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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이 없습니다

2008. 5. 23. 20:25
존경하는 모 대학교 학식 담당자님, 나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어서 2200원짜리 학식을 사먹지 못하고 늘 1800원짜리로 손을 뻗치고 맙니다. 돈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좀더 세련된 중일품을 먹지 못하고, 단 4백원이 없어서 늘 설익은 밥과 늘 같은 맛의 국물을 마십니다. 누굴 탓하고 싶진 않습니다. 존경하는 담당자님을 욕할 맘은 더더욱 없지요. 저의 경제적 선택이니까요. 그렇습니다. 나는 지불 능력이 없는 소비자입니다. 나는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다 보니 많은 핑계를 댈 수 있더군요. 돈이 없으면 술자리에 가지 못합니다. 돈이 없으면 미팅은 고사하고 노래방도 못 가지요. 학식 먹기 바빠 담장 너머 밥집은 꿈도 못 꾸고, 남들처럼 하루에 러키스타벅스나 그랬찌에 한 컵씩 타먹다가 맛없다고 놓고 나가는 사치는 더더욱 못 합니다. 돈이 없으니 하루에 집에서 가져오는 몽쉘 하나로 일일 코코아 섭취 권장량을 채우고, 돈이 없으니 어디 함부로 나다니지 못합니다(교통비 때문에). 아, 가끔 사치를 부립니다. 학생회 건물 꼭대기층 자판기에 150원짜리 '끓인 우유'가 있더군요. 그건 생활의 발견이었어요.
그렇습니다. 돈이 없어서 많은 것을 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카운터에 있는 잔돈처리 저금통에 적선하지 못합니다. 돈이 없어서 지하철에서 자일리톨 하나를 살 수 없습니다(정말 필요할 만큼 입안이 텁텁하더라도). 십일조를 내고 헌금을 내고 저축하고 누군가를 위해 돈을 꿔 주고 엄한 것 한 달에 한두 번 사고 나면, 용돈은 어디론가 빼기 기호 하나 남기고 떠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넉넉치 못합니다. 최근엔, 너무나 부끄럽게도, 아아, 식권을 컬러복사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나는 어떻게든 매월 4만 5천원짜리 생산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난 밥값도 못 하는 식충이올습니다. 그나마 그 터무니없이 값싼 밥을 두 번 세 번 더 타먹는 밥벌레올습니다. 문득 나는 꼭 공무원 같습니다. 예산이 없어서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는. 나는 꼭 일찍 은퇴한 중늙은이 혹은 벤처기업 같습니다. 돈이 없어서 마음대로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는. 나는 꼭 서투른 사내 같습니다. 돈이 없어서 누군가에게 가슴 한구석 짠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나는 꼭 철없는 중학생 같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내가 이렇게 지지리궁상으로 같잖은 공부나 하는 거라고 떼를 쓰는.
알고는 있습니다. 돈은 중요하지 않아요. 그까짓 점심, 편의점 7백원짜리 김밥 한 조각 가슴에 점찍고 말면 그만 아닙니까? 더군다나 사회개혁이니 환경보호니 행복이니 자아실현 따위에 더욱더욱 돈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배고픈 학생인지라 잘 압니다. 돈이 아니라 변화입니다. 물리학이 말하듯이 절대 움직이지 않는 돌덩이에 꽃치장해 보았자 돌덩이는 움직이지 않아요, 일정 방향으로 겨자씨만한 힘이나마 가해야 가속도가 생깁니다. 돈이 없어서 안 바뀐다고 하는 일은 돈이 있어도 안 바뀝니다. 대규모 물량공세가 판도를 바꾸지 않습니다. 어떤 용기있는 사람의 한 걸음, 분별 있는 누군가의 한 마디가 다음 말과 다음 행동을 점화하는 것뿐입니다. 다만 아무도 용기를 내려고 하지 않아요. 왜냐? 사회적 잠재의식이 납득하지 않기 때문에.
어렸을 때 이런 상상을 했습니다. 전국민에게 컴퓨터를 보급하는 법이 있다면 좋겠다. 그 시절 제게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이토록 터무니없는 생각의 일종을 위해 정책과 시민단체와 사회복지가 있는 거더군요. 왜 그런 법이 없을까요? 왜 없어야 하지요? IT강국, 국민소득 2만불을 외치는 나라에서 왜 첨단산업 육성의 기반이 될 컴퓨터 보급 사업을 하지 않죠? 컴퓨터 개발사가 망할까봐? 오히려 잠재소비층의 폭발적 증가라고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조그만 압력이 될까요? 이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시민단체가 발벗고 나서고, 국민여론이 박수쳐 주고, 약간 속이 거뭇거뭇한 기업들이 투자해 준다면, 못할 일도 아니라는 걸 이제 보니 알겠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선 마이쿠로소프트가 컴퓨터 보급 사업을 한다지 않습니까. 물론 흑심을 품은 시장 지배자의 계략이지만.
