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졸업을 네 번 해 봤다. 초등학교 때 가장 즐거웠다. 그 다음이 유치원, 그 다음은 고등학교, 솔직히 중학교 때 졸업이 가장 재미없었다. 그 때 '성적순 표창'에서 난 순결상이란 걸 받았다. 내가 내 입으로 떠들고 다니는 이야기지만 참 우습다.
졸업이 기쁘지 않은 시대다. 내가 뭘 졸업했는가. 남아 있는 목표가 산더미같고 앞길이 구만리장천인데. 졸업을 기뻐할 수 없게 하는 사회다. 니가 뭘 졸업했는데. 직장 갖고 배우자 갖고 자식 갖고 집 갖고 차 갖고 땅 갖고 다 가져도 모자랄 판인데.
왜 졸업식 때 난리 부르스를 떠는 일부가 있을까. 간단하다. 이젠 당신들과 관계없다 이거지. 교복은 권위와 체제의 상징이다. 그걸 어렴풋이 알기에 거기에 야유하는 상징행위가 생겨났고, 그게 그저 하나의 전통이 되어 내려오고 있을 뿐이다. 대단한 이유는 없다. 거창한 용어와 통사구조로 논의할 정도로 뭐가 있는 현상은 아니다.
내가 또래 꼴통들에게 가끔 하는 말이 있다. '너 쉰일곱 살(혹은 예순다섯 살이라도 좋다) 먹어서도 그러고 살 테냐'가 그것이다. 물으나마나다. 설마하니 그 나이 먹고도 제복에 계란 던지고 밀가루옷 입히고 케첩 발라서 기름에 튀기고 그럴까. 세월 지나면 다 치기어린 반항 혹은 아무 생각 없었던 추억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강력범죄로 몰지도 말고, 보호받을 문화로 여기지도 말자. 지금 추세를 보자면, 앞으론 소화기를 뿜고 피칠갑을 하고 뭘 하더라도 졸업이 아무 추억도 되지 않는 뻑뻑한 세상이 올 거 같으니까.
사진을 몇 장 보고, 에이 기분 잡쳤네, 할 수 없이 더 적는다. 난 하남시 촌구석에 사는 순디기라 잘 몰랐다. 우리 동네에선 밀가루 바르고 케첩 묻히는 정도였다. 사회적 물의 수준으로 난리를 치는 종자들은, 졸업은 단순히 하나의 핑계고 그냥 평소 하고 싶던 주접을 한 거다. 권위에 그렇게 원한맺혀 있으면 자기들끼리 그러고 말겠나, 교장실로 뛰어갔겠지. 핑계는 핑계고 범죄는 범죄다. 그러니까 그들과 이 글 혹은 졸업과는 관계없다. 아니라고 생각하는가?
俗・さよなら絶望先生 第06話 「君 知りたもうことなかれ」「夢無し芳一の話」「隠蔽卒」 안녕 절망선생 속편 6화 "난 모르오 안 알린 죄밖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어머니 그 사랑니를 알으십니까"
이번껀 너무 순조로움. 세상에 B파트는 이번 회에 나올 거라고 예상했는데 맞았다! C파트에서의 장난도 재미있었는데, (자세히는 비통지라 미리니름 안함) 이것도 실은 분명히 원작의 자막을 따라서 뭔가 샤프트가 한술 더 떠 줄 거라는 예상도 했었다. 그래서 결국 드디어 오토나시도 말을 했다. 사토 치와라는 성우다. 난 하츠네 미쿠한테 시키든지 그 역을 맡은 후지타 사키씨를 불러서 시키겠지 생각했었는데. 앗차, 신보 씨, 그 생각은 못 했죠? ㅋㅋ (←이겼다고 생각하고 있음.) - v0.0 (아직 자막없음, 내일모레 공개)
C파트에서 지겨워서 한 박자 쉬고 하루 지나고 다시 만드네요. 성우 이름과 엔딩에서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싱크 이동을 쉽게 하게 되었습니다. 오프닝 가사도 좀 손봤습니다. 문화상품권 5만원이 생긴 덕에 단행본 전권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 v1.0
※알고 있는 대로 쓴 글이므로 의견 혹은 단순 참고자료로만 봐 주십시오. 학술적 적절성은 보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다면, 현대 미디어 사회의 온갖 현상들을 관통하는 어휘가 하나 있다. 스펙터클이 그것이다. 우리말로는 '볼것', '구경거리' 정도가 되는 스펙터클. 고도로 발달한 미디어(중개자)가 현대인들을 진정한 체험으로부터 떨어지게 하면서 사람들은 스펙터클이 주는 간접 경험에 취해 있고, 또 미디어가 가공하여 전달하는 그 스펙터클을 가지고 직접 경험을 해석하고 수행하려 하는, 말하자면 주객전도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미디어와 직, 간접 경험에 관련된 현상들을 살펴보면 일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젠가 교회 청년회가 금요일 저녁에 떠나 토요일 낮에 돌아오는 외박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누군가가 말했다. '우리 1박2일 찍고 온다'라고. 이것이 스펙터클 이론을 설명하는 한 예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락프로그램 '1박2일'은 전형적인 스펙터클이다. 