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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리뷰는 순전히 영화를 본 직후의 기억이 휘발되기 전에 적어놓으려는 의도이고 따라서 해석/표현상의 균열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러고보니 영화리뷰 블로그글 무지하게 오랜만에 쓰네. 돼지의왕 두개의문도 (고의반 무심결반으로) 안썼는데...



- 기왕 볼 거면 GV의 기회를 타서 보자 싶어서, 전날 자정을 넘기도록 치맥과 노래방을 달린 몸을 아침 여덟시에 일으켜, 시간을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확인하고, 탱자탱자 놀다가 대충 아무거나 주워 입고 '무슨 질문을 해야 할까', '버스를 타고 간다는 계획은 잘못된 게 아닐까' 초조해하며 인디플러스에 가까스로 상영 15분 전에 도착, 미리 편의점에서 밥을 먹어놓고 표를 끊고 극장 내 정수기에서 식수를 받아 들어갔더니 관객이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 (정말 너무하더이다... 심지어 이소선 어머니 다큐보다도 사람이 없더라는) 그래서 감독님께 "<두 개의 문>이랑 경쟁하게 되어서 아쉽습니다" 했지요. (돌아오는 답은 역시나 "그게 더 흥행해야지요.")

- 안 먹던 알콜을 사람들 오랜만에 본 기분에 취해 몇 잔을 마신 걸까? 전 제가 오늘 아침 못 일어날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극장에서도 꾸벅꾸벅 졸 줄 알았죠. 첫번째 껀 아니었는데 두번째 껀 영락없이. 중간의 아까운 10~15분을 결국 꼴깍 잠들어버린.

- 이 리뷰에서 큰따옴표("")된 것은 전부 오늘 GV때의 김경만 감독님 발언입니다. 아 참고로 감독님 생긴게 실제와 사진이 똑같습니다. 이렇게 인상이 평범한 독립영화 감독은 처음 봐요. (...)


- 영화는, 감독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관객 입장에서 간편하게 기억해 보자면, 크게 2부로 나뉩니다. 역사 시간과 사회 시간. 1교시엔 지루한 흑백화면과 요즘의 자료화면을 알기 쉽게 교차로 보여주며 처음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을 빼고는 시종일관 <대한늬우스> 식의 팡파레 BGM이 일관되는(팡파레에 대해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약 50여 분간 팡파레만 울려퍼지는 자료화면을 보고 있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미국에 가서 머리 조아렸다는 뉴스를 시간 순서대로 보여줍니다. 그렇게 쭉 이어지다가 영어마을 이야기로 넘어가면 그때부터 2교시가 시작되는데 여기서는 영어 얘기, 기독교 얘기가 비슷한 비중으로 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그렇게 두 개 교과는 하나의 학습목표를 달성케 합니다. '미국이 성명학적으로는 아름다운 국가일지 모르되 과연 실증적으로는 무엇으로 분석되는가를 자기만의 대답으로 대답할 수 있다.'

- 영화의 카메라워크는 좋게 말하면 지독하게 끈기있고 나쁘게 말하면 지독하게 비타협적입니다. 감독이 직접 찍은 footage들을 보고 있으면, 잘만 하면 CCTV로도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정도입니다. 제 기억에는 딱 한 번, 활빈단 할아버지가 앵글에 다 들어오지 않아서 잠깐 오른쪽 아래로 움직인 그 정도. 그나마 그 후에 할아버지가 사라진 뒤에도 원위치로 돌아오지 않아요.

이것은 집념 내지 똥고집인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이 캡쳐에서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데, 아주 신기하게도, 감독이 의도한 결과인지는 모르지만, 특히 이 씬은 배경의 관중과 거리, 군악대의 행렬 그리고 이 할아버지라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존재를 합성시켜 놓은 것 같은 착각을 줍니다. 심지어 영상으로 보아도 정말 그렇게 보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저 멀리 길 건너에 사람들이 조그맣게 여러 명 서 있고 아무 것도 없다가 일정한 속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군악대가 왼쪽으로 지나가고 있는데 뒤이어 저 할아버지가 카메라 뒤에서 전혀 다른 속도로 등장합니다. 야 이건 진짜 연출을 해도 얻기 힘든 장면인데.)

이것은 좀더 과대해석해도 좋은 지점인 것 같았습니다. 첫째 이 신은 감독님 본인이 직접 말하듯이 배경의 대로변으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사실상 내용적으로 공허'하고, 다만 그렇기 때문에 우악스럽게 잘 연주하지도 못하는 군악대를 합성시켜 넣었더니 '수은불망'을 들고 나오는 할아버지가 부가 생산되더라는 한국 사회의 다이나믹스를 보여준다고 여겨지고, 둘째로는 그렇게 합성된 (듯한) 이 나라의 풍경이 '합성이네'가 절로 튀어나오리만치 괴이하고 낯설기만 한 "이상한 것"임을 좀 확인하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 이상하게도 미스 유니버스 이야기 부분이 기억에 남질 않습니다. 영화가 대비를 시키는 방법으로서는 동시대에 일어난 극명하게 엇갈리는 두 사건을 배치하는 기법을 쓰는데, 이 부분을 보면서는 거대한 옛날 코미디를 재구성한 무대를 보는 것 같아 볼 만했는데, 희한하게도 막상 보고 나니 뭐랄까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것을 그냥 한 번 더 확인했다는 기분만 남아 있습니다. 이 영화는 그러합니다. 스스로 장면들의 짜임을 기억하지 않으면 서본결이 기억이 안 나요.

