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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고래주주 간담회 1차 일정을 다녀왔다. 엷은 봄비가 그칠 듯 그칠 듯 하면서 계속 내리는 토요일이었다. 그 자리에 손님으로 온 사람은 나까지 대략 8명 정도였던 것 같고.

  • 내 입장에서 작년 2월경에 내 통장에는 돈이 썩어나게 많았다. 이게 썩 거북하던 차에 마침 규항넷에 고래주주 공모글이 올라온 걸 보고 반쯤 홧김에 질렀다. 한데 막상 1구좌 200만원을 납입하고 나니, 그 이후 나는 '주주'로서의 무슨 권리나 의무를 행사할 일이 하나도 없었다. 고래를 따로 구독해서 읽은 것도 아니고, 얼마 전에 "4천고래동무" 캠페인에 자극 받아 고래동무 일시후원을 한 번 한 것이 전부고. 그러고 얼마 안 가서는 주주간담회를 한다기에 '음... 사정이 많이 궁한 모양이군...' 하고 가서 들어보니 아니나 다르랴 였다.
  • 이 이상 자세한 얘기는 출자자들끼리만 알고 있는 게 맞을 거 같아 각설하고... 대신 내 입장에서 몇 가지 새로운/놀라운 정보들을 접하게 된 바 그걸 좀 적어볼까 싶은데.
  • 한창 지면 개편을 해나가는 중이고, 그 일환으로써 대상 연령대를 지금보다 더 낮출 생각이란다. 더 쉬운 걸 더 고연령의 독자가 보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다나.
  • 조국이 고래 구독자였다는 사실을 오늘에야 알았고 그게 좀 충격적이었다. 김규항 선생이 "조국 사태"에 입장이 유난히 각별한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된다. 말하자면, 고래가그랬어는, 조민을 만든 잡지인 셈이다.
  • 최근 몇 년 간 주변 상황이 좀 바뀐 바 그간의 노선대로는 강행할 수 없다는 입장인 모양이다. 일단 이제 소비자들은 고그를 오로지 어린이 교양지 상품으로서만 접하고 이해하고 구매한다는 것이다. 한때는 고그를 누가 만드는지, 왜 만들었는지, 뭘 하려고 만드는 건지 등에 동조한 사람들이 고그를 '후원'해 줬는데, 지금의 실제 고객 전환은 그냥 '물건 자체가 좋고 애들이 좋아해서' 발생한다나.
  • 비슷한 맥락일 텐데, "교육이 어때야 하고 사회가 어때야 한다" 하는 '토론', 현상태를 문제시하고 극복하자는 기조 자체가 담론장에서 아주 퇴출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이번에 선거에서 진보신당[sic.]이 한 석도 못 얻었잖습니까?" 듣고 보니 주간경향에서 연재하던 교육 자체 관련 칼럼도 스리슬쩍 우찌끼리 상태고. 그런 차원에서도, '사회가 어떠해야 하고 어린이의 삶이 어떠해야 하니, 고그를 읽어야/읽혀야 한다' 하는 당위 가지고는 비즈니스 모델을 세우지 말아야겠더라는 것이다. 사실은 속으로 '성인용 고그 교육지도서', '편집후기 뉴스레터' 같은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런 입장을 이해하고 나니, 별 도움이 안 되는 소리라는 걸 알겠어서, 말을 꺼내지 않았다.
  •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 특히 어른들은 "교육 탓"을 한다. 일선의 교육자들은 피나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한국 성인 사회는 서로가 서로의 교양 부족을 욕하기 바쁜 아주 괴상한 수라장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성인 대상의 무언가'를 추진해 볼 여지가 있지 않을까 미련이 남는다.
  • 고래가그랬어가 괜찮은 어린이 잡지로 평가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MSG 없이 좋은 재료로 콤팩트하게 만든 음식을 어린이들이 곧잘 먹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 거라고 생각된다. 그건 정말 적게 정말 좋은 재료를 듬뿍 써야만 가능한 경지다. 아주 많은 사람들에 한번에 비슷한 맛을 먹이자면 MSG를 쳐 가면서 자극적으로, 해로운 성분을 섞어 가며, 필연적으로 부실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어린이들이 싫어하는 어린이 대상 추천도서"는 그렇게 탄생한다.
  • 이게 '교육', '어린이' 도메인에 한정해 논할 사안은 아닌 거 같다는 막연한 의구심이 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인지라 정신도 늘 일용할 양식을 찾게 마련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 성인들은 매주 일요일의 대형 교회, 이런저런 트위터 계정의 이런저런 주장, 포털 사이트 뉴스, 뉴스 댓글, 유튜브, 유튜브 댓글창 등등 영 먹을 게 못 되는, 싸구려인, 불량식품에 가까운 마음의 양식으로 근근이 연명하고 있다. 문득 EBS가 '딩동댕 대학교'를 런칭했던 것이 생각난다. 아니면 '성인용 구몬학습지' 같은 거(이건 주주총회 자리에서부터 연상했던 것이다). 그런 기획들은 왜 등장하는가? 오늘 우리가 어른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실은 별로 어른이 아니고, 시민사회의 근대화된 교양 개인은 어른들 가운데서도 썩 부족한 것이 아닐까?

근데 이 이상은 나도 구체적인 주장거리가 없어서 말을 못 잇겠다. 어린이가 아닌 사람, 구독자가 아닌 사람이면서 이 기획에 연대하고 싶은 사람은 당최 무슨 수를 내 주어야 좋을지가 막막하다. 돈은 둘째 문제다. 세상이 이렇다는데, 진짜 어떡하나.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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