연예인들이 산간, 도서 지방 등을 여행하되, 편하게 가지 않고 마치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을 돌듯이 온갖 고생을 겪고 여행의 보람을 느끼며 돌아온다는 컨셉이다. 사실 이것은 프로그램으로 굳이 만들어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남이 여행한 이야기를 보느니 차라리 직접 가면서 즐기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여행하기 귀찮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프로그램은 고생을 '기획'하고, 여행 중의 장난과 놀이를 '촬영'하며, 그들이 느긋하게 가지 않는다는 것을 '방송'해 보여준다. 미디어가 그런 지점까지 범접하자 교회 청년들의 외박여행은 졸지에 '1박2일 따라하기'로 전락해 버린다. 직접 경험이 아니라 간접 경험의 모사로 치부되고 마는 것이다. 'UCC 동영상'[각주:1] 또한 우리가 스펙터클에 젖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사람들은 조금만 특이한 장면을 보면 핸드폰 카메라부터 꺼낸다. 그 장면을 유심히 보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그것을 하나의 구경거리로 축소 복사해 버린다. 영상통화 브랜드 'show'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나는 자꾸만 그 광고가 show를 하라고 하기에 또 어떤 대단하신 UCC 사이트가 런칭하는가보다 했다. 자기네 '영상통화'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건 영상통화지 쇼가 아니다. 우리의 직접 경험(서로 얼굴을 보고 통화하는 일)이 무슨 스펙터클, 대단한 볼거리인 양 광고한다[각주:2]. 그래야 팔리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경험의 대부분은 볼거리와 간접 경험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영상통화 광고 컨셉을 '상상만 했던 영상통화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따위의 직설적인 것으로 잡았다면 일련의 show 프로모션처럼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그토록 신비한 것으로 선전할 수 있었을까? 여러분은 show 극장편 CF를 따라할 수 있겠는가? 광고에서 보여주기로는 쇼를 하면 영화 티켓이 공짜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쇼(직접 경험)를 하라는 게 아니라, show(간접 경험)를 사라는 것일 뿐이었다. 미디어를 접하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진짜 상황'에서 멀어지게 한다. 심지어는 예의범절을 가르쳐주는 쇼프로가 생길 정도이니, 우리가 얼마나 '진짜 상황'에서 소외되고 있는지(아니면 진짜 상황이 우리를 소외하는지도 모른다)를 짐작할 만하다. 상황주의자들은 거짓으로 점철된 가짜 생활을 벗고 직접 상황에 뛰어드는 삶을 촉구한다. '쇼를 되찾을 것'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환경, 분위기, 상황을 창조할 것'을, '일시적이고 직접 경험한 무엇인가를 만들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각주:3] 막상 요구를 받고 나면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핵심은 '일시적이고 직접적이며 계획되지 않은' 무엇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메가폰을 하나 사서 국회의사당이나 타워팰리스 앞에서 세계인권선언을 읽는 것은 어떨까? 무균복이나 합창단 가운을 입고 시내 한복판에 앉아 있는 건 어떨까? 지나가던 사람 한 명이 동참할 때까지 물구나무를 서면 어떨까? 시를 쓰거나 작곡을 해 보면 어떨까? 길거리 이름을 '방황의 거리' 따위로 바꾸어 보거나, 단체로 무작정 달리거나, 정 아니면 프리허그도 괜찮겠다. 내 경우에는 가끔 참석하는 찬양집회가 있을 수 있다.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곳엔 어떤 미디어도 없이 회중 하나하나가 직접 주님과 교감한다. 어디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일단 어떤 기운이 느껴지면 즉각 반응해야 하는, 직접 경험으로만 이루어진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다.
아이씨 또 길게 썼네...
