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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변기의 개수가 그 집의 계급이다.


고은 시인은 <지붕>이라는 시에서 "지붕이 그 집의 사주팔자다"라고 읊은 바 있다. "기와만년 기와집은 기와로 지붕을 하고 / 굴피천년 굴피집은 굴피로 지붕 얹고 / 초가삼간 지붕이야 짚으로 지붕 이고" 산다고 말이다. 오늘 아침 샤워를 하던 어머니를 쫓아내다시피해서 헐레벌떡 화장실에 들어가 급한 일 보고 나오는 길에 문득 생각이 미친 것은, 지금 시절은 지붕 말고 집안의 변기 개수가 바로 그 집의 팔자, 못해도 현재 처지를 보여주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지금 이 나라 대부분의 집은 내부에 화장실이 있고, 세면실과 욕실을 겸한 경우가 많다. 그 개수는 아마도 한 개인 경우가 가장 많을 것이다. 어떤 집에 변기가 하나 달리는가? 뻔하지, 단독주택 월세방이나 연립주택이 그러겠지. 변기가 하나만 있어도 저들끼리 어찌어찌 잘 융통하고 살아갈, 그래서 굳이 변기를 두 개 이상 달아 줄 이유가 없는 생활의 사람들, 피차 일이 많아 집에서 일을 볼 일이 많지 않은 소가족 혹은 1인 가구들이 그렇게 살고 있을 테다. 그들은 자기가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다른 식구에게 폐가 되는지 어떤지를 항상 주의하고 있으며, 그래서 모종의 시간 배분을 만들어 행동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 한 사람의 볼일 때문에 나머지 모두가 씻지도 못하고 빨래도 못 걷고 큰일도 못 보는 불상사가 생기니까. 요컨대 집안에 변기가 하나인 집은 그렇게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정량의 번잡스러움에 수시로 대응하며 살아간다. 그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것은 정확히 그 집에 무단정차 과태료 통지서(그렇다, 변기가 하나 딸리는 집에 그 집 전용 주차공간이 주어질 리 없지 않나, 그래서 변기가 하나 있는 집은 딱지도 자주 떼는 것이다), 보험료 자동이체 안내 이메일, 최신 휴대폰 무상교체 운운하는 광고 전화 따위가 방문하는 정도의 빈도이다.


변기가 두 개 딸리는 집은 주로 아파트다. 건설 현장에서 숱한 세대를 거쳐 보건대 짐작할 만하다. 현관 근처에 공용 화장실이 크게 있고, 주로 "부모님 방"(으로 쓰라고 건축학적으로 강요하다시피하는 굉장히 직설적인 모양의 방)의 한쪽 구석에 붙박이 옷장처럼 샤워 큐비클과 변기가 같이 놓인 조그마한 화장실이 있다.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적어도 한 명의 큰일 때문에 나머지 모두의 행동이 올스톱되지는 않는다. 대신 그 방의 짜임이, 그 변기의 위치가 그 사람들의 삶을 탁상시계 만들듯이 딱 떨어지게 조립해 놓는다. "부모님들"의 하루 동선은 방, 방에 딸린 화장실, 식탁, 현관, 밖, 다시 현관, 거실 TV 앞, 다시 방으로, 당최 "아이들 방"이나 큰 화장실에 갈 일이 없다. "아이들"도 엄마아빠 방에 들어갈 일이 별로 없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둘 중 하나가 큰일이 길어질 때나 화장실 일 보러 부모님 방을 잠깐 스쳐 지나가겠지. 분명히 삶은 좀더 윤택하고 여유시간은 조금 더 확보되는데, 그 '거슬림 없음'이 어쩐지 어색하다. 그 어색한 '거슬림 없음'이란, 비유하자면 대형마트에 설치된 무빙워크에 쇼핑카트를 끌고 들어갈 때나, 22층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를 8층에서 잡아 타고 내려갈 때나, 중앙현관에 달린 "세콤"에 터치열쇠를 가져다 대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을 때의 느낌이다.


