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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진 않은 인생

2007. 12. 15. 15:18
오늘 정연이가 천호동까지 데려가서 닭갈비를 사줬다. 나름 생일선물이란다.
학교 끝나고 "밥 먹으러 갈래?"라고 할 때부터 집에 오는 버스 탈 때까지 감동이었다.
사실 내가 염치없다는 생각도 했는데, 말하기를, 내가 생일선물로 받은 필통이나 탁상달력을 두고두고 잘 써 주는 것이 감동이 온다더라. 그렇게 생각해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난 실패한 인생은 아닌 거 같다.
찾아가면 같이 놀자는 사람들도 있고, 나름대로 이런저런 진지한 이야기도 가능한 녀석들도 있고, 밥 사준다는 친구도 있고 말이다.

왠지 대학 가면 넘들한테 많이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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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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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데 정말로 그렇다.
왜? 절대 망하지 않을 학문인 인문학이 스스로 위기라고 자처하니까.
세상이 있고 인간이 있는 한 문사철은 반드시 존재한다. 인문학 하는 사람들의 할 일은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근간을 마련해 주는 일이다. 본디 밑바탕은 있는 듯 없는 듯해야 하는 법이고 건물의 기초는 지하 몇 층으로 파고들어가서 떠받들어주어야 하는 법이잖은가. 안 보이지만 나머지 모두를 통해 드러내는 것이다.
인문학은 정신의 인프라고 뿌리이며 밑바탕이다. 그런 인문학이 자기 자리를 팽개치고 위로 솟겠다고 한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는 말라죽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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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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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 두 개

2007. 12. 13. 13:45

어젯밤에 센류를 두 개 써 봤다. 말이 되는 소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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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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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 엽토군이야. 본명은 김어진이구. 지금은 그냥 형이라고 할게.
형이 글짓기 대회를 좀 많이 나가본 경험이 있거든.
그래서 그 경험 살려서, 너네들 앞으루 글짓기 대회 나갈 때 어떻게 글을 쓰면 상을 탈 수 있는지 좀 말해볼게.
이건 진짜야. 믿어도 돼.
형은 고리타분한 충고라면 딱 질색이야. 진짜 필요한 거만 말해줄 테니까 들어봐.

먼저, 글짓기 대회의 기본은 시와 산문(수필이라고도 하지만)이야.
이상하지 않니? 왜 설명문이나 논술이나 소설 같은 건 안 될까?
별로 큰 이유는 없어. 어른들이 복잡한 걸 싫어하거든.
대회 여는 어른들이 얼마나 피곤한 사람들인데. 너네들이 쓰는 글을 몇백 편 보는 게 그분들이 할 일이야. 그러니까 너무 대단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시나 산문 둘 중에 하나 골라서 쓰도록 해. 괜히 새로운 거나 편한 거 쓰려고 하지 말고. 근데 이건 다들 알지?

아, 그리고 자기가 글을 못 쓴다고 생각하는 친구도 있을 거야.
겁 먹지 마. 너보다 평가는 잘 해 주시는데 글은 너보다 더 못 쓰는 심사위원 어른도 있어.
중요한 건 재주가 아니야. 얼마나 상을 타기 좋게 쓰느냐 하는 거지. 그걸 명심해.