UCC라고 칭하지 않고 UCC 동영상이라고 칭한다. UCC가 곧 동영상이라는 개념은 포털이 만들어낸 허구이기 때문이다. 자세히는 여기 참조. [본문으로]
실제로 한 몇 달 간이나 서단비 씨에게 쇼를 시켜 스펙터클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우리의 머릿속에 남는 'show'는 단순히 서단비 씨의 막춤과 같은 뭔가 재밌는 것, 흥미로운 것일 뿐이다. 실상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영상통화일 뿐인데도. [본문으로]
이 문장으로부터 시작되는 몇 가지 아이디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빌어온 것이다. 일단은 '애드버스터-상업주의에 갇힌 문화를 전복하라'에서 따 왔다. [본문으로]
- 요즘 볼 영화가 그다지 없더군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를 볼까 말까 고민중입니다. 결국 에반게리온을 보기로 했습니다. 사실 밑도끝도 없이 그 자리 가서 지른 거죠. - CGV의 이런저런 정책에 대해 고민하고 왔습니다. 왜 평일엔 되는데 공휴일엔 멤버십포인트로 영화표를 살 수 없는가, 왜 포인트로 팝콘밖에 팔지 않는가, 포인트 사용 방법에 대해 홈페이지에선 알기 어렵게 설명해 놓았으면서 왜 멤버십은 자꾸 모집하는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는 사람들이 주로 볼 게 뻔한 광고를 왜 올라간 사람들이 봤을 때 똑바르도록 붙여 놓았는가 등등. 포인트 매표는 담당자한테 물어봤더니 '티켓팅 시스템이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돼 있다'라고 하더군요. 경제 문제냐 경영 문제냐. 오랜만에 좀더 생각해 볼 문제. - 매진을 향해 질주하고 있는 영화를 한 표 사겠다고 하니까 곧바로 5열 1번 좌석을 주더군요. 혼자라고 무시하는 거예요? 라고 말해줬습니다.
- 줄거리는? 여러분이 이미 알고 계시는 에반게리온이 맞습니다. 심지어 앞쪽의 미사토네 집에 가는 장면은 아예 애니 DVD판스러울 정도. 그런데 애니로 나왔던 거보단 쉽네요. (원최 한 6화쯤 보다가 때려쳤기 때문에...) 애들이 시끄럽게 굴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이런 영화를 15세도 아니고 12세로 책정하다니, 아직 우리나라 등급위원회는 멀었다니까. - 애니보다 쉽다고 한 말의 뜻은, 그러니까 거부감이 드는 표현이나 짜증나는 시퀀스가 많이 줄었다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극장이라 좀더 일반인을 배려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 에반게리온과 안녕 절망선생의 공통점은 딱 두 개. 절망적인 이야기와 눈이 행복한 타이포그래피. 정말 에바 시리즈에 사용되는 굵은 명조체와 그걸 사용하는 디자인 감각만은 크게 평가할 만합니다. 우리나라로 하자면 HY견명조는 좀 아니고 산돌명조B 정도면 될까요? 아냐, 아냐. 그보다 더 쎄야 해. 아주 잠깐씩만 지나가는 한자들이지만 놓치지 않으려고 자막보다 그런 것들에 집중을 해버렸습니다(본편 이외의 것에 신경써버린 거죠). 특수 전쟁에 사용되는 군사적인 서체는 역시 그렇게 생겨야 해요. 올곧고, 칼같고, 두껍고, 커야 좋고.
잠시 감상하고 지나가는 시간 갖죠. 하테나에 따르면 문제의 명조체는 마티스EB 혹은 극태명조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지는 그저 성격장애자 아닌가요? 그래서 군대에서 그거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면 간단하지 않나? 근데 생각해보면, 군인을 징집하고 배치를 할 땐 임무나 각종 상황 등을 알려줘야 되는 건데 왜 그런 게 전혀 없죠? 일부러? - 제가 몰라서 그러는데, 스토리상 아스카가 안 나오는 타이밍인가요? - 왜 사도들은 일본만 공격하나요? ㅋㅋㅋㅋㅋ - 짜증나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줄거리 흐름에 집중할 수 있었다는. 그래서 세계관이나 험악한 장면들이 어느 정도 이입 이해가 가능하더라는. 별개 인격을 억지로 붙여놓으면 괴란쩍을 수밖에 없어요. 폭주를 하든 벽을 치든, 그런 게 이상한 게 아니라 순순히 따르는 게 이상한 거죠. 뭐 틀린 말이면 할 수 없고요. - 갈*패닉스2에 나오는 그 괴물이었군요. - 아무튼 긴 시간 동안 멍청하게 입 벌리고 보고만 있으면 되는 적당한 영화. - 음향도 그렇고 영상도 그렇고 치고 맞고 하는 장면들은 이펙트가 정말 킹왕짱. 효과 하는 사람들은 정말 재미나게 했겠던데요.
