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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정리는 안된 잡감들. 쓰(려)고 보니 순 꼰대소리인 부분 ㅇㅈ합니다.

현재 이 나라의 청년 세대에게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관념은 아주 만연하고 광범위하다. 공감을 사기 쉬워서 콘텐츠 제작이나 칼럼, 기사 작성에 많이들 이용했고 나도 그랬다. 심지어 “헬조선”의 지옥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핵심 키워드로서 청년 사회 붕괴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너도나도 아주 즐겁게 이생망 이야기를 했다. 그런 서사의 생산과 소비는 과연 유효하고 유익하며 유의미할 것이라 믿었다.

재수생과 반수 이야기 - Sepia☂

그러나 이런 만화가 디씨에서 나와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형국이 되고 나면 이제 ‘이번 생이 망했다’는 썰과 탄식은 오히려 하나의 장르, 좀 나쁘게 말하면 하나의 타령조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핵심은, 우리의 삶이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기록해 노출하고 묘사하는 일의 사회적 효용이 과연 그렇게 긍정적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서사의 생산 양상은 흡사 386, 486들이 송강호와 황정민을 앞세워서 그들의 젊은 날을 스크린으로 보상 및 상찬받고 싶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동일한 점은 다들 모르지 않는 특정 세대의 목격담이며 경험담, 그들이 특정적으로 공유하는 정서와 사상을 굳이 예술 장르의 형태를 빌어 전시한다는 것이고, 차이가 있다면 ‘넥타이 부대’들은 그래도 뭔가 해봤다(해본다)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데 비해 ‘청년들’은 결말부를 증발 내지 페이드 아웃시켜 버린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는 확실히 그 세대가 내다보았던 미래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386, 486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주인 의식이 충만했다면 그 직후 세대는 바로 그들, 삼촌 외숙부 할아버지뻘들에게서 “참교육을 시전”당한 입장이라 이렇다할 미래관 자체가 각별히 없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시궁창으로서의 현재, 그래도 한때는 퍽 멋모르게 즐거웠던 과거, 그리고 “이번 생은 분명 망했다”라는 대책 없고 확고부동한 결론뿐이다.

그런데 이 결론에 아무런 다음 스텝이나 돌파, 타개의 수가 전혀 없다 보니, 이 세대는 지금 이 결론의 무한 소급과 재생산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 만화가 그렇다. 현재 저 만화는 “공부 자극 확시켜주는 만화”로 홍보되어 유포되고 있는데, 여기서 아주 독특한 생산-유통-소비 행태가 관찰된다. 만화 줄거리 자체는 ‘별 노력 없이 그냥 가는 대로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인데, 이를 유통하는 측은 공부라는 노력이 없었을 때 이렇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아마 동시에 소비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디테일 오진다”라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거로서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주로 같은 세대인 이 만화의 소비자들은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극화된 주인공을 욕하는 것—그리고 작품이 원하는 대로 그 감상에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을 주된 감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생망이라는 장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해도 좋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이것은 장르 예술의 형식이고 소비 패턴이다. 그 장르에만 나오는 요소들, 그 장르가 천착하는 정서와 논리 구조의 세팅, 그 장르에서 응당 받아야 할 감상과 교훈 등이 정형화될수록 그것은 더욱 확실한 장르가 된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 특정한 느낌과 생각이 반복적으로 공고해지는 것을, 이 만화를 포함한 꽤 많은 매체와 콘텐츠에서 점점 목격하고 있다.

문제는, 이생망이라는 장르가 주는 감상이 퇴폐미보다는 퇴폐 그 자체에 더 가까우며, 이 장르에 세팅되어 있는 가치와 관점과 관념 체계가 다분히 퇴행적이랄까 후진적이라는 데 있다. 퇴폐미는 적어도 엄숙주의에 대해서는 반성을 촉구하는 데 비해 퇴폐 자체는 어떤 것도 반성하지 않는다(오히려 그런 것 따위 반성하지 않아도 좋다는 전제가 다분한데, 특히 이 만화의 결말부가 어떤 장면으로의 이행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압축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너(나)는 이마만큼 쓰레기 새끼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도 않냐” 같은 말들은 정말로 “공부 자극”을 시켜준다기보다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일으켜 그냥 자기의 ‘쓰레기 같음’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정말 그러냐는 얘기는 묻지 마시라 그냥 이것 다 내 근거 없는 잡감이므로.

이 장르, 현시창 이생망 장르에 가장 가까운 역사상 유사 사례는 신파극이라고 보여진다. ‘불쌍한 새아가, 못된 시어머니’ 등으로 촌스럽게 정형화된 비극들은 분명 특정 세대 특정 집단에게는 지극히 유용하였으되 지금은 심지어 공중파 아침 드라마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장르화된 신파극을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간단하게도, 우리가 정말로 그런 세상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학의 미학으로 점철했던 신파극이 한물 갔듯이, 아주 정교하고 정당하며 말리기 어렵고 모두에게 쉽게 전파되는 자조의 미학으로서의 이생망 역시 적절한 시점에 종말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다만 이 장르가 한 세대의 뇌리에 어떤 정서를 얼마나 각인할 것인가가 우려스럽다. 실로 우리는 신파극이 낳은 손녀뻘 장르, 막장 드라마를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론은… 장르로서의 이생망, 장르로서의 현시창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장르는 다분히 자기파괴적이랄까 지속 불가능하달까 바람직하지 않달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별로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거니와 자꾸 되풀이할 소리가 못된다. 할 거면 어떤 타개, 돌파, 최소한의 확실한 골계미나 퇴폐미를 확보하고 가야 한다. 이런 장르, 현재 청년 세대가 자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표현상의 장르화를 이제는 덮어놓고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의 이번 생은 확실히 망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망했는지까지만을 거듭 되풀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일이 과연 어떤 예술적 역사적 공헌을 할 것인가 그런게 있긴 할까 하면 그건 의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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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2017.01.10 21:49

최근 읽고 있는 텍스트는 위키문헌에 올라와 있는 각종 연설과 선언, 문학 작품들이다. 위키인용 랜덤도 가끔 돌리고 있다. 한국어 위키인용집은 좀 빈약해서… ㅋ 그리고 팟캐스트로 KBS 라디오 시사고전을 틈틈이 조금씩 듣고 있다.