세상에는 돈이, 정말이지, 내게 그렇게 없는 돈이 세상에는 차고 넘쳐 떡을 치도록 있습니다. 우리나라 이동통신사 하나가 가입자로부터 만 원씩만 받아도 한 달에 700억은 모이겠더군요. 도대체 그 많은 돈이 뭘 위해 들어가는지 궁금했던 적이 없으십니까? 그 돈들은 더 이상 한 푼 한 푼의 돈이 될 수 없고 사람들이 '자본'이라고 이름붙인 정체불명의 덩어리가 됩니다. 이 덩어리는 뭐든지 막을 수 있고 뭐든지 뚫을 수도 있습니다. 덩어리니까요. 넓고 두껍게 펴면 아무것도 뚫을 수 없고, 한곳으로 뾰족하게 모이도록 집중시키면 아무것도 버티지 못하는 겁니다. 되고 싶은 모양으로 얼마든지 변하고, 뗐다 붙였다, 쪼갰다 모았다, 얼마든지 가능한 어떤 덩어리. 돈 아닌 돈. 그게 담당자님이 뉴스를 볼 때 접하는 크나큰 숫자들의 정체입니다.
우리 사회더러 자본주의 사회라고 하죠. 뭘 할려면 자본이 필요한 사회란 뜻입니다. 물론 책에 나오는 자본은 극히 원론적이고 소박한 자본입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말로 뭘 하고자 할 때 필요한 건 돈일까요? 아니죠. 그 덩어리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돈이 없다고 할 땐 실은 자본의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절대 거기에 들어가는 비용이나 여분 등등의 내역을 모른다거나 그걸 다소간 지출할 수 없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내겐 요술방망이가 없어서 그런 걸 시작했다간 용두사미가 될지 진퇴유곡이 될지 떡실신이 될지 모르겠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질 의사도 없으므로 난 모르겠다고 도망하는 것입니다.
전 돈이 없습니다. 자본은 당연히 없지요. 글쎄요, 이 학교에도 그런 덩어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그 덩어리를 조금씩 키우기 위해 제 푼돈이 매일 들어가고 있는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이쯤에서 용건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값을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우수리 계산하기도 곤란한 일이고 하니 차라리 1500원, 2000원으로 보기 좋게 자르면 아주 좋겠습니다. 담당자님은 학식 관련 재무상태를 잘 아실 겁니다. 그 숫자들을 재정이 아닌 돈푼으로 보아 주시고, 아주 조그만 움직임을 시작한다는 기분으로 슬쩍 가격인하 변화를 시도해 보시면 어떠하겠습니까?
어릴 적 나라에서 컴퓨터를 주는 꿈을 꾸었듯이 지금 저는 이런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학생증 바코드 찍고 도서관 열람실 무료로 쓰듯이 학식도 주면 좋겠다, 라고 말입니다. 공산주의 사회 이론 혹은 유치한 망상을 듣는 것 같으신가요? 제가 내는 등록금은 한 달 5만원 이하의 밥값도 포함하지 못할 만큼 빡빡하게 사용되고 있습니까? 많은 돈이 아니라 겨자씨만한 변화입니다. 핑계가 아니라 시도입니다. 어떤 변화를 위해 필요한 자원이나 이론적 뒷받침이나 다수의 찬동 등등은, 그 변화를 싹틔우는 단 한 명의 무명씨가 없음을 핑계하며 오늘도 묵묵히 자본주의에 순복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없어서 이걸 인쇄해 보여드리지 못하고 블로그에 적습니다. 근무하시는 가운데 평안과 행복이 날로날로 넘치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가난한 학생 엽토군 삼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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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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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그 자체가 아주 단순한 사고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근대 경제학의 세계이기도 한데, 모든 건 평등하다, 교환은 평등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내가 싫으면 교환 안 하면 되는 거니까, 평등하다, 시장은 평등하다는 그 논린데, 실제로 세상은 평등합니까? 불평등합니다. 권력관계가 분명히 있어요. 그래서 형식적으론 평등한 계약을 맺었어도, 사실은 불평등, 이게 노자관계가 그 대표적인 예에요. 나라와 나라 관계도 마찬가지에요. 형식적으론 평등해요. 투자자-국가소송제는 미국기업도 이용하고 우리기업도 이용할 수 있어요. 그러나 권력 관계가 있어요. 힘이달라요. 한국 기업이 미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을까요? 소송에서 이길 수 있느냐라는 건 권력관계입니다. 여태까지 미국 정부는 한 번도 안 졌어요.

