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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금

2013.09.13 22:01
  1. 잠실 장미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참 걸작인데, 짝수 층 버튼을 누를 수 없게 되어 있다. 대신 자기가 가고 싶은 층±1층을 누른 뒤 내려서 계단을 타고 올라가거나 내려가야 한다. 이것 참 생활건강 아파트가 아닌가? "이거 때문에 (택배) 아저씨들 죽으려고 해요."
  2. 8동 303호라든가 306동 2204호라든가 오피스텔102동A 204호 같은 곳을 가다 보면 죽는소리가 절로 나온다. 하루 40세대 이상의 아파트와 빌라에 "추석 선물세트"를 들고 뛰고 나르고 갖다주고 하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솟아나지만,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된다. 다들 이렇게 사는구나, 이렇게 살 수 있는 것일까, 이게 이 사람들에게는 당연할까.
  3. 아침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창모루마을 끝자락에 임시로 마련한 '강동센터'에 가서, 출근 카드를 찍고, 배차를 왜 당신들 마음대로 받느냐는 '데스크'와 기사님의 한바탕 실랑이를 거친 뒤, 유니폼 조끼와 각종 장비를 지급받고 '취급주의'가 태반인 화물들을 휙휙 던져 다마스에 구겨넣고 올림픽대로를 타면, 대략 8시 반이 된다.


  4. 이때부터 "이사님", "교수님", "부회장님", "장로님"들의 하루 일과는 대략 짐작할 만하다. 아직 9시가 안 되었을 때는 차라리 통화가 더 잘 되지만, 일단 9시가 되면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는다. 10시쯤부터 그들은 전화를 받을 태세가 되어 있고, "아마 집사람은 집에 있을 거"다. 오전에 그 '집사람' 혹 '사모님'들은 장을 보러 가거나 친구들과 놀러 가거나 어떤 문화센터에 가느라고 대부분 집을 비운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전화를 받거나 안 받거나 응대하는 확률이 좋아지지만 여전히 예측 불가능하다가, 정말 거짓말같이 4시 반쯤부터, 유치원과 초등학교와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아이들을 뱉어낼 때쯤부터 자택 직접배달 성공률이 급증한다. 하다못해 집 보는 아줌마라도 있어서 초인종을 누르고 "신세계백화점입니다"라고 외치면 다들 달려나오는 것이다. 이런 풍경을 5일째 보고 있는데 정말 절실하게 느낀다. 아, 이게 이 사람들의 삶이구나. 아파트 주민들이란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구나.
  5. 아파트 단지 택배 배달의 애처로운 점은, 몇 동이 어디 있는지 몰라 동선 짜고 좌회전 우회전 유턴 피턴을 반복하면서 시간을 버려야 한다는 데 있다. (시간이 아까워 미칠 것 같다. 도대체 왜 아파트 설계자들은 stranger의 입장을 개무시하고 왼쪽 위부터 "뒤로번호"로 아파트 동 수를 책정하는가? 내가 가 본 중에는, 아시아선수촌아파트 이외의 어느 아파트도, 처음 온 사람이 용달차 타고 돌아다녀서는 절대 목적지를 찾을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더라.) 자기 집이 어디 있는지는 귀신같이 알지만, 그 외의 무엇이 어디 있는지, 지금 여기가 어디인지부터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평당 몇백 몇천의 울타리 안에서 자기 갈 길은 잘도 알고 돌아다닌다.
  6. 그 다음으로 애처로운 일은 경비실과 투닥거려야 할 때이다. 오늘은 나와 휴대폰 번호가 매우 흡사한 우체국 택배 정지용이란 사람 덕에 생전 모르는 물건을 놓고 경비와 푸닥거리를 했다. (참치 세트라니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그냥 두고 가라는 경비원, 이것저것 다 쓰라는 보안실 등을 다니다 보면 정말 불안하다. 저 사람들이 오리발을 내밀면 난 어떻게 되지? 생각도 하기 싫다.
  7. 그 다음으로 애처로운 일은 그 집에 어떻게 찾아가는지를 알아내서 문 앞까지 가는 일이다. 문 앞에 가서 초인종을 누르는 일이다. 행여나 오배송(엉뚱한 물건을 갖다주는 일)이 아닌가 그 문간에서의 찰나에 재차 확인하는 일이다. 응답하지 않는 문 너머를 상상하며 괴로워하는 일이다. 전표에 적혀 있는 유일한 전화번호가 응답이 없을 때이다. 그 부재중 전화를 보고 한참 뒤에야 콜백하는 수신 내역을 보고 경비실 보관처리된 전표를 뒤져서 "혹시 경비실에 맡겨드려도 될까요?"라며 시치미 뚝 떼고 질문을 덮어쓰는 일이다. (이 대목은 이해가 안 된다면 이해하지 말라.)