사실 알은 지는 3년쯤 됐는데 중간중간 구독을 쉴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건 요즘 꾸준히 들을 계기가 있어 다시 듣고 있고, 또 뭐 있더라… 아 그래, <아수라>, <라라랜드>, <너의 이름은.>, <아가씨>처럼 모두가 다 넋놓고 텍스트로 읽고 있는 작품들은 가급적 안 읽을 작정이다.



여기에는 뭐 우열의 차원이 아니라 원초적인 것이냐 부차적인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위키문헌 랜덤을 돌리다 보면 원초적인 무엇들과 마주치곤 한다. 김명순이라는 역사상의 여성주의자를 만나기도 하고, 환단고기 본문을 읽게 되기도 하고, 이명박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의 기자회견문이나 박근혜의 개헌 제안 국회 연설 원문을 접하기도 한다. 그것들은 분명 오늘날 숱한 트윗과 카드뉴스와 소리 소문으로 가공 각색되어 전해지는 것들이지만, 따지고 보면 그 원문을 내가 직접 정독한 적은 없지 싶어서, 전혀 새롭고 경이적인 경험이 되고 있다.


라디오 시사고전도 마찬가지다. 3분이라는 시간이 짧은 편이고, 그걸 대다수 청취자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다 보니 좀 안 맞는 예시나 대수롭지 않은 군말들도 왕왕 들어가곤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지키고 있는 한 가지 원칙, 동양 고전 속의 원래 한문을 제대로 된 방식으로 새겨 읽고 뜻을 푸는 것만으로도 이 기획은 충분히 훌륭한 데가 있다. 덕분에 나 같은 사람도 “불학자는 수존이나 행시주육이라” 같은 문자를 쓰고 산다.


방금 잠깐 밝혔지만, 요즘은 모든 텍스트가 아무 컨텍스트에 집어넣어도 쭉쭉 흡수되도록 굉장히 잘 커팅되고 소화되고 표백되어 다른 뭔가의 재료로만 쓰이고 있다. 흡사 식자재 가공육과 같다고나 할까. 요즘 시절에 좋은 제작자, 훌륭한 크리에이티브란 바로 이 식자재 가공육에 무슨 양념을 치고 어떤 조리법으로 끓여서 어느 국물에 담가 내놓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걸 잘 한 것이 그 무슨 영화니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니 하는 것들인 모양이다.


마침 우연찮게도 신카이 마코토 감독 역시 이르기를 <너의 이름은.>을 짓기 꽤 오래전에 한동안 일본 고전 문학을 탐독하면서 서로의 몸이 바뀌는 설정을 접할 일이 있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그렇다면 그 고전 문학은 바로 그 당대 시절의 일본 대중에게 <너의 이름은.>만큼의 감동을 주던 무엇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과연 이게 우연일까. 난 아니라고 본다. 요즘 사람들이 굉장한 영화라고 칭송하고 있는 작품들이 다들 이런 식이다. 고전 텍스트라는 이름의 몇 가지 식재료를 가장 현대적으로 버무린, 어쩌면 그뿐일 수도 있는 결과들.


세상이 비인간적이기 짝이 없어져서, 우리 중 대다수는 2시간 정도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할 시간이 영화 볼 때 말고는 없는 지경에 왔다. 그래서 사람들은 라라랜드와 너의 이름은.에 지나친 의미 부여와 과대 해석을 수행한다는 감이 있다. 사실 그 패러디 포스터들은 벌써부터 질리고 언론 보도가 나가는 시점에서는 이미 식상하다는 감이 있다. 사람들의 일반 교양 수준이 지금보다 책 한 권 정도만 더 높았더라면 이 영화들은 그냥 잘 만든 영화, 논술용 영화 정도로 적당하게 언급되고 지나갔을 것들인데, 참, 싶다.


그래서 일부러 안 볼 생각이다. 사실은, 다들 하도 떠들어서 이젠 1도 보지 않았는데도 어느 정도 그 내용이 추측이 된다. <아수라>는 그냥 누가 착하네 나쁘네를 설명할 것 없이 내 눈에 거슬리는 새끼는 다 조져버린다는 이야기일 테고, <라라랜드>는 현실적이기만 한 현실에서 잠시나마 완전한 삶을 누리는 촌각에 대한 환상일 테고, 등등 말이다. 썩 틀리지 않지 않은가? 이렇게 잘 응용되고 가공 조리되어 무슨 맛일지 대충 짐작이 되면, 안 먹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다.


쓸데없이 길게 썼는데 결국 요약하자면 난 응용 제작된 상업 콘텐츠들보다는 좀더 원초적인 텍스트들을 보려고 한다. 요즘 그게 내 취향이기도 하고, 그게 불편한 팝업을 두어 개 줄이는 원초적인 방법일 거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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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덧붙이는 글.