그리고 이 나라에는 변기가 세 개 이상 있는 집도 분명히 있고, 집안에 변기가 없는 집도 분명히 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변기 세 개 달린 집의 비율과 변기 없는 집의 비율이 한심하리만치 바로 그대로 이 나라의 상위 1%와 하위 10%의 비율에 일치하리라고 예상된다는 것이다. 변기 세 개 달린 집에서의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은 대다수 우리와는 생각 자체가 다르다. 아니 집안 식구가 세 명인데 그럼 당연히 변기도 세 개여야 하는 것 아니냐며. 집안에 변기가 두 개밖에 없으면 애 일 보고 마누라(바깥양반) 일 볼 때 자기는 어떡하냐며. 아니 그럼 경비원을 경비라고 부르지 뭐라 부르냐며, 택배 좀 받고 청소 좀 하는 게 뭐 대수라고 지가 전태일도 아니고 분신 주접을 떠냐며. 그들은 똥 누러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자기 변기가 확보돼 있으니까. 그들이 무슨 논리적이고 팩트에 근거한 안전하고 상식적인 냉정함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순전히 그들 집안의 변기 덕분이다. 당장 변기 두어 개 막혀 보라지. 일이 너무 급해서 아주 가끔 집 밖 공중화장실로 나가 봤던 사람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볼썽사나운 "똥 누러 갈 때"의 추태를 보여줄 것이다.

그런 추태는, 자기 집 안에 변기가 없는 집에서는, 도무지 나오지 않는다. 그들의 화장실은 항상 공용이며, 그들의 집은 항상 어디 셋방이며, 그들이 화장실에 있을 때 변소 문을 노크하는 것은 거의 대부분 옆집 사람이다. 화장실에 들어간다는 것은 첫째 귀찮음이며, 둘째 불편함이며, 셋째 잡념의 시작이다. 하지만 그 잡념은 두루마리 휴지처럼 이내 끊기고 만다. 옥외변소의 겨울은 똥 냄새가 얼어 있고, 옥외변소의 여름은 똥 냄새가 끓고 있는 그런 곳인데, 그런 곳을 자기 화장실로 쓰는 사람들에게는 불평도 사치가 되니까. 그저 빨리 일 보고 물 내리고 닦고 나가기만을 바라게 되는 그런 장소를 자기 집 화장실로 쓰다 보면, 자연히 꼼꼼히 씻는 것도 부단히 가꾸는 것도 좀체로 몸에 익지 않는다. 그냥 화장실은 일 보는 곳, 집은 잠 자는 곳 따위가 되면 오히려 그런 골방과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는 TV나 컴퓨터, PC방 따위에 몰두하기 십상이다. 중요한 사실은, 여전히 변기가 집안에 없는 집이, 이 나라에 상당히 많다는 점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도대체 집안에 변기가 어떻게 없을 수가 있는지 그러고도 사람이 사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오늘도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숱한 사람들의 발과 얼굴과 머리끝을 둘러보며 생각한다. 이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선가는 씻고 일 보고 나온단 말이지. 모든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화장실이 있다. 거기에 앉았을 때 가장 안심하고 큰일을 볼 수 있는 자기만의 변기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집안에 몇 개나 구비돼 있는가의 문제는 조금 다르다. 그것은 정확히 계급적이다. 화장실이 집안에 하나 있던 가족은 집안에 화장실 없는 집으로는 두 번 다시 이사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 가족이 집안에 화장실 세 개 딸린 집으로 이사 갈 일이 생기면, 그들은 그것을 좋은 기회로 보지 분수에 지나친 것으로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서로 다른 개수의 변기를 쓰는 사람들끼리 공중의 공간에서 마주칠 때, 그들은 이따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이것은 양극화하게 될까? 적어도 <지붕> 말미에서 시인이 밝힌 사태 하나만은 한동안 그대로일 것으로 보인다. 그게 지붕 때문이든 변기 때문이든, 주거 조건에 최소한의 기본 평등이 없는 한에서는.