- 미리 리뷰를 읽고 갔었는데 리뷰들이 하나같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오디오와 비디오는 단 한 번도 온전히 합치되지 않은 채 맞물리며 비틀어진다." 거의 그렇습니다. 1교시에나 2교시에서나 이 소리를 발생시키는 화면이 이것이다라고 보여줘야 하는 신에서는 여지없이 오디오와 비디오가 싱크로되지만,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감독이 이것을 가지고 장난을 칩니다. 또 그런 연출을 즐기는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장면 중에 하나가 그거에요. 그 사람 나와서 막 얘기하는데 갑자기 줄어들고 애들 떠드는 소리로 넘어가면서 영어 입학식으로 넘어가는 장면. 거기가 좀 에코를 걸기도 했었는데..."

- 그렇게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자료화면 어딘가의 중간점에서 모두에게 열려 있는, 심지어 잘 안 들리거나 외국어인 육성에 대한 번역 자막 말고는 자막조차 단 한 줄도 없는 (심지어 영화 맨 끝에 나온다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라는 자막도 실제로는 없었습니다. "아 그거는 오보에요. 오보.") 극단적으로 중립적인 외형이었습니다. 뭐 감독 본인이 "어떤 식으로 메시지가 좁혀져서 전달이 되어 버리면 그건 영화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라는 개념을 갖고 있는 한 이것이 최선이었겠다는 납득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다 좋은데 효용론적 관점에서 '잘 만들어 팔면 상당히 대중적으로 먹혀들어갈 수 있는 미국의 탈우상화라는 소재를 이렇게나 객관적으로' 다루어서는 정작 봐야 할 사람에게까지 다가가지 못한 채 끝나 버리는 것일 수 있다는 점이 문제지요. <도가니>가 fictional trigger를 잔뜩 장착하고 관객들을 흥분시킨 것은 공지영씨와 감독이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서라기보다는 '적(타격대상)'을 더 알기 쉽게 만든다, 그래서 더 많은 이들에게 어필한다는 의도였을 것 아니겠어요. 이 작품은 그런 욕심이 전혀 없고 "그냥 이 나라의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시는 분들이 극장에서 봐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홍보물과 각종 리뷰기사와 소개글에서 설명하는 것들은 정작 스크린으로 목격하기가 사실 전혀 용이하지 않습니다. 지금 화면에 나오는 게 이승만이다 지미카터다 하는 안내자막조차도 전혀 없고 내레이션도 없고 해설자도 없고 뭐 알아보는 사람만 알아보는 그림(과 내러티브)이니까요. 그러나 사실은 "3초 정도의 기억력을 갖고 계신 분들이라면 방금 전에 나온 그림과 함께 이어서 보게 되기 때문에, 웬만해서는 이게 이상하다는 걸 알 수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군사적 경제적 대미의존, 영어 콤플렉스 그리고 기독교적 반공.

- 감독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만 골라서 보여준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1교시 전반부는 오로지 미국의 신무기를 홍보해 주었던 우리의 뉴스 화면을 보여주는 데 아낌없이 할애합니다. 그런데 거기서 나오는 도량형들은 순 '피트', '마일', '야드' 일색이고, 외국인의 발언은 잠시 원어 그대로 들려주는가 싶다가 해설자가 끼어들어 자기가 그 사람인 양 일인칭 주어로 통역해 줍니다. 시청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오지요. "저 미국 미싸일들이 몇백 마일을 나른다 카이! 마일이 뭐꼬? 니는 마일도 모르나? 4리가 1마일이라 안카나?", "와 직이네, 저 솰라솰라 하는 말이 저런 뜻이가, 내도 영어 몽창 배워가 저래 솰라솰라 해야긋듸". 물론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모든 것이 이 지경이 되었다고 말하면 안 되겠습니다. 제 얘기의 핵심은, 이 영화가 1교시에서 2교시로 넘어가는 데 부족한 요소는 없다는 것입니다. 각종 소개 기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딱 떨어지는 설명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행간과 균열을 읽어 보면 읽을 수 있고, 그것을 글로 쓰면 이런 별볼일없는 식상한 것으로 바뀌어 버린다는 겁니다. 이 영화의 가치는, 바로 그 식상한 말을 전혀 식상하지 않게, 사실은 아주 골치아프고 다층적이고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만 함으로써 아주 새삼스럽게 학습시킨다는 데 있습니다.

- GV때 질문하며 언급한 장면이 셋 있는데, 사람이 찍혀 있지 않은 부동자세의 영어마을, 미국 대통령 앞에서 한복과 합창단 제복을 입은 소년 소녀들이 미국 말로 노래를 불러주자 당시 영부인이 그걸 같이 흥얼거리는 장면, 그리고 6.25 60주년 평화기도회가 끝나고 참석자들이 줄지어 월드컵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장면. 셋 다 너무나 낯선 광경인데, 첫째 껀 경험해 보지 않은 곳의 예상했던 그림 그대로가 나와서 놀라웠고 두번째 껀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뭔가 근본적으로 논리가 이상해서 (하지만 저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실 분들에겐 씨알도 안 먹히겠지 왜 우리가 한복을 입고 남의 나라 대통령 앞에서 영어로 재롱을 떨어야 되냐며...) 놀라웠고 셋째 껀 비슷한 경험을 하긴 했지만 지금까지 지나간 장면들을 본 게 있는 다음이어서 놀라웠습니다. 놀랍게도 맨 처음 보았던, 한 명 한 명 포착되어 있는 한국전쟁 피난민 여성들의 그림이 (감독이 겹치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에서 오버랩됩니다. 사실은 같은 상황과 조건이 아닌데 왜 그들은 서로 같아 보이는가? 이쯤에서 저는 감독의 의도대로 영화를 봐 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마지막에 미군 항공기의 폭탄 투하가 한 번 더 등장하고 암전되면서 영화는 수미상관 구조로 할 말은 다 했음을 알려주고 끝납니다.