  1. 세상에 CIA보다 많은 것을 아는 집단이 존재하지 않는 오늘날, 사실은 예로부터 본질적으로, 지도란 정보가 아니라 데이터다. 그것도 개중 가장 단순하고 중립적이며 기계적인 축에 드는 데이터. 지도가 정보가 되는 순간은 둘 중 하나다. 거기에 정말 시시콜콜하게 누가 어디에서 뭘 한다가 다 적혀 있거나, 아예 전인미답의 땅의 지도이거나.

  2. 사실 이 나라에서는 지도라는 데이터로부터 정보를 뽑아내는 사고력을 발휘할 일이 퍽 드물다. 예를 들어 쉽게 말하자면, 한 동네의 사회지리적 정황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그 동네 전담 택배 기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소리.

  3. 초딩들의 휴대폰으로도 GPS를 잡는 오늘날 “기밀 군사지도”는 형용모순에 가깝다. 기밀 지도란 결국 정보 비대칭성으로 우위를 점하는 전략의 핵심 요소인데, 현대 전술에서 정보 비대칭이 뭐 얼마나 큰 변수인가? 핵미사일 개수가 진짜 변수지.

  4. 청와대가 어디 있는지(효자동 뒤에 있다), 국정원이 어디 있는지(헌인릉 뒤에 있다), 서울화력발전소가 어디 있는지(상수동 뒤에 있다)를 지도에서 숲 이미지 합성시켜 누락시키는 게―네이버는 진작부터 그렇게 했고 다음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고치고 있다―과연 군사 안보일까?
    진짜 군사 안보란 건 지구상의 위도-경도 좌표로부터는 좀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예컨대 그라운드 제로 사방 5km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핵심 정보와 지휘권과 전투력이 손망되지 않게끔 하는 일이 군사 안보 아닐까? 다른 예를 들자면, 누구나 청와대에 들어와서 관광하고 구경하고 다 하지만 국가 기밀은 기밀대로 잘 지켜지는 그런 것이―백악관이 그렇게 하는데―군사 안보가 아닐까?

  5. 지도 유출을 두려워하는 논리의 기저에는 특정 장소에 외부 유입이 들이닥치는 순간 모든 게 끝장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건 보안도 아니고 전투도 아니고 그냥 농성이다. 산성 쌓고 들어가서 문 닫고 스텔스 위장막 쫙 펴다 놓고 그저 버티는 복지부동 말이다. 지도가 단지 데이터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마인드셋이 정립돼 있는 게 너무 뻔히 보여서, 그 점이 우스울 따름이다.

  6. 그나마 오늘날 지도 데이터는 민간이 상업용으로 만드는 것이 태반이다. 그 지도에도, 버스 정류장들 이름 다 참고해서, 어느 군부대 앞인지 몇 사단 예비군 훈련장인지 대충 다 써 있다. 이래도 지도가 그렇게나 국가의 안보에 치명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되는가? 솔직히 말해서, 지휘통제소 천막에 쪼그리고 앉아 아세테이트지에 소대 마크 중대 마크 그려넣기 바쁜 높으신 분들의 전쟁놀이를 위해 우리가 불편을 감수해야 할 이유가 뭔가?


에효 모르겠다. 바닷가 마을이니까 물 포켓몬 등장 확률 UP 같은 게 데이터에서 정보 만들어내는 발상인 건데 우리나라에서 누가 이런 걸 하겠나. 구더기가 그렇게 무섭다는데 장은커녕 김치 한 포기도 담그지 말아야지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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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활임금과 기본소득

급하고 추하게 고도산업화된 나라라서인지 이곳에서의 일〔勤務〕이란 일종의 속죄 내지 고행이 되어 있다. 다들 논다는 것, “숨만 쉬고 사는 것”을 끔찍하게 금기시하고 두려워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공포와 금기시의 이유가 사후적—수입이 없어지거나 생활에 지장이 가거나 파산 상태가 되거나 등등—차원이 아닌 사전적 차원, 즉 사상적/이념적인 차원에 있다는 점이 슬프게 흥미롭다.
모두가 이미 아는 바, “취업 안 하면 어떡해?”의 발화에서 장래 일에 관한 구체적 논의는 의도되지 않는다. “취업을 안 할 수는 없다”라는 무의식적 규범을 스스로에게 돌려 말해 들려주는 것이 의도되어 있을 뿐이다. 일을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그냥 넌 그럼 뭐 할 거냐고 묻겠지. 할 거 없으면 취업이나 하라는 식으로.
일해서 돈 벌어 식솔을 부양하는 것이 유일하게 허용된 긍정적 선택지인 마당에 실존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생활이라는 실존을, 인간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수입을 보장하자는 것은 그래서 단순 생떼가 될 수 없다. “수입”으로 대표되는 자유자본시장경제를 포기하는 비용보다는, 그 수입의 최저선을 인격적 수준으로 합의하는 비용에 우리는 더 지불 용의가 있다.