그럼 시부터 말해볼까?
너희들은 시가 쉽니, 산문이 쉽니? 사실 창작하기로는 산문이 훨씬 쉽단다. 하지만 상을 받는 건 시가 훨씬 쉬워. 왜냐면 어른들이 좋아할 확률이 높거든.
왜 그렇잖아? 시는 야리꼬리하게 쓰잖니. 그게 심사위원들의 이목을 끄는 거야. 이상하지? 나도 그래.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면 될까? 간단해. 평범하게 쓰면 돼. 그러니까 평범하다는 건, 너네들이 스스로 생각해 보기에도 낯간지럽고 고상한 척하는 이상한 말들을 지어내가지고 주어진 소재를 그럴듯하게 꾸미되, 너무 오버하지 않는 거야.
왜 그걸 평범하다고 하느냐면, 사람들은 이상하게 시라는 걸 고상하고 세련된 은빛 고차원예술로 생각하거든.
사실은 절대 아냐. 시야말로 가장 얼굴이 다양한 문학이야. 하지만 평범한 심사위원 어른들이 갖고 있는 평범한 시(詩) 세계에 맞춰서 작품을 써야 상을 타니까, 그래서 평범하게 쓰라는 거야.
예를 들어 소재가 '단풍'이라면, 별거 없어.
'붉은 단풍이 어머니처럼 우아하게 떨어진다' 하는 식으로 써.
어머니가 우아하게 떨어지는지 둥실둥실 뜨는지 내가 알 게 뭐람? 닭살 돋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심사위원들도 혹하는 표현을 한두 개쯤은 쓸 수 있게 돼. 정말이야.
그리고 '상투적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 뻔한 걸 상투적이라고 해. '누울 수 있을 거 같은 구름' 같은 건 누구나 하는 생각이잖아? 그런 표현을 시를 쓸 때 쓰는 거야.
근데 주의할 점. 떠오른 생각 중 상투적인 생각만 골라서 쓰려고 하지는 마. 그건 오히려 더 실패하니까.
내 친구 중에 글짓기 나갔다 하면 시만 쓰고 오는 애가 있었어. 근데 상 탈 건 다 타더라고.
걔가 평소에 말하는 거랑 글쓰는 거랑 완전 다른 애거든.
써논 거만 보면 조선시대 사람인데 친구랑 떠들고 노는 거 보면 21세기 소년이야.
어떤 느낌인지 알겠니?

산문은 어떻게 쓰면 될까?
결론부터 말할게. 착하게 써.
한순간 바른생활 교과서의 인수나 수영이가 되어서 세상과 글감, 그리고 심사위원 어른들을 바라보면서 쓰면 돼.
세상을 조금이라도 부정적으로 보거나, 기분 나쁜 단어 하나라도 잘못 넣었다간 그대로 탈락이야. 얌전하고 예의바른 글을 써 줘야 해.
왜냐고? 산문은 모든 글 종류 중에서 글쓴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종류야.
근데 대회를 개최하는 어른들은 너네들이 아주 순수하고 올바르길 바라거든.
(솔직히 자기들은 안 그러면서 말야, 그지?)
그리고 그걸 자기네들이 벌인 재롱잔치에서 확인하고 싶어해.
아직 이 땅엔 컴퓨터 오락과 TV, 만화, 폭력물 등등(어른들은 이게 뭐가 그렇게 무서울까? 사실 이런 거 안 좋아. 근데 어른들이 좀 오바한다, 그지? 그런거 만들어주는 것도 다 어른들이면서)에 물들지 않은 아이들이 있고, 그 아이들이 써 준 글을 통해 자신들이 옳다고 믿는 거나 몸바쳐 일하고 있는 일의 미래가 밝다고 믿고 싶어해.
형이 하는 말 알겠니?
맞어, 그거야. 어른들이 너희들의 글을 봤을 때 평범하고 착하고 그래서 예뻐 보이면, 어른들은 그 글이 곧 너희들일 거라고 믿어. 그리고 기분 좋게 너희들에게 상과 기념품, 상품권을 주는 거지.
그리고 혹시 이 중에 세상엔 잘못된 일이 많다고 생각하거나, 왜 그런지 혹은 꼭 그래야 되는 건지 궁금한 게 많은 친구 있니? 혹시나 있다면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차라리 시로 승부해라.
어른들이 제일 좋아하는 글은 귀엽고 재롱부리는 글이야.
그럼 제일 싫어하는 글은 뭐게? 기어오르는 글.
어른처럼 생각하고 어른들한테 말대꾸하는 글을 어른들은 제일 싫어해.
대견하다고 해주진 못할망정 '버릇없다', '반항적이다' 등등으로 혼을 내.
(자긴 절대 안 그런데 말이지.)
그러니까, 아무리 산문이 자유로운 글이라지만 절대 자유롭게 쓸 수 없어.
물론 쓸 수는 있지. 아무도 혼내지 않아.
다만, 친구의 그 멋진 글은 혼자 쓰고 혼자 좋아하고 쓰레기통으로 곧장 들어가는 신세가 돼.