- 상대적으로 '기독교적 반공', 그러니까 우리가 구원받은 족속이고 그 구원은 예루살렘에서 왔으며 그 구원의 최종 필수요건으로는 대적자와의 대적과 완전한 승리가 제시된다는 서사가 이데올로기적으로 복합작용하는 과정, 그것에 대해서는 사실 약간 설명이 빈약하기는 합니다. 굳이 장면들을 꺼내 와서 이해해 보자면 미국=미군=떠나가면 나라 망함=떠나가면 내가 망함=적으로부터 지켜줌, 북한=빨갱이 북한군=쳐들어오면 나라 망함=쳐들어오면 내가 망함=멸절의 대상이라는 알기 쉬운 두 구도가 강변을 일삼고 비판적 사회적 사고가 모자란 목사님들 그리고 이를 교묘하게 이용해서 기도회와 예배 자리에 나가 정치적 발언을 섞어 말하는 미 대통령에 의해 대규모로 공작되었다, 뭐 그 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좀더 심층이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가장 직접적인 부분이 부시 대통령의 "I believe, I believe that you believe." 설교(?!) 한 마디 정도일 뿐이니, 메인 카피가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마치 기독교 같았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정작 본편 내에서는 좀 부족하게 제시됩니다. GV때도 "바람과 불이라는 게 워낙 표상하는 대상이 많고" 한데도 정치, 경제, 군사 얘기는 나왔는데 종교 얘기는 거의 안 나왔거든요. 사실은 저도 제가 믿는 믿음이 있고 보니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였는가'도 결코 최선의 카피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종교가 다뤄질 때 좀 씁쓸했습니다. 참고로 그 카피는 감독님이 직접 지은 건 아니라고 합니다.


- "저도 미국은 사실상 끝나가고 있다고 봐요." 그러나 그 미국과 우리나라를 굳이 다시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나중에 사람들에게 '야 그거는 <미국의 바람과 불> 보면 거기 다 나와 있어'라고 말할 수 있는 맥락은 어떤 때 발생하는가. 안타깝게도 아직은 없습니다. 그것은 이 영화가 어떤 작용을 일으키겠다는 의지보다는 표현을 해내겠다는 의지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은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을 터인 반면 정작 관람하기 시작하면 꽤나 좋은 걸 봤다는 생각이 나게 됩니다. 저는 이것이, 마치 감독님이 60여 년 전의 자료화면을 가져다 이 영화를 만들었듯이 60년쯤 뒤에 누군가가 가져다 쓸 자료화면으로서 이 영화를 따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또는 훗날 정말 제대로 된 교육이 들어서면 '오늘은 한미관계에 대한 영화를 보고 토론할 거에요.' 할 때 보여줄 영화로 쓰면 적절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 별점 다섯 개 만점에 세 개 반. 재미있지는 않고 흥미롭습니다. 긴박하지는 않고 끈질깁니다. 인내심이 좋거나 실험영화 혹 다큐멘터리를 좋아하시면 한번 보시고, 그냥 궁금해서 보시려면 반드시 리뷰와 근현대사 교과서를 읽고 가세요. 그리고 내가 저기 나오는 저 정도의 영어도 못 알아듣는 수준이었나 싶어집니다. 그리고 김경만 감독의 차기작과 차차기작을 궁금해하게 됩니다. "다다음 작품은 편집이 필요없는 것을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아니, 차기작에 대해서는 너무 인터뷰를 많이 해서요."

- 지금은 이 리뷰 올리고 나서 감독님의 전작 콜렉션 <하지 말아야 될 것들> DVD를 마저 보려고 합니다. 뭔가를 훔쳐보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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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힐링캠프 출연 관련 트윗들 보다가 이런저런 생각이 나서 정리해서 올립니다. 비유로 돼 있으니 이해를 하기 어려우면 주석을 봐 주세요.




사회란 무엇인가? 무릇 사회란 오늘[각주:1] 점심 뭐 먹을지[각주:2]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집합이 아닌가? 혼자 점심을 때워야 하는 사람은 하여간 스스로 내린 결정을 스스로에게 집행시켜[각주:3] 혼자 우걱우걱 뭔가를 먹을 테니 문제가 안 되지만,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야 너 밥 안 먹었지 나도 안 먹었어, 그래 오늘 점심 어떡할까"라는 질문이 오고가는 순간 이것은 인류 지구출현 이래 가장 심각하고 만연한 당면 위협이 되어 복수의 인간을 '사회'로 만든다. 농경혁명 이전에는 산열매나 짐승을 채렵해 오는 것이 큰 문제였고, 산업화 또는 상품작물 재배 이전까지는 없는 살림에 어떻게 몇 없는 반찬들을 조금이라도 더 맛있게 만들어 먹어볼까가 큰 문제였다면, 수많은 점심식사 서비스[각주:4]가 흥망성쇠를 거듭한 오늘날 우리에게 점심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제는 다음과 같은 잘 설계되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세련된 질문으로 요약된다. "짜장[각주:5] 먹을래, 짬뽕[각주:6] 먹을래?"