2. 패션좌파와 진보적 정치문화의 의제

패션좌파의 등장은 필연적이었다. 결국 소비적 문명 자체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어차피 똑같은 아메리카노 사 마실 바에는, 앉아서 돈백만원 벌자고 꼼지락거리는 구차한 삶보다는 자본권력이며 체게바라며 운운 꿈과 이상을 늘어놓는 것이 더 “쿨”한 것이다. 좌파성이 라이프스타일과 분리 가능한 별개체로 기능할 수 있는 이상, 윤서인이 맨날 두드려패는 헬조선 타령 깨시민들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온전히 기성 좌파의 직무방기의 결과다. 세상에 싸울 의제가 몇이고 바꿔야 할 삶의 디테일이 몇인데 그저 닭그네 까는 법만 가르친 이유는 대체 뭐란 말인가? 진보적 정치는 지금의 삶과 세상에 만족하지 말자고, 좀 덜 불가능하게 살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구체적으로 꿈꾸는 정치여야 한다(잠 안 자고 깨어만 있어서 만사에 예민하게 구는 깨시민질이 아니라).
그렇기에 진보적 의제들은 ‘더 나은 세상’, 나와 동네와 법률과 습관과 전통의 변화라는 것을 구체화해 눈앞에 들이밀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이를테면 여기서 흡연을 금지한다, “병신”이라는 표현을 인격모독으로 간주한다, 청년 1인에게 매월 51만원 상당의 온누리상품권을 지급한다 같은, “어 그럼 난 뭘 해야 하지”가 튀어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크 이런거 되게 멋있지않냐 넌 몰랐지? 이게 진보야” 같은 거드름 대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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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나의 fails를 case studies로 바꾸기 위한 기록. 눈물 없인 읽을수 없을껄!!!

거의 프리티어 php EB 기준입니다.

한동안 내 목표 = 이 글 업데이트 안해도될만큼 fail study 쌓는것 ^.^ ㅜ.ㅜ



일단은 이 슬라이드를 읽고 오자. 온갖 실패를 겪고 나니, 이 슬라이드가 얼마나 잘 만든 것인지 비로소 보임.

잘 이해가 안 되면 이제부터 아래를 읽도록 합니다.


  • 기본적으로 AWS는 “너는 서버를 굴릴 줄 알고 우리는 남는 서버가 있으니 우리 한 번 잘해보자”의 방침임. AWS가 나쁜놈인 케이스는 거의 없고 나의 서버 구축 운용 지식의 문제인 경우가 대다수.

  • 엘라스틱 빈스톡일 경우, 로컬에서 테스트 끝난 소스를 deploy하는 것이 기본. 워드프레스 관리자 메뉴에서 플러그인, 테마 등을 바로 받아 서버에 추가로 설치하는 것들은 version으로 관리가 안 된다. 따라서 오토 스케일링이 작동되거나 인스턴스가 재부팅되고 나면 추가 설치했던 요소들은 다 날아가고 없어짐.
    싫으면 위에 소개한 슬라이드에 설명된 대로, ①원하는 추가변경 작업 완료 → ②백업 플러그인으로 내려받기 → ③그걸 다시 application version으로써 deploy 를 하도록 한다. 해봤는데, 생각 이상으로 문제없이 깔쌈하게 돌아가서 매우 놀람.

  • 일반 EC2의 경우는 모르겠는데, EB로 환경 구성했을 경우 DeliciousBrain에서 만든 Amazon Web Service와 WP S3 Offload는 필수로 깔아야 함. 안그러면 이미지 올릴 때마다 EB를 돌리기 때문에 맨날 WARN 뜨고 degraded됨.

  • 이미지를 S3로 처리하게 해놨다 하더라도, user avatar와 featured images는 기본적으로 home_url() 기반으로 세팅하는 것이 wp의 철학임. 따라서 인스턴스를 새로 구성하거나 버전을 EB에서 다시 deploy할 경우 다른 이미지는 남는데 유저 아바타와 특성이미지는 날아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영어로는 dead라고 부름. 일반 호스팅 업체에서는 s3 개념이 없으므로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 프리티어가 뭘 돌리든 월 750시간 무료라고 하는데, 이게 총합에 대해서 그렇다는 말임. RDS 물린 environment를 한달 내내 4개 켜놓으면 유료 결제되는 사용량은 = EC2 3개 * 750시간 * 1시간비용 + RDS 3개 * 750시간 * 1시간비용 = 요금폭탄!!!

  • 프리티어 첫 과금이 깜짝 놀랄 정도로 발생했을 경우 침착하게 다음 순서에 따른다.
    1. 결제 물려놓은 카드의 잔액을 없애거나 해외결제를 중지한다. (이건뭐 각자 알아서들 하시라. 일단 결제를 시도하기 때문에...)
    2. 내가 뭘 create해봤다 싶은 모든 서비스에 들어가 불필요한 인스턴스를 모두 terminate할것. 특히 월초 시작됐을 경우. 지금 이 시간에도 과금은 되고 있으므로
    3. 우상단의 support center로 가서 create case를 눌러 자초지종을 영어로 설명하도록 한다. "나 프리티어인데 요금이 너무 많이 부과가 됐다 어떻게 하면 좋으냐" 정도의 의사를 전달하고, 답장 받는 방식을 web으로 지정해 전송.
    이후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처리해줌. 첫 청구는 거의 대부분 캔슬해 준다고 함. 내 경우에는 답장 받는 데 5일 걸림. 한번 100불 넘는 청구를 받아보고 나면 정신이 확 든다. 수시로 우상단의 (자기이름) > billing & cost management를 확인하도록 한다. 이번 달 청구요금이 별로 없거나 줄어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면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된다.

