치가 있는 장면들이 있어요. 예컨대 성호스님과 같은 선거사무소 직원들이 “길에서 욕 좀 하지 마시라” “내가 언제 몇 시에 욕을 했다는 거여” 삿대질하고 싸우는 장면은, 너무 짧아서 문제지, 순수한 싸움 구경으로서 볼 만합니다.

- 그리하여 바야흐로 영화는 다급하게 줄거리 아닌 줄거리를 매듭짓고 끝을 냅니다. 다니지도 않는 교회에 들어가 ‘차별금지법 입안반대 서명’에 사인하고 선거 운동을 하던 변희재는 527표를 받고 낙선하고서도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자위를 하고, 아니나 다를까 2017년의 탄핵 정국이 되어서는 태극기 인파 속에서 끊임없이 지지자들의 인사를 받는 인사가 됩니다. “대통령이 불법한 게 없다고.” 그의 발언과 표정은 종잡을 수 없는 구석이 여전한 가운데 영화상에서 마지막으로 그가 강의석에게 초대받아 가는 곳은… “차별금지”를 외치는 영화의 상영회였다고 합니다~ 변희재는 데꿀멍 상태로 영화를 다 봐야만 했다고 하네요,, 띠용~

- 네 이게 이 영화의 전부입니다. 최근의 한국 다큐멘터리 시장의 흐름과 전혀 상관 없이 제 갈길 가는, 어떤 의미에서는 고지식하달까 고루할 정도로 기본적인 그런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제작되어 나왔더라고요. 다 보고 나서 딱 어떤 감정이 느껴지면 되는 다큐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다 보고 나서 어떤 감상도 들지 않거나, 본 사람이 알아서 감상을 종합해 의견을 만들어야 하는 그런 기록영화.

- 이러한 사실 그대로서의 장면들은 어떤 진실이나 서사적 종합을 분명히 구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변희재란 누구인가, 그를 호명하는 애국청년이라는 지시는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는 것은 철저히 관객에게 맡겨지죠. 저의 요약감상평에서 쓴 단어 ‘불명확함’은 두 번째로 바로 이 점을 짚고자 한 것입니다.

- 여기서는 이게 문제가 되겠죠. 이 불명확함은 유효하였는가? 그러니까, 예컨대 변희재를 누구라고 규정하고, 그 규정을 뒷받침하는 변희재를 골라 보여주고, 자막과 내레이션과 악마적 편집을 총동원해 그 규정을 극대화하는 명확함을 채택했더라면 큰일이 날 뻔했는가? 일단 영화는 자신 있게 YES라고 답하는 모양입니다. 감독도 관객과의 질답에서 말합니다. “더 찍을 수도 있었는데, 사실 패턴이 비슷하더라고요. 이 정도만으로도 변희재가 누구인가를 보여주는 건 충분했던 것 같았습니다.”

- 저요? 저도 유효하긴 했다고 생각합니다.


- 변희재를 데리고 인간극장을 찍는다고 생각해 봅시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요? 일단 관련 KBS 내부 인사 전면 숙청을 요구하는 내외부 목소리가 터져나오겠죠. 뭐 그걸로 얘기는 진작에 끝입니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서 기획이 통과되면, 무엇이 방송되어 나갈까요? 어쨌든 ‘인간극장’이니, “크 변듣보도 사실 알고보면 인간이야~” 같은, 어쩔 수 없이 다소 옹호적이고 친화적이며 거리감이 무너지는 톤 앤 매너로 나오게 되겠죠.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변희재 본인은 이 영화를 보자) 되게 싫어하더라고요.”

- 거기에는 어떤 관객이 질문 중에 표현한 바 ‘냉소적 시선’의 역할이 큽니다. 강의석이 변희재와 함께 그야말로 사막에서 정글에서 때리고 뒹굴며 울고 웃는 동안에도, 놀라울 정도로, 일정 거리감은 유지가 됩니다. 감독도 마지못해 그 존재를 수긍한 그 냉소적 시선과 냉정한 거리감이, 그를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절묘한 온도와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게 합니다. 뭐랄까 강의석이니까 가능했지 싶습니다. 막말로, 그도 변희재도 ‘상돌아이’로 불리기만 하지 남들이 정작 잘 몰라주기는 매한가지였으니까요.

- 한국 사람들에게 이 온도와 거리감과 시선은 낯설기 짝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간, 여러 경제적 사정 때문에, 무엇을 보더라도 좋은 거냐 나쁜 거냐를 정해 놓고 봐야 했고, 누구를 소개받더라도 우리 편이냐, 얼마나 잘 대해 줘야 하느냐를 따져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가치 판단을 접어두는, 사전 가치 판단 세팅이 되어 있지 않은 정보들은 ‘뭐 어쩌라는 거냐’로 일관되게 매도되고 배제되거나, ‘이것도 그쪽 수작인가?’ 같은 엄한 혐의의 검증을 굳이 받아야 했지요.

- 이 영화 역시 사람들의 섣부른 가치 판단을 거부한 결과, 본의 아니게 부당한 가치판단을 역으로 당하고 있습니다. 저쪽에서는 변희재 돌려까는 영화다, 강의석 같은 좌빨이 그러면 그렇지, 하고 있고 이쪽에서는 꼴도 보기 싫다, 보나마나 빨아주는 거겠지, 하고 있고요. “영화관에 전화를 했는데 (한번은) 제목만 듣고도 거절을 하는 거에요. 극장주님이 변희재 이름만 들어도 싫어하신다고.” 그래서 이 영화는 공정한 비평이나 대중의 감상을 받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현시점에서는 말이죠.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두 개. 청각적으로는 상당히 괴롭고 시각적으로는 희귀한 볼거리들이 평타를 쳤으며 정신적으로는 아주 어려운 대학 수업 기말고사 문제를 푸는 기분이었습니다. 현대 한국 다큐멘터리만 딥다 다루는 전공 과정이 있다면, 이 영화는 그 커리큘럼에 들어가야 합니다. 추앙될 필요는 없고, 비평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ㅅㅂ 아무리 그래도 넷플릭스 정도는 배급하게 해 줘도 될 것을 진짜 너무들 한다 싶습니다.

- 강의석 차기작이 궁금해지네요. 노네임 필름 자체는 상당히 실험적이고 전위적이라서 유튜브 채널을 구독해둘 만합니다. 뭐 일단은 출산과 육아를 하고 나서 식당이 안정궤도에 접어들면 뭐든 알아서 생각을 하겠죠? 지켜볼 일입니다. 그리고 변희재는 오늘도 자기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고 합니다. 내 알 바인가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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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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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ㅇ
    2018.06.10 04:3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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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각ㅋㅋㅋ
  2. 잘가~
    2018.06.24 05:53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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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듣보 그디어 죗값을 받는구나 ㅋㅋㅋ
  3. ㅇㅇ
    2018.06.24 05:5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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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인지 개국인지 하여튼 이런 놈은 벌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함.
  4. 2018.10.06 09: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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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주의란, 누구든 의견을 낼수 있어야 하니까.. 의견을 내는 것은 괜찮아요...증거 조작을해서 문제죠..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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