짜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비용 대비 최대 포만감[각주:7]을 자랑하는 점심밥의 지존이 아닌가? 대국의 소스와 야채와 면발[각주:8]을 선진국의 조리기구[각주:9]를 이용하여 급하고 대차게 볶아 짜고 맛있게 빨아먹는 그 맛은 과연 반도의 민족이 기다려왔던 맛인지도 모른다. 한때 우리는 실로 짜장면이란 것을 한 번 먹어보려고 애쓴 시절이 있었거니와 지금은 정 별미가 생각나지 않을 때[각주:10] 크게 실망스럽지 않은 선에서 선택하는 대단한 메뉴가 되었다. 한편 짬뽕이란 무엇인가? 스트레스 해소[각주:11], 짜장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별미[각주:12], 한번 맛들이면 잊을 수 없는 그 진득한 고추기름의 매운 국물은 또한 우리의 입맛에 크게 벗어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는 짜장보다 짬뽕, 더 나아가서는 짜장을 배격하고 오직 짬뽕인 자만이 있을 정도로 또한 쟁쟁한 선택인 것이다. 지난 몇십 년 간 선조와 선배들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이 두 메뉴를 적절히 '돌려 먹는[각주:13]' 것이 당장 점심을 때우는 가장 간편하고 안전한 방편임을 깨닫고 이를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오늘도 우리는 직장에서, 동아리방에서, 촬영지에서, 투표소에서 묻고 또 묻는다. "짜장 먹을래? 짬뽕 먹을래?"


그러나 과연 우리는 매일, 매주, 매년 이 질문을 되풀이하는 것으로써 점심밥을 먹고 살아가는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인가? 여기에 만족하면 그만인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첫째로 뭐든지 맛맛으로[각주:14] 먹어야 한다는 근본적 욕망[각주:15]이 문제된다. 매일같이 짜장 아니면 짬뽕을 강요하는 일터는 아무리 "중식 제공"[각주:16]이라는 후한 조건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점점 싫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선택이나 고민이 되지 않기 때문이며, 오히려 점심을 매일 직접 골라먹는다는 인간의 즐거움을 말살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어제는 짬뽕 먹었으니까 오늘은 짜장" 따위의 점심을 고르는 태도는 마침내 주문전화번호[각주:17] 또는 다른 종류의 점심밥[각주:18]을 잊게 하고 주방장 위주로 공급되는 점심시간[각주:19]을 만들고 말 것이다. 어느 날 울면이 먹고 싶어 엉엉 울더라도 주방장이 "울면 안 돼" 하면 그만인 점심시간을 원하는가?

둘째로 점심밥의 형태가 본디 다양한 것임을 망각할 위험이 있다. 중식 제공이란 말이 중국식 식사 제공의 줄임말은 아니지 않은가? 중식을 제공해 준다는 곳에 가기만 하면 으레 "짜장이냐 짬뽕이냐" 질문을 받던 필자는 과연 중식 제공이란 중화요리를 제공한다는 뜻이거니 이해했었으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은 바가 있다. 실로 그렇다. 우리는 각자 도시락을 싸 올 수도 있고[각주:20], 다같이 시켜먹을 수도 있으며[각주:21] 몇 개 그룹을 만들어 알아서들 먹고 오라고 정해줄 수도 있다[각주:22]. 우리가 짜장 아니면 짬뽕으로 통일해 시켜먹게 된 것은 과정상, 통념상 그리 된 것일 뿐 어떠한 형이상학적 필연성도 없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의 누적일 뿐이고 따라서 "야 안되겠다 내일부터는 각자 도시락을 싸오자"라고 하더라도 사실 놀라거나 화를 낼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이런 제의에 반기부터 일으킨다. 매번 현금 걷는 문제[각주:23]라든가 메뉴의 다양성 추구라든가 어떤 이유가 있을 텐데 왜 그 이유를 듣는 게 아니라 반대를 하게 되는가?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점심 식사 방법의 생리가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로 '짜장이냐 짬뽕이냐'와 같이 협소한 선택만을 하고 살다 보면 소모적이며 비본질적인 오해와 논쟁과 관심사에 쏠리기 십상이다. 간짜장이니 쟁반짜장이니 해물짬뽕이니 삼선짬뽕이니 사실상 다 거기서 거기인 선택을 가지고 '짜장을 희한하게 먹는다[각주:24]'느니 '진정한 짬뽕이 아니라[각주:25]'느니 취향의 문제를 걸고넘어지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짬뽕 시켜서 양파는 안 먹고 단무지하고만 먹고 있는 사람한테 "야 니가 다마네기[각주:26] 다 먹었냐"라고 무안을 주게 만든다는 것이다. 다마네기가 뭔지도 모르는데다 다마네기를 실제로 맛보지도 않은 사람이 "다마네기가 뭔지나 알아야 먹을 것 아니냐, 다마네기를 줘 봐라"라고 역정내어 싸움이 붙을 때 어떤 이간질 잘 하는 사람[각주:27]이 "아, 다마네기란 단무지의 일본말이야"라고 거짓된 정보를 뿌리면[각주:28] 싸움은 수습할 수 없는데다가 다음과 같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그래 내가 '다마네기'를 좀 먹긴 했어 근데 먹으면 안 되냐?" (사실 그는 다마네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 "안 되지! 난 맛도 못 봤는데 다 없어졌으니까." (사실 그의 앞에 놓여 있던 다마네기들은 이 싸움에 반응하지 않고 묵묵히 짜장만 먹고 있는 그의 옆 자리 몇 명[각주:29]이 다 먹었던 것이다.) "그깟 다마네기 좀 먹으면 어떻다고 그러냐? 나도 돈 내고 먹는 거 아니냐?" "나는 뭐 돈 안 냈냐? 너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야?"