  • 일반 웹호스팅 때 하던 나쁜 버릇이 문제가 된다. 예컨대 예전 호스팅 업체 쓸 땐 루트폴더에 phpmyadmin도 깔고 codeigniter도 깔아서 썼었는데(물론 아무 문제가 없다) 이걸 워드프레스와 같이 묶어서 버전으로 배치하려니 개노답.
    RDS 따로 쓰기 싫고 이것저것 자기 맘대로 하고 싶다면 그냥 EC2에 콘솔로 DB, 언어 등등을 다 깔아 구축하든지 차라리 코드이그나이터만 굴리는 AWS 계정을 하나 새로 만들어서 쓰는 게 훨씬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냥 돈을 내고 새 환경 하나 구축해도 되긴 됨…)

  • 파일 이름이 한글로 된 이미지 등이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뭐 모든게 ascii latin-1로 맞춰져 있는 동네이니 당연한 일인데, 다음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
    1. non-latin 파일명 통제 플러그인 설치. 난이도 낮음, 효과 큼, 문제해결력 작음. 내 경우에는 안형우님이 만든 플러그인을 쓴다.
    2. RDS(데이터베이스)의 파라미터 그룹 고쳐주기. 난이도 중간, 효과 중간, 문제해결력 큼. RDS 콘솔의 좌측 메뉴에서 Parameter Groups를 누르면 default.mysql.5.6 어쩌구 하는 것 하나만 보일 것이다. 이 밑에 비슷한 걸 하나 더 만드는데 다만 character_set_ 부분과 collation_ 부분을 죄다 utf8(-general-ci)로 고쳐준다. 저장한 다음 원하는 RDS에 적용하고 reboot 한번 해주면 됨. 다른 블로그 글들을 검색해서 하는 게 더 정확한데, (다행히 난 안 그랬지만) 인코딩 설정을 기존 환경과 충돌하게 설정하고 reboot하면 몇십 분간 in-sync로 안돌아온다는 케이스 문의들도 있었다. 주의해서 해볼일인듯.

  • Route53을 쓴다면 기본 요금으로 매달 50센트는 낸다고 보면 된다.

  • 한 달 좀 넘게 이리저리 굴러 봤는데, 결론을 말하자면 이미지(미디어) 호스팅만 S3로 받고 애플리케이션(코드)은 일반 웹호스팅으로 받는 조합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내 생각.
    AWS가 지향(상정)하는 웹애플리케이션 개념에 워드프레스는 해당되지 않는다. 문제의 워드프레스가 기본 트래픽이 아주 높아서 일반 서버호스팅으로 비용 감당이 안 되거나, 상당한 양의 real-time 서비스를 한다거나 하지 않는 이상에는, 코드와 저장소와 DB를 모두 AWS에 넣어놓는 워드프레스는 확실히 '가성비 꽝'이다. 워드프레스는 24시 꾸준하게 운영되는 서버에서 대단히 정적으로 움직이는 CMS이기 때문에.

  • 다시 일반 웹호스팅으로 옮길 때는 DB 테이블 설정에 주의하도록 하자. 나의 경우에는 닷홈으로 다시 옮기고 나서 1주 정도 간격으로 자꾸 테이블 "일부"가 없어지는 기현상을 겪었는데, 문제를 해결하고 원인을 파악하다 보니 AWS에서 넘어온 데이터베이스의 테이블들이 다 InnoDB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 나머지 안 날아가는 테이블들은 MyISAM이길래 모두 MyISAM으로 맞췄고, 현재까지는 문제 반복 안됨.


내가 앞으로 라이브 서비스 서버를 바꾸느니 종교를 바꾼다 ^_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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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저런 한국적 조건 때문에 CMS로 부득불 XpressEngine을 선택해서 작업하고 있다. 그런 이유로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한 XE인데, 무슨 함수 하나 찾으려고 파일 뒤지다가 방금 이런 코드를 봤다.

게시물의 등록시간을 출력하는 함수인 모양인데…







함수 찾아라등록시간() {

  $등록시간 = $현재객체에서->찾아라('등록시간');

  $년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0번째글자부터, 4글자만);

  $월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4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일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6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시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8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분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10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초 = 문자뜯어와라($등록시간, 12번째글자부터, 2글자만);

  갖다주기 시간꼴로만들어서($시,$분,$초,$월,$일,$시);

}




ㅎㅏ… 네이버와 XE 개발팀은 뭘 먹으면 이런 근자감 쩌는 무대책 코드를 배포하는 거지… 그냥 일단 timestamp를 찍어놓고 변환을 하게 만드는게 옳은 도리가 아닌가… 도대체 DB와의 통신과정에서 저 '등록시간' 필드에 언제나 14자리 숫자가 착실하게 저장되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고… 행여나 DB 꼬여서 테이블 데이터 인코딩 바뀌면 어떡하려고…







모르겠다 입다물고 하던 일이나 해야지

그리고 장차 내가 만들게 될 서비스엔 이딴 로직은 집어넣지 않을 테다. 아니 어떻게 이게 말이 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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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업

2015.06.16 23:20

다음클라우드가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하는 이 시점에, 바이두와 360클라우드에 올려 놓은 만화 파일들을 익숙하게 다운받아 보다가, "야 어진아 혹시 몽촌토성 영상 원본 없지?"라는 물음이 와서 "내가 지웠을 건데 함 찾아볼께요" 하고 집에 와서 옛날 하드디스크들 열어보다가 문득 생각하는 것은, 내가 정말 많이 변하긴 변했구나 싶은 것이다.


당장 2012년 5월께만 하더라도 나는 몽촌토성에서 나 한 명이 구르는 비디오가 그렇게 일회적이고 두 번 다시 재현 불가능한 것일 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냥 공식 유튜브 계정과 내 아이팟에 최종본을 넣어 놓았으니 이걸로 그만이겠지 하고 정말 어리숙하게 원본 파일들을 지워 버렸다.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다. 미친 거 아냐? 최종본은 없어도 원본은 남아 있어야 될 거 아냐? 지금도 그걸 veg파일, sfk파일과 함께 통째로 싸그리 없애 버린 내 자신을 원망하고 있는 중이다.