(중략)

논: 근데 우리는 정부가 먼저 그 안을 들고 나왔잖습니까?

정: 그러니까 바보 같은 놈들이죠. 미국 거는 글로벌 스탠다드고 우리가 그걸 하면은 우리나라가 선진화 되고 이렇게 생각하는 거죠. 막연하게.
원문은 여기
좀더 읽어보고... 딴지는 인터뷰 하난 잘한다. 정태인이란 사람을 기억하자.
Posted by 엽토군
:

타츠와 나오유키 부감독과 인터뷰: 출처는 공식홈페이지의 "뒤" 코너

아직까지는 DVD 발매가 이어지고 있는 '안녕 절망선생 속편', TV 방영이 끝나 한숨이나 푹푹 쉬고 있지 않나... 싶은 타츠와 부감독님을 인터뷰합니다! 지금 기분은 과연...?

Q "안녕 절망선생 속편" 방송이 전부 끝이 나고, 먼저 요즘은 어떤 기분이신지?
A 이래저래 쓸쓸한데 또 대놓고 무직이 되어버렸습니다. 밥벌이는 해야 되니까 일 좀 주십시오.

Q "안녕 절망선생"과 "안녕 절망선생 속편", 제작에 임하시는 동안 마음 자세의 변화는 있었습니까?
A "속편"에 와서 원작과 좀더 가까워졌다고는 말은 하는데, 결국은 자기만족일 뿐 아닐까 하는 불안 정도일까요.

Q 영상에 금시초면의 기술이 쓰인다든지, 출연진을 바꾼다든지 등등, 뭔 일이 일어날지 몰랐던 "안녕 절망선생 속편", 현장은 어떤 형국이었나요?
A 보통 일이 아니었지만, 그 시퀀스들과 다를 바 없는 열기와 즐거움이 화면에 드러나서 그게 시청자분들께 전해진다면 반갑겠습니다.

Q 솔직히 진짜 맘에 들어서 피처링 뜨고 싶었던 캐릭터 있습니까?
A 만세바시 마스크.

Q TV 방영은 다 끝났지만 아직 DVD나 CD가 불티나게 발매중! 팬 여러분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A 3만 장 팔리면 꼭 3기 나올 거니까, 부디 부디 매상 올려 주십쇼. 감사합니다.

이렇게나 떡밥을 날리는 거 보면 자신있나 보다. 나도 슬슬 준비해야겠다.
여기서 준비라 함은 아직 못 만든 13화 자막을 기어코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Posted by 엽토군
:

교회에서 설교를 흔히 '말씀 선포'라고도 부른다. '교리를 설파하다'라는 의미에선 설교란 말을 쓸 수도 있지만, 그 교리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고 말씀이라는 의미를 담아서 누군가 그런 말을 지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 들어 이 말씀 선포가 '설교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말로 잔뜩 채워진 시간이긴 한데 그게 정말 '교리'인지 뭔지는 알 수가 없게 되어 버렸단 말이다.
굳이 인간적인 클레임(?!)을 말해보자면 한도 없다. 우선 사소한 실수가 자꾸 나온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다 헛되도다'라는 그 유명한 말씀이 '잠언'에 있지 않느냐고, 어떤 유명한 간사님이, 무심결에, '말씀 선포' 시간에 말했다.[각주:1] 느부갓네살 왕이 여기저기에 세운 높이 60규빗짜리 금신상들이 요새 높이로는 '300미터'나 된다고, 어떤 '담임목사님'이, 대예배 시간에 말했다.[각주:2]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까지만 인용하고 '어리석은 자마다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는 잘라먹고, 이게 우리 미션스쿨의 교훈이라고 가르치는, 어떤 교장이 있다.[각주:3] 사소한 말실수는 왜 나오는가? 철저한 탐독과 확인을 하지 않은 채, 설교자가 스스로 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실은 모르는 거라고 했다(고전8:2). 3만 절이 넘는 큰 책을 무지렁 백성이 어떻게 다 외우겠는가? 그래서 수시로 검색하고 무시로 중요 성구가 몇 장 몇 절인지 적어 되풀이 봐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없다. 그냥 '그런 게 있던 것 같은 느낌이 드니까' 선포해 버린다. 인간적으로, 어떤 시사쟁점에 대해서조차 '그런 말이 있던 거 같아서' 선포했다간 독단으로 치부된다.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발언들이 은근히 많다. 특히 사단에 관해 말할 때 그렇다. 성경에선 사단에 대해 그리 많이 말하고 있지 않다.[각주:4] 집안 원수에 대해 그 집 안에선 말하기를 꺼리듯이. 그런데도 최근 강대상을 보면 사단과 마귀에 대해 장황하고 확고하게 얘기한다. 사단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마귀는 우리가 어찌할 때 어떤 자세를 취하고...[각주:5] 솔직히 말해 보자. 하나, 이런 이야기를 성경(정경)에서 구체적으로 들어본 일이 있는가? 둘, 그런 얘기 굳이 설교 때 들으면 재미있나? 셋, 악한 세력의 이야기 자주 들어서 좋을 것이 무엇인가? 신비 세계를 알지 말라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성경에 우리의 상상력을 가두자는 것도 결코 아니다. 다만 적어도 '말씀 선포' 시간에만큼은 '말씀'에 준거해야 한다는 거다.
예화와 '듣기 좋은 이야기'를 너무 많이 꺼내는 것도 사실 문제다.
극단적인 예가 조엘 오스틴이다. 그의 책을 국내에 수입한 출판사는 두란노다. 그런데 '긍정의 힘'에는 '(창1:1)' 같은 장절 표기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시피하다. 그런데도 공공연히 신앙서적 베스트셀러가 되어 있다. 굳이 오스틴 목사(?)를 들지 않더라도, 요즈음 설교 추세는, 좀 심하게 말해서, 순서가 이렇다. "오늘 말씀은..." 이라면서 어딜 읽는다. 설교자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물론 그 말씀이라는 것관 좀 별개고 약간 관련 있다. 그러고서 마무리 기도로 말씀과 별 관련 없이 기도하고 마친다. 그런데도 은혜스럽다. 그런데도 오늘 '말씀'이 '좋았다'는 칭찬을 점심 식사 때 공공연히 한다.[각주:6] 그 좋았다는 말씀은 무슨 책 몇 장 몇 절인가? 관련된 말씀은 무엇인가? 전후 맥락은 어떠한가? 어렵거나 특이한 표현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정확히 밝혀졌는가? 그리고 그 해석은 진리인가? 이 정도는 해야 '말씀' 선포 아닌가?
선포란 무엇인가? 세상에 뭘 알린다는 의미의 한자어는 매우 많지만 특히 '선포'는 세계적 규모 혹은 영향력을 지닌 무엇을 알릴 때 주로 사용한다. 그 영향력이 매우 강력한 것이고, 절대적이고, 따라서 아주 분명한 근거와 기반 아래에서 떳떳하고 올바르게 전해져야 한다. 그게 선포다.
그런데 어째서 요새 이러한 요상한 풍토가 일어나서, 자칫하면 설교자의 개인적 견해로 볼 수도 있는 걸 '은혜로운 말씀'으로 여기게 되었는가? 내 생각엔 교회 사람들이 신앙인이 아니라 '현대인'이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응, 현대인. 이성과 합리의 근대를 지나 포스트모던까지 온 그들. 그들이 원하는 건 주의 뜻이 아니라 합리주의적 사고를 넘어선 어떤 해결밖에 더는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선 관심없고 그 진리에서 내 행복, 내 집안 평화, 내 재테크를 뽑아낼 궁리만 한다. 회개와 사죄는 엄연히 기독교 교리의 핵심 중 하나이고 '선포'해야 마땅한 사실이다. 그런데 강남 동네에서 이 주제는 잘 선포되지 않는다. 간간히 '복 받는 비결'의 하나로 잠깐 스쳐 지나가다시피할 뿐이다. 도대체 교회에서 하는 겉치레 회개와 속세에서 하는 '울고 웃고 요법'과 뭐가 다른가? 말해 보라. 뭐가 달라야 하나? 말씀이 필요하다. 왜 그러한지 '성경'에 근거가 없고서는 말씀 선포가 못 된다. 설교는 더더욱 안 된다. 성경에 없는 걸 교리라고 내미는 게 이단이고 오컬트(occultism)[각주:7]지 달리 뭔가?
위선자들의 같잖은 설교에 관한, 예수님도 언급한 적 있는, 이사야의 대언이 생각난다.