이것이 우리 사회의 꼬락서니다. 지극히 오랜 세월 우리는 점심을 거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벅찼는데, 이제 점심을 챙겨먹는 세계가 된 이후로 우리는 짜장을 동경했고 짬뽕에 매료되어 이 둘만 있으면 점심시간은 어떻게든 언제까지고 만족스럽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렇다고 짬짜면을 시켜먹을 것이냐 하면, 마치 실제로 짬짜면의 인기가 형편없듯이, 그것이 근본적 해결이 될 수는 없다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그렇다고 다시 각자 수렵을 하는 세상으로 돌아갈 것이냐? 그것도 답이 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는 여기서, 서로를 알 만큼 알고 합의를 할 줄 아는 친구들이 누군가의 집에 모여 마냥 점심 문제를 가지고 고민만 하고 있을 때 으레 해 주는 대답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그냥 있는 거 가지고 대충 만들어 먹자[각주:30].

필자는 감히 도전한다. 왜 이게 안 되는가? 아무리 의심하려 해 보아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굳이 어디에 전화를 해서 우리가 먹을 점심을 남한테 시켜야만 하는 상황[각주:31]이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그랬다. 짜장면과 짬뽕은 강력한 추천메뉴였고 신문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점심을 때우는 방법 중 하나일 뿐, 절대 완전한 양면적 선택이 아님은 분명하다. 게다가 우리의 냉장고에는 의외로 지금껏 짜장과 짬뽕과 기타 온갖 별미를 동경하며 주워 오고 기르고 사 오고 쌓아 놓은 식재료[각주:32]가 적지 않다. 게다가 우리들 중 누구도 요리를 할 줄 아는[각주:33] 사람이 없으리라고도 나는 생각지 않는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첫째 점심밥을 먹는 것이요 둘째 즐겁게 다같이 밥을 먹는 것이지, 절대 짜장이냐 짬뽕이냐의 인습에 가까운 기계적 양자 선택을 반복하며 평균 이하의 집단적 만족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다같이 조리하고 상을 차리는 과정은 손이 가고 귀찮고 쉽지 않을뿐더러 시켜먹는 음식과 같은 본새도 나지 않을 것이다.[각주:34]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필자는 다같이 만들어 먹는 점심식사를 가지고 싸움이 일어난 사례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요리를 만드는 과정은 굉장히 많은 합의와 양보와 이해와 협동에 기초하기 때문에 싸움이 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며, 좀 늦어지더라도 모두가 수긍, 만족, 또는 그 이상을 경험할 수 있는 점심밥을 원한다면, 그리고 여태껏 짜장이냐 짬뽕이냐로 어쩔 수 없이 점심을 통일해 왔던 지난 점심시간들을 반복하기 싫다면, 이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시도해 볼 만한 방편이 아니겠는가?

사회란 제사(社)를 지낸 뒤 젯밥 먹으려고 모이는(會) 동료(societas, 소시에타스)들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그렇다. 그렇다면 사회가 점심을 먹는 방법이 짜장 또는 짬뽕 둘 중 하나만을 시켜먹는 것으로 한정될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우리가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그래서 모두가 어느 정도 이해하고 납득한 모양의 밥을 다함께 나눠먹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지어 먹을 정도의 재료가 이미 충분히 우리에게 있다면, 좀 늦어진, 좀 더 탄, 좀더 라면스프 맛이 나는 식단이면 뭐 어떻겠는가. 이제 우리가 먹고 싶어하는 것은 그런 밥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사실, 그런 밥을 지어먹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제 충분히 '놀러온' 것과 같은 경험이 되는 시대에 살고 있고[각주:35] 이제 중화요리만 연속으로 내리 먹는 시절은 지겹기도 하지 않은가.





  1. "단기적 의미에서" [본문으로]
  2. "어떤 사회적 가치/공동선/이득을 추구할 것인가" [본문으로]
  3. (인민의 자기통치 상태, J.S.밀의 최고 이상적 민주주의) [본문으로]
  4. "사회 이념/체제" [본문으로]
  5. "자유자본주의" [본문으로]
  6. "사회민주주의" [본문으로]
  7. "효율/산출량" [본문으로]
  8. "자본" [본문으로]
  9. "제도체제" [본문으로]
  10. "다른 정치/경제체제를 생각할 수 없을 때" [본문으로]
  11. "민중 분노 표출" [본문으로]
  12. "자본주의와는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규범과 시각" [본문으로]
  13. "그때그때 비중을 두어 양자택일하는" [본문으로]
  14. ('이것저것 여러 맛을 골고루'를 뜻하는 우리말입니다.) [본문으로]
  15. "오로지 양극단 체제의 힘겨루기만이 답인가에 대한 직관적 의구" [본문으로]
  16. "형식적/절차적 헌법/국가질서의 보장" [본문으로]
  17. "투표 감각" [본문으로]
  18. "대안적 사회체제" [본문으로]
  19. "파시즘" [본문으로]
  20. "무정부주의 내지는 극단적 개인주의를 꾀할 수도 있고" [본문으로]
  21. "합의된 사회적 가치/이득을 공동으로 추구할 수도 있으며" [본문으로]
  22. "지방분권제 또는 연방제를 실행할 수도 있다" [본문으로]
  23. "사회적 비용의 분담 문제" [본문으로]
  24. "자유를 저해하는 자유주의를 추구한다" [본문으로]
  25. "원조 사회주의를 배반했다" [본문으로]
  26. "복지" [본문으로]
  27. "악덕 매스미디어" [본문으로]
  28. "핵심 개념과 대상에 대한 잘못된 인식의 틀을 제공하면" [본문으로]
  29. "담합한 대기업과 사회 기득권자들" [본문으로]
  30. "양자택일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전혀 새롭고 처음 겪어 보는 선택을 찾자" [본문으로]
  31. "선진국의 사례나 외래 사상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수준" [본문으로]
  32. "자본" [본문으로]
  33. "저력과 역량이 있는" [본문으로]
  34. "전혀 다른 우리만의 방법을 합의하고 도출하고 찾아가는 과정은 비용이 들고 오래 걸릴 뿐더러 본격적인 짜임새를 갖기도 어려울 것이다" [본문으로]
  35. "그런 사회적 시도를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진취적으로 흥미진진한 역사적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이 되었으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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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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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losing to the rain 비에 굴하지 않고