심지어 그 시절의 나는 백업 개념이 완전히 틀려먹어 있어서, 백업할 파일을 골라서 업로드했었다. 뭐 지금도 남아 있는 버릇이긴 한데, 같은 파일이 두세 번 올라간다든가 정말 하등 쓸모없는 파일이 업로드되느라 시간이 지나간다든가 하는 걸 잘 못 봐주는 편이다. 이제는 그런 게 아님을 알고 최대한 날것 그대로를 있는 대로 몽땅 올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 몇 년 사이 참 많이 변했다.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두고두고 옛날을 되씹고 싶지는 않다. 잊고 있던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그걸 매일 반복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곤란한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것들은 다 어디에 저장해 놔야 유지가 된단 말인가. 2테라바이트를 주는 바이두 정도가 일단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으니 함부로 종료하지 못할 것이고 그래서 이거 정도가 그나마 안정적일 것이다. 세월이 좀 지나면 저장장치 용량들도 좀더 늘어날 테니, 아무 생각 없이 파일들을 짱박는 것이 좀더 쉽고 값싸지겠지.


이 모든 데이터들이 어느 날인가는 그냥 스러지고 없을 거라고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흔히들 디지털 자료는 영원할 거라고들 하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그 무엇보다 핵심적인 근거는, 그 디지털 자료를 찾을 만한 사람이 사라지고 없어지는 날이 언젠가 반드시 온다는 점이다. 바로 그 시점에서 그 자료들은 아무 의미도 소유주도 얻지 못한 채 유실되어 버리는 것이다. 누군가가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자료가 다시 위로 올라오고, 다시 한번 read가 되고, 캐싱이 되고 하는 거지 싶다.


이를테면 우연히 영화 소개 TV프로그램에서 봤다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내 컴퓨터》라는 작품이 있다. 이 영화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현재 씨네21의 글을 클리핑한 진보넷 아카이브에 남아 있다. 이 영화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은, 영화 맨 마지막에 주인공이 우연히 쇼윈도에 진열된 컴퓨터를 보고 그게 자기가 옛날에 빼앗긴 컴퓨터임을 알아차리는 장면 그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씬 하나가 그 어린 마음에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나도 내 컴퓨터를 알아볼 수 있었으니까. 수 년 전에 잃어버린, 자기가 가꾸어 놓은 바탕화면의 '내 컴퓨터'가 그 모양 그대로 쇼윈도에 놓여 있는 걸 보면, 무슨 감회가 들까.


여균동 감독은 《내 컴퓨터》라는 영화의 원본 필름을 갖고 있을까? 잘 모르겠다. 안 그럴 수도 있다. 마치 내가 지금 TAILER의 핵심 역량 중 하나인 추진력과 기동력을 선전하는 바로 그 행사의 바로 그 원본 영상을 안 갖고 있듯이 말이다. 이제 그것은 어처구니없고 죄스러운 일이 되었고,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일 것이다. 완벽한 기억의 보존이 철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하면, 내가 남겨야 할 것은 어느 정도까지일까. 더 많은 백업은 그것을 더 많이 보장해 줄까. 어차피 언젠가 스러질 자료들이고 기억들이라면, 어떻게 스러지게 하면 좋을지를 좀 미리 생각해 두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생각이 엉킨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내일부터 대학 생활 마지막 시험이다. 이제 정말로 학창시절이 완전히 끝나고 세상으로 던져진다. 낙서공책을 모으고 모든 것을 백업해 두고 마냥 내 아이팟을 들여다보며 애지중지 이 모든 게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는 유아적인 생각은 그만둔 지 좀 되었지만, 실존적으로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스러지고 싶지 않은 것인지 좀 잘 스러지고 싶은 것인지, 스러지게 내버려두기 싫은 것인지 어떤 것들은 스러지도록 내버려두고 싶은 것인지―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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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칫둠칫

2015.05.14 09:34
어제 그럴 일이 있어서 저녁 6시 반경에 신촌 유플렉스 앞에 있었다. 흰 티에 민트색 하의로 깔맞춰 입고 나온 20대가 한 스무 명 정도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더니, 스피커가 설치되고, 그들 중 여자 다섯 명이 가운데로 나와 레드벨벳 최신곡에 맞춰 커버댄스를 정말 능숙하게 선보이지 않겠는가? 민트색 치마는 치어리더 스타일이어서 있는 대로 나풀거리고, 표정은 어쩜 저렇게 프로페셔널하게 미소를 유지할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돼 있는 광경을 봤다. 적잖은 남성 행인들이, 흐뭇한 미소를 띠고 그 공연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왠지 우리가, 그들이, 모두가 조금 가엾다고 생각했다.

그 5명의 훈련된 웃음과 배운 대로 추는 춤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큰 의미 없이 웃는 시선 처리와 사람 홀리는 치마의 비주얼 단지 그 둘 때문에 이런 무대에, 여성 아이돌에 홀리는 사람들이 있겠다 싶었다. 사람들의 주목과 카메라의 포착 없이는 성립이 되지 않는 그 ‘섹시도발’을, 한순간 진실한 것으로 믿어버리고 욕망하게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동아리방을 드나들 때마다 춤동아리의 연습을 봐 온 나는 안다. 군무라는 건 심각하고 따분하고 진지한 과업이다. 저 민트색 치마는, 지금이야 길거리 깜짝 공연에서 최고로 주목받는 주인공일지 모르지만, 그 직전까지는 그냥 딱 한두 번 입어보고 어디 박스에 다시 개켜두었을 물건이고, 아마도 저 다섯이 저 “섹시 댄스”를 연습하던 대부분의 시간에 그들은, 내가 봐 온 게 일반적이라면, 아마 헐렁한 츄리닝 바지 차림으로, 전혀 섹시하지도 도발적이지도 않게 마냥 고생하고 있었을 거다.