그리고 절대 아는 척하지 마.
너희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야. 적어도 너희의 글에선 그게 물씬물씬 느껴져야 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러니까 이런 건 옳고 저런 건 그르다! 잘못됐다!"라고 쓰면 채점도 안 해주실 거야. 왜? 싫으니까. 마음 편하고 기분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은데!
형은 대회 나가서 주로 산문을 썼는데, 생각해 보면 그 하고많은 산문 중 제대로 상을 타 본 경험은 없었던 거 같아. 주로 논설문을 썼거든.
왜냐면 다른 애들이 입에 발린 글만 붕어빵 찍어내듯이 쓰는 게 보였으니까.
그래서 난 남들관 다르게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솔직하게 글을 쓰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아니더라고.
솔직히 말해서 나 고등학교 들어와서 글로 상을 타 본 일이 거의 없어. 항상 그렇게 썼거든.
남의 비위를 맞추기가 너무 싫었어. 하지만 그래서는 상을 탈 수가 없더라고.
형이 잘난척을 하고 아는 체했기 때문에 상이 돌아오지 않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지?

혹시 수기(주제와 관련하여 겪은 일을 적어가는 수필의 일종)에 응모하려는 친구 있니?
이거 하나 반드시 기억해. 엄마 졸라서 담당기관(대회를 개최하는 곳)을 찾아가서 잘 보면, '우수작 사례집'이라는 게 반드시 있어. 그걸 야릇하게 베끼면 단박에 붙어.
좀 오래된 글을 베껴야 해. 눈치챌지도 모르거든. 한 4년쯤 지난 글부터가 베끼기 좋아.
그래도 되냐고? 돼.
베끼든 안 베끼든 상을 타는 수기들은 어차피 그게 그거야. 결국 '그분들(아니면 그것)이 우릴 행복하게 해 주었다'라는 얘기일 거 아냐. 솔직히 안 그래?
정 마음에 켕기면 베끼진 않더라도 한번 쫙 읽어보기만 해도 좋아.
그러고 나면 아마 친구가 처음 쓰려고 했던 건 절대 쓸 수 없다는 걸 알게 될 거야.

중학교 2학년 때 형을 가르쳐주시던 국어선생님이 계셨어.
내가 글재주가 있다면서 온갖 대회에 다 데리구 다시니더라고. 솔직히 그땐 창피했지. 상도 잘 못 타오는데 왜 이러시나 하고.
근데 그게 다 이런 경험이 되어서 이렇게 말해줄 수 있는 밑거름이 됐나 봐.
난 상을 하도 못 타서, 고민했고, 그 결론이 이거야. 형은 항상 형 주관대로 글을 썼고, 그래서 상을 타는 데 실패했어. 그렇다면 그 반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꼭 좀 당부할게.
형이 이렇게까지 말해 줬으니까, 꼭 글짓기 대회에 나가 줘.
글짓기 대회는 학교에 나가는 청소년의 특권이야. 어른이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해. 잘 생각해 봐. 어른이 글짓기하는 거 본 적 있나.
그러니까, 꼭 부탁한다. 대회 나가서, 형이 말해준 대로 한번 좀 써 주라. 그리고 상을 타나 못 타나 봐서, 형한테 좀 알려줘라.
형은 진짜 궁금하다. 만약에 형이 쓰라는 대로 써도 아무도 상을 받아올 수 없다면 형은 이제 전국적으로 난무하는 글짓기 대회를 제재하자는 법안을 청구할 생각이야.
근데 아마 잘 될 거야. 너희들은 훌륭하니까. 꼭 좀 부탁해.