Not losing to the wind 바람에 굴하지 않고

Not losing to the snow nor to summer's heat 눈과 여름 더위에 굴하지 않는

With a strong body 굳센 몸으로

Unfettered by desire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Never losing temper 성질을 내지 않으며

Always quietly smiling 항상 빙긋 웃으며

Every day four bowls of brown rice 끼니는 꽁보리밥에

Miso and some vegetables to eat 된장국에 채소반찬을 먹으며

In everything 모든 일에

Count yourself last and put others before you 나보다 남을 먼저 챙기고

Watching and listening, and understanding 보고 듣고 이해하며

And never forgetting 무엇 하나 잊지 않으며

In the shade of the woods of the pines of the fields 들판 소나무숲 그늘 속

Being in a little thatched hut 초가삼간 아래 살면서

If there is a sick child to the east 동쪽에 사는 아픈 어린이에게

Going and nursing over them 가서 수발을 들어주고

If there is a tired mother to the west 서쪽에 계신 지친 어머님께

Going and shouldering her sheaf of rice 가서 가마니를 들어 드리고

If there is someone near death to the south 남쪽에서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Going and saying there's no need to be afraid 가서 무서워 말라고 다독이고

If there is a quarrel or a lawsuit to the north 북쪽에서 멱살잡이하는 사람들에게

Telling them to leave off with such waste 괜한 짓은 그만하라고 일러 주고

When there's drought, shedding tears of sympathy 가뭄에는 눈물짓고

When the summer's cold, wandering upset 냉해에는 한탄하는

Called a nobody by everyone 남들이 특별히

Without being praised 칭찬하거나

Without being blamed 욕하지 않는

Such a person 그런 사람이

I want to become 되고 싶다




근데 왜 영어로 읽으니 더 감동적일까?


Posted by 엽토군
:

최근 트위터

2012. 7. 11. 10:49

요즘 합법적으로 살기 참 힘들다.


우리는 ㅋ 세대다.


영적 나르시시즘. 예수님이 지존하신 구주가 아니라 그냥 구원자 중 하나일 뿐인데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믿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는 뭐 그런 주의. 떫다.


그러나 참 기쁨은 없고 욕망만이 있는 이 세상! 이미 너무 많은 걸 가졌으므로 죽어도 개혁하기 싫어하는 이 세계! 오 주여


"신은 실수를 하지 않는다"라는 논점은 최선이 아니다. "그는 '의도한다'"가 적절한 이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덜 의도되게 만들어라.


난 소나기가 좋다. 갑자기 쏟아지는 듯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은 그 소낙비를 볼 때 하나님의 열정을 생각한다.


"가난과 음란. 둘은 서로 연관이 있다." 아멘 주님. 물질적 빈곤과 정서적 빈곤.


내 일정을 관리하기 시작하셨다. 눈에 보인다.


삼성의 몰락 그 이후를 대비하라.


잔치와 이벤트가 너무 많다. 이제는 일할 힘을 얻기 위해 잔치를 여는 게 아니라 잔치를 유지하기 위해 일을 한다. 걱정된다.


하나님께 트윗해라.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드려라.


또 웬 여자분이 내 옆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으시다. 이번엔 지하철이다. 그래 우리가 이렇게 정처 없이 피곤하게 살지 에휴

음 근데 내가 지금 이 티를 거의 사흘연속 입어서 쩔어 있는데 -_-; 저기요 혹시 제 냄새 땜에 편히 못 주무시고 계신가요?


자유는 목적도 가치도 아니다. 자유란 그저 조건이다.


육이오 62주년. 오늘날 우리가 싸우는 또 다른 전쟁은 무엇인가?


난 정말 죽어도 꼰대는 되기 싫다.


이런 식으로 거짓말한다.


신적 시각 능력에 대한 추구. 타임랩스, 미니어처 동영상, 파노라마 사진, 초고속 카메라... 이런 것들이 요즘 너무나 유행이다. 음.




트위터는 따로 남겨놓지 않으면 다 사라져 버리는 거 같아서 안타깝다. 해서 좀 모아봤음.



http://umz.kr/043Y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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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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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디지털방송... 어떡할 거야?;;





김연아 선수 은퇴선언 기념 재고방출.jpg

와 지금 다음클라우드>가시내 폴더 보는데 소재가 다 썩고 쩔었어 다 새로 그려야돼 우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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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어제 카톡

2012. 6. 20. 19:55

종교계 지도자들간의 종교통합 관련 영상 얘기가 나와서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얘는 버스에 타고 갔고 나는 왠지 이 얘기를 정리해봐야 할 거 같아서 한번 적어 주려고 했었다. 근데 생각보다 길어졌어...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딤전1:3-4)




P.S. 아따 이건 보너스랑께? 열어보랑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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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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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13

2012. 6. 8. 14:37

(시험 시작 10분 전, 마지막으로 예상답안을 점검하고 있다. 교수가 미리 제시한 문제 1번과 2번 문제는 필수, 3~5번 문제 중에서 택일하는 것으로 알고 훑어보고 있다. 1번 답안은 완벽하다. 2번 답안은 자신없지만 하여튼 차악의 답안으로 만들어놓기는 했다. 조교가 나타나 절대평가에 해당되는 응시생 수를 칠판에 표기한다. 이윽고 교수가 나타나 1~5번 문제를 전부 확인차 보여준다. "1번 2번 중에서 하나 골라서 푸는 거 알죠?"라는 교수에 말에 당황하고, 뒤이어 1번 문제의 결정적 힌트를 줘 버리는 교수를 보며 망연자실을 느낀다.) 헉.