다만 그들이 배운 대로 따라했을 그 춤, 그들이 수도 없이 들었을 “Give me that give me that icecream cake!” 따위 가사가 포함된 음악을 제공한 자들의 저의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크게 의심하게 된다. 뭐 하자는 것일까. 더 많은 5인조 여성팀이 더 확실하게 이 춤과 음악을 따라하게 만들면, 더 나은 세상이 온다고 믿는 것일까?
하! 그럴 리가 어딨어? 이번 “시즌”에 “애들”을 “굴릴” 때 쓸 “최신곡”이 뭐든 하나 필요하니까 팔아치우려고 즉석 떡볶이로 볶아내 놨겠지!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의 복합을 본 사람들이 괜히 성욕이나 일으키는 거대한 오해와 허위와 가공의 세상이 되든 말든, 음원 수입에 행사 출연료만 두둑히 받아 챙기면 그만일 테지?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떼놈이 챙긴다더니!

선비질을 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춤을 추거나 보는 것을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춤은 필요하다. 문제는 그게 허구화되고 우상화되어 소외될 때다. 약 4분간 숨가쁘게 공연된 그 춤에서, 정말 이 동작이 필요한가? 싶은 순간이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딱 하나 목적이 있긴 했던 것 같다. 관객에게, ‘지금 내가 당신에게 진심으로 애교를 부리고 있다고 믿어 주세요’의 신호를 보낸다는 그 한 가지 목적. 하마터면 나조차도 그 목적을 달성시켜 줄 뻔했으니, 그 자리의 많은 사람들은, 우리는, 뭐 오죽하겠는가. 이런 식의 것들이 밤낮 없이 유통되는 세상에서 성추행, 성폭력, “맞다 개같은년” 운운하는 방송이 없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5인조 무대가 끝나자 주변에서 대기하던 20여명의 동료들이 합류해 다음 공연을 시작했다. 이제 그만 이동을 해야 해서 자리를 뜨다가, 문득 그들의 가방으로 추정되는 가방의 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어제 그 저녁 시간 게릴라 공연의 자리에서, 그들의 춤이 뭘 의미하는지를 맨 처음부터 지켜봐서 아는 것은 오직 저 맥없이 널브러져 있는 가방들뿐이었다. 그리고, 천만 당연하게도, 아무도 그 가방 더미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제부터 그들이 딱 한 번 보여줄 잠깐의 쇼로만 사태 전체를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과, 그렇게 하라고 설계된 “둠칫둠칫”만이 가득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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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함

2014.12.20 01:17

“뭘 왜 그렇게 서둘렀어?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데?”

그러게나 말이다. 지난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마음이 바쁘고 뭔가가 계속 조바심이 났다. ​뺨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되어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 지금 초조하다.

두번이고 세번이고 기말 리포트 제출이 어디로 언제까지 어떻게인지를 묻고 있질 않나, 코드이그나이터 자습서를 빌렸으면 빌린 것이지 당장에 시작이라도 할 것처럼 그 두꺼운 넷북이며 책까지 꾸역꾸역 들고 다니다 괜히 종이가방이나 찢어먹지를 않나, 도서관 자리 없어질까 모바일 학생증을 두번 세번 찍고 있질 않나, 심지어 아직 오려면 멀었을 학교 토익 개강날과 대출도서 반납일과 아무도 재촉하지 않은 당첨자 발표에 바짝 쫄아서 신경을 쓰고 있질 않나… ​이젠 이번 뻘짓이 이 정도이길 다행이란 생각도 살짝 든다.

문득 노후화를 생각한다. 지금 이 초조함은 내가 늙어버렸다는 신호일까? 왜 그런 말 있잖은가, 잘못 늙으면 조급함과 괴팍함만 남는다고.

왜 그럴까, 조급함이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이 초조함은 ‘늦으면 안 된다’라는 강박에서부터 비롯하지 않는가 싶다. ​실제로 나날이 뭔가가 단단히 늦어가고 있다고 느낀다. 연애경험이, 사회진출이, 철드는 속도가, 내가 기획하고 진행해야 한다고 나 혼자 믿은 이벤트의 당첨자 발표가, 졸업이, 숙제 제출이, 전공 이해 속도가, 그밖에 내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무엇인가들이 기한이 임박했거나 이미 지나간 것 같은 것이다.
분명히 지금은, 물론 과제를 두 개 제출해야 하는 미묘한 기간이긴 하지만, 엄연히 방학 기간이다. 그리고 오늘 나는 방학 중의 내가 으레 그렇듯 뭔가를 다운받고 뭔가를 읽거나 보고 뭔가를 막 혼자 만들면서 잘 놀았다 그런데 ​정말이지, 유례 없이, 혐오스러울 정도로 불편한 맘으로 놀았다. 그 이유가 비단 엄마가 친정 가고 없어서 집에 강아지 콩돌이랑 나뿐이라는 데만 있는 건 아니었다. 통합진보당 해산이 헌재에 의해 선고되었다는, 내 인생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허탄한 일이 있어서만도 아니었다. ​다만, 그냥 있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본 하루였다. 꾸역꾸역 먹고 놀고 누웠는데, 그래도 되는 것이었는데, 나 혼자서 그걸 제풀에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단독 판단을 내리고 뭔가 덜 초조해질 것 같은 일을 만들어서 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늦었다.

