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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말의 권력

2007. 12. 1. 19:24
AS 문의를 하러 가거나 문의메일을 보낼 때면 나는 으레 전문 용어를 하나쯤 꺼내어 사용한다. 펌웨어를 바꾸었더니 폰트가 바뀌는 현상은 이유가 뭐냐는 둥, 랜덤 기능이 백몇 곡 이상부터는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는 둥... 입으로도 글로도 그런 말을 잘도 뻔뻔하게 내뱉는다. 이유는 하나다. 그런 용어를 들으면 '왜 안 돼요?', '어떻게 해요?' 같이 속 터지는 질문만 받던 담당자들이 아주 새롭게 느끼고 정신을 차리니까. 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했다.
또, 가끔 내뱉기는 내뱉어야겠는데 돌려 말하기가 어려울 때도 역시 효용이니 목적전치니 하면서 어려운 단어나 여러 사상이 응축되어 생성된 개념어를 한두 개 던지곤 한다. 왜냐? 말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알아들을 사람만 알아들으라는 셈속을 차리고 있으니까.

어려운 말, 전문용어는 힘이 있다. 그런 단어를 쓰는 사람보다 쓰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은 일단 입지가 낮아진다. 그리하여 결국 말을 모르는 이는 전후사정과 문맥상 의미를 파악해 볼 생각을 포기하고 말을 아는 이에게 수긍하고 만다. 푸코가 말했던 권력이라는 게 뭔지 난 잘은 모르겠지만 이런 것도 그의 권력 개념에 포함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미사여구에 속아서는 안 된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 세상에서 패러다임이 뭔지 유니코드가 뭔지 백합이 뭔지 하는 것쯤은 후딱 찾아 알아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엔 모르는 자, 발언권과 반박 능력이 없는 자, 권력 없는 자가 되고 만다.

촘스키 선생은 말한 적이 있다. 지식인들은 일부러 유창하게 말한다고. 하지만 제아무리 어려운 개념어도 모두가 이해할 수 있게 풀어낼 수 있다고. 그렇다. 동의한다. 나는 어려운 말의 권세를 조그맣게 사용하고는 있지만, 결코 커다란 '용어의 권력' 앞에서는 우민이 되지 않겠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하게 깨닫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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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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