- 원작(애니)에선 많이 느끼지 못했던 것이지만(불쾌감 견디느라고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이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건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장면, 소품, 메카닉, 인물구도, 상황, 이야기, 풍경, 음향 배치에 이르기까지 구석구석에 '생각들을 아주 빽빽하게 채워넣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앞서 말했던 '인격 연동의 부작용'이나 괴물의 다양한 형태, 건물의 설계 구석구석 등등, 웬만한 사람들은 합체로봇 만화 같은 걸 보면서 그냥 지나칠 사소한 문제까지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모조리 메꾸어 놓았다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그 정도 정성이면 당연히 좀더 평가받을 일(もっと評価させるべき)이죠.ww 정말 보는 내내 생각의 밀도를 느낀 작품이었습니다. 여느 작품 같으면 빈틈이 많고, 그래서 거기에 머릿속으로 딴죽 거는 일이 많은데, 에바는 그럴 틈이 별로 없습니다. - 있다고 한다면, 역시 이 만화에서도 구약성서와 계시록은 어쩔 수 없이 우려먹히고 있다는 것. 일본 놈들 십자가 엄청 좋아해요. 신기한 건 복음서의 용어나 네타(...)는 전혀 모르면서도 666이니 뭐니 하는 거엔 빠삭하다는 것. 하나의 '신화'로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좋다 이거야, 내가 가서 그 신화를 '사실'로 만들어주겠어. (...) - 일본 사람들은 지구 멸망이나 거대 전쟁에 대해 늘 생각하는 거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날 때는 일본이 무엇인가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는 모양입니다. 침략전쟁을 치러본 적이 없는 나라 국민으로서는 잘 모르겠네요.
- 우타다 히카루 노래 하나 건졌네. 예고편으로 볼 땐 별로였는데 그냥 음악만 들으니 괜찮네요. - 영화 보면서 생각한 거 두 개. '절망선생 극장판 나오면 어떨까', '나는 내 이름이 되겠다'. 아이디어 베껴가면 죽음. - 에반게리온 원작이나 애니를 감명깊게, 혹은 끝까지 다 보신 분은 절대, 절대 가지 마십시오. 이걸 다운받아 볼걸 돈 버렸다고 후회합니다. 하지만 에바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전부터 속쓰렸던 분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의 명작 하나쯤은 봐 둬야지 싶으신 분들은 가서 보세요. 돈 안 아깝습니다. 정성 많이 들였습니다. 초딩이나 애들도 별로 안 들어오니까 괜찮아요. - 엔딩 크레딧 끝까지 보세요. 가사 번역도 돼 있고, 맨 끝에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습니다. - 계단에 애들 앉아있는 포스터, 거기 오른쪽에 적힌 이상한 단어들. 키워드입니다. 일부러 배워서 볼 필욘 없지만 알면 좋습니다. - 별점 5점 만점에 4점. 적당한 영화에 붙이는 점수입니다. 우리나라에 최초로 수입된 에반게리온 극장판이라고?
俗・さよなら絶望先生 第05話 「文化系図」「私はその人を常に残り物と呼んでいた」「恩着せの彼方に」 안녕 절망선생 속편 5화 "젊은 시인이여 운동을 하자", "사람들은 아버지를 나머지라고 불렀다", "은혜 갚으라는 까마귀"
이거 뭐 어렵진 않은데... 샤프트 오프닝 엔딩 손본다고 기력 다 소모했구나. - v0.0
한 서너 시간 걸렸네요. A편과 B편은 원작을 많이 잘라먹었습니다. 원작을 잘라먹고 편집하고 대사 고치고 하면서도 너무 충실하게 따라가네요. 복주머니 편에서는 무슨 특이점이 전혀 없어서 무슨 인터넷 라디오 듣는 거 같은 기분이 드는 장면도 있었고 말이죠. 이런 식으로 가다간 평범한 애니가 되어버리겠네요. 결국 엔딩, 우스이의 일기, 하타 켄지로의 엔드 카드, 츤데레 아이 정도밖엔 달리 볼 게 없는. 그래도 재밌죠. 물론이죠.
俗・さよなら絶望先生 第04話 「路傍の絵師」「恥ずかしい本ばかり読んできました」「薄めの夏」 안녕 절망선생 속편 4화 "아직 지구를 칠 때가 아닙니다", "별을 이야기하는 마음으로", "누이의 마음아 본론을 보아라"
이거 자막도, 다른 여느 제 번역과 마찬가지로 가겠습니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빠르거나 늦거나 그냥 저 좋아서 하는 자막으로 만들겠습니다. 속도나 청해력은 정말 떨어지지만, 다른 건 몰라도 작품에 대한 이해 하나만은 자신있습니다. 그거 하나 믿고 갑니다. 소수 마니아가 생길 그날까지. (놀구 있네.) 나루에의 세계도 그렇지만 이것도 만화책 전권 살 궁리를 해야겠는데... - v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