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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호출벨

2012. 1. 19. 20:10

타이완의 어느 빌딩 교회 화장실에서 무심결에 '누름' 단추를 눌렀다가 5분간 시끄럽게 울리는 사이렌 때문에 죄송스럽고 민망해 굉장히 혼난 일이 있었다. 교회 어른들은 괜찮다고 했지만 괜찮은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변기 오른쪽 옆, 정말 누르기 쉽고 좋은 위치에 그렇게 큰 소리를 내는 버튼이 별다른 표지 없이 태연하게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정말 아무 설명도 없이 단추에 일본어 흰 글씨로 '누르시오'라고만 써 있길래 나는 무슨 환풍기 작동 버튼인 줄 알았다...

그게 나흘 전이었고, 오늘 나는 또 다른 비상벨을 발견했다.


이 비상벨은 강변CGV 상영관 출구 통로 내 남자 화장실에 붙어 있었다.

저 벨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린 어떤 하청 노동자 한 분이 이번엔 또 뭐냐며 느릿느릿 나가 보는 사이에, 누군가는 영화관 옆에서 영화의 한 장면보다 더 아찔한 피습을 당해 너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게 심한 비약이란 걸 알지만, 어쩌면 이것이 위급상황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안전한 것은 아니지만 또한 언제나 불안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군가는 불안을 매입하고 안전을 하청한다. 그렇게 일상적 돌발상황은 위급으로 둔갑하고, 촌각을 다투는 진짜 비상 상황은 이해되지 못하고 만다. 성추행범이 나타났을 때 울려야 할 비상벨은 물비누가 없을 때 울리고, 기기가 고장나서 짜증을 부리며 눌러대는 비상벨은 정작 두 발이 비정상적으로 칸막이 밖으로 비집어 나온 칸막이문을 발견했을 때는 울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도대체 휴지통이 가득찬 것이 위급상황 발생과 어떻게 동급이 되는 것일까? 둘 다 사람 한 명 불러 주는 일이라는 점에서는 진배없다는 것일까?

나는 이제 비상벨은, 천재지변이 나거나 사람이 쓰러져 있지 않은 이상 안 누르려고 한다. 비상벨이 원하는 비상상황이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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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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