...

음... 이럴 땐 물어봐야 될 거 같아서 물어보는데요, 뭐 풀죠?

2번 풀어.

네? 아뇨, 저기 잠깐만요, 다들 1번을 풀 게 뻔하고, 누가 봐도 이건 정확한 정답이고, 왜 제가 굳이 2번을 풀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저는 정말 학점 제대로 잘 받고 싶고...

2번 풀라니까.

아니 그니까요...

...

...

...

네. 어떻게 되는가 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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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일어나! 아침이다!


아따 참말 오래간만이죠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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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근황

2012. 5. 15. 13:12

이게 절대 내일 있을 1년차 야비군훈련을 앞두고 싱숭생숭해서 쓰는 건 아니고...

거의 두 달 뒤[각주:1]면 전역 1주년이 됩니다. 참 보람차고 빽빽하게 지낸 한 해였습니다.


머리 꼬리 자르고 통보하자면, 제가 지금 잉여가 아닙니다.

주로 @SYWAM과 @theveryflier(그리고 애니메타 기록갱신)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이거 하고 나니 다른 거 할 여력이 안 남아버리는 반도의 흔한 고자라니! 내가 고자라니! 이십대 미청년. ㄳ


자연히 블로그 관리가 소홀해지고 있습니다.

방송국 가시내라든가 폰트 제작이라든가 번역질이라든가 영 못하고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몹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죠시라쿠가 출동하면 어떨까? 여! 자! 락![각주:2]

하여간 좀 창조적인 일과 결과물로 여러분을 맞지 못하는 점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최근 현안들에 대해서 간단히 적겠습니다.

1. 레이디가가로부터 촉발된 교리와 성관념 갈등 문제: 나는 이것조차도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것은 관념적, 피상적, 추상적 인본주의와 근본적, 교조적, 부차적 신본주의의 대결구도입니다. 내 생각, 내 몸, 내 성별과 내 목숨이 내 것이라는 생각과 그렇지 않은 거라는 생각의 부딪침 말이죠. 보시는 바와 같이 여기선 논리적 타협점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동성애를 싫어하고 사람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2. 총선 이후 진보진영 낙착 문제: 그들이 국민은 대변하지 않고 자기들을 대변하는데 당연히 스스로 걸려 넘어지게 돼 있었던거죠. 물론 과대평가된 진보신당의 지지도 문제였습니다. 이제 문제는 이명박을 반대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는 건 아니라는 걸 얼마나 빨리 깨우치고 오답노트를 만들어 내느냐는 문제인데, 여전히 딴지일보는 정신 못차리고 모두가 병신인 줄 아는 정권을 병신이라 부르는 에너지 소모를 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 나꼽살, 다 팟캐스트로 다 다운받아놓고 못 보고 있습니다.

이명박 퇴임까지 300일이 안 남았으니 그걸로 버팁시다.[각주:3]


P.S. 저에 관해 가장 빠르게 아시려면 트위터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1. July 18, the independence day of yuptogun [본문으로]
  2. 죠시라쿠 죠시라쿠 그러는데 요즘 일본 애니/라노베 시장이 제목을 이따위로 짓는 것에 분개하여 그리고 현지인이 느낄 감상을 고려하여 저는 じょしらく를 여자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오역된 초역을 기대하시라. [본문으로]
  3. 나 이번 총선때 찍은 16번 정당투표 이거 어디갔어? 내 표 어디갔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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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기획 강령

2012. 4. 26. 16:22

기획이란 없던 일을 만들어내는 짓이다. 따라서 태반은 되지 않는다. 그게 현실이다. 바로 그것, 무로의 회귀, 보통은 실현되지 않는다는 현실과의 사투가 바로 기획이다. 그 싸움에서 이겼을 때, 이 세상에 꼭 필요했던 무엇이 하나 탄생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전율과 경외감 속에서 기획하라.

 