  8. 문득 궁금해진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사는 게 당연한 걸까?

    어느 2호선 지하철역 출구 두 개와 딱 맞닿아 있고 금색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상가의 뒤편 큼직한 회전문을 지나 "입주민 전용 드링크바"가 있는 라운지의 안내데스크에 자기 집으로 온 택배가 있는지 확인한 후 화물 전용 회백색 승강기가 아닌 입주민 전용 금색 승강기에 카드를 대고 들어가는 것이, 정말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일까?
  9. 당연할 리 없다. 그들은 어마어마한 권리금을 내고 거기 들어갔다. 그들의 그렇게 살 "권리"는, 어떤 수준 이상의 금액으로 환산되어 구매된 것이다.
  10. 그 권리란 택배를 자기 집 문 앞으로 불러낼 권리이다. 동마다 "라인"마다 경비원을 24시간 대기시켜 놓을 권리이다. 자기 집이 복도 끝일 때 거기에 따로 덧문을 설치해서 자기들만의 현관 앞 화단을 만들 권리이다. 카드를 찍고 1층의 '자이젠토들러유치원' 따위에 자기 손녀를 보내 놓을 수 있는 권리이다. 문간과 건물 밖에 각종 백화점에서 보내 온 이렇고 저렇고 그런 각종 명목의 선물 보따리의 빈 껍데기를 잔뜩 쌓아둘 수 있는 권리이다. 가정부를 부를 권리이다. (이건 실제로 목격한 광경인데) 유모차에 타고 있는 젖먹이를 "미술학원"에 보낸다며 자랑할 권리이다.
  11. 그런데 그 권리는, 그 젖먹이에게, 자이젠토들러유치원에 가는 아이들에게, 잠실중 아이들의 상당수에게는 조금도 권리금 따위와 연결지어지지 않은 채, 그냥 울 아빠가 우리 집이 우리 동네가 그렇다는 식으로, 생의 초기조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이것이 가장 애처롭다고 느낀다.
  12. 이것만큼은 정말로, 머리를 볶은 사모님들이 초대형 아파트단지의 놀이터에 자기 딸, 손녀, 손자들을 풀어 놓고 깔깔 웃으며 진심으로 흐뭇하게 지켜보는 모습을 보았을 때, 육성으로 한탄했던 것이다. "너희들은 이게 당연하니? 저 구역질 솟구치는 형광색의 폴리우레탄을 아무렇게나 떡칠해 놓은 저 역겨운 놀이터가 당연하니? 지면에서 한창 위로 떠 있는 곳을 집이라고 느끼고 바닥에 등 대고 편히 눕는 게 당연하니? 나 같은 택배 아저씨가 너희 집에 머슴처럼 꾸역꾸역 짐을 들고 가는 것이 당연하니? 유치원이 너희 집 11층 밑에 있는 게 당연하니? 해가 어느 쪽에서 뜨는지, 옆집 아저씨 이름이 뭔지, 보다 A상가 마트가 어디인지, marvelous라는 영단어 뜻이 뭔지 아는 게 더 중요한 게 당연하니?"
  13. 당연할 것이다. 뭐가 문제란 말인가. 집에 가려면 쭉쭉 가서 313동을 찾아서 카드를 대서 엘리베이터에 가서 8을 누르고 내려서 오른쪽으로 오면 되는데. 나는 정말 궁금하다. 그들은, 지구멸망은 고사하고,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보거나 누군가를 위해 열심을 다해 시간을 버려 본 경험, 아니면 하다못해 노숙을 해 본 적은 있을까? 부모 세대가 대납한 권리금을 조금도 쓸 수 없는 순간에, 그들은 어떤 감정으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며 무슨 생떼를 쓸 것인가?