그리고 상 많이 타라. 남는 건 자격증이랑 성적이랑 상밖에 없단다.
특히 고등학교 때 상 많이 타야 해. 그래야 대학교 가.
내가 이렇게 짜증날 정도로 길게 쓴 것도 결국 너네들 상 타라는 마음 때문에 그래.
글 많이 쓰고, 그래서 상 많이 받아라. 그래서 훌륭한 미래 대한민국의 주역이 되어다오. 물론 이런 방법이 먹히는 글짓기 대회에서 너희들이 쓴 원고지와 받아 온 상장과 상품들을 쌓으면, 권위적 위선과 온갖 허구적 고정관념 그리고 평가지상주의가 꽃피는 재롱잔치가 되어 있겠지만 말야.

P.s 1
아 맞다. 그리고 이거 딱 하나만 기억해. 다른 거 다 몰라도.
어른들은 말야, 상장을 주고 너희들의 글을 '사 간다'. 형도 몰랐거든? 근데 너희가 상을 받는 순간 너희들은 너희의 글을 그 어른들한테 상장 하나 받고 '파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예를 들어 너네가 한국수자원공사 물사랑 글짓기 나가서 시 쓰고 상 타잖아?
그러면 한국수자원공사에서 너네가 쓴 싯귀를 광고에 쓰든,
무슨 예술작품의 한 부분으로 당당히 채택하든,
심지어는 그 지은이 이름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님 이름으로 바꾸든(이건 좀 심했나?!) 너희들한텐 돈 한 푼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야. 사실은 돈을 상당히 많이 줘야 되는데도.
왜냐구? 그 대회 포스터를 보면 조그만 글씨로 이렇게 써 있을 테니까.
"…단, 채택시 해당 작품의 저작권은 주최측에 귀속되며…"

P.s 2
저도 길게 썼으니 답도 진지하게 들어왔으면 좋겠어요. 트랙백 많이 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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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오늘 아침에 한 생각

2007. 12. 8. 09:28

TV뉴스에 아주 잠깐 지나가는 통계자료를 우리는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출처는 어디며, 얼마나 상세하고, 또 얼마나 관련성이 있는지.
원하는 데이터를 찾기가 정말 어려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적절한 수치자료인데, 그 어려움에 비해 보도되는 시간이 너무 짧다. 기자는 죽어라고 고생해서 찾은 것일 터인데 우리는 그걸 무심코 잊는다. 그 노력의 결실을 잘 읽어보아주어야 할 일이다.

Posted by 엽토군
:

지지율을 회의하라

2007. 12. 6. 14:15

모 후보 관련 기사가 뜬다. 팍팍 터진다. 그것도 한달 스무날 열흘 며칠 남겨두고 계속 터진다.
그런데 어떤 세 신문에는 일주일이 멀다하고 모 후보에 해당하는 숫자가 가장 크게 인쇄된 여론조사와 지지율 기사가 나간다.

이러다간 국민들은 자기들의 뜻이 아닌 '소위 국민의 뜻'에 따르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도 그 사람밖엔', '그래도 다들 이렇게 생각하니'라는 결론이 나는.

지지율을 회의하라. 우리가 보고 있는 판국은 총체적으로 제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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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

산돌성경

2007. 12. 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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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 연습.
1024*768이기 때문에 배경화면으로 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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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엽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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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요환님의 "이젠 악플 익숙하다"란 말에 용기내어 트랙백으로 꺼내 길게 씁니다. 솔직히 좀 부럽습니다.