어느 하늘놈 막아주나

어느 귀신년놈 막아주나

김어구네 오막살이 그뿐이 아니구나

동고티 김기백이네도

쇠정리 관선이네도

헌 지붕 노래기깨나 떨어진다

한동네 한식구라는 말

두레라는 말

말짱 헛것이여 물감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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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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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MB를 위한 서민학개론


오리엔테이션

이 글은 어디까지나 레포트 쓰기 연습. 논리적, 학문적으로 많은 뒷받침이 필요하므로 이 뻘글을 읽는 누구나 되는 대로 트랙백 등으로 건설적인 추가논의를 구하는 바.
최근 정치계의 최대 화두는 '경제 살리기'이며, 모 대통령의 정략적 방향에 따라 그 경제는 곧바로 '서민'을 위한 경제로 연결되어 이야기되고 있다. 과연 그 서민은 누구이며, 그들이 어떤 역사와 특성을 지니고, 현대 서민의 대체적 특성과 대한민국 서민의 특수 상황을 견주면서 '서민의 경제'는 어떤 특이점이 있는지를 확인하여, 현재 '대한민국 서민의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인지를 함께 논의해 보자.

제 1강 서민의 정의와 역사

서민(庶民)이란 단어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1. 아무 벼슬이나 신분적 특권을 갖지 못한 일반 사람.
2. 경제적으로 중류 이하의 넉넉지 못한 생활을 하는 사람.
비교되는 유의어 '평민'과 '백민'은 둘 다 단순히 '벼슬이 없는 일반인'의 의미를 띠고 있다.[각주:1] 그러므로 여기서는 용어의 문제에 있어서, '서민', '평민', '백민'을 전부 같은 의미로 취급하되, 특히 '서민'이라는 단어를 핵심어로 전개하기로 하자. 서민의 '서(庶)'의 새김은 '여럿'이다. '첩의 아들', '가까움' 등의 훈도 있으나 대체로 '흔하게 있는 것'이라는 의미가 주를 이룬다. 영단어에서도 서민을 지칭하는 명사 common people(folks), commonality, the folks 등등에는 어김없이 '공통적인, 허물없이 가까운'의 의미를 지닌 어휘들이 보인다.
굳이 외국어와 한자까지 들먹인 이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서민'이 지니는 이미지가 확연하게 두 가지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상기한 1번 정의의 두 가지 특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벼슬이 없다'와 '일반적이다'가 그것이다.
벼슬이 없는 일반인을 서민이라고 부른다면, 신분·계급적 특권을 가진 계층이 없거나 딱히 일반적이라고 지칭할 만한 집단이 없는 사회에는 서민이 없거나 그 의식이 희박할 것으로 생각된다.[각주:2] 대부분의 국가나 사회에 서민이라는 개념이 존재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대부분의 그 나라들이 세계사적 일반 담론에서 말하는 봉건사회를 거쳤기 때문이다. 군주가 있고 몇 명의 영주 혹은 지방 수령들이 나머지 구성원들을 통솔·지배하는 봉건사회, 그 구조가 안정되는 시점에서 서민계층이 생겨났다. 상하귀천이 확실했고 또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 같던 사회에서 이렇다 할 이름이 없는 '장삼이사'는 생겨났다.
그러나 일반인들 가운데 한 번 형성된 서민의식은, 마침내 특권층의 모순과 부조리를 혁파하기 위해 다 함께 들고일어나기까지 점차 강하게 뿌리박힌다. 그 이유는 중세 사회가 '관직(벼슬)'을 기준으로 내집단과 외집단이 뚜렷이 구분되는 사회였기 때문이다. 신분은 상하로 쉽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유일하게 획득 가능한 정치적 특권은 곧 경제적 특권으로 이어졌으며, 그 두 가지가 모든 사회적 신분을 말해주던 시대에서 지위불일치[각주:3]는 일어나지 않았기에(물론 후대로 가면 부르주아 등의 불일치가 일어나지만 여전히 소수이다), 자연스럽게 내집단으로서의 서민적 의식이 고착되기에 이른 것이다.
근대를 지나면서 점차 신분 상하이동이 자유로워졌다. 그것은 기실 일련의 근대적 사회 개혁이 추구했던 실질적 목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위 누구나 출세할 수 있다는 현대사회에서 평민의식은 대체로 건재하다. 아니, 오히려 일부 사회에선 훨씬 강력하다. 왜 그러한가? 그 원인을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는데, 외집단 의식과 역사가 그것이다. 다양한 지위가 등장한 현대사회이니만큼 자기 자신이 어떤 처지에 속해 있는지는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우나, 누구나 높다고 말하는 특권층은(그게 어떤 의미에서의 특권이든지간에) 뚜렷하게 구별되어 매스미디어와 생활 속 실제적 영향력을 통해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외집단에 대한 확연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집단을 서민 집단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또, 서민들로서는 대대로 서민으로 남으며(일개 여염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을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표현하지 않는가?) 특권층을 우러러보아 온 역사가, 신분 상승을 이루어낸 역사보다 훨씬 길다. 이러한 역사적 장단은 무시할 수 없는 것으로서, 집단적 의식과 기억에 영향을 끼쳐 '서민들의 사고방식'이 만들어지는 데 일조한다.
모 대통령이 말하는, 일자리의 유무를 기준으로 한 서민의 정의는 역사적이나 사회학적으로 제대로 된 근거가 없다. 일자리는 모든 서민에게 있어 왔다. 또 '무엇의 유무'를 가지고 특권과 일반을 나눈다면 그 '무엇'은 정권, 부동산, 교수 이상의 사회적 명망 등 계층적으로 확실한 구분 기준이어야 하는데 '직업'이란 도무지 다양하고 상대적이어서 평민을 정의하는 기준으로 삼을 수가 없다. 오히려 일자리가 없는 사람이 사회적 극빈자이고 나머지는 모두 밥벌이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일반적인 국민'을 의미하는 서민은 차라리 '일자리가 있는 사람'을 뜻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각주:4]
그렇다면 도대체 오늘날의 서민은 무엇을 기준으로 스스로를 서민으로 여긴단 말인가? 그에 대해서는 2강에서 좀더 논의하자.