우선 내일 잘 대답하고 잘 혼나고 잘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하여튼 해야 하는 일들에 즉시 착수를 해야겠다. 죽이든 밥이든 되겠지. 그것들이 일단락 되면 하루를 딱 정해서 정말 맘 편하게 놀겠다. 근데 지금 내 상태에서 그게 바로 될지는 모르겠다. ​난 내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일들을 컨트롤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초조함의 숯불만을 머리 위에 쌓고 있었다. 지금도 일단은 그렇지만 화요일부터는 확실히 ‘먹고 대학생’이다—근데 어쩌다 나는 그토록 내가 좋아하고 선망하며 잘 하기도 했던 그 신분 역할조차도 제대로 못 하는 노심초사 얼간이가 되고 말았나? 다만 그것을 도저히 모르겠다. 졸업반이 되면 다들 이러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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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밤에 블로그에 글쓴다고 좋은 글 나오는거 아닌데, 이런걸 여기 안 쓰면 언제 이 블로그를 써먹나 싶어서 올립니다.


현대인은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서로가 서로 그렇게나 똑같아 자기를 확신하지 못하는 21세기 인간들은 결국 '좋아요'와 리트윗 버튼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은유가 한없이 넓은 그 실없는 단추가 얼마나 큰 폭발을 일으켰는지를 생각해 보세요. 카카오스토리에는 하트 버튼이 있습니다. 대체 그게 무슨 뜻인데요? 긍정해 주겠다는 뜻인 거지요. 우리는 확인받고 싶어합니다. 누군가가 내가 옳다는 말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아니면 차라리 내가 틀렸다는 것을 일깨워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의 위치와 색채와 수준을 측정하고 인증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불안에 기인한 욕구가 있다는 말이지요.


어느샌가부터 좋은 것을 만들었다 또는 생각해 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 좋아요나 리트윗을 다만 한 명에게서라도 더 얻어내고 싶어서 SNS를 악착같이 사용하고 구차하게 댓글 드립에 열중하는 제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총파업 포스터 4탄을 만들던 도중 그 발견이 정점에 달했습니다. 참 못났더군요. 뭐 이딴 볼품없고 비루한 인간이 있나, 싶어서 요즘은 길쭉한 글을 쭉 썼다가 쭉 지우고 그만두기를 여러 번 합니다. 삭제되든 말든 상관없는 것이라면 어떤 것도 함부로 올리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2000년대 초반의 저는 어디로 가고 없는 걸까요.


인터넷이라는 광장이 워낙 넓은 탓에 오히려 사람들이 조곤조곤 말하는 법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울림 없는 텅 빈 곳에서 군중들이 만드는 뜻 모를 소음에 휩쓸리다 못해 왈칵 성이 나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던 적이 없으신가요? SNS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명이 그런 식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그게 하도 확인하기 쉽다 보니 세상이 온통 미쳐 돌아가는 것 같은 착시가 일어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조곤조곤 말할 수 있고, 말이라는 게 처음부터 큰 소리로 호령하라고 만든 것뿐만은 아니니까요. 존재증명은 귀류법이 훨씬 쉽습니다. 굳이 유난 떨 것 없이 남들이 안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누군가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명제의 예시로서 자기 존재가 증명되는 것 아니겠는가 하는, 전공을 살린 드립을 시전해 봅니다.


방금 전에도 뭔가를 잔뜩 썼다가 잔뜩 지우고 오는 길입니다. 나는 이런 고민을 했다, 이런 통찰이 있었다, 이래야 한다, 이러지 말아야 했다 운운하는 젠체하는 글이었는데 뭔가를 또 확인받고 싶다는 비뚤어진 욕심에 눈을 부릅뜨고 마지막 교열을 하다가 집어치웠어요. 문득 그런 생각에 미쳤던 거지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너는 그 통찰대로 살고 있냐? 왜 너의 삶이 아닌 썰을 무슨 근자감으로 나불나불 풀어놓으려고 하지? 니가 좋아하지도 않고 먹을 생각도 없는 요리를 열심히 만드는 이유는 대체 뭐야? 그저 맛있다는 말, 열심히 했다는 격려, 좋아요 17개, 진심으로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것일 뿐 아니야? 그게 그렇게 마냥 좋냐? 좋다 치고, 그래 그래서 니가 원했던 바로 그 반응들을 받으면, 그 다음엔? 왜 자꾸 그렇게 조급하게 널 판촉하려고 해? 사람들이 사 주지 않을까봐 겁나서 그래?


앞으로 다시 SNS에서 블로그로 무게중심을 옮겨 보려고 합니다.

열심히 했다는 것, 잘했다는 말, 좋은 것을 했다는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코멘트 안 달리는 글은 어디 내놓아도 코멘트 달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미쳐, '마이크로 블로그'들의 모르핀 투여량을 줄이려고 합니다. 새해 결심이라면 결심이 되겠죠.

코멘트 많이 달아달라는 호소문이 아닙니다. 조용히라도 읽어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도 조용히 있다가 조금 말하고 다시 조용히 있는 습관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좋아요 사냥꾼이나 리트윗 걸인 같은 건 되지 맙시다. 애당초 누가 누굴 확인한단 말인가요.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안녕히 주무시고 내일 아침 만나요. 당신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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