두발제한폐지운동(대부분이 두발자유화라고 하는데, 용어에 대해서도 밑에서 얘기해보기로 하죠)의 과제는 언뜻 생각하기에는 교내 두발 관련 교칙 삭제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두발제한폐지 운동의 진짜 목표는 따로 있습니다. 이 운동은 현실과 사실을 알리고 인권의식, 책임자유 의식을 신장하기 위한 캠페인이라는 거지요.
가만히 관찰해 보면 학교란 굴종, 조작된 동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학습시키고 생활화하는 계급사회입니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로 일단 피지배 계급을 기만한 뒤에 아무렇지도 않게 동의서를 내밀지요. 군중 심리, 역사라는 우상, 일방적인 사회적 가치의 내면화 등은 이 동의를 조작하고요. 한 사회가 민주적이고 다원적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가 바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가'인데, 이 지표만으로 보면 현재 한국의 학교란 독재사회나 다름없습니다.
정치 과목을 배우셨다면 동의하시겠지만, 이런 꽉 막힌 신민형 체제에서는 하향 명령은 받고 상향 건의는 못 하는 전형적인 예스맨들이 양산된다는 겁니다. 구성원들(아니면 피지배층)이 명령 듣는 법만 알지, '니가 뭔데 나한테 명령이야'라던가 '내 서면동의도 없이 감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같은 말을 하는 법은 배우질 못합니다. 방금 예를 든 두 마디는, 아마도 부당한 세상 앞에서 한 번쯤은 외쳐 줘야 될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말은커녕 아침조회 시간에 교장이 하는 이야기에 '그런가 보다'하는 표정으로 박수나 치는 학생이 학교가 키우고 있는 인간군상이란 말입니다. 교육부가 뭐라고요? 21세기를 주도하는 창의적이고 민주적인 지식인 양성? 열심히 꿈꾸라죠.
말이 길어졌는데, 아무튼지간에 한마디로 현재의 한국 교정은 너무나 비민주적입니다. 미래의 새싹들이, 절대다수의 구성원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 권리도 행사할 줄 모르는 사회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어두운 한국의 앞날을 걱정해서라도 이건 고쳐야 할 일이지요. 그리고 그 대변혁의 도화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얘깃거리, 즉 '두발'인 겁니다. 그래서 두발자유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겉으로는 머리 자르지 말라고 외치고 있지만, 사실은 우리도 불만은 있다고, 우리도 자유롭게 동의할 권리는 있다고 소리치는 겁니다. 그래서 전 그 원래 취지 혹은 바람직한 취지를 생각해서 두발'자유'화라는 말보다는 두발'제한폐지'라는 말을 쓰고 있습니다. 머리카락만 맘대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다가 아니고, 오히려 학교의 구성원이자 절대다수로서 권리를 되찾고 일으켜 행사하고, 동의할 수 없는 모든 제한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돼지 신세로 진주를 받으면 뭐합니까, 사람으로 거듭나서 진주를 받아야지요.
물론 어쩌다보니 '우리도 패션을 따르고 싶고 우리 멋대로 하고 싶다'라는 쪽으로 와전되어 버려서(와전이라기보단 삼천포로 빠진 거겠지요?) 어른들이 '뭐 대단한 거 아니구만, 그런 건 지금 공부하고서 대학 가면 해'라는 얄미운 결론을 내고 있는 게 최근의 구도인 듯합니다. 그게 아닙니다. 제 생각에 이 운동, 이 캠페인은 철저하게 왜곡되었습니다. 홍보를 잘못 한 셈이지요. '우리의 머리가 막 잘려나간다'가 아니라 '우리의 권리는 어디 갔느냐'로 갔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게 현재 두발자유화 운동이 부딪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은... 아마도 입요환님이 두발제한폐지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시는 건 바로 윗단락에서 적어 본 최근의 경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래 취지를 헤아려 보신다면, 두발제한폐지 캠페인은 과소평가할 것이 못 되며, 오히려 민주적인 생활양식을 배우기에 좋다는 점에서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일이라는 게 제 견해입니다.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매듭지었고, 또 기회 되는 대로 여기저기에 말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 하는 벽은 높은 거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정말 길게 썼습니다. 아마 앞으로 이보다 더 열심히 두발제한폐지 문제를 논할 일은 논술시험에 나왔을 때 빼곤 없겠네요. 건설적인 논의 부탁합니다.


P.s 자진방법. 써놓고 보니 트랙백 본문과는 좀 멀어져 있군요. 이런~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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