  14. 너무나 많은 것이 당연하게 주어진 세대가 오고 있다. '저장' 아이콘이 왜 저렇게 네모낳고 이상하게 생겼는지, 왜 어떤 화면은 터치가 안 되는지, 인터넷 쇼핑몰의 배송방식 선택 목록에 왜 '직접 찾아가서 받기'의 옵션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가 오고 있다. 동시에 그 부모들이 대납한 권리금이 소진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뭔가를 쌓아올려 본 적이 없는, 발로 뛰어본 적이 없는, 그래서 정작 모든 것이 망했을 때 자기에게 배달되기로 약속되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G-9 샤또와인 선물세트가 왜 안 오는지에 대해서만 길길이 분노할 줄 아는 세대, blank하고 ignorant하고 baseless한 세대, 지면에서 붕 떠서 살아본 적밖에 없는 세대가 들이닥치고 있다. 오유와 일베와 트위터와 네이트판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5시 반까지 폭우와 찜통더위를 헤치고 죽자사자 뛰어다니다 돌아와서 한숨 잘 시간에 이런 분량의 글을 쓰는데 농담을 섞을 여력 같은 건 없다.
  15. 이 단기알바의 일당은 6만원이다. 그게 백화점이, 운송 아웃소싱 업체가 내게 대해 갖고 있는 권리금일 것이다. 나는 어디까지 책임을 지게 될까. 일단은 다행스럽게도 내가 맡은 물건들은 거의 모두 제자리를 찾아서 간다. 배송상 하자로 자비부담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죄송하지만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라는 실례되는 질문까지 감행하고 있다.
  16. 액수는 전혀 문제가 아니다. 요점은 어떤 권리가 구매의 대상이라는 사실이다. 그게 당연해지는 것은 얼마나 무섭느냐는 말이다. 그게 당연한 젊은이들이 마구 들이닥치는데, 이제 그들에게 "너희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을 위해서는 사실 이만큼의 권리금이 필요하니 마련해 오세요"라고 청구하는 게 그들에게는 얼마나 낯설고 거대한 집단 패닉이겠느냐, 그 광경 자체는 얼마나 인류사적으로 얼척없는 사태가 되겠느냐 이 말이다.
  17. 택배 알바 1주일 해 놓고 하는 말이라 설득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마라. 택배는 2500원을 냈으니까 당연히 오는 게 아니다. 당신은 지극정성으로 그 물건의 박스개봉기를 찍어 올리겠지만, 그 즐거움을 위해 박스를 일일이 체크해서 분류해서 실어 나르려고 밤낮없이 발로 뛴 최소 7명 이상의 지저분한 용달 아저씨들이 끝까지 일했기 때문에 택배가 배달되는 것이란 말이다.
  18. ㅅㅂ 말해놓고 보니 기분 더럽다. ㅈ나 당연한 거잖아. 하지만 이렇게 꼭 적어줘야 네이버에서 "추석택배알바시급"이나 검색하고 있을 그 세대의 귀에 들어갈 걸 생각하니 다시 애처롭다.
    (한마디 해 주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에서, 2013년 추석선물 배송 도우미 알바는 추가모집이 끝났을 확률이 높다. 다른 거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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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댓글을 달아주세요:: 네티켓은 기본, 스팸은 사절

  1. M
    2013.09.14 00:1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고생한다. 그 흔한 스팸 세트 하나 딱히 택배로 보내줄 사람도 없는 집안이라 너의 묘사가 좀더 다가오는지도. 근데 한편으로 생각하면 권리금 안 깔린 게 삶에서 점차 희소해져 간다는 것. 가령 당장 들고 이 글 확인하는 핸드폰도. (그러나 그중 어떤 것도 그리 쉬이 포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대부분은 우리에게 과분한 것들이라는 것)
    나야 예전부터 그냥, 우리 집은 내게 무위도식을 허용할 수 있을만큼 풍족하지 않으며, 물건 구매의 가장 큰 기준은 가격표였기에 내 한몸 벌어 먹고살지 않으면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을 너무 일찌감치 수용해 버렸지. 그래서 정말 원하던 길의 기회(대학원)가 내게 왔을때 스스로를 자조하면서 회사를 택했던 게야. 기억나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척이나 날이 서고 너와 내가 서로의 생각을 좁히기 힘들었던 그 날이. 내게는 대학생활에 끝을 고하고 월급에 나를 팔아넘기는 어떤 자조의 의식이었다. (등록금 깔아놓은게 아까우니까 월급이라도 좀 더 받으면서 살자는 그런.)