제 2강 오늘날 서민의 특성에서 계속... 내가 미쳤나 이걸 왜 공개했지? 갑자기 책 찾아읽어야되네
저보다 많이 배우신 분들의 가르침을 학생의 자세로 기다리겠습니다. 다같이 만들어봐요
우와 몸이 벌벌 떨려 (아니 진짜로;)
  1. 참고: '표준국어대사전(인터넷판)', 국립국어원 [본문으로]
  2. 예시할 만한 사료가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도움을 구하는 바. [본문으로]
  3. 어떤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사회적 계층에 대하여 한 계층에선 높은데 다른 계층에선 낮거나 하는 불일치가 나타날 때, 이 사람은 지위가 불일치한다고 한다. 사회적으론 존경받으나 경제적으론 빈곤한 사람 등이 그 예가 될 수 있다. [본문으로]
  4. 그렇다면 이런 물음이 가능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풀이 2번에서는 분명히 중류 이하의 사람이라고 되어 있지 않은가?'라고. 필자의 대답은 이렇다. 크게는 같은 의미일지라도 어감 혹은 문맥상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 유의어는 여러 가지가 있다. '장삼이사', '갑남을녀', '평민' 등과 '서민'은 모두 크게 보아서는 '특권(특징) 없는 일반인'이라는 큰 의미가 있는데, 단어의 사용과 그 오랜 관습에 있어서 '서민'이란 다른 단어들보다 특히 '잘 살지 못하다', '남들보다 뒤떨어지다'라는 의미를 더하는 것으로 굳어졌을 수 있다. '庶'라는 한자가 조선시대 내내 첩의 자식을 뜻하는 '서얼(庶孼)'이나 적자와 그 나머지 자식을 의미하는 '적서(嫡庶)' 등의 단어에서 사용되어 왔음을 감안하면 억지 궤변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넉넉지 못하다'라는 말을 볼 때, 2번 풀이가 그런 '어감'을 묘사하는 수준에서 그쳐 있다고 여기는 것은 필자뿐인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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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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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qnseksrmrqhr
    2009.09.08 13:2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서민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게 ,유익하게 풀이가 되어 있군요...마음이 담긴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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