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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7.10.31 장르로서의 이생망

딱히 정리는 안된 잡감들. 쓰(려)고 보니 순 꼰대소리인 부분 ㅇㅈ합니다.

현재 이 나라의 청년 세대에게 ‘이번 생은 망했다’라는 관념은 아주 만연하고 광범위하다. 공감을 사기 쉬워서 콘텐츠 제작이나 칼럼, 기사 작성에 많이들 이용했고 나도 그랬다. 심지어 “헬조선”의 지옥도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핵심 키워드로서 청년 사회 붕괴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니, 너도나도 아주 즐겁게 이생망 이야기를 했다. 그런 서사의 생산과 소비는 과연 유효하고 유익하며 유의미할 것이라 믿었다.

재수생과 반수 이야기 - Sepia☂

그러나 이런 만화가 디씨에서 나와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형국이 되고 나면 이제 ‘이번 생이 망했다’는 썰과 탄식은 오히려 하나의 장르, 좀 나쁘게 말하면 하나의 타령조가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핵심은, 우리의 삶이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기록해 노출하고 묘사하는 일의 사회적 효용이 과연 그렇게 긍정적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서사의 생산 양상은 흡사 386, 486들이 송강호와 황정민을 앞세워서 그들의 젊은 날을 스크린으로 보상 및 상찬받고 싶어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대동소이하다는 생각이다. 동일한 점은 다들 모르지 않는 특정 세대의 목격담이며 경험담, 그들이 특정적으로 공유하는 정서와 사상을 굳이 예술 장르의 형태를 빌어 전시한다는 것이고, 차이가 있다면 ‘넥타이 부대’들은 그래도 뭔가 해봤다(해본다)는 모습으로 묘사되는 데 비해 ‘청년들’은 결말부를 증발 내지 페이드 아웃시켜 버린다는 정도일 것이다.

이는 확실히 그 세대가 내다보았던 미래상과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386, 486들은 자기들이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주인 의식이 충만했다면 그 직후 세대는 바로 그들, 삼촌 외숙부 할아버지뻘들에게서 “참교육을 시전”당한 입장이라 이렇다할 미래관 자체가 각별히 없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시궁창으로서의 현재, 그래도 한때는 퍽 멋모르게 즐거웠던 과거, 그리고 “이번 생은 분명 망했다”라는 대책 없고 확고부동한 결론뿐이다.

그런데 이 결론에 아무런 다음 스텝이나 돌파, 타개의 수가 전혀 없다 보니, 이 세대는 지금 이 결론의 무한 소급과 재생산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이 만화가 그렇다. 현재 저 만화는 “공부 자극 확시켜주는 만화”로 홍보되어 유포되고 있는데, 여기서 아주 독특한 생산-유통-소비 행태가 관찰된다. 만화 줄거리 자체는 ‘별 노력 없이 그냥 가는 대로 가면 이렇게 된다’는 것인데, 이를 유통하는 측은 공부라는 노력이 없었을 때 이렇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아마 동시에 소비하는 입장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이다) 이어서 “디테일 오진다”라며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과거로서의 디테일에 주목한다. 주로 같은 세대인 이 만화의 소비자들은 극단적으로 과장되고 극화된 주인공을 욕하는 것—그리고 작품이 원하는 대로 그 감상에서 거의 한 발짝도 나아가지 않는다—을 주된 감상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이생망이라는 장르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논해도 좋을까? 나는 그렇다고 본다. 이것은 장르 예술의 형식이고 소비 패턴이다. 그 장르에만 나오는 요소들, 그 장르가 천착하는 정서와 논리 구조의 세팅, 그 장르에서 응당 받아야 할 감상과 교훈 등이 정형화될수록 그것은 더욱 확실한 장르가 된다.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의 현재 대한민국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것들을 통해 특정한 느낌과 생각이 반복적으로 공고해지는 것을, 이 만화를 포함한 꽤 많은 매체와 콘텐츠에서 점점 목격하고 있다.

문제는, 이생망이라는 장르가 주는 감상이 퇴폐미보다는 퇴폐 그 자체에 더 가까우며, 이 장르에 세팅되어 있는 가치와 관점과 관념 체계가 다분히 퇴행적이랄까 후진적이라는 데 있다. 퇴폐미는 적어도 엄숙주의에 대해서는 반성을 촉구하는 데 비해 퇴폐 자체는 어떤 것도 반성하지 않는다(오히려 그런 것 따위 반성하지 않아도 좋다는 전제가 다분한데, 특히 이 만화의 결말부가 어떤 장면으로의 이행도 특정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압축적으로 암시한다). 또한 “너(나)는 이마만큼 쓰레기 새끼다, 부모님께 죄송하지도 않냐” 같은 말들은 정말로 “공부 자극”을 시켜준다기보다는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는 효과를 일으켜 그냥 자기의 ‘쓰레기 같음’에 더 주목하게 만드는 효과를 일으킨다. 정말 그러냐는 얘기는 묻지 마시라 그냥 이것 다 내 근거 없는 잡감이므로.

이 장르, 현시창 이생망 장르에 가장 가까운 역사상 유사 사례는 신파극이라고 보여진다. ‘불쌍한 새아가, 못된 시어머니’ 등으로 촌스럽게 정형화된 비극들은 분명 특정 세대 특정 집단에게는 지극히 유용하였으되 지금은 심지어 공중파 아침 드라마도 그렇게까지 대놓고 장르화된 신파극을 만들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아주 간단하게도, 우리가 정말로 그런 세상을 계속해서 쳐다보고 싶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학의 미학으로 점철했던 신파극이 한물 갔듯이, 아주 정교하고 정당하며 말리기 어렵고 모두에게 쉽게 전파되는 자조의 미학으로서의 이생망 역시 적절한 시점에 종말할 것으로 예상되기는 하지만, 다만 이 장르가 한 세대의 뇌리에 어떤 정서를 얼마나 각인할 것인가가 우려스럽다. 실로 우리는 신파극이 낳은 손녀뻘 장르, 막장 드라마를 지금도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결론은… 장르로서의 이생망, 장르로서의 현시창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이 장르는 다분히 자기파괴적이랄까 지속 불가능하달까 바람직하지 않달까 뭐 그런 생각이 든다. 별로 듣기 좋은 소리도 아니거니와 자꾸 되풀이할 소리가 못된다. 할 거면 어떤 타개, 돌파, 최소한의 확실한 골계미나 퇴폐미를 확보하고 가야 한다. 이런 장르, 현재 청년 세대가 자기를 바라보는 관점과 그 표현상의 장르화를 이제는 덮어놓고 긍정하기 어렵다. 우리의 이번 생은 확실히 망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망했는지까지만을 거듭 되풀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일이 과연 어떤 예술적 역사적 공헌을 할 것인가 그런게 있긴 할까 하면 그건 의구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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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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