    자가노동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세상은 어차피 아닌 것 같고, 나야 일하는 동안은 그냥 내 가정 하나 지킬 정도의 그저 그런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 이제 회사 2년 가까이 다니면서 보다 더 깨닫고 있다만.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이렇게도 산다'는 너의 말을 다른 관점에서 읽었더랬다. 이렇게 힘들게 뛰면서 살아도 딱히 살림살이 나아지지 않는데 그래도 그나마라도 하면서 산다는거. 이 점은 회사 들어와도 똑같더군.... 모양이 다르고 주제가 다르다 뿐 권리금 앞에서 비권리자가 작아지고 때로는 스스로를 지켜내기 힘든 순간도 있다는 것. (그리고 때려칠 수는 없다. 나는 가진게 없으니까.) 하나만 더 말하자면 자기 부모의 권리금을 당연히 누리며 살아온 이들은 그것을 이어받아 그대로 주욱 누려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 점차 그게 더 심해져 가고 있다는 것.
    예전에 일이만원이 아쉬워서 별 알바 다 하던 시절에 그래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이거야 어차피 잠깐이고 곧 지나가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들어오고 나가는 단위만 달라지지 크게 바뀌는 건 없는 것 같고. 앞으로도 권리금 깔기는 요원하지 싶다. 돈이 삶의 목적은 아닌데, 자아실현의 다른 방법들이 제도적으로 1차 제압되고 나니 일단 그거라도 해결하고 나야 다른게 생각이라도 나는게 요즘의 현실인 듯.
    그나저나 차조심하고.
    • 2013.09.14 20:50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민규형님이시군요.
      사실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다 부자들! 부르조아지들! 배반자들! 이라고 말하는건 유치하지요. 게다가 아파트를 많이 다녀 보니 그게 얼마나 피상적이고 무성의한 비판인지 알겠더라고요. 민규형님 같은 케이스도 정말 많고(특히 문패와 컬러링에서 신앙을 표현하려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특히 더 느끼죠, 이분들의 삶은 또 다를까 하면서)...
      아무튼 고맙습니다. 푹 쉬는 한가위 되세요
  2. K
    2013.10.12 12:0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인도는 아직 과거의 시대에요. 카스트라는 신앙이 삶입니다. 어떤이는 카스트라는 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내려다 보며 깔볼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고 어떤이는 카스트라는 이름으로 평생토록 관리자의 눈길에 시달리며 하고싶지도 않은 점치는 일이나, 벽돌 나르기 등의 일을 해야하지요. 그러면서도 이 일을 열심히해사 카스트에 명예를 쌓으면 다음생에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더랍니다. 이러한 것들이 과거 몇천년 전부터 지금 이시대까지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건 더이상 과거의 유물이 아닌듯 싶어요. 이것은 현재도 계속되는 일입니다. 권위를 갖게된 사람들은 각 나라별로 다른 이름의 카스트를 쌓아올리지요. 카스트를 거스르고 아래 카스트 사람에게 손은 내밀어 주는 브라만이 카스트를 박탈당하게 되거나 암암리에 살해당하능 것처럼 아마 모든 나라들이 카스트를 거스르는 누군가는 눈에 띄는 존재이면서도 함께 공존 할수 없는 자신의 기반을 흔드는 두려운 존재이면서도 처형하고 싶은 존재가 됩니다. 다시말하면 카스트를 거스르는 행위는 한 사람이 카스트를 벗어난 다른 종류의 믿음이나 신앙이나 신념을 갖게 되었을 때 그사람이 그 길로 나아가지 못하는 최대한의 걸림돌이 됩니다. 인도에서 카스트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믿는 것을 위해서는 내 생명을 조금도 아까운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 2013.10.12 21:22 신고
      댓글 주소 수정/삭제
      한국은 교묘하게 현대인 체하는 전근대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소득 수준, 소비 수준이 일정 수준 이상이면 계급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눈가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기득권이 제도적/비제도적으로 창출하는 구조가 인도의 카스트를 연상시킬 정도의 사회화 내면화 작업을 충실히 하고 있으면서 말이지요. 인도에 카스트가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팔자가 있지 않은가 하느데, 그런 이 나라에서 그놈의 '팔자'를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계급 재생산적 제도와의 분명한 결별을 선언하고 합리적이고 자발적으로 탈체제적인 생활양식과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거나 급진적인 사회의식을 구가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말씀하신 바 "믿는 것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은, 그 믿는 대상이나 이념이 부지불식간에라도 이 체제를 강화하는 것일 수 있다는 일말의 위험(?)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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