주께서 말씀하신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고, 입술로는 나를 영화롭게 하지만, 그 마음으로는 나를 멀리하고 있다. 그들이 나를 경외한다는 말은, 다만, 들은 말을 흉내내는 것일 뿐이다. (사29:13, 새번역)

지금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선포'한다면서 사실 우리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지는 않나? 조엘 오스틴은 '하나님을 한정하지 않는' 신앙을 말한다. 좋다 이거다. 개인적 영성 체험, 사회적 모순과 변화 속에서 선견자, 제사장, 천국 사람, 제자, 용사로서의 삶, 예수님께서도 이런저런 비유로 말해주셨듯이 자기가 겪고 느낀 바를 표현해보는 온갖 저작과 이야기, 전부 다 좋다 이거다. 근데 그건 선포는 아니다. 그래선 설교는 될 수 없다. 말씀을 선포한다고 했으면 잡담을 하지 말고 선포를 하든지 아니면 그냥 너한테 내가 설교를 늘어놓겠다고 솔직히 말하라!


P.s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청년부 평신도입니다. 전 예수전도단이고 이번 MC 후불금 6만5천 원을 못 내서 지금 고민중입니다. 전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 교회를 무조건 매도하고 욕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으로 절 보지 말아주십시오. 하도 답답해서 쓸데없이 긴 글 한 번 썼습니다.[각주:8]

  1. 잠언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고 전도서에서만 여러 번 나오지만, 특히 1장 2절 가장 첫머리에 나온다. 그러므로 위 발언은 단순 착오라고 믿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터이다. 혹시 몰라 첨언하는데, 참고로 전도서는 다윗이 아니고 그의 '아들'(솔로몬)이 썼다. [본문으로]
  2. 1규빗 혹은 1자는 30~45cm 정도이므로 60규빗은 18~27m에 해당한다. 300m는 요즘에도 세우기 힘든 높이인데... 단순히 인간적인 실수라고 본다. [본문으로]
  3. 잠언 9장 24절에 군더더기 없이(?) 깨끗한 성구가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기왕 부정적인 건 잘라먹을 생각이라면, 왜 이걸 고르지 않았는지? [본문으로]
  4. 개역개정에서 '사탄'은 49번, '마귀'는 37번 나온다. 더해 봐도 세 자리 수가 안 된다. 수치상으로 따져보면 주된 등장인물은 아니다. [본문으로]
  5. 이러니 '교회는 사단을 싫어하지 않는다'라는 농담이 교회 내부에서 나오는 지경이다. [본문으로]
  6. 내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이와는 반대로 주석서처럼 제대로 된 설명으로 설교를 한다. 그의 말씀 선포를 들은 교인이 '오늘 말씀 좋았다'라고 인사하는 경우는 한 번도 못 봤다! [본문으로]
  7. 신비주의, 비밀스러운 종교를 의미하는데 특히 점성술, 신내림 등에 관심이 있다고 사전에 써 있다. 어근 occult는 '눈에 안 보이는'의 의미이다. 이런. 점점 '차별화'가 안 되어 가잖아. [본문으로]
  8. 혹시 오류사항이 있다면 빨리 알려주십시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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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노후방지를 위한 글

