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색해 들어오신 분들께: 이 글은 미로에 관한 글이 아니라 종교와 과학에 관한 글입니다. 미로 그림을 찾으시려면 이미지 검색을 활용하면 어떨까요.
어릴 적 미로를 꽤 많이 그렸었다. 그런데 내가 미로를 그렸던 이유는 완성된 미로를 보고 흐뭇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들고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풀어보라고 시키기 위해서였다. 순진한 친구가 연필을 들고 길을 찾기 시작하면, 나는 옆에서 그가 출구로 나올 때까지 그걸 지켜보며 정말 두근거리는 즐거움을 내내 느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순간은, 내가 의도했던 대로 그 녀석이 함정에 빠질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신은 없다며 유전자의 진화, 생물과 무생물의 모호성 등을 열나게 연구한다. 종교계에서는 과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디서 감히 신이 없다고 대드는 거냐며 들고일어나야 하나? 내 생각인데, 오히려 종교계에서 팔 걷어붙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종교재단에서 연구자금 지원도 하고, 신학대 교수와 학생들이 과학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교회나 성당, 절이나 모스크에 다니는 과학도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신앙동지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월적 존재가 분명히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이 세상을 미로 그리듯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사람이 감히 그 피조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연구하고 뜯어보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출구를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로를 그리는 사람은 사람들이 함정에도 빠져 보고 막힌 길도 가 보면서 마침내 자기가 계획한 출구로 나올 수 있기를 바라지, 옆에서 이게 길이라고 손가락으로 짚어주지 않는다. 미로찾기를 하던 사람들은 때때로 '아이씨 뭔 미로가 이렇게 복잡해'라며 벌컥 짜증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로를 그린 사람 입장에선 그것마저도 '설계'에 들어가 있던 일이다. 때로는 찾아가고 있는 길이 출구쪽과 정 반대로 향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게 맞는 길이라면, 거기선 오히려 그 방향을 주저없이 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학에 어떤 성스러운 목적을 두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성스러운 사람들이야말로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았다. 참말로 종교계에서 크게 잘못한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진지하게 배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구가 세상의 거의 전부라는 생각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우주관을 보고 하나님이 더욱더 위대하신 분임을 보았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갈릴레이를 유죄판결한 것보다 훨씬 미로를 빨리 찾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08.04.10 - 오늘 대학도서관에서 처음 대출을 받아 이런 책을 읽노라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건 옥스포드 대학 철학자가 주장한 내용이라고 한다. 솔직히 읽으면서 "?!"했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왠지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P.s
혹시 몰라 적어둔다. 세상과 자연을 미로라고 비유한다면 입구와 출구는 각각 화두와 깨달음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소재와 주제가 연결이 힘들다. 논술에서 이렇게 쓰면 안 되겠지만 아마 거기선 이런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좀더 고쳐쓰고 더 읽고, 아니지, 그냥 생각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난 조금 있으면 만 18세가 된다.
P.s 2
외조부 상(喪)을 당해서, 얼마간 자리를 비웁니다.
어릴 적 미로를 꽤 많이 그렸었다. 그런데 내가 미로를 그렸던 이유는 완성된 미로를 보고 흐뭇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걸 들고 친구들이나 어른들에게 보여주며 풀어보라고 시키기 위해서였다. 순진한 친구가 연필을 들고 길을 찾기 시작하면, 나는 옆에서 그가 출구로 나올 때까지 그걸 지켜보며 정말 두근거리는 즐거움을 내내 느끼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순간은, 내가 의도했던 대로 그 녀석이 함정에 빠질 때였던 걸로 기억한다.
많은 과학자들이 신은 없다며 유전자의 진화, 생물과 무생물의 모호성 등을 열나게 연구한다. 종교계에서는 과연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어디서 감히 신이 없다고 대드는 거냐며 들고일어나야 하나? 내 생각인데, 오히려 종교계에서 팔 걷어붙이고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필요하면 종교재단에서 연구자금 지원도 하고, 신학대 교수와 학생들이 과학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하고, 교회나 성당, 절이나 모스크에 다니는 과학도들이 적극적으로 다른 신앙동지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월적 존재가 분명히 있다면, 아마도 그는 이 세상을 미로 그리듯이 지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왜냐면 사람이 감히 그 피조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따지고 연구하고 뜯어보는 것을 내버려두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출구를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보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미로를 그리는 사람은 사람들이 함정에도 빠져 보고 막힌 길도 가 보면서 마침내 자기가 계획한 출구로 나올 수 있기를 바라지, 옆에서 이게 길이라고 손가락으로 짚어주지 않는다. 미로찾기를 하던 사람들은 때때로 '아이씨 뭔 미로가 이렇게 복잡해'라며 벌컥 짜증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미로를 그린 사람 입장에선 그것마저도 '설계'에 들어가 있던 일이다. 때로는 찾아가고 있는 길이 출구쪽과 정 반대로 향하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만약 그게 맞는 길이라면, 거기선 오히려 그 방향을 주저없이 향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과학에 어떤 성스러운 목적을 두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게 아니라, 성스러운 사람들이야말로 과학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갈릴레이는 지구가 돈다고 말했다가 종교재판을 받았다. 참말로 종교계에서 크게 잘못한 일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며 진지하게 배웠어야 했다. 그랬다면 지구가 세상의 거의 전부라는 생각보다는 훨씬 큰 규모의 우주관을 보고 하나님이 더욱더 위대하신 분임을 보았을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갈릴레이를 유죄판결한 것보다 훨씬 미로를 빨리 찾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08.04.10 - 오늘 대학도서관에서 처음 대출을 받아 이런 책을 읽노라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주의 가해성(intelligibility), 즉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설명을 필요로 한다고 스윈번(Richard Swinburne)은 주장한다. (…) 과학적 이해 방식 그리고 다른 이해 방식들이 가지고 있는 바로 그 이해 가능성(comprehensibility)이 신을 가리킨다. 간단히 말해, 설명가능성(explicability) 그 자체가 설명을 요한다는 논증이다.
이건 옥스포드 대학 철학자가 주장한 내용이라고 한다. 솔직히 읽으면서 "?!"했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이렇게도 표현하는구나. 왠지 책을 더 읽고 싶어졌다.
P.s
혹시 몰라 적어둔다. 세상과 자연을 미로라고 비유한다면 입구와 출구는 각각 화두와 깨달음으로 대응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소재와 주제가 연결이 힘들다. 논술에서 이렇게 쓰면 안 되겠지만 아마 거기선 이런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좀더 고쳐쓰고 더 읽고, 아니지, 그냥 생각을 뜯어고칠 필요가 있을 거 같다. 난 조금 있으면 만 18세가 된다.
P.s 2
외조부 상(喪)을 당해서, 얼마간 자리를 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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