  • 제1강령: 혹해야 한다.
    치명적인 매력이 있어야 한다. 보통은 재미와 우스움이지만 그 밖에도 오리지널함, 아름다움, 기본 욕구를 해소시켜 줌, 공감 등의 기본적인 인간의 선호가 존재하는데, 이것을 그 기획만의 별다른 모습으로 충족시켜 주는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을 갖춘 것을 보고 혹한다고 한다. 절대 당신의 이름을 드높일 생각으로 기획해선 안 된다. 그런 사심이 투입된 것치고 근본적으로 혹하는 것을 나는 아직 찾지 못하였다.
  • 제2강령: 될 것 같아야 한다.
    될성싶지 않은 것에 투자할 바보는 없다. '되면 한다'라는 말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그 기획에 투자하거나 투신할 사람들이 좋은 뜻으로든 나쁜 뜻으로든 기본적으로 취하는 태도가 바로 될성싶으니까 까짓 한 번 해 본다는 심정인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어조를 바꾼다. 명심해야 한다. 만약 될 것 같지 않겠으면 될 것 같은 정도와 방향과 방법과 대상으로 바꾸어서라도, 될 것 같게, 그럴듯하게, 하려면 할 수는 있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기획이 통과된다.
  • 제3강령: 되어야 될 일이어야 한다.
    보통 기획이란 아주 단순한 개인적 일차적 욕망 또는 갈구에서 시작한다. 그 일들의 태반은 굳이 이루어질 필요가 없거나 이루어져선 안 되거나 이루어졌을 때 별로 좋지 않았던 일이다. 그 기획이 실현되어야 하는 이유를 찾아라. 내 기준으로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들먹일 수 있을 때까지 찾아야 한다. 듣기 좋은 말로 둘러대라는 뜻이 아니라 스스로가 납득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진짜 이유를 탐험해서 발견하라는 뜻이다.
  • 제4강령: 내재적인 지구력이 있어야 한다.
    지구력이란 대단한 힘이다. 무슨 일이든 똑같이 30년간 하면 TV에 출연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기획을 이끌어가는 근본적인 힘은 재력도 인력도 아니다. 기획 그 자체의 지구력과 치명적인 매력이 그 기획을 끝까지 끌고 가는 법이다. 1주 전에 꺼냈던 기획이 오늘 막막하다면, 당신은 기획을 한 게 아니라 개꿈을 꾼 것이다. 어떡하면 이것을 계속하여 이끌고 갈 수 있게 할까를 최우선 해결 과제로 올려놓고 풀어라. 여기엔 인력과 재원의 문제가 포함된다. 투자금이 없어 기획하지 못한다는 것은 틀린 표현이다. 기획에 장기적 생존 능력이 없어 보이니까 투자하지 못하는 것이다.
  • 제5강령: 그 기획의 설명을 아주 길게도 아주 짧게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 요컨대 스스로 뭘 기획하고 있는 것인지 더 명확하고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기획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사전 전제 설정 설명이 있다. 이게 많으면 많을수록 설득력이 떨어진다. 딱 세 문장으로, 딱 두 문장으로, 딱 한 문장으로 그 기획을 설명해본 뒤 1000자 이상의 글로, 3000자 이상의 글로 다시 설명해 보자. 할 수 없다면, 지금까지 당신은 그냥 망상을 한 것이다.
  • 제6강령: 혼자만 재밌어하는 것인지 끊임없이 점검하라.
    이것 역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여기서의 '혼자'란 기획자 본인만 뜻하지 않는다. 기획자 주변, 기획자의 근친, 기획자에 대해 다소나마 알고 있어서 객관이라 할 수 없는 모든 시선을 뜻한다. 객관적인 감상을 찾아라. 누군가가 욕에 가까운 비판을 하고 있다면 이는 매우 좋은 징조이므로 꼼꼼히 살펴 읽고 그 욕한 사람이 다시 더 욱할 만한 패치 버전으로 혹은 그 사람이 팬으로 변할 만한 어떤 반응으로 보답해 주어라. 그런 것이 없었다면, 당신은 학예회를 개최하고 있었을 뿐이다.
  • 제7강령: 맨 처음 생각했던 것에 매달리고 또 매달려라.
    당신은 그 맨 처음 아이디어 때문에 나머지 아이디어를 생각한 것이다. 절대 나머지 아이디어 중 일부 때문에 그 맨 처음 아이디어가 괜찮았던 것이 아니다. 수많은 망상 중 하나로 치부할 수 있었던 그 발상을 그렇게나 부풀리게 만들었던 그 최초의 아이디어를 잊지 마라. 또 기억하고 또 고집하라. 여건이 안 돼서 맨 처음 것은 실현하지 못하게 된다 할지라도, 하여튼 절대 잊지 말고 어떻게든 그것을 실현시켜 소원 성취해줄 것인지를 고민하라. 10년 이상 유지되는 기획에는 항상 초심이 지켜지고 있다.
  • 제8강령: 말로 개괄할 시간이 있으면 실행해 본 다음 그것을 보라.
    혼자 머릿속으로만 혹은 모두가 말로만 뭔가를 구상하는 회의실에서는 일이 될 것 같지만 사실은 될 일도 안 된다. '우리가 보고 싶어했던 그것'이 눈앞에 실물로 불완전하게나마 나타나면, 그전까지의 이러니저러니 하는 말장난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고 논의는 바로 디테일로 넘어가게 되어 있다. 회의를 느닷없이 중단시키고 진척된 내용을 실현해 보라. 누워 있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불을 켜고 시작하라. 그것이 싫다면, 당신은 그냥 '나 이런 창의적인 사람이야' 운운 거들먹거리는 게으름뱅이에 불과하다.
  • 제9강령: 일반 대중이 실제로 접할 분량의 최소 3배 이상을 제작하라.
    한마디로 이것은 생각의 뿌리를 내리라는 의미이다. 식물의 잠재력은 뿌리에 있고 기획의 잠재력은, 나중에 따로 비하인드 설정이랍시고 공개하지 않으면 아무도 몰랐을,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발상과 재료와 구상에 있다. 누가 알아줄 것을 기대하고 구상하지 말라. 당신이 혼자 재밌어할 만한 끝없는 비밀 이야기를 쓰지도 말라. 그 아이디어의 무의식을 만들라는 말이다. 프로그래머들 버그 잡는 심정으로 왜냐는 질문, 어떻게 그러냐는 질문을 천번만번 계속하라.
  • 제10강령: 현실을 직시하고 인정하고 뛰어넘어라.
    사실 하나. 현실에서, 당신의 기획을, 정말로 재밌게 지켜보는 사람은, 전혀 없다. 사실 둘. 현실은, 당신의 기획이, 없어도, 잘 굴러간다. 사실 셋. 현실에, 당신의 기획이 실현된다 하더라도, 변하는 건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당신은 천재가 아니다. 당신이 나타나서 이 모든 중원 무림을 평정할 수 있을 거라고 착각 좀 하지 말라.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진실이 있다면, 평범한 몇몇 인간이 아이디어 몇 개에 회까닥 돌아서 돈이니 평범한 가정이니 목숨이니 하는 것들을 팔아치워 그 발상에 죽자고 파고든 결과가 그 수많은 천재들이었다는 것이다.

 

쓰고 나니 참 무의미하고 서점 평대에 널렸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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