2008. 5. 19. 20:24

소비는 쉽다. 그러나 생산은 어렵다.
망상은 쉽다. 그러나 고뇌는 어렵다.
표절은 쉽다. 그러나 창조는 어렵다.
비판은 쉽다. 그러나 대안은 어렵다.

한탄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감사하는 것은 어렵다.
복종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주도하는 것은 어렵다.
불평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개선하는 것은 어렵다.
방관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참여하는 것은 어렵다.

남의 눈의 티는 보기 쉽다. 그러나 내 눈의 대들보는 빼기 어렵다.
안일한 삶은 빠져버리기 쉽다. 그러나 부단한 노력은 하기 어렵다.
과거는 자꾸 을궈먹기 쉽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을 만들긴 어렵다.
시류와 유행은 따라가기 쉽다. 그러나 진정한 자신은 찾아내기 어렵다.

너 사람아, 어렵게 살자. 늙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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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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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야 이거 웃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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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천국 내셔널리스트들이 은근히 많다. 언젠가 찾아올 하나님 나라의 권세를 강력히 믿는 바람에, 지금 이 땅에서 살면서까지 그 권세를 누리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단 말이다. 자신들의 욕심을 하나님의 뜻인 양 착각하고, 그래서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결국 욕을 먹고 공격받고 덕이 되지 못한다. 이건 신앙이라기보단 국가주의, 민족주의의 차원이다. 오늘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그리스도교인들은 십중팔구 이렇다.
우리는 승리자이지만, 거류민이다. 천국은 민족국가(Nation)가 아니라 왕국(Kingdom)이다. 아직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그 나라는 망명 정부와도 같다. 아직 죄악은 공중 권세를 휘어잡고 있다. 디아스포라의 하늘 나라 백성들이여, 어떻게 살아야 하겠는가. 올바르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본보기가 되고 겸손한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본국이 이 세상을, 아니 새 세상까지도 언젠가 완전히 탈환할 날이 온다는 그것을, 결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하늘나라에 대한 애국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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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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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2

2008. 5. 14. 10:09
잘 안 돼요.
뭐가?
포기하는 게.
뭘?
절 포기하는 거가요.
그래?
네. 나보단 남을 위해서, 개인보단 세상을 위해서, 세상보다는...
그렇구나.
...네.
...
...
상담해 주셔서 고마워요.
응, 아니 뭘. 잘 됐으면 좋겠네.
그렇죠. 좀더 솔직해져야 될 거 같아요.
그지?
...
...
네.
어.
Posted by 엽토군
:
http://takeuchi.mo-blog.jp/weblog/2008/03/post_e14e.html
아마존 마이페이지의 "타케우치 모토키님을 위한 추천상품"에 '루카 수녀님 기도 금지!(シスター・ルカは祈らないで!)'가 들어왔다!
우왕~! 자기한테 추천해주는 상품에 자기 작품이 들어온 건 처음이네~!
난 "루카수녀"를 권해 볼 만한 사람이라 이거지!
끄~응..., 기분 묘한데...

우하하하하하ㅠㅠ
...월간지에 연재하는 사람들은 대인기가 아니고선 다 자기 알아서 살아남아야 하나보다.

…でもやっぱ竹内元紀さんのお作品読んでみたい。下ネタ一色だと言われると何故かむしろエッチな感じはしないし… 誰か(リアンとか春日部とかルカとかどれでもいいから)スキャン本もってません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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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미야미야 좋쿠나~ 캐릭터의 의외성에 매회 놀라고 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적어도 이쪽 바닥에서 '이야기의 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낀다.
중요한 강령은, '어떤 식으로든 재미있